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불교와 음악 사이

2014-02-11     불광출판사

불교계 대표가수 도신 스님의 음악편력을 시작으로 이야기는 꽃을 피웠다.

| 도신 스님 _ 염불이 곧 노래라는 생각으로 30년 넘게 노래로 포교를 해왔습니다. 그 와중에 어려움이 적지 않았는데, 스님이면 스님답게 살아야지 무슨 노래를 부르냐며 인상을 찡그리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요즘은 많이 나아졌다지만, 여전히 마이크를 잡고 무대에 서면 곱지 않은 눈초리로 바라보는 분들이 계십니다.

열에 아홉은 그랬을 테다. 세속적인 것과는 담을 쌓고 살아야 할 출가수행자가 노래를 부른다고 했을 때 얼씨구나 하고 장단을 맞춰줄 사람은 그리 많지않았을 것이다. 하물며 주변의 도반이나 스승들의 핀잔은 오죽했으랴. 두 동강난 기타만 여러 개가 된다는 스님의 사연에서 그 오랜 고충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에 반해 다른 세 사람은 자신의 선택과 인연에 따라 자연스럽게 불교음악에 뛰어들게 되었다. 긴 시간 불교음악을 하며 공통적으로 느꼈던 바가 있었던지 다들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눈치였다. 그런 심정적 공유 때문이었을까. 짤막한 소개로 말문을 트려 했던 애초의 생각과 달리 이들의 대화는 초반부터 거침없이 진행됐다. 그 첫 번째 화두는‘불교와 음악 사이의 간극’이었다. 먼저 동아시아 불교음악을 두루 연구한 윤소희 씨가 불교와 음악의 관계를 역사적 맥락에서 짚어주었다.

| 윤소희 _ 초기불교는 음악활동을 금기시해왔습니다.「 십송율」,「 사분법」등에서 그 사실을 확인 할 수 있는데요. 실제로 미얀마에서는 수행자들이 수행에 앞서 계를 수지할 때‘누구도 노래를 하거나 듣지 말고, 남에게 기악을 시키지 말 것’이라고 다짐을 합니다.

불교음악의 활성화 방안을 논의하고자 모인 이들 입장에선 말문이 딱 하고 틀어 막힐 법한 상황이었다. 불교라는 종교의 교리 자체가 그러하다는데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하지만 다행히도 그게 전부는 아니었기에 불교음악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말할 수 있는 여지는 남아있었다. 우선 대승불교의 경우, 음악에 대한 입장을 초기불교와 180도 달리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윤소희 씨는 음악활동을 금지했던 초기불교와 달리 대승불교는 음악의 순기능을 받아들여 이를 의례와 불법 홍포에 적극 활용했다고 덧붙였다. 한국불교도 예외는 아니어서 신라시대 진감국사가 당나라 범패를 들여온 이래 불교의례 및 국가행사에 불교음악이 널리 사용되었고, 궁중음악으로부터 민요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만큼 시대의 주류 문화콘텐츠로서 기능해왔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불교음악을 논하는 것이 그리 불온한 일만은 아닐 듯싶었다. 적어도 대승불교, 한국불교에서 그것은 하나의 전통이었으니 말이다. 여기에 더해 불교가 음악을 부정할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가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남방불교와 대승불교 모두 일정 부분 음악적 요소를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흔한 예로 절에서 스님들이 예불을 올리거나 기도를 할 때 율조에 맞춰 염불을 하고 합송하는 것을 들 수 있다. 과연 이것이 음악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 조원행 _ 염불에도 다 음계가 있습니다. 그러니 염불도 노래라 할 수 있죠. 그렇게 스님들은 매일 같이 노래(염불)를 하면서‘찬불가는 안 된다’라고 배타적인 자세를 취하는 걸 보면 그저 답답할 따름입니다.

음악적 전통이 있고, 지금도 음악을 하고 있으면서 정작‘불교음악’이란 말에는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이 모순적인 상황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다시 한 번 역사를 들춰보면, 조선시대 억불정책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불교음악의 흐름이 단절되었던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모인 네 명의 음악인들은 불교와 음악 사이의 간극, 음악에 대한 모순적 태도를 발생시키는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 음악에 대한 일종의 편견과 오해에 있다고 보았다.

| 김현성 _ 기본적으로 음악에는 오락성이 가미돼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때로는 음악이 법문보다 더 큰 깨달음을 전해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긍정적인 기능들을 잘 살려나간다면 음악을 통해 불교와 대중이 서로 소통할 수 있습니다.

김현성 씨는 시대를 막론하고 음악을 배제한 종교는 없었다며 음악의 가치와 필요성에 대해 거듭 강조했다. 이와 함께 불교가 진정 사람들 곁으로 가까이 다가서길 원한다면, 개방적이고 유연한 자세로 음악같은 대중문화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멀리서 손짓하며 부르는 것이 아니라 몸소 아래로 내려가 나란히 동행할 것, 이것이야말로 하화중생下化衆生의 적극적 실천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