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우며 전법하며

신행수기

2007-06-19     관리자
정원 송영자 불광법회 회원

  저의 고향은 충북 제원군 덕산면 선고리입니다. 저의 조 부님께서는 자손 기르시기에 어려움이 많으셨답니다. 정월이면 할아버지께서 할머니께 쌀 한 말을 뉘와 돌을 골라새 자루에 담고 새 무명버선 두 켤레를 기어서 준비해 달라고 하시면 할머니는 정성껏 마련해 드린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준비물을 가지고 풍 기 부석사에 기도를 가십니다. 그리고 미리 준비한 버선을 한 켤레는 스님이 또 한 켤레는 할어버지가 신으시고 밤새워 정진을 하셧답니다. 저의 고향 덕산에는 우서 깊은 사찰이 있는데 하나는 신륵사이고 하나는 고산사였습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는 봄, 가을 두 계절이면 소풍을 절로 갑니다.

  제가 이십 세가 되어 홍씨 가문에 출가하였습니다. 시댁도 불교 집안이었습니다. 시부모 모시고 어려운 살림하면서 농사일도 열심히 도와가면서 청룡사에는 일 년 두세법 갔으며 남편 생일공양은 부처님께 올렸습니다. 직장인인 남편은 지방으로 전근을 자주 다녔습니다. 그 때 시어머니께서는 중풍으로 전신마비가 되셨습니다. 아무리 좋은약은 써도 백약이 무효했습니다. 그 와중에 시아버님은 해수로 출입을 못하시고 두 분이 나란히 누워 계셨습니다. 저는 박봉을 가지고 어른 봉양과 아이들 교육시키느라 어려움은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시부모님 병간호가 거듭 되다보니 어느새 십삼 년이 흘렀습니다. 일년에 요를 두장씩 썩어서 버립니다.  아무리 깨끗하게 하려고 노력해도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던중 포천으로 전근을 갔습니다. 시어머님은 긴 투병 끝에 노망을 하셨습니다. 집주인니 젊은 사람이었는데 이 집에서 돌아사시면 무섭다면서 모시고 나가라고 합니다.  나중에는 말하기 곤란하니까 친정 어머니를 모시고 와 독촉을 했습니다.  이침에 일어나면 주인과 마주치기가 두려웠습니다.

  그 어려운 가운데 부처님께서 도우셨는지 옆 벽돌집이 세를 놓는다고 하셨습니다. 말이 집이지 헛간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즉시 계약하고 방을 하나 더 꾸며 채 마르기도 전에 그 집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이사를 허려고 어머님을 내모시고 보니 요가 장판과 함께 타 붙었습니다.  항상 춥다고 하시어 불문을 닫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 광경을 볼 때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였습니다.  이사가서 일주일만에 어머님은 유명을 달리 하셨습니다.  객지에서 상을 당하고 보니 누가 있습니까. 십삼 년이나 누워 계셨시 때문에 수족이 굳어서 나무 같았습니다.  제 손으로 주물러서 수족을 펴고 수의를 거둔 다음 칠성판에 모셨습니다.

  제가 이십 년 동안 모신 시어머님 마지막 수의는 보너스 탄 돈을 모아미리 동대문 시장에서 삼베를 사두었다가 제 손으로 지어서 입혀드리고 나니 이제 저와 인연도 끝이 났습니다.  어머님께 아범이 딴 데로 전근된다고 말씀드리면 이 몸이 어떻게 따라 가니 하시던 그 근심스업던 표정도 이제는 끝이구나 싶었습니다.  너무 허탈감이 들었습니다.  그 짧은 생애의 그 고통과 괴로움을 다 놓으시고 가셨습니다.  이듬해 시아버님께서 김포에서 또 유명을 달리 하시고 떠나셨습니다.

  객지에서 거듭 상을 다하다 보니 외로웠고 고향의  형제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생전에 계실때 명절이면 제가 각종 음식을 차려 대접하였습니다.  설 때 '추운데 고맙다' 추석 때 '더운데 고맙다' 고 하시면서 기뻐하셨습니다. 돌아가신 뒤 첫  명절이 돌아와 음식을 차려도 후회스럽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모두 불보살님네 위력으로 어려운 저의 생에 부모 모시는 임무는 끝이 난 줄 압니다.  여기저기 객지에서 시부모님 간호와 아이들 기르기에 바빠 그 당시에는 절에갈 마음은 생각도 못하였습니다.  항상 부처님을 생각하며 열심히 가사에 최선을 다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던 중 서울로 전근이 되어서 이사를 왔습니다.  집안 아주머니께서 전법하시어 불광사와 인연이 되었습니다.

  대각사에 큰 스님께서 목요집회  하시는데 나갔습니다. 그러나 잠시 남편의 지방 발령으로 중단되었습니다 그 다음해 불광사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잠실 불광사에 나가니까 법우님 몇 분이 계셨습니다. 그중 대자광 보살님이 저를 천호 법등으로 안내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 때 이아들도 다 크고 그 어려운 입시에도 다 합격하여 이제는 큰 스님모시고 열심히 정진할 원을 세우고 새벽기도, 천일기도 모두 동참하여 오늘까지 정진해 왔습니다.

 남편은 아침이면 꼭 [천수경] [금강경] [반야심경]을 독송하고 출근합니다. 제7기 바라밀 교육도 받았고 아이들도 수계를 했습니다. 호법도 거사와 아들까지도 했고 이제는 가족 모두 함께 정진합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불광사에서 실시하는 교육을 전 법우님께서 받으셔야만 불법에 확고한 신심의 뿌리가 내리고 또 자라나는 어린 자녀에게도 교육의 지표가 될 줄 믿습니다.

 우리가 불국토의 역군이 될 어린이에게 많은 불법 책을 읽게 하고, 이해하기 쉬운 불법 책을 많이 간행하여 손에 잡게 하는 것이 모든 전법에 모범이 될 줄로 믿습니다. 저는 천호 1법등에 마하보살의 부촉을 받고 전법에 전념하면서 상갓집이 있으면 법등 관계없이 찾아가 기도하고 일손을 도와주며 전법에 기초로 삼고 뛰었습니다.

 잠시 임원활동을 하다가 지금은 젊은 보살님들에게 위임하고 사경반에서 활동합니다. 사경반 선생님은 작가 법진 정웅표 선생님이십니다. 큰 스님의 배려로 작가 선생님을 모시고 사경 공부하는 것은 큰 영광입니다. 법신문자(法身文字)를 마음에 새기고 손에 익히며 먹을 갈아 한 자 한 자 써내려가는 사경시도의 기초 작업을 한없는 즐거움입니다. 우리 불광사에서 하는 사경(서예)은 취미가 아닙니다. 수행입니다. 큰 스님께서 사경의식문도 만들어 주셨습니다. 지금은 기초준비지만 멀지않아 사경의 의식대로 시행될 겁니다. 많은 동참 바랍니다.

 저의 조석일과는 새벽기도로 대웅전에서 예불을 맞고 금강경 독송, 바라밀 염송, 삼천념, 회향하고 나면 6시가 됩니다. 집에 와 아침준비를 합니다. 저는 세세생생 큰 스님의 가르침을 명심하고 보살도 수행에 기도 정진하겠습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큰 스님 감사합니다. 우리 법우님 감사합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佛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