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합니까?

재미작가 안희경

2014-02-11     불광출판사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합니까?

재미작가 안희경




안다.
온갖 욕심・성냄・어리석음으로 물든
이 사바세계의 삶이 고해苦海요 화택火宅이며,
얼마나 고통을 인내하며 살아야하는지를.
그러한 고통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해
마음을 고요히 하고 닦기도 하며,
서로가 더불어 사는 삶의 희망을 얘기하고
평화를 갈구한다.
하지만 자본과 권력으로
무장한 힘의 논리 앞에서
속절없는 좌절을 맛보기도 한다.
불교방송 PD 출신의 재미작가 안희경(43) 씨가
지혜를 갖춘 세계의 석학들을 만나고
돌아와 인터뷰집을 펴냈다.
그녀의 입을 빌어,
석학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력을 통해
현실을 직시하고
내면의 지혜를 깨우는 시간을 가져본다.




홍대 인근에서 열린 ‘저자와의 만남’에서
안희경 씨는 독자들에게 “답은 우리가 알고 있다.”며
희망을 품고 삶을 살아갈 것을 권했다.

| “분노를 승화시켜 사랑으로 나가자” 
: 최근 놈 촘스키부터 로버트 서먼, 조지 레이코프,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피터 싱어, 코넬 웨스트, 반다나 시바 등 7명의 세계적인 석학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엮어 책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를 출간하셨습니다. 석학들을 만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작년 봄부터 겨울까지 긴 여정이었어요. 그 여정은 한국에 있는 국민들에게 연하장 같은 선물로 뭐가 좋을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되었어요. 처음엔 ‘현대 언어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촘스키 선생을 염두에 두고, 바깥에서 바라보는 한국의 모습을 진단하며 희망 메시지를 전달해주고 싶었죠.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한국을 비롯해 2012년은 전 세계적으로 선거가 많은 해였어요. 변화의 시기가 기회일 수 있겠다고 본 거죠. 성장 위주의 개발 같은 기제들이 정을 맞을 시기가 왔다고 판단하고, 세계적 기운들이 연결되는 어떤 희망적인 흐름을 발견하고 싶었어요. 지혜를 갖춘 석학들을 만났을 때 그 파장이 더 출렁거리고 가슴으로 통하지 않을까 싶어, ‘깨어나자 2012, 석학을 만나다’를 기획하게 된 거죠. 굉장히 바쁘신 분들이라 만남이 쉽지 않을 거라 예상했지만, 우리 문제가 절실하고 지금 필요해서 답을 얻어야 한다면 반드시 기회가 닿아 만날 분은 만나게 된다는 믿음이 있었죠.

: 인터뷰를 한 석학들이 언어학자, 사상가, 심리학자, 윤리학자, 종교학자 등 인문학에 치중되어 있는데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삶의 문제를 얘기하고 싶었어요. 사회적인 이슈가 아니라 내 삶의 문제로 다가가 소통하려고 했습니다. 그 결과로 개인이 바뀐다면 세상을 연결하고 있는 망이 조금 더 든든해지지 않을까 싶었어요. 우리는 모두 하나의 망으로 이어져 있잖아요. 그러니 개인의 변화가 전체 망을 출렁이게 할 수도 있다고 봐요. 내 삶의 변화를 이끄는 실천이 세상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삶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자연스럽게 삶에 뿌리내리고 있는 인문학에 중심을 두게 되었어요.

: 많은 사람들이 슬픔과 좌절, 고통, 아픔을 말합니다. 어떤 이는 깊은 절망의 시대라고도 합니다. 이런 현상은 어디서 원인을 찾을 수 있을까요?
글쎄요. 얼마 전 불교방송을 갔는데, 예전에 그 많던 음반 홍보 매니저들이 한 명도 없는 거예요. 이미 음반시장도 양극화되어 거대 매니지먼트 기획사가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거죠. 자영업이 어려워져 가게 주인이 수시로 바뀌어 간판업만 돈을 번다는 얘기도 있던데, 그만큼 서민들의 삶이 어려워졌어요. 가난의 벽이 굉장히 높아진 거죠. 그리고 작은 정부를 지향하며 공적인 기능, 공공의 자산 가치가 사라져버렸어요. 예를 들면 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으면 굳이 정원이 아름다운 집을 가질 필요가 없잖아요. 80년대 신자유주의 오기 전에는 빈부의 소득 격차가 50배밖에 안 됐으며, 부자들이 세금을 60% 내도 군말하지 않고 받아들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소득 격차가 2,000배로 벌어졌으며 부자들은 서로 세금을 안 내려고 발버둥칩니다. 마치 격투기에서 체급별 룰을 없앤 것과 같아요. 공정한 룰을 없애며 작은 정부와 세계화를 부르짖었던 거죠. 교육도 마찬가지예요. 공교육이 무너지며 사교육비가 내 주머니에서 새나가고, 사교육 안에서도 또 양극화가 심해요. 안 나가도 될 돈이 내 주머니에서 많이 나가니 내 살림이 쪼그라들어 삶은 더욱 팍팍해지는 거죠. 휴대폰도 처음엔 공짜로 받아쓰며 좋아했는데, 지금은 돈 많이 내잖아요. 그때 우리가 몰랐던 걸 분명히 알고 있는 선지자들이 있었을 텐데요. 그래서 지혜를 갖춘 석학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잘못 되어가는 것을 바로 잡고 모든 것을 다시 세우는 희망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 그렇다면 우리 시대 희망의 가치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이분화되고 양극화되어 있는 세계의 경계를 지울 수 있는 건 생명의 가치 같아요. 나도 살고 너도 살고 우리 자식도 사는 생명의 프레임으로 다시 판을 짜야 하는 거죠. 서먼 선생은 “분노를 승화시켜 사랑으로 나가자”고 했습니다. 생명에 대한 자각이 필요해요. 생명을 갖고 있는 자는 분명 착한 본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살 수 있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함께 살자’는 가치를 회복해야 합니다. 자아를 더 넓혀서 다른 종에게까지 착한 본성을 확산시켜가다 보면, 갈라짐의 경계가 메워지고 서로 만나게 되는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부자들만 쳐다보며 살아서 그렇지, 조금 더 큰 망으로 보면 나만 가난한 게 아니라 가난이 정상이에요. 가난이 정상인 것만 바라보아도 실질적인 치유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살자’는 가치를 실천하면서 구제해야 하는 건 절대 빈곤을 겪는 사람들입니다.

| 세상에 부처님 가르침 아닌 게 없다 
: 인터뷰집 제목이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인데, 여기서 ‘하나의 생각’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세상을 고요하고 평화롭게 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요?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나 스스로 고요해지고 평화로워지는 것 아닐까요. 나 하나 고요해짐으로써 세상을 좀더 고요해지게 할 수 있는 거죠. 작은 시작 하나의 소중함을 알고 거기서부터 실천하면, 작은 고요 또한 큰 고요를 만들 것입니다. 각자가 갖고 있는 믿음, 그 소중함에 다가가는 것이 ‘하나의 생각’일 것입니다.

: 이 책을 읽어보면, 석학들의 메시지가 불교와 맥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석학들과 대화하며, 세상에 부처님 가르침 아닌 게 없다는 사실을 새삼 또 깨달았습니다. 이분들은 기본적으로 불교에 대한 이해가 깊었어요. 피터 싱어 선생은 산업화의 희망 대안으로 생명 산업을 꼽으며 불교를 중심에 두자고 했고, 칙센트 미하이 선생은 진정한 행복에 대해 얘기하며 명상을 통해 자기 내면에 귀기울일 것을 당부하셨죠. 이분들뿐 아니라 모든 석학들이 불교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우리 안에 있는 귀한 거울을 꺼내 비쳐주셨습니다.

: 석학들이 꺼내 보여준 거울에는 무엇이 보이던가요?
하나의 소중한 성찰의 지점을 발견하게 됐어요. 촘스키 선생에게 던진 마지막 질문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합니까?”였어요. 그때 선생의 반응은 “당신들이 그 답을 다 알고 있는데, 그걸 왜 나한테 물어보느냐.”였어요. 깜짝 놀랐죠. 한국이 걸어온 근현대를 되돌아보면 민중들이 노동현장에서 산업화의 주역으로 불철주야 일하면서도, 자기 권리를 스스로 찾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고 결국 이뤄냈다는 겁니다. 2011년 일어난 ‘Occupy Wall street’ 운동과 ‘아랍의 봄’ 사태도 있었지만, 2000년대 들어 남미에서 원주민 대통령이 나올 수 있는 배경에는 한국의 승리가 있었다는 거죠. 선생의 마지막 대답은 “당신들은 오직 당신의 역사 속만 들여다보면 됩니다. 그 속에 답이 있습니다.”였습니다.

: 인세 50%를 국제개발구호단체 ‘더프라미스’에 기부하는 뜻은 무엇입니까?
이 책을 내게 된 건 모두 석학들의 공력 덕분입니다. 동영상 촬영까지 했는데, 아무런 저작권도 주장하지 않으시고 책을 낼 때도 끝까지 격려해주셨어요. 그분들과 공덕을 함께 하는 의미도 있고, 절대 빈곤에 허덕이는 제3세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그들에게 빚을 지고 있어요. 우리의 산업화로 인해 일어난 기후적 재난은, 자연 속에서 순박하게 사는 그들의 목숨을 위태롭게까지 합니다. 아무쪼록 이 책을 통해, 한 명의 독자라도 석학들의 지혜에 화답해 마음을 출렁인다면 세상은 한층 더 나은 곳으로 바뀔 것으로 희망을 품어봅니다.

안희경
성신여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에서 불교미술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5년부터 2002년까지 BBS 불교방송 PD로 일했으며 1998년과 2000년에 한국방송대상 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2002년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내 시사 이슈, 서구에서 일어나는 대안문명 중 하나인 동양의 명상을 접목한 사회참여 흐름에 대해 조명해왔다. 2010년부터 현대미술 거장과 세계적 석학을 인터뷰해 여러 매체에 기고하고 있다. 번역한 책으로 세계적 불교단체인 샴발라 센터의 대표 사콩 미팜의 『내가 누구인가라는 가장 깊고 오랜 질문에 관하여』와 틱낫한 스님의 환경명상을 소개한 『우리가 머무는 세상』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