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은 아름다운 정신으로부터 빛난다

중요무형문화재 제78호 입사장(入絲匠) 홍정실

2014-02-10     불광출판사

가을이다. 높고 푸른 가을하늘만 바라봐도 설렘이 이는 아름다운 계절이다. 이 좋은 계절, 삶의 고단함은 잠시 잊고 아름다움에 푹 빠져 탐미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가을을 수놓은 자연의 아름다움도 좋고, 음악・미술・문학 등 예술 세계로 여행을 떠나도 좋으리라. 고대로부터 이어져온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만나보는 것도 의미가 깊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단연 아름다움을 뽐내는 전통 금속공예 ‘입사(入絲)’는 하마터면 과거의 유물로 사라질 뻔했다. 홍정실(66) 입사장의 애끓는 열정이 있었기에, 전통을 넘어 현대적인 입사 공예의 아름다움이 세상에 탄생할 수 있었다.
 
| 운명처럼 찾아든 입사와의 인연
홍정실 선생은 어린 시절부터 아름다운 물건만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온통 마음을 빼앗겨 이리저리 돌려보고 만져봐야 직성이 풀렸다. 그러한 성향은 고스란히 미술과 예술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졌고, 자연스럽게 전공도 미대(서울여대 공예과)를 선택했다. 세상에 아름다운 것이 수두룩한 만큼, 알고 싶고 체험해보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했다.
그녀가 대학을 다니던 60년대 중후반은 우리나라에서 현대미술의 발아기라고 할 수 있다. 순수미술과 구분해 공예미술, 산업미술, 장식미술 등 응용미술이 태동하던 시기였다. 그림도 그려보았지만, 호기심 많은 여대생에겐 새로운 미술 장르가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목공, 염직, 서예, 사진, 패키지 디자인 등에 심취하여 두루두루 섭렵해 나갔다.
그녀는 1969년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미술교육을 전공하면서 금속공예에 새롭게 눈을 뜨게 된다. 현대적 금속공예가 막 문을 여는 시기, 금속공예는 신선하면서도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금속이 뿜어내는 독특한 미와 고귀함에 매료되어, 대학 은사인 권길중 교수로부터 본격적으로 금속공예 기술을 연마한다. 금속공예를 배워가며 자연스럽게 우리 전통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고, 입사와의 인연은 운명처럼 찾아든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서울여대에서 미술교육을 강의하던 시절이었다.
“그 당시에 한 과목을 강의하기 위해 일주일 내내 강의 준비를 했어요. 매일같이 학교 도서관과 동숭동 한국디자인센터를 드나들었죠. 세계의 미술 및 디자인 현황을 볼 수 있는 잡지와 카탈로그도 수집하고 교육 자료도 만들며 정말 바쁘게 지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고개를 들었는데, 서고에 꽂힌 한 권의 책이 눈에 확 들어오는 거예요. 저도 모르게 일어나 책을 꺼내 들었죠. 예용해 선생님이 쓰신 『인간문화재』란 책이었어요. 그 책을 빌려 집에서 꼬박 밤을 새워가며 읽어내려갔죠. 잊혀져가는 전통문화의 자취를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장인의 예술혼과 숨결이 생생하게 느껴지며 무언가가 뇌리와 가슴에 섬광처럼 꽂히는 거예요. 온몸에 전율이 흐르며 ‘이것이 내 할 일이구나’ 싶었죠.”
 

사색의 공간(Space of Thinking)
2009 | 335x135x120mm | 작가 소장
 

무의식의 심연(Deep Spring of Subconsciousness)
2003 | 310xø240mm | CBM Limited 소장(미국)
 
| 섬세한 아름다움으로 빛나는 은실박이
『인간문화재』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었다. 전통 입사의 맥이 끊긴 것을 안타까워하며, “천만 다행으로 은입사를 하는 분이 이 세상 어디에 묻혀 살아 있다면, 세계에 자랑할 고유한 민속공예의 한 부문을 되살릴 거룩한 존재가 될 것이다.”라는 부분이다. 입사는 금속 표면에 땜 없이 금실이나 은실을 끼워 넣어 무늬를 장식하는 공예 기법으로, 마치 금속에 수를 놓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주로 은실을 박아 장식하여 은실박이 또는 은입사라고 부른다. 백제시대의 칠지도를 비롯한 지배계층의 기물, 고려시대의 향로, 향완, 정병 등 불교용품에 이어, 조선시대의 촛대, 담배합, 자물쇠 등 생활용품으로 저변을 확대하며 섬세한 아름다움의 극치를 드러냈다.
일제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민중의 삶이 피폐해지면서 입사 공예도 서서히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갔다. 금속재는 군수품과 밀접한 관계를 맺기 때문에 민간에선 구하기도 힘들었고, 오랜 끈기와 정성이 들어가는 반면 수요자는 없어 급기야 장인의 맥이 끊어지게 된 것이다. 홍정실 선생은 이러한 현실이 너무나 안타까워, 어떻게든 자신이 입사의 아름다움을 재현해내고 싶었다.
“사실 저는 전통에 관심이 많은 편이 아니었어요. 그 당시는 전통과 단절된 시기의 후반부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누구도 전통문화의 가치와 중요성에 대해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또한 그때는 사회적으로도 새로운 학문이 시작되는 시기였고, 미술 분야도 현대적인 미술이 새롭게 유입되던 때였어요. 간간히 유물을 접하며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인식해가고 있던 차에, 입사 기법의 맥이 끊어졌다는 글을 읽으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죠. 스스로 내가 해야 할 필요성과 당위성을 이끌어내고, 절박한 심정으로 바로 뛰어들었어요.”
박물관과 고미술상을 휘젓고 다니며 입사의 흔적을 찾아나가기 시작했다. 유물을 꼼꼼히 뜯어보며 똑같이 만들어보려 했지만, 워낙 관련 자료가 빈약한 탓에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답답한 마음에 입사 장인을 찾아 백방으로 수소문하며 다녀봐도 아는 이가 전혀 없었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고 했던가. 그렇게 발품을 팔고 전통조각기법을 배워가며 5년이 지난, 1978년 가을이었다. 고미술품 감정위원으로부터 ‘친구 아버님이 예전에 그런 일을 한 것 같다’는 얘기를 전해 듣는다. 정릉에 살고 있다는 말에 한걸음에 달려가보니, 그곳에 이왕직미술품제작소 출신의 조선말 마지막 입사장이 거짓말처럼 생존해있었다. 당시 78세의 이학응 선생이다.
 

보금자리(The Roost)
1991 | 110xø239mm | 영국 대영박물관 소장
 

금은입사매화무늬주전자(Tea Pot with Maehwa Flower)
2003 | 210x160x210mm | 미국 워싱턴 해외홍보원 소장
 

철제은입사말안장(Saddle)
1988 | 340x430mm | 작가 소장
 
 
 
| 전통문화의 창조적 계승
감격적인 만남이었다. 그녀도 놀라고 이학응 선생도 놀랐다. 이학응 선생은 60세 이후로는 입사작업에서 손을 뗀 상태였다. 30대 초반의 여성이 입사 전통의 맥을 잇겠다니 기특하고 고마운 일이었다. 그녀의 열정은 고령의 스승에게 다시금 입사도구를 쥐게 해주었고, 스승은 1988년 별세하기 전까지 10년 동안 입사의 모든 것을 성심을 다해 제자에게 물려주었다. 그녀는 이학응 선생을 할아버지라고 불렀다고 한다. 스승의 손녀가 그녀의 고등학교 2년 후배였으니, 스승과 제자 관계는 할아버지와 손녀처럼 돈독하고 다정했다.
“할아버지는 그 자체로 인간문화재이셨어요. 기능적으로나 인품이나 문화적 소양이 누구도 흉내낼 수 없을 만큼 정말 훌륭하신 분이셨거든요. 혼자 입사 작업을 시도하며 막막한 벽처럼 느껴지던 것들을 할아버지께서 하나씩 체계적으로 가르쳐주시니 막힘없이 풀리는 거예요. 날아갈 듯 기쁜 날들이었죠. 학교 강의 외에는 모든 시간을 입사를 배우는 데 쏟아부었죠. 매일 할아버지 댁에 찾아가 10시간씩 작업을 하곤 했는데, 그 시간이 굉장히 쏜살같이 지나가는 거예요. 그토록 열망했던 것들을 할 수 있게 되니, 작업이 일이나 노동이 아니라 하나의 놀이처럼 느껴졌던 것 같아요.”
그녀는 입사 기능을 익히는 동시에, 입사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스승을 높이는 데도 소홀하지 않았다. 그녀의 노력에 힘입어 중요무형문화재 종목에 입사장이 신설되어, 1983년 스승이 중요무형문화재 제78호 입사장 초대보유자로 인정되었다. 자신 또한 스승의 뒤를 이어 1996년 중요무형문화재입사장으로 지정되었다. 그녀는 입사의 전통 기법을 복원하고 유지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현대적으로 발전시키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1995년 길금공예연구소를 설립하여 ‘수공정신과 공예기술’, ‘거멍쇠의 자존심’, ‘장석’ 전을 열며 전통 금속공예의 창조적 계승 작업을 하는 한편, 미국 G.I.A와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보석과 전문장신구 디자인을 배우고 중국과 스페인, 인도 등 해외의 전통공방에서 다양한 금속공예 기법을 연구하며 시대와 소통하는 현대적인 작품 활동도 전개해나갔다.
포기하지 않는 열정과 정진으로, 이미 사라져 간 입사 전통을 우리의 눈앞에 화려하게 부활시킨 홍정실 선생. 지문이 다 닿도록 새김질과 정질을 해오며 탄생시킨 은실박이 작품은 영국 대영박물관을 비롯한 대만 국립역사박물관, 오스트리아 비엔나민속박물관 등 해외로도 퍼져나가 우리 전통문화의 신비롭고 섬세한 아름다움을 전하고 있다. 입사가 더욱 아름답게 빛나는 것은 전통의 빛을 잃지 않으려는 그녀의 아름다운 정신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홍정실
1947년 평양 출생. 서울여대에서 공예미술을, 서울대 대학원에서 미술교육을 전공했다. 1978년 고(故)이학응 선생에게서 입사 공예를 사사했으며, 199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78호 입사장으로 지정되었다. 미국 워싱턴, 뉴욕, 시카고, 영국 런던, 중국 상하이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국내외에서 다수의 단체전을 열었다. 원광대 미대 교수,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및 명장 심사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길금공예연구소 소장, 경기도 문화재위원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