제바달다의 야망과 왕사성의 기적

2014-02-11     자현스님

붓다의 만년인 72세 때 불교교단은 보수주의자인 제바달다에 의해 커다란 혼란을 겪게 된다. 이는 분명 비극적인 사건이지만 불교의 정체성과 붓다의 관점을 알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왜냐하면, 언제나 잃음과 얻음은 동시적이며 또한 상보적이기 때문이다.

 

| 왕사성파와 석가파

붓다의 만년 불교교단 안에서 가장 큰 세력은 수제자인 사리불과 목건련을 필두로 하는 왕사성과 그 주변지역 출신자들에 의한 왕사성파였다. 그러나 석가족들도 이에 못지않은 세력을 확보하고 있었는데, 석가파들의 가장 큰 장점은 붓다가 석가족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후대에 만들어진 내용이기는 하지만, 10대 제자와 이들의 출신지를 살펴보면 우리는 이와 관련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1 사리불 마가다국
2 목건련 마가다국
3 마하가섭 마가다국
4 수보리 고살라국의 사위성
5 부루나 가비라국
6 가전연 아반제국
7 아나율 가비라국
8 우바리 가비라국
9 나후라 가비라국
10 아난 가비라국

이렇게 놓고 본다면 1·2·3의 앞 세 분이 왕사성파이고, 6·7·8·9·10 의 뒤 다섯 분이 석가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중요도는 왕사성파가 높고 숫자에 있어서는 석가파가 더 크게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두 파의 영향이 후대까지도 유전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석가족인 제바달다는 붓다의 사촌동생이자 아난의 친형이다. 그는 붓다 만년에 자신이 석가파의 리더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그것은 그만의10 아난 가비라국 착각이었다. 여기에 석가족은 공화제였기 때문에 국왕(라자)은 종신제가 아닌 윤번제였다. 또 석가족에게는 혈통적인 우월감에 근거하는 교만함이 있었다. 실제로 『선견율비바사』 권13에는 붓다의 마부였다가 출가한 차익이 붓다와 불교를 가리켜 “우리 집안(종족)의 붓다이며 우리 집안의 법(진리)”이라고 하며, 다른 승려들을 억압하고 으스대는 대목이 살펴진다.

제바달다는 이상의 정황들을 고려하여, 붓다 만년 자신이 교단을 승계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붓다의 입장은 달랐다. 불교는 모든 인류의 완성을 위해서 복무하는 가치이므로 자칫 군림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교주를 인정하지 않았다. 즉, 각각의 수행자가 진리를 기준으로 스스로의 옳음으로 나아가기만을 바랐던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천주교의 교황제와는 다른 불교의 인간중심적인 평등관이다.

 

| 제바달다의 5법과 붓다의 중도

제바달다는 자신의 동조자를 모으기 위해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게 되는데, 이것이 총 5개 조항으로 된 5법이다. 5법은 평생 1 누더기만 입기 2 걸식만 하기 3 고기와 생선을 먹지 않기 4 우유나 요구르트 및 치즈 등의 유제품을 먹지 않기 5 절에 살지 않고 나무 밑을 옮겨 다니며 생활하기이다. 이 중 3 의 육식금지는 후일 대승불교에서는 일반화되는 것이지만, 탁발이 일상적이었던 붓다 당시에는 현실적으로 용이한 부분이 아니었다. 그래서 붓다는 이를 취하지 않고 있었다. 또 4 의 유제품 금지는 당시 젖소의 개념이 없는 상황에서 우유 소비가 송아지를 굶게 한다는 이유이며, 치즈와 같은 식품은 고급식품이었기 때문에 금지하자고 한 것이다.

제바달다가 주장한 5개 조항은 오늘날 불교도들이 붓다 당시의 ‘수행자’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와 상당 부분 일치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 붓다의 주장과는 거리가 있다. 붓다는 외부적인 형식을 규정하는 분이 아니라, 내면적인 집착을 떨치는 데 중점을 둔다. 이것이 바로 적절성, 즉 중도이다. 붓다는 제바달다가 5개 조항을 수용해서 불교의 규율로 삼자고 주장하자, “그렇게 하고 싶은 사람은 해도 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유연한 견해만을 피력한다. 왜냐하면, 과도한 엄격성 역시 느슨함에서 오는 나태처럼 또 다른 삶의 굴레(집착)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제바달다의 5개 조항 요구는 인도 전통의 엄격한 수행법인 두타행법에 근거한다. 즉 붓다의 중도주의에 대한, 새로운 2대 붓다로서의 엄격성이라는 비전 제시를 제바달다가 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붓다의 정신을 너무 이해하지 못한 보수주의적인 생각일 뿐이었다. 그 결과 붓다의 가르침에 충실한 왕사성파의 리더 사리불이 이를 바로잡으려고 시도하게 되고, 붓다는 이를 지지하게 된다.

붓다는 제바달다의 스승이자 혈연으로 사촌형이 되지만, 그를 인정해 주지 않고 사리불을 지지한다. 붓다는 진리에 입각하는 분이지 혈연에 끌리는 분이 아니다. 이에 제바달다는 깊은 배신감에 휩싸인다. 제바달다의 붓다에 대한 배신감은 전적으로 자신의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제바달다는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오히려 붓다에게 분노한다. 자신을 먼저 살피지 못하고 잘못을 외부로 돌리는 전형적인 소인의 작태인 것이다.

 

| 제바달다와 아사세의 권력 야망

이때 마가다국의 왕사성에는, 노년의 빔비사라왕을 제거하고 새로운 왕이 되고 싶어 한 야심의 왕자 아사세가 있었다. 아사세는 제바달다와 친밀했는데, 이는 미래 권력에 대한 야망이 두 사람에게 공통분모를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아사세는 빔비사라왕과 붓다가 친밀한 관계 속에서는 쿠데타를 일으키기가 쉽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래서 제바달다와 모의해, 각기 붓다와 빔비사라왕을 시해하고 새로운 붓다와 새로운 왕이 되자는 음모를 획책한다. 즉 아사세는 제바달다를 통해서 붓다와 불교를 견제하기를 원했고, 제바달다는 아사세의 경제적 지원이 필요했던 것이다.

불교 전적들에는 제바달다가 일방적으로 아사세를 부추겨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아사세가 후일 붓다에게 전향해서 참회하는데, 제바달다는 끝내 거부한 것에 대한 종교적인 판단서술일 뿐이다. 자세한 행간을 보면, 제바달다보다는 아사세가 부추겼을 개연성이 더 크다. 아사세는 부왕을 시해하고 새로운 왕이 되는 반면, 제바달다는 왕이 되어 목적을 달성한 아사세에 의해 토사구팽 당하는 것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즉 아사세는 목적을 이루지만 제바달다는 목표를 성취하지 못한 것이다.

특히 빔비사라왕과 아사세 간에는 아버지와 아들의 친밀한 관계를 넘어서는, 빔비사라왕의 탐욕에 얼룩진 살인의 기록도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늦도록 아들이 없었던 빔비사라왕이 자식을 원하는 조급한 마음에서, 다음 생에 자신의 아들이 될 수 있는 수행자를 확인한 후 자객을 보내 암살한다는 것이다. 수행자는 죽음에 이르러 자신이 왜 죽는지를 인지하고, 다시 태어나면 빔비사라왕을 죽이겠다는 최후의 다짐을 한다. 이렇게 죽고 죽이는 운명의 사슬로 태어난 아들이 바로 아사세이다. 아사세의 이름을 번역하면 미생원未生怨, 즉 ‘태어나기 전부터 원수’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또 다른 계통의 이야기가 전한다는 것으로 미루어, 이 사건이 제바달다가 아사세를 부추겨 돌발적으로 발생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또 목숨을 걸고 행해야 하는 쿠데타를 단순히 종교인의 부추김에서 시작할 왕자는 별로 없다는 점에서, 제바달다가 모든 문제를 일으켰다는 기록은 신뢰하기 어렵다. 『논어』에는 자공子貢의 말로, “군자는 낮은 곳에 처하는 것을 꺼려 하는데, 천하의 악한 것이 모두 다 모여들기 때문”이라는 내용이 전한다. 제바달다에게 아사세의 잘못까지 씌워지는 것 역시 바로 이러한 소치이리라.
 

| 왕사성의 기적

왕사성은 붓다의 8대 성지 중 한 곳이다. 이는 제바달다가 아사세의 지원으로 흑상黑象이라는 거대한 코끼리를 술취하게 해서 붓다를 시해하려고 한 사건에서 연유한다. 제바달다는 붓다가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것에 앙심을 품고, 사고를 가장하여 붓다를 시해해 단번에 국면을 전환하고자 한다. 고대인도의 전쟁 양상에는 술취한 코끼리를 적진으로 돌진시키는 방법으로 상대진을 교란하는 작전이 있었다. 이 사건은 이와 같은 양상을 살인에 차용한 것이다.

불교교단의 일원이었던 제바달다는 붓다의 탁발 루트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중간에 갈림길이 없는 일방통로의 끝에서 술취한 코끼리를 돌진시켜 붓다를 밟아 죽이게 하는 방법을 취한다. 그러나 신도들에 의해서 이러한 음모가 사전에 파악되고 붓다에게까지 전해진다. 그들은 붓다가 탁발 루트를 변경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붓다는 담담하게 “이 세상에 붓다를 해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단호히 말하며 준비된 길로 나아간다. 그리고 술취한 흑상이 돌진하자 가만히 오른 손을 들어서 코끼리를 제지한다. 그러자 코끼리는 그 순간 붓다의 거역할 수 없는 거대한 위엄 속에 서서히 멈추며 무릎을 꿇게 된다. 이것을 취상조복醉象調伏, 즉 술취한 코끼리를 조복시켰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왕사성은 붓다의 8대 성지 중 한 곳으로 거듭난다. 기적의 성지는 또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자현 스님
동국대 철학과・불교학과를 졸업했으며, 동국대 불교학과 석사(중국불교)・성균관대 동양철학과 석사(인도불교) 동양철학과 박사(율장)・동국대 미술사학과 박사(건축) 고려대 철학과 박사(한국불교)를 수료했다. 동국대・울산대・성균관대학교에서 강의를 했으며, 현재 동국대 강의교수・대한불교조계종 울산 영평선원 원장대한불교조계종 월정사부산포교원 원장・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 월정사 교무국장・ 대한불교조계종 교수아사리를 맡고 있다. 인도・ 중국・한국・일본에 관한 80여 종의 논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