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구도의 공간에서 평화를 구하다

인 제 백 담 사

2014-02-11     불광출판사
치열한 구도의 공간에서 평화를 구하다
인 제 백 담 사




고요함, 그리고 편안함. 사람들이 사찰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그려보는 이미지들이다. 그리고 문득 들려오는 풍경소리도 빠지지 않는 사찰의 이미지다. 사람들은 그런 고즈넉함을 찾아 산을 오르고 사찰을 찾는다. 사람들이 사찰을 찾아올 때는 분명 각자 바라는 것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과연 사찰에서 원하는 것을 찾아갈 수 있을까? 21세기의 사찰은 사람들에게 무엇을 줘야 하는가? 분명 곱씹어 봐야 할 질문이다.

| 몸의 휴식이 아닌 마음의 휴식을 위하여
내설악 깊은 계곡의 멋진 풍광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절이 있다. 일주문 앞 개울가 곳곳에 참배객들이 세워둔 돌탑들이 비바람에도 꿋꿋이 버티고 서서 비경을 이루는 곳, 백담사(주지 삼조)다. 백담사에 유명한 또 한 가지가 바로 템플스테이다. 매달 수십에서 수백 명이 템플스테이에 참가하기 위해 백담사를 찾는다. 사람들이 템플스테이를 찾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쉬고 싶어서죠. 몸을 쉬는 게 아니라 마음을 쉬고 싶어서. 달빛 아래에 앉아 물소리를 듣고 있다 보면 생각을 많이 할 수밖에 없어요. 분명히 각자의 삶에서 원하는 것들이 있거든요. 아무래도 이런 환경에서 생각을 많이 하다보면 원하는 답을 빨리 찾을 수 있지 않겠어요?”
백담사에서 템플스테이를 이끌고 있는 백거 스님의 말이다. 원하는 답을 찾으러 오는 것. 달리 말하면 풀리지 않을 만큼 꼬여버린 마음의 실타래를 풀기 위해 온다는 게 스님의 생각이다. 백담사는 그런 사람들에게 그저 공간을 내어줄 뿐이다. 지친 이들에게 백담사는 말 그대로 쉼터가 된다.
사실 사찰이란 스님들이 머물면서 수행하는 공간이다. 어쩌면 ‘수행의 공간’이라는 게 사찰의 본래 기능일 것이다. 그런데 생사를 넘어서는 한계점까지 치열하게 걸어야 하는 것이 스님들이 걷는 수행의 길이다. 겉모습이야 정적이고 평화롭지만, 사실 그 속에서는 뜨거운 용광로가 부글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치열한 현장에 사람들은 내면의 평화를 찾아온다니, 이처럼 아이러니한 경우가 또 있을까. 하지만, 치열한 구도를 통해 참된 나를 찾아간다는 점에서 그런 사람들에게 사찰은 더없이 훌륭한 공간이다. 백거 스님은 사람들이 찾는 내면의 평화는 비워야만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그릇이 튼튼해야 물을 담을 수 있죠. 거문고의 줄을 조율하는 경전의 일화처럼 너무 팽팽하면 끊어지고, 느슨하면 소리가 좋을 수 없는 게 세상 이치예요. 이미 사람들은 팽팽히 당겨져 있는 상태에서 이곳을 와요. 요즘 사람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세상을 살고 있나요. 그 치열함을 비워야 해요. 그래야 수행의 맛도 볼 수 있어요. 사찰에서 하는 템플스테이는 비우기 위한 것이에요.”




백거 스님은 백담사 템플스테이를 이끌고 있는 장본인이다. 스님은 고집멸도, 팔정도 등 불교의 기본교리를 뼈대 삼아 백담사를 찾는 사람들을 치유하고 있다.

| 경전의 교리에 뿌리를 둔 프로그램들
비운다고 하지만 마냥 쉬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백담사의 템플스테이는 일정이 빡빡하기로 정평이 나있다. 일정은 대부분 2박 3일이다. 다른 템플스테이 사찰들의 경우 주로 1박 2일 프로그램을 운영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심지어 참가자들에게 1,080배를 시키는 경우도 종종 있다. 빡빡한 일정에 불만들이 터져 나와도 스님은 그냥 밀어붙인다. 재밌는 사실은 정작 그 과정들을 하나씩 경험하고 나면 나중에는 더 고마워하더라는 것. 몸은 조금 힘들었어도 마음이 비워졌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여기가 좋아서 오는 사람 별로 없어요. 밖에 놀 거리가 그렇게 많은데 이 깊은 산 속까지 올 때는 그냥 놀러 오겠어요? 대체로 주변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입고 오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한 사람도 소홀히 대할 수가 없어요. ‘당신은 누구십니까?’라는 프로그램이 있어요. 각자 마음 속 이야기를 털어놓는 시간이죠. 그 때 사람들 얘기 들어보면 정말 치열하게 살다 오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느끼죠. 프로그램을 진행해야 하는데 눈물이 나서 견디기 힘들 때가 많아요.”
백거 스님이 정착시켜 놓은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의 기본 뿌리는 경전 교리에 있다. 고집멸도苦集滅道와 팔정도八正道가 대표적이다. 내 아픔의 원인을 바로 보고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길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백거 스님의 템플스테이다. 다만 직접적인 답을 주지는 않는다.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줄 뿐. 스님은 이런 프로그램들을 진행하면서 오히려 본인이 배우는 게 더 많다고 말한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일주일간 백담사에 머무르며 템플스테이를 한 이친선(28, 대구) 씨 역시 “위로받기 위해 왔다”고 했다.
“회사생활에 너무 지쳐 있었어요. 사실 큰 결심이었는데, 일주일 정도 머무르고 보니 정말 잘 온 것 같아요. 많이 밝아졌고, 신경질적인 면도 많이 사라졌고. 마음 속 응어리가 많이 풀렸어요. 좋은 환경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좋은 생각이 많아졌죠.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여기서 만든 추억들이 당분간 큰 힘이 돼줄 것 같아요.”
사찰이 사람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는 이 씨의 이야기 속에서 찾을 수 있었다. 자, 그렇다면 사람들에게 사찰은 어떤 의미를 가진 공간일까? 이것이 백거 스님의 대답이다.
“사찰은 사람을 치유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템플스테이는 좋은 처방전이고요. 사찰도 사람들 속에 있어야 의미 있는 공간이 되지 않겠어요? 21세기에 사람과 불교가 어울렁더울렁 함께 살 수 있는 길이 템플스테이에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사찰은 그렇게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