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과연 행복한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

2014-02-11     불광출판사
우리는 과연 행복한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




내 앞에 촌스런 물건이 하나 있다. 부피는 도톰한데
무게는 생각보다 가볍다. 허름한 헌책 한 권.
이 친구가 조용히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 이 헌책의
전체 쪽수는 202쪽. 그런데 겉보기엔 300쪽쯤으로
뵌다. 그간 함부로 굴리지 않았는데 책의 사방 변과
모서리가 꽤나 닳아져 있다. 앞뒤 표지는 누렇게색이 바랬다. 
본문 속종이는 색바램이 좀 더 심하다.
장정은 소박하여 이른바 디자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단출하다. 
제목과 부제, 저자 이름과 출판사 이름을 가운데 맞추기로 
위아래에 배열해 놓았을 뿐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한 여인의 흑백사진이 배치돼
있다. 사오십쯤의 라다크 여인은 맑게 웃고 있는데
이 흑백사진 또한 변색되어 그녀의 웃음도
노르스름하다. 
재생지와 무無코팅 표지로 만들어 쉬이 닳아지고 세월에 많이 삭아버린 이 책.
내용과 종이재질과 장정이 ‘촌스런’ 조화를 이룬 『오래된 미래』의 1996년 초판.




| 유토피아인가? 현실인가?
부제목으로 ‘라다크로부터 배운다’가 붙여진 이 책을 나는 30대 막바지에 읽었다. 그리고 수차례 이리저리 셋집 이사를 하며 뫼시고 다니긴 했지만 서로 모르는 척 지내왔다. 그러다가 최근 입방아에 허다히 오르내리는 바로 그 50대의 중반이 된 오늘, 묵은 책꽂이에서 살며시 빼내어 이 책을 다시 읽는다. 물경 16여 년 만이다. 느낌이 새롭다. 한편으로는 읽을수록 기쁨, 그리움, 안타까움, 슬픔, 분노, 화, 부러움이 연거푸 교차하곤 한다.
저자는 스웨덴 출신의 여성이자 언어학자로서 학위논문 준비를 위해 1975년 처음으로 라다크를 방문한다. ‘작은 티베트’라 불리는 라다크는 서부 히말라야의 해발 3,500m 고원에 자리한 산간 오지. 여름엔 살갗이 델 만큼 땡볕이 거세고 겨울엔 영하 4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이 8개월 동안이나 계속돼 사방천지가 온통 얼어붙어 있는 곳. 언제고 계곡에 회오리바람이 몰아쳐 뿌연 먼지를 일으키고 비는 거의 내리지 않는 황량한 곳.
그런데 거기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행복하게들. 그것도 이 척박한 곳에서 자급자족을 하며 즐겁게 웃으며 일하며 노래하며 춤추며 축제를 벌이며 살고 있었다. 자연과 거의 완벽하게 어울리며 1년에 4개월밖에는 농사를 짓지 못하는데도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 젊은이는 노인을 존경하고 노인은 젊은이들을 아껴주고, 남녀노소가 제 할 일을 알아서 하며 안락하게 사는 곳. 먼 빙하에서 끌어들인 물이며 짐승의 똥이며 자연에서 얻는 소량의 자원을 알뜰살뜰 사용하고 또 재사용하여 쓰레기라곤 안 나오는 곳. 평온과 행복의 공동체를 이루며 사는 사람들. 돈이 별다른 의미가 없는 곳. 무엇보다 화내지 않고 편안하게들 사는 곳. 탐욕 없이 만족하며 사는 곳…. 도대체 이게 가능한 일인가? 이게 유토피아가 아니고 여실한 현실이란 말인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저자는 그 수수께끼의 답이 궁금했고, 그들의 생활과 사유방식과 생생한 실태를 알아가면서는 그것들에 매료되어 아예 거기에 눌러앉는다. 그래서 푸른 눈을 한 라다크인으로 더불어 살아온 16년. 이 책은 그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라다크에서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겪고 활동해온 것, 그리고 그간에 바뀌게 된 서구인으로서의 생각과 의식변화의 추이 등을 진솔하게 써내려간 현장보고서이자 고백록이다. 또한 인도 정부에 의해 라다크가 관광지로 외부에 개방되자 서구화의 물결이 덮치면서 생기는 수많은 문제들, 서구화가 안겨주는 폐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찾기 활동 등을 세 부분으로 갈래지어 써내려간다.
그 구체적인 내용을 소개하는 것은 지면이 짧거니와 어떤 이에게는 실례가 되리라. 왜냐면 『오래된 미래』를 맘먹고 읽어보려는 예비독자들에겐 미리 김을 빼버리는 짓이 될 터이기에. 그 대신 삼가 일독을 권하며 먼 라다크로부터 이 대한민국으로 돌아와 보겠다.

| 『오래된 미래』, 우리를 비추는 거울
이 책은 특히 중간쯤, ‘서구의 도래’로 시작하는 제2부를 읽노라면 저절로 우리들의 60년대와 70년대를 되살피게 된다. 나와 비슷한 또래들은 다 겪은 바이지만, 초등학교 때 우리는 ‘국민교육헌장’을 교탁 앞으로 나가 줄줄 외우는 시험을 봐야 했다. 더듬거리면 능숙히 외워질 때까지 이른바 남은 공부를 당해야 했다. 모두가 그 헌장 전문을 잘 외게 되면 날마다 각 반별로 가락과 리듬에 맞추어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로 출발하여 “1968년 12월 5일 대통령 박정희”까지를 낭랑하게 합송하곤 했다. 뿐인가. 그 헌장의 총 글자 수와 쉼표, 마침표가 몇 개인지를 묻는 도덕시험도 봐야 했기에 그 정답인 ‘총 글자 수 393자, 쉼표 16개, 마침표 8개’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 헌장 가운데 지금껏 뇌리를 떠나지 않는 또 하나는, 당시엔 뭔 소리인지도 몰랐던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고”이다. 그로부터 내 귀에 심심찮게 들려온 것은 ‘동양 최대’, ‘세계 최고’, ‘동양에서 가장 빨리’, ‘세계에서 최단기간에’, ‘세계 최초로’ 등속의 소리들이었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이 독일의 아우토반을 보고 건설을 결심했다는 경부고속도로가 ‘세계에서 최단기간에’ 개통되고 이농 또한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신속히 개시되었다. 이렇게 능률과 실질의 시대는 개막했던 것.
이와 함께 내가 중학교에 들어간 무렵, 그러니까 1970년대 초반엔 ‘새마을운동’이 시작됐다. 그래서 우리는 또 “새벽종이 울렸네. 너도 나도 일어나”로 시작하여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로 이어지는 새마을노래를 학교에서는 입이 아프게 배웠고 집 안팎에서는 귀가 따갑게 들으며 살았다. 그러면서 진짜로 초가지붕 대신에 석면 투성이의 슬레이트 지붕이 얹어지고 마을길이 넓혀지는 것을 목격했다. 소득이 증대됐고 재래식 측간이 개량되는 등 생활여건과 위생상황도 많이 바뀌거나 개선되었다. 그리하여 계층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되었다. 말하자면 보릿고개를 헐어내고 가난을 극복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이 나라가 몰라보게 발전하게 됐다는 것, 이게 박 대통령의 대표적인 치적이라고 줄곧 운위되고 있다. 그렇다면 정말 이 나라는 발전했고, 우리 국민은 그만큼 행복을 누리게 되었는가?

| 잘살아 보세, 잘살아 보세?
박정희시대 이후는 또 어떤가? 멀리 갈 것도 없이 가까운 사례 몇만 보아도 함부로 덤비는 개발은 발전이 아니라 파괴요 퇴보일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예컨대 세계 3대 갯벌이라는 새만금갯벌은 그토록 반대를 했건만 끝내 메워졌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삶에 어떤 긍정적 효과를 줄 것인지는 기대난망이다. 수십조 원의 천문학적인 돈을 들이부으며 강행한 4대강사업 역시 벌써부터 곳곳이 파이고 무너지고 금 가고 물이 줄줄 새고, 그것의 유지보수를 위해 두고두고 더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야 하는 ‘돈 먹는 하마’가 되었다. 그 와중에 새만금과 4대강의 동식물들은 무더기로 몰살당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잘살아 보세, 잘살아 보세’ 하며 여기까지 왔고, 국민소득 2만 불을 다시 넘어섰다. 또한 ‘잘살아 보세’를 주창한 아버지의 여세를 등에 업고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는 사람을 새 지도자로 뽑기도 했다. 그런데도 이 나라 자살률은 세계 1위요, 하루 평균 4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한다. 이 슬픈 세계 1위는 ‘국민행복시대’에도 요지부동일 것만 같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 물음 앞에서 16년 만에 다시 읽는 『오래된 미래』는 익모초를 씹는 듯한 뒷맛을 자아낸다.
아, 라다크! 기나긴 혹한을 이겨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고기를 먹어야 하지만, 결코 짐승 잡는 일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는 라다크인들. 반드시 용서를 빌고 많은 기도를 올린 후에 목숨을 앗아 고기를 취한다는 그들. 그 님들이 기도할 때면 조용히 읊곤 한다는 게송이 귀전을 자꾸만 맴돈다.

내가 타고 짐을 싣는 짐승들
나를 위해 죽임을 당한 짐승들
내가 고기를 먹는 모든 짐승들
그들이 빨리 부처가 되기를.

고규태
1959년 전남 화순에서 태어나 불문학과 국문학을 공부했으며, 1984년 시 전문지 「민중시」 제1집으로 등단했다. 시집 『겨울 111호 법정』 등과 장시 「누리의 빛-붓다」, 「만불산」 등을 집필했고, 불교노래 「무소의 뿔처럼」, 「천년와불」, 환경운동노래 「도요새」, 「갯벌사랑가」 등 50여 편을 작사했으며, 불교칼럼 「붓다의 메아리-울림이 있는 이야기」를 연재하는 등 시인, 작사가, 칼럼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