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나무에 나를 투영해 작품으로 만든다

명품을 만드는 사람들

2014-02-11     불광출판사
버려진 나무에 나를 투영해 작품으로 만든다





찻상 작가
박목수

불교박람회장을 둘러보는 중이었다. 아트페어 부스에 찻상들이 진열돼 있었다. 박람회장엔 몇 개의 다구 용품업체들이 들어와 있었지만, 유독 그 부스만 아트페어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찻상의 생김새나 색채도 범상치 않았다. 물고기를 닮은 모양새. 어떤 찻상엔 빨갛고 노란 원색이 입혀졌지만, 페인트의 인공미가 아닌 속에서부터 배어나온 듯한 깊이감. 더구나 찻상들을 더욱 눈여겨보게 된 데에는 작가의 유별난 이름도 한몫 단단히 했다.

| 하반신 마비를 이겨낸 독종
‘박목수’라는 이름. 대놓고 목수라고 자처하는 사람. 문득 별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에서 느꼈던 감칠맛과는 전혀 다른 미감이었다. 박목수의 본래 이름은 박인규(56)다. 찻상을 만드는 작가로 이제는 꽤나 이름이 알려진 인물이다. 그를 별종처럼 보이게 했던 그 이름은 사실 직접 지은 것이 아니다. 그가 ‘스승’으로 모시는 소설가 이외수 씨가 지어줬다. 처음에는 무언가 촌스러운 느낌에 “그게 뭐냐?”고 길길이 뛰며 거부했지만, 어느 순간 느껴지는 바가 있어 받아들였다고 한다.
“제가 성질이 좀 고약해요. 그래서 20대 때부터 성질 죽이는 방법을 익히려고 애썼죠. 바둑이며 낚시도 그때 시작했고, 차를 마시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예요. 모두 정적인 취미들이잖아요. 그렇게 시작한 차와의 인연이 어쩌다보니 찻상을 만드는 일로 옮겨져서 결국엔 평생의 업이 된 거죠.”
박목수는 본래 연구개발 직종의 회사원이었다. 하지만 고졸 출신인 그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세상은 학력을 계급으로 삼았다. 부서 내 다른 사람들은 전부 석・박사들이었다.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미친 듯이 일에 몰두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결국 모두가 그를 인정할 만큼 열심히 살았지만 단 한 사람, 그의 아내만은 그의 일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미련 없이 일을 그만둬버렸다. 그리고는 공사판으로 갔다. 돈이나 열심히 벌어보자는 생각이었다.
공사판에서도 그는 업계의 인정을 받았다. 돈도 몇 억씩 모였다. 하지만 이내 그의 발밑에 가시밭길이 펼쳐졌다. 한참 인정받으며 일하던 어느 날 공사장 발판이 무너진 것이다. 수십 미터 아래로 추락한 그는 척추 5개가 부러져 버렸다. 그리고 찾아온 하반신 마비. 누구도 그가 다시 걷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는 지금 멀쩡하게 걸어 다닌다.
“기적이라면 기적이겠죠. 그런데 전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이것도 제가 성질이 더러워서 다시 걷게 된 거예요.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은 직후엔 남은 생을 벌어놓은 돈이나 쓰면서 편하게 살 수 있게 됐다며 좋아했어요. 그런데 그때부터는 남들이 제 대소변을 받아주지 않으면 안 되잖아요. 그런데 전 그게 죽기보다 싫은 거예요. 그래서 막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다리가 움직여질 때까지.”
병원 신세를 진 시간은 1년 6개월. 그동안 그는 약을 거부한 채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으면서까지 침대에서 기어 내려왔다. 기고 또 기면서 허리와 다리를 움직이려고 애썼다. 결국 그는 걸어서 병원을 나왔다. 그의 나이 39살 때다. 병원을 나온 순간 온 세상이 행복하다고 느낄 법도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는 앞으로 뭘 하며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고 회고한다.




박목수는 쓸모없는 것을 아름다운 작품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를 보듬는 심정으로 찻상을 만든다.

| 수백 년에 걸쳐 하늘이 만든 디자인
“20대 시절부터 해오던 취미들을 생각해봤어요. 그 중에서 차茶가 저랑 잘 맞더라고요. 걸어 다닐 수는 있지만 정상적인 사회생활은 불가능한 몸이잖아요. 그래서 차와 관련된 일을 해볼까 싶었죠. 하루는 길을 가는데 길섶에 버려진 나무둥치가 눈에 띄었어요. 버려진 그 모습이 왠지 나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 길로 그 나무를 가져와서 찻상을 만들기 시작했죠. 그게 시작이었어요.”
딱히 누구에게 찻상 만드는 법을 배운 것도 아니다. 그저 나무와 부대끼면서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보며 시행착오를 통해 배워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누구도 상상치 못했던 창의적인 방식의 작업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었다. 그래서 그의 찻상은 여타의 것들과 다르다. 특히 눈에 띄는 특징은 재료들이다. 다른 찻상들이 멀쩡한 나무를 가공해 만든다면, 그의 찻상은 버려진 나무로 만든다. 박목수는 쓸모없는 것을 아름다운 작품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를 보듬는 심정으로 찻상을 만든다.
보통 일반적인 목수들은 국산 나무를 기피한다. 직선으로 재단하기 어려워서다. 그런데 박목수는 그게 우리 나무의 매력이라고 봤다. 그래서 우리나라 나무들만 사용한다.
“사람이 톱을 들고 나무를 직선으로 만드는 데 5분이 걸린다고 칩시다. 그런데 하늘이 나무속에 곡선을 만들어내는 데는 몇 십 년에서 심지어 몇 백 년이 걸려요. 저는 하늘이 만들어낸 그 곡선의 아름다움을 살리는 게 옳다고 생각해요. 제 찻상은 하늘이 디자인을 한 셈이죠.”
그가 찻상으로 쓸 나무는 반드시 3년 이상의 세월을 보낸다. 박목수는 그렇게 했을 때 나무의 조직이 자연적으로 파괴된다고 했다. 기다림의 세월을 자연스레 온몸에 받아낸 나무는 조직이 파괴돼도 숨을 쉰다. 건조한 겨울에 갈라진 찻상이 장마 때면 복원되는 이유다. 그렇게 기다림을 견딘 나무도 또 한 번의 시련을 겪는다. 찜통에서 굽는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나무를 굽는 작업은 다른 사람들도 종종 사용하는 방법이지만, 박목수의 작업은 좀 다르다. 물을 넣어 함께 끓인다. 수분을 보충해주면서 수분을 빼는 셈이다. 이런 일련의 작업을 통해 만들어진 나무를 두고 그는 ‘삭혔다’고 표현한다. 잘 삭혀진 나무는 그라인더로도 좀처럼 갈리지 않는다.
그 과정을 견뎌낸 나무들이 바로 작품으로 탄생되는 것도 아니다. 박목수는 나무들을 둘러보다보면 유독 눈길이 가는 것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 자꾸만 눈길과 마음이 쏠리는 그 녀석으로 작업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3년이고 5년이고 마음이 가고 한눈에 찻상의 디자인이 보일 때까지 그저 기다린다.

| “내 작품의 완성은 쓰는 사람의 몫”
작업이 시작되면 처음부터 끝까지 나무와 대화를 나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상한 사람이라고 오해할 정도다. 그만큼 나무에 감정을 싣고 정성을 다한다. 가끔 직접 벌목을 할 때도 “미안하다. 나 좀 살게 해주라”라고 부탁하고, 큰 나무둥치를 혼자 옮기면서도 “제발 같이 살자”고 애원한다. 때론 친구처럼, 때론 애인처럼. 보듬어 안으며 함께 만들어 가는 것. 그게 박목수가 나무를 대하는 진심이다.
박목수는 그렇게 홀로 작품만 만드는 시간을 10년이나 보냈다. 그리고 나서야 자신의 작품들을 세상에 내놨다. 하지만 첫 전시에서 그는 생각만큼 많은 작품을 팔지 못했다. 인사동의 호사가들은 그를 두고 다시는 인사동에 오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보란 듯이 또 전시를 열었다. 그 후로 매년 2번 이상, 지금까지 총 25번의 전시를 열었다. 그 사이 그의 작품은 어느덧 수십만 원에서 천만 원 이상을 호가하는 ‘물건’이 됐다. 그의 찻상을 수집하는 콜렉터들도 적지 않게 생겼다.
“저는 제 작품들을 그냥 ‘찻상’이라고 하지 않고 ‘무릎 아래 낮은 상’이라고 불러요. 요즘 사람들의 생활공간은 대화를 나누기 힘든 구조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무릎 아래 낮은 상’ 앞에 앉으면 저절로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스스로를 점검하게 돼요. 그리고는 온 가족이 둘러앉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계기가 생기는 거죠. 그게 행복이잖아요. 전 나무를 만질 때 ‘이 물건을 쓰는 사람이 쓰면서 행복할까’를 늘 고민해요. 그게 가장 중요하니까요.”
그는 딱 72세까지만 작품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다만 그의 작품을 쓰는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말이 있다고 했다. 그의 작품에서 본인의 역할은 70%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나머지 30%를 온전히 채워주는 건 쓰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했다. 나무는 사람이 자꾸 만져주면 못 생긴 것도 예뻐진다면서. 그렇게 박목수는 자신이 만든 것들을 완성시켜 달라고 했다.
“제 작품을 쓰시는 분들이 행복하다면, 저 역시 행복합니다.”
그의 말끝에 나무의 향기가 배었다.

찻상 문의
010-5477-2533
bom2335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