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에서 만나는 극락의 세계

서울 동대문 안양암과 지장시왕괘불탱

2014-02-11     불광출판사
도심 속에서 만나는 극락의 세계

서울 동대문 안양암과 지장시왕괘불탱




덧없는 인생, 굳이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이유를 알기 위해 몸부림쳤다.
…고통스럽지만 이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
이 길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외길.
해답을 찾고자 강원에 들어가 경전을 폈다.
참선해서 깨닫는 길뿐이란다.
선방에 들어가 10여 년간 벽을 바라보며
좌복 위에 앉았다.
그럴듯한 말과 폼은 있는데
그럴듯한 삶이 있지 않았다.
내 삶도 폼은 그럴듯했지만 내용은 한심했다.
경전과 어록에서 보고 배운 내용이
실제 선방 살림살이로 나타나는 경우를
거의 만날 수 없었다.
말은 멋지고 거룩한데,
거룩하고 멋진 삶은 보이지 않았다.
말과 생각이 일치하는 삶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선방을 뛰쳐나왔다…. -도법 스님, 『그물코 인생 그물코 사랑』

그리고 도법 스님은,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고자’
몸소 불교대중운동에 뛰어들어
평생을 보내시게 된다.




서울 동대문 창신동에는 구한말 때 창건되어, 근현대의 파란을 끊임없는 불사로 견뎌낸 사찰 ‘안양암’이 있다. 안양암 명부전 내의 시왕상. 동자가 들고 있는 업경대에 비친 시왕님들의 모습. ‘지옥에서 극락정토를 찾으라’. 명부전 왼쪽 벽면의 ‘안양정토’ 문자도. 사찰의 전각 벽면 곳곳에 ‘극락세계’, ‘상락아정’, ‘법륜상전’ 등의 문자를 새겨 넣었다.

| 근대 불교미술의 보물창고
복잡하고 분주한 서울 동대문 시장, 창신동 돌산 기슭에 ‘안양암’이라는 사찰이 있다.사진01 새로 들어선 아파트 단지와 예부터 자리 잡은 자그마한 서민 주택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골지고 경사진 좁은 길, 돌산 밑에 위치한다. 구한말과 식민지, 소위 ‘근대’라 불리는 혼돈의 시기를 고스란히 견뎌온 사찰이다. 안양암이 특별한 이유는, 이러한 격동의 시기를 관통하여 유지됐다는 이유 외에도, 너무나 아름다운 탱화・조각・당번・건축・공예품들이 온건히 보전되어 가히 근대 불교미술의 ‘보물창고’라 할 만하기 때문이다. 창건 당시의 불화와 불상 등이 모두 제 짝 그대로 제자리에 남아있는 서울 주변 사찰은 참으로 드물거니와, 게다가 보존된 작품들 하나하나가 매우 아름답고 또 특이하다.
다양한 전각 벽면마다 민화풍의 화조도와 영모도 또는 문자도로 꾸몄고, 단청과 기둥 사이 사이 그림들도 사랑스럽고 단아하다. 명부전 왼쪽 벽면에는 ‘안양정토’, 오른쪽 벽면에는 ‘극락세계’라는 문자를 새겨 넣었다.사진03 전각 내부의 닫집은, 보통 가운데 주존불을 모신 곳만 장식하는데, 좌우까지 전체를 둘러 꽃과 용 문양 투각으로 정성스레 꾸몄다. 사찰 구석구석, 여간 공을 들인 것이 아니다. 그러니 이 절을 둘러보는 사람은 누구나 이들 정감어린 장식들과 고아한 맛에 취하게 된다.

| 거사불교시대에 피어난 꽃
안양암이 창건된 시기는 19세기 말, 어느 거사에 의해서였다. 혼란스런 개화의 물결 그리고 연이은 일제 침략으로 나라의 주권이 빼앗긴 암흑의 시기, 사찰은 이 시기와 그 역사를 같이한다. 당시 불교의 현주소는 어떠했을까? 불교는 산 속으로 사라졌고 ‘중생구제’라는 불교 본연의 임무는 내팽개쳐진 지 오래였다고 한다. 대중포교는 고사하고 법맥마저 잇기 힘든 시절이었다. 신앙의 구심이 될 만한 그 무엇도 없는 사회적 경황 속에서 신심 깊은 거사들이 그 맥을 이어나갔다 하여, 근대불교는 ‘거사불교’라고도 학계에서는 평하고 있다. 불교사학자 이능화(무능 거사, 1869~1943)의 역작 『조선불교통사』는 이 시기, 근대 거사불교의 대표적 산물로 꼽힌다. 퇴경 권상로(동국대학교 초대 총장, 1879~1965)는 「안양암사적비명(1932년)」에서 “돌아보건대 도심부근에 백 십여 개의 절이 있지만 오직 안양암만이 더욱 새로워지고 있다. 그럼에도 도심의 시끄러움이 조금도 없고, 오히려 엄숙함이 깊은 산속의 오래된 절과 같다. 시내 사람들이 앞 다투어 와서 참배한다. 왕래가 편리하며 절은 청정하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사찰 불사의 이력을 보니, 1889년 칠성각 창건 당시부터 마애관음보살상, 대웅전, 명부전 등 1943년 염불당 건립을 마지막으로 매년 크고 작은 불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니 약 54년 간 줄기차게 이루어진 불사의 산물이 고스란히 축적된 것이 지금 안양암의 모습이다. 총독부의 사찰령, 신사의 건립 등으로 가장 불교가 피폐했던 시대적 악조건 속에서 끊임없는 발원과 불사로 시대를 관통하였다. 친일 인사의 인맥이 불사 후원자로 들어있어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지만, 우리 선조들은 35년이라는 기나긴 일제강점기를 어떻게든 살아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모순의 시기는, 한국인이라면 같이 공유할 수밖에 없는, 우리 역사의 한부분이라 하겠다.




지장시왕괘불탱
1930년, 비단바탕에 채색, 크기407x238cm.
푸른 연꽃 위에 지장보살이 머리에 두건을 쓰고 앉아계신다.
몸에서는 상서로운 오색 빛줄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지장보살의 (마주보아) 왼쪽으로는 극락세계,
오른쪽으로는 육도윤회의 세계가 펼쳐진다.
아래로는 시왕이 줄이어 늘어서 있고, 지옥의 풍경이 펼쳐진다. 불바다 지옥, 혀 빼는 지옥, 얼음산 지옥, 칼산 지옥,
가시밭 지옥 등에 떨어져 고통받는 중생의 모습이다.
(사진자료 제공: 한국불교미술박물관)








<지장시왕괘불탱>의 부분.
극락세계의 ‘연화화생’ 풍경. 지장보살의 본원력으로 극락의 연못에
새로 태어나고 있는 영혼들. 극락의 선율이 울려퍼지고 아름다운
극락조가 난다.
육도윤회의 갈래길. 중생은 지은 업에 따라 육도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인)를 돌고 돌게 된다.
깨달음 얻은 다음에야 이 육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화탕지옥(또는 확탕지옥). 거대한 푸른 무쇠 솥에는 구릿물이
펄펄 끓고 있다. 마치 거대한 업의 바다처럼 표현되었다.
얼음산 지옥. 도깨비 귀신이 한 입김을 내뿜으니 불바다였던 곳이
이번엔 얼음바다로 변해버렸다. 타는 듯한 더위와
벌벌 떠는 추위의 고통을 받고 있는 모습.
철위산 지옥 성벽 위로는 개가 불을 뿜으며 내달리고 있다.
거해지옥. 몸을 무쇠 톱으로 잘리고 갈리는 고통을 받는 지옥이다.
독사, 불개, 늑대 등 맹수들에게 쫓기고 뜯기는 고통을 받는 지옥.

| 지옥과 극락의 갈림길에서
안양암에 소장된 참으로 다양하고도 많은 불교미술품 중, 가장 압권인 것을 꼽으라면 <지장시왕괘불탱>이겠다.사진04 높이 4미터가 넘는 거대한 화폭의 이 괘불은 색채와 도상이 지극히 화려하고 다채롭다. 대개 괘불의 주제는 노사나불이거나 석가삼존 등인데, ‘지장보살과 지옥’을 주제로 삼았다는 점에서 매우 특이하고 참으로 보기 드문 작례라 하겠다. 화폭 가장자리에 기입된 시주자의 이름을 세어보니 그 인원수만 1백 50명. 약 4년 넘게 걸린 이 대대적인 불사는 안양암 업적의 하이라이트다. 수많은 신도들의 간절한 염원, 그 신앙의 힘이 화폭에 결집되었다. 참으로 장관이다!
지장보살은 푸른 연꽃 위에 결가부좌하시고 그 좌우로, 한쪽은 극락세계사진05 또 한쪽은 육도윤회사진06가 펼쳐지고 있다. 지장보살 밑으로는 지옥세계가 펼쳐지고사진07~09 지옥 담장 위로는 열 분의 시왕이 나열해 계신다.사진04 지장보살의 힘으로 지옥과 육도윤회, 극락의 갈림길이 결정되는 것이다. 구태의연한 기존 불화의 답습이 아니라, 창작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작품을 조사하면서 “왜 요즘에는 이런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의구심이 든다. 형식적 모사와 도상 짜깁기로, 보기에는 그럴듯해도, 신앙의 깊이와 힘 또는 창의성이 결여된 현대의 시대라고 한다. 법화 스님 말대로, “요즘은 작품을 ‘신앙’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으로 해서 그런 것”일까.

| 스님 모습의 지장보살, ‘상구보리 하화중생’을 실천하고자
그런데 지장보살은 보살인데도 불구하고, 여느 보살들처럼 머리에 화려한 보관도 쓰지 않고 영락 구슬로 장식도 않고 휘황찬란한 법의도 두르지 않았다. 그래서 지장보살은 다른 보살들에 비해 바로 쉽게 구별된다. 파르라니 깍은 머리에 단출한 가사만 둘렀다. 그리고 지물로는 여의주와 석장을 든다. 지장보살은 보살임에도 어찌하여 스님의 모습(僧形)일까. 『지장십륜경』에는 “지장보살은 과거 무량 겁 동안을 오탁악세 부처님이 안 계신 세계에서 중생들을 성숙시켰느니라. … 여러 권속들과 더불어 ‘성문聲聞의 형상’으로 신통력을 부려 나투시니라.”고 한다.
부처님의 손길이 닿지 않는 지옥세계에서 몸소 중생과 더불어 살고 또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성문’의 모습으로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불교 대중화의 선구이신 원효 스님부터 균여 대사・원묘요세 국사, 근현대의 만해 한용운・도법 스님 등에 이르기까지, 중생을 구하기 위해 저잣거리로 뛰어든 스님들은 모두 지장보살의 화신이겠다. 지장보살은 암흑의 세계로 뛰어들어, 부처님으로부터 받은 ‘석장’을 흔들어 지옥의 문을 열고 손에 든 ‘여의주’로 찬란한 빛으로 비춘다.

(지장보살이 나타나자) 모든 중생들은 각자 자기 손 안에 여의주가 저절로 쥐어져 있음을 보았다. 그 낱낱 여의주에서 여러 가지 광명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 빛으로 인하여 모든 중생들은 시방 항하사 제불세계를 보았고, 또 모든 불국토마다 부처님이 계시고 한량없는 대중들이 이를 둘러싸고 공경함을 보았다. 이 빛으로 인해 모든 국토의 일체 중생들 중에 병이 있는 자는 모든 병이 다 나았고, 또 죽게 되거나 결박되어 옥에 갇힌 자들은 모두 풀려났으며, 몸과 말과 뜻이 거칠고 무겁고 더럽고 탁한 자들은 모두 가볍고 부드럽고 청정함을 얻었고, 굶주린 자들은 모두 배부르게 되었고, 가지가지 형벌로 고통에 핍절한 자는 모든 근심과 고통을 여의였다. -『지장십륜경』 중에서




명부전의 시왕상 1942년, 조소.
지장삼존상 좌우로 진광대왕, 초강대왕, 오관대왕, 염라대왕, 변성대왕, 태산대왕, 평등대왕 등 열 명의 시왕들이 나열하여 있다.
관복에 홀을 들고 관을 쓰고 있는데, 면류관을 쓴 대왕도 있고 머리에 금강경을 이고 있는 대왕도 있다.
사이에 업경대를 들고 시좌하는 동자가 두 명 있다.
시왕들은 중생의 죄업을 낱낱이 보고받고 그에 합당하는 지옥으로 중생들을 배정한다.





안양암 입구.
하얀 코끼리를 탄 보현동자와 푸른 사지를 탄 문수동자.
안양암 위에서 내려다본 전경.

| 온실의 화초 바라문의 딸, 지옥으로 뛰어들다
“부처님이시여, 바라옵건대 저를 불쌍히 여기사 저의 어머니가 태어난 곳을 속히 일러주옵소서. 저는 몸과 마음을 가눌 수가 없고 곧 죽을 것만 같나이다.” 과거에 지은 복덕으로 뭇사람들의 흠모와 존경을 받는 어느 바라문의 딸은, 생전에 삿된 악업을 일삼던 어머니가 무간지옥에 떨어진 것을 알게 되자, 몸부림치다 괴로워 정신을 잃는다. 그녀는 선정에 들어가 지옥의 풍경을 직접 보게 된다. 그녀가 평소 닦은 수양과 공덕의 힘으로 어머니는 다시 천상에 태어나는 복을 받게 된다.
부처님의 자비에 감격한 딸은, 꿈과 같이 집으로 돌아와, 불상 앞에 나아가 크고도 넓은 서원을 세우게 된다. “원컨대 저는 미래 겁이 다하도록 죄지어 고통 받는 중생이 있다면 마땅히 큰 방편으로 그 고통에서 반드시 벗어나게 하겠나이다.” 고통 속의 중생을 반드시 모두 구하겠다고 서원을 세운 이 바라문의 딸은 ‘지장보살의 전신’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