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노릇의 기본은 범패를 익히는 것”

범패, 의식으로서의 불교음악

2014-02-11     불광출판사
가곡, 판소리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성악聲樂의 하나로 꼽히는 범패. ‘인도(梵)의 소리(唄)’라는 뜻의 범패는 중국을 거쳐 830년 당나라 유학에서 돌아온 진감 국사에 의해 이땅에 유입됐다. 천신들이 불렀다는 천상의 소리 범패는 불교음악의 원류로서 부처님께 올리는 음성공양이다. 불법과 부처님 공덕 찬탄이 주요 내용이며, 영산재나 수륙재 등 불교의식을 행할 때 불리는 노래다. 범패는 다른 말로 어산魚山이라고도 부른다. 중국 위나라 무제(조조)의 아들 조식이 산동 지역의 산을 지나는데 천상에서 아름다운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그때 물고기가 연못에서 뛰노는 율동을 보고 음악적 영감을 얻어 곡을 만들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불교의식 분야의 최고 어른을 어장魚丈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끊어져가는 범패의 맥을 이어온 반세기가 넘는 세월, 조계종 초대 어장 동주 스님(68)의 삶을 통해 범패의 장엄한 품격을 엿본다.
 

| 범패 계승을 위해 선택받은 스님
동주 스님은 1961년 17세 때 서울 상도동 사자암으로 출가했다. 대강백이었던 은사 대은 스님으로부터 경전을 배우면서도, 마음은 늘 선방 좌복에 가 있었다. 4년이 지난 즈음 이제 때가 됐다 싶었는데, 은사스님으로부터 생각지도 못한 지시가 떨어졌다. 승려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불교의식을 익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벽응 스님을 거쳐 당대 최고의 어장인 신촌 봉원사 송암 스님에게 보내져 범패를 배우게 되었다.
“서울을 비롯한 도회지에서는 범패가 곧 중노릇이었어요. 객스님이 찾아오면‘중질 좀 배웠냐?’라고 묻곤 했는데, 그 중질이 바로 범패를 할 줄 아느냐는 것입니다. 범패로 의식을 행하던 재齋가 생계의 방편으로 작용했던 거죠.”
기본적인 재 의식인 상주권공만 배우고 석 달 후에 선방으로 가려고 했는데, 옴짝달싹 못하게 되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송암 스님이 탑골승방에서 비구니스님에게 범패를 가르치는 어회魚會를 가졌는데, 때마침 그곳에 은사스님이 강의하러 오신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은사스님을 만나고 온 송암 스님이 뜬금없이“너희 스님 망령이 나셨나 보다.” 하신다. 은사스님이 세수와 법랍 모두 20여 년이나 아래인 송암 스님에게 절을 하더라는 것이다. 동주 스님에게 범패의 모든 것을 전수해 달라는 신신당부의 간곡한 부탁이었다.
사실 이 모든 것은 동주 스님이 범패에 뛰어난 소질을 보였기 때문이다. 남들은 2시간씩 배워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을, 아침에 잠깐 15분씩만 배워도 척척 소화해냈다. 은사스님의 뜻이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귀중한 소리가 끊어져가니 내가 온전히 배워 맥을 잇고, 그것을 다시 후학에게 가르쳐 계승되도록 하겠다’는 발원을 새겼다. 범패는 악보 없이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는 소리인 만큼, 송암 스님의 모든 행주좌와를 살피며 자기 것으로 만들어갔다.
“제 스스로 범패의 계승을 위해‘선택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죽을 힘을 다해 한 대목 한대목 세밀하게 배워나갔습니다. 지극정성을 다하니, 나중에는 송암 스님의 표정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지 읽을 수 있었죠. 입 안의 혀, 수족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스님도 제게 지극정성으로 가르쳐주셨어요. 추석과 설, 초파일, 칠석, 백중만 빼고는 매일 스님께 범패를 익혔습니다.”
동주 스님의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일취월장했다. 재를 지내러 가면 언제나 1순위로 뽑혔고, 방송이나 언론에서 송암 스님을 인터뷰하러 오면 동주스님이 늘 후계자로 지목됐다. 보통 불교의식 전체를 배우려면 10년이 걸리는데, 스님은 3년 반 만에 모든 과정을 마스터했다. 그후 선방에 가겠다는 뜻을 내비치자, 송암 스님은 망연자실 먼 산을 바라보면서도“공부하러 가겠다니 막을 길이 없구나. 자주 올 생각 말고 공부에만 정진해라.”며 보내줬다.
 

| 천상의 소리, 현대와 호흡하다
10년을 결심하고 선방으로 향했다. 하지만 은사스님이 계시던 사자암 주지 소임을 맡을 수밖에 없어, 8년 만에 화두 참구를 회향하게 되었다. 참선 수행은 범패의 극치가 무엇인지 맛보게 해주었다. 범패는 굴곡이 심해 악보로 구현하기도 힘든 소리다. 잠시 딴 생각이 들라치면 엉뚱한 소리로 갈라져 나온다. 한생각 쉬고 고요한 산사에서 불러본 범패는 그야말로 선정의 극치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세속의 음악이 아니었다. 소리와 하나되는 경험을 하고나서야 비로소 “범패는 하늘사람들이 내는 소리기 때문에 인간이 배우고 흉내내기 어렵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범패는 음성만 좋다고 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계율에 청정하며 선교禪敎에도 통달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동주 스님은 국보급 어장으로 통한다. 청정 비구로서 수행력과 법력을 두루 갖췄다. 음악적인 소질은 타고 났으며, 대강백 대은 스님을 13년간 모시고 살며 강講을 받았다. 또한 내소사, 해인사, 송광사, 통도사 등 제방 선원에서 8년간 치열하게 수행 정진한 수좌였다. 통도사에서는 경봉 스님을 모시고 여섯 철을 났으며, 경봉 스님 입적 후 올해 30주기까지 재 의식을 모두 집전했다.
“대장경이나 조사 어록에서 핵심만 뽑아 만든 게 의식이에요. 함축된 뜻의 골수로 이뤄졌기 때문에 경전 출처와 전체 내용을 모르면 무슨 소린지 이해를 못합니다. 의식을 외우고 소리 내되, 마음의 뜻을 외우지 않으면 절대 전달이 안 되는 거죠. 범패 의식집인『석문의범』의 뜻을 알면서 배우면『화엄경』몇 번보는 것보다 낫습니다. 교학적으로 교리가 최고로 발달했을 때 의식이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의식이 모든 종교의 꽃이요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겁니다.”
조선과 일제의 불교 탄압으로 쇠락을 거듭하던 범패는 1960년대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유학생들에 의해 범패가 서양에 알려졌는데, 그곳 음악가들로부터‘천상의 소리’라는 찬사를 받게 된 것이다. 국내에서도 범패의 전통문화적인 가치가 활발하게 조명되며 1973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로 지정받았고, 2009년에는 영산재가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그러나 선풍을 주창해온 조계종에서만은 유독 범패가 도외시됐다.
조계종 승려로서 범패의 맥을 잇겠다는 원력은 그 자체로 고행의 길이었다. 그러나 스님은 포기하지 않았다. 선방에 다니며 조금씩 잊어간 범패를 되살리기 위해, 다시 송암 스님을 찾아가 사사받으며 더욱 확고하게 완성시켜나갔다. 스님의 노력은 하나씩 결실을 맺었다. 개인적으로 후학들을 길러내며, 2003년부터 3년간 조계사에서 종단 최초로 영산재를 재현해냈다. 2006년에는 조계종 초대 어장에 올랐으며, 15년 동안 불교의식을 체계적으로 결집하여 2009년『승가의범』을 펴냈다. 올해 2월에는 조계종 특수교육기관으로 인가받은‘한국불교전통의례전승원’을 가양동 홍원사에 개원해 현재 20여 명의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또한‘불교상용의식’이 승가대학필수 과목으로 개설되면서, 내년부터 전국 승가대학에서 의례의식 교육이 진행된다. 스님의 할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바로 불교의식의 현대화 작업이다.
“기존의 한문 의식문은 극소수의 사람만 이해해 대중화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래서 현재 한글로 번역된 의식문에 운곡韻曲을 맞추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지금 시작은 예불문과 반야심경, 천수경등 간단한 상용의식부터 하고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불공시식과 영산재 등에도 적용되어야 합니다. 대중과 호흡하는 현대화된 의식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그것을 만들어가는 인적 구성이 중요해요. 스님들뿐만 아니라 국문학자, 한문학자, 시인, 전통음악 및 현대음악 전공자 등 관련 분야의 실력있는 전문가들이 총망라되어 연구가 이뤄져야 합니다. 저는 그 틀을 잡아가는 데 일조하고 싶고, 앞으로 범패의 음악적인 요소를 발전시키며 현대화하는 일은 후학들이 맡아줬으면 좋겠네요.”
 
동주 스님.
1961년 대은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1972년 직지사에서 고암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1965년부터 3년 반 동안 봉원사 송암 스님 문하에서 범패 전 과정을 이수했다. 이후 1970년부터 8년간 내소사, 해인사, 송광사, 통도사 등 제방 선원에서 참선 수행했다. 지금까지 3,000여 회 이상 재 의식을 집전했으며, 2003년부터 3년간 조계사에서 영산재를 재현했다. 200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 영산재 전수교육조교로 지정됐으며, 2006년에는 조계종 어장으로 추대됐다. 사자암 주지, 조계종 의식수련원 원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홍원사 회주, 한국불교전통의례 전승원 학장, 염불교육지도위원회 위원장으로서 후학들에게 범패의 정수를 전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