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가 꽃을 피운다

2014-02-11     불광출판사
스트레스가 꽃을 피운다




난초는 적당히 스트레스를 받아야 꽃을 피운다. 모든 상황이 좋기만 하면 꽃피울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려운 상황에 봉착해서 존속의 위협을 느껴야 후손을 남기기 위해 꽃을 피우는 것이다. 깨달음의 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스트레스가 없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닥쳐오는 스트레스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지켜보면서 연습하다보면 어느덧 깨달음의 꽃이 아름답게 피어날 것이다.

| 정체를 파악하라: 스트레스는 게스트guest다
사는 것도 스트레스요, 죽는 것도 스트레스다. 삶과 죽음 자체가 스트레스의 연속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결국 잘 살고 잘 죽으려면 스트레스를 잘 다룰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스트레스의 정체를 파악해야 한다.
스트레스는 게스트다. 주인이 아닌 손님이라는 것이다. 손님이 왔으면 얼른 대접해서 빨리 보내는 것이 상책이다. 이미 방문한 손님을 인사도 하지 않고 무시해버리면 성이 나서 행패를 부릴 수도 있다. 또한 너무 극진히 대접해서 오랫동안 눌러 붙도록 놔두게 되면 주인이 할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게 된다. 자칫 주인노릇을 대신 할 수도 있다. 이래저래 번잡한 일이다.

손가락은 쥐락펴락해도
그대의 보는 성품은 부동이요,
티끌은 움직여도 허공은 부동이다.
이와 같이 중생들은
요동하는 것으로 티끌을 삼고,
머물지 않는 것으로
손님을 삼아야 한다.
-『능엄경』 ‘견불객진遣拂客塵’

| 알아차려라: 스트레스가 일어나면 곧바로 알아차려라
손님이 오면 우선 인사부터 하는 것이 예의다. 아는 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스트레스 받는 일이 생겨나면 먼저 이를 알아차리고 인사를 해야 한다.
“네, 스트레스 고객님, 오셨군요.”
이런 식으로 먼저 알아차리고 인정을 해준다. 그런 다음에는 되도록 빨리 보내는 것이 상책이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제가 하던 일이 있어서요. 웬만하면 다음 기회에….” 그리고는 얼른 본분수행으로 되돌아가면 최상이다.

잡념이 일어나면 곧바로 알아차려라.[念起卽覺]
알아차리면 곧 사라지리라.[覺之卽失]
-『좌선의』

| 이름 붙여라: 이름은 현상일 뿐 실체가 없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쉽게 돌아가지 않는 손님도 많다. 그럴 경우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즉 스트레스가 생겨나고 치성하면서 머물렀다 점차 사그라져서 마침내 사라지는[生・住・異・滅] 과정을 주의 깊게 지켜보는 것이다. 이때 유념할 것은 다만 지켜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붙들고 시비하거나 자꾸 건드리면 스트레스가 더욱 커질 수 있다.
이렇게 하자면 절대적으로 닉네임이 필요하다. 스트레스를 ‘나’의 것으로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닉네임’의 것으로 지켜보는 것이다. 자신의 닉네임을 붙여서 ‘닉네임’의 스트레스로 바라보기 시작하면, 그 스트레스는 더 이상 ‘나’의 스트레스가 아니고, ‘닉네임’의 스트레스가 된다.
닉네임은 물론 진짜 이름이 아니다. 거짓 이름이며, 임시 이름이다. 실체가 없는 것이다. 실체가 없는 닉네임의 스트레스는 당연히 실체가 없다. 허상인 것이다. 허상은 허상인 줄 알면 슬그머니 사라진다.

인과 연으로 생겨난 존재를[因緣所生法]
나는 곧 공이라고 말한다.[我說卽是空]
또한 이것은 닉네임이며,[亦爲是假名]
또 이것이 중도의 뜻이다.[亦是中道義]
-『중론』

‘반야바라밀은 반야바라밀이 아니다.
그 이름이 반야바라밀일 뿐!’
-『금강경』

모든 존재는 변화하기에
끊임없이 일어났다 사라진다네.
일어남 사라짐이 사라진다면
영원한 행복이 찾아온다네.
-『법구경』

| 살펴보라: 오는 손님 막지 말고 가는 손님 잡지 말라
번거롭다고 해서 손님이 오지 않기만 기대해서도 안 된다. 가끔씩 손님이 와야 집안을 돌아보게 된다. 정리정돈도 새롭게 하고, 대청소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오는 손님 막지 말고 가는 손님 잡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연습을 꾸준히 하는 것이 생활 속 수행이다. 그러므로 스트레스가 없는 날은 ‘공空치는 날’이다. 스트레스가 있어야 진전이 있다. 오는 스트레스 막지 말고 가는 스트레스 잡지 말라. 다만 지켜보고 지켜볼 뿐!

주의 깊게 알아차림은 죽음을 벗어나는 길
알아차림이 되지 않음은 죽음의 길
주의 깊게 알아차리는 이는 죽어도 죽지 않으며
알아차림이 되지 않는 이는
살아있어도 죽은 자와 같네.
-『법구경』

마음에 스트레스가 일어나더라도 ‘스트레스가
없었으면’ 하는 알음알이를 일으키지 말라.
만약에 그런 생각이 일어나면 닉네임을 붙여
일어나는 곳을 살펴보고[看起處], 분별심이
일어날 때에도 닉네임을 붙여 분별하는 곳을
살펴보아라[看]. 만약 탐욕・성냄・그릇된 망상이
일어나면 곧 닉네임을 붙여 일어나는 곳을
살펴보아라[看起處]. 더 이상 일어나지 않으면
곧 이것이 도 닦은 것이다.
-『이입사행론』

범부는 잡념이 생겨나서 머물렀다
사그라져야 비로소 알아차린다.
초발심보살은 잡념이 생겨나서
머무르는 동안 알아차려 내보낸다.
일정 경지에 오른 보살은 잡념이
일어나자마자 알아차려 내보낸다.
보살십지에 이른 이는 방편으로
생각 일으키나 일으켰다는 생각이 없다.
-『대승기신론』

| 본래 공부로 돌아가라: 힘 얻는 곳[得力處]으로!
위와 같이 연습하여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 쉬어지면, 본분 수행으로 돌아간다. 본분수행은 각자의 상황과 경지에 따라 달라진다.

바히야여, 보이는 것을 보기만 하고,
들리는 것을 듣기만 하고,
느끼는 것을 느끼기만 하고,
아는 것을 알기만 하라. [見見 聞聞 覺覺 知知]
그리할 때, 거기에 그대는 없다.
이것이 고통의 소멸이다.
-『바히야경』

월호 스님
행불선원 선원장. 동국대 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쌍계사 조실 고산 큰스님 문하로 출가하였다. 쌍계사 승가대학을 졸업하고 제방 선원에서 정진하였으며, 고산 큰스님으로부터 강맥을 전수받았다. 현재 조계종 교수아사리 및 쌍계사 승가대학 교수 소임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당신이 주인공입니다』, 『언젠가 이 세상에 없을 당신을 사랑합니다』,『문 안의 수행 문 밖의 수행』, 『할! 바람도 없는데 물결이 일어났도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