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성사

수허몰가부(誰許沒柯斧) 연재소설 23

2007-06-18     관리자

왕후와 원효의 대화는 참으로 진지하고도 차원이 높은 것이었다.

   왕후가 되자 일거수 일투족이 모두 나라를 위해 움직이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면서 원효도 지난날의 문명 부인과 대화하던 때와는 달리 더 존경하고 예의도 한층 높여 드렸다.

   승만여왕에게는 어딘가 모르게 자기와 동급인 듯한 마음가짐이었는데 왕후와는 그렇게 되지를 않았다.   아마 왕후의 따님인 요석공주를 의식한 때문이리라.   요석공주가 자기의 상대라면 왕후는 확실히 한급 높은 것이 당연하다.

   서산으로 달리는 햇살이 원효의 왼쪽에서 비껴 비추인다.   만인을 압도하는 위엄이 역력히 드러나 보이는 왕후마마, 천하 창생을 자비로운 손길로 어루만져 줄 수 있는 기품이 충만해 보이는 왕후마마와 이렇게 마주 앉아 있는 원효도 결코 왕후 못지 않게 늠름하고 의연한 기품이 넘쳐 흐른다.   몸의 구석구석에서 배어나오는 어떤 광명이랄까, 아니면 도덕이랄까 하는 남다른 점이 상대방을 사로잡는다.   이를 일러 법력이라 불러도 좋다.   이 법력에 맨 먼저 이끌린 사람이 곧 승만여왕과 요석공주였다.   뿐만 아니라 서라벌의 온 여성들이 원효를 존경하고 찬탄하며 따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승만여왕과 공주가 보는 원효는 다른 여성들이 보는 원효와는 다른 데가 있었다.   원효의 모습을 세속적인 면과 출세간적인 면의 두 가지 면에서 볼 때 다른 여성들은 키가 훤칠하고 씩씩하고 잘생긴 장부의 모습을 8할, 도인에게서 풍기는 법력의 모습을 2할, 그리하여 완성된 원효라는 모습을 사모하고 존경한다.   그러나 승만여왕과 요석은 장부로서의 모습을 5할, 법력에 의한 모습에서 5할, 합하여 완성된 원효를 보아 주었던 것이다.

   왕후는 왕후대로 원효와 마주 앉아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 더없이 기뻤다.   남편인 상감(춘추공:春秋公)과 오라비인 유신공(庾信公)이 원효를 당대 제일의 고승이 될 것이라고 칭찬과 기대를 아끼지 않던 말을 여러차례 들어온 터인 데다 딸 요석공주가 남몰래 사모하는 인물이 아닌가?

   오늘을 있게 한 것은 닷새 전에 여기에 나왔을 때 요석의 뜻을 들은 것을 새겨 두었다가 어미로서 딸을 위하여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는 일이라고 판단되었기 때문에 왕후로서는 각별하고 세심한 마음을 쓴 것이었다.

   그때 요석 공주는 어머니와 단둘이 만나매 서슴지 않고 이렇게 자신의 심경을 고백했다.

   "이 몸의 나이 이제 삼십을 넘겼는데 무슨 호강을 누리기 위하여 개가를 하리까?   이렇게 호젓이 살면서 선대왕마마의 유촉대로 원효 스님의 시중이나 들면서 스님의 법문을 듣고 저도 수행의 시늉이라도 해볼까 할 따름이오."

   이 한마디에 서린 공주의 단심(丹心)은 아무리 우둔한 베짜는 아녀자가 들을지라도 원효를 사모하는 일념외에 아무 것도 바라는 것이 없다는 것을 여실히 짐작할 것이려든 하물며 왕후이랴?

   이 말을 상감에게 전한 왕후는 어찌하든 외롭고 불쌍한 요석을 위해 그녀의 소원을 이뤄주리라고 다짐했고 상감도 매우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왕후는 마치 자기 사위를 대하는 듯한 정감어린 마음이 앞섰으므로 위대한 스승을 대하거나 하는 마음을 불러 일으키느라 내심으로 무진 애를 썼다.

   원효의 한마디 한마디는 오로지 불도(佛道)수행에 있어서의 요긴한 법문이지만 그것이 단순히 법사의 설법으로만 들리지 않는 것은 왕후 자신이 너무도 속되기 때문이 아니가 싶어 자주 스스로를 채찍하곤 하였다.

   그러나 아무튼 원효와 마주 앉은이 시간이 더 없이 기쁜 것만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자기가 요석의 입장이라 할지라도 신라에서 욕심이 나는 사나이로서는 단연코 원효를 첫손에 꼽으리라고 여겨지는 것이었다.

   손수 부엌에 나가서 원효의 저녁공양을 마련하는 요석의 모습을 보라.   마치 절에 기도하러 간 청신녀가 부처님께 올릴 공양구를 마련하는, 그러한 경건하고 정중한 모습이 아닌가?   확실히 요석은 원효를 사나이로 보다 스승으로 존경하고 사모하는 것이리라.

   왕후는 원효에게 속된 말을 하여서 혹시 요석의 간절한 뜻이 좌절되지나 않을까 싶어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그러나 원효는 상대방의 이러한 마음가짐과는 달리 분황사 무애당(無碍堂)에 있는 기분으로 담담히 불법을 토로하는 것이었다.

   저녁공양은 문자 그대로 진수성찬이었다.   고사리, 도라지, 더덕, 산미나리는 물론이요, 식욕을 한결 더 돋워주는 두릅과 고비를 양념한 고추장에 찍어 먹는 맛은 가히 식탁의 총아라 할 만하였다.   본시 산채를 즐겨 먹는 원효인지라 왕후를 모신 자리라는 것도 잊고 한그릇의 공양을 들고 또 과반을 했다.

공양이 끝난 뒤 다시 작설차 한잔을 들고나서 요석궁을 물러나온 원효는 분황사 입구에 이르러 잠시 발을 멈추었다.

   그의 뒤를 따르는 심상이 어리둥절해 하는 것을 보고,

   "잠시 남산에 올랐다가 돌아올 것이니 먼저 들어가 있거라."했다.

   "남산에는 어인 일로 갑자기 가시렵니까?"

   스승의 일거일동을 소상히 알고 있고 또 노상 그림자같이 따라다니는 심상인지라 스승의 돌연한 분부에 의아심을 품는 것도 당연한 일이리라.

   "삼화령(三花嶺)에 명랑(明朗) 스님이 계시다니 가서 차 한잔 얻어 마시고 오련다."

   "차 한잔을요?"

   "그 스님은 다도(茶道)에 일가견을 갖고 계시다지 않더냐?"

   "아, 예-. 어두운 길에 안녕히 다녀오십시오."

   스승과 제자는 길을 나누어 걷는다.   심상은 절의 일주문 앞에 서서 잠깐 생각에 잠긴다.

   삼화령 명랑 스님에게 간다는 스승을 자기가 모시고 가는 것이 스승을 위해 방해가 되는 것인가 아니면 당연한 시봉의 임무인가?   순간, 스승을 모시고 가는 것이 시봉의 책무임을 느낀 심상은 되돌아서 뜀박질을 한다.

   '밝은 한낮도 아닌 석양녘에 산에 혼자 오르시다가 날이 저물면 어이하시려고 스승님은 혼자서 가시려는 걸까?'

   하기야 원효는 아직 젊은 장부인데다 무술에도 뛰어난 분이라서 삼화령을 오르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   그로서는 아직 삼십이 못된 심상을 데리고 가자면 도리어 거추장스러울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원효의 뒤를 달려가는 심상은 행여 원효를 놓칠새라 숨을 헐떡이며 뛰었다.   그러나 원효는 보이지 않는다.   아직 해가 서산에 걸려 있으니 오릿길 안팎은 똑똑히 내다볼 수 있는 시력을 가진 심상인데 스승의 모습을 찾을 길이 없었다.

   왕궁 담을 끼고 돌아 계림을 지나서 남산에 오르면서도 스승을 발견치 못한 심상은 약간 겁도 났다.   혹시 길이 엇갈리지나 않았나 해서다.   아무리 빠른 걸음이기로서니 이만큼 뛰어왔으니 앞서 갔을 리는 만무하다.

   그런데도 스승은 보이지 않는다.   산길은 그리 험하지는 않지만 다람쥐, 토끼 등이 그의 발자국 소리에 놀라 뛰어갈 적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숨이 턱에 닿을 듯이 하여 마구 달려가긴 하지만 일말의 불안은 가시기는 커녕 점점 더해가기만 한다.   산이 깊어지고 숲이 짙어질수록 공포심도 더해가기 마련이었다.

   심상은 전후좌우를 따지고 살필 겨를 없이 불안과 공포를 스스로 억제하려고 관세음보살을 불렀다.   온갖 공포심을 없애 주시는 분이 바로 관세음보살이 아니신가.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걸음을 늦추며 염불을 외우니 다소 마음이 가라앉는다.   불안과 공포심을 제거하지 못하고 뜀박질을 하려 하면 제대로 속력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관세음보살...."

   심상은 평온을 되찾아 걸음을 빨리하여 오름길을 오르는 것이었다.   삼화령 고개는 스승을 모시고 서너 번 오른 적이 있었으므로 길을 헤매지는 않았다.

   삼화령에는 언젯적부터인지 미륵 존불 석상이 계셨다.   조각의 수법으로 보아 일반 범부중생의 솜씨가 아니라고들 하는 얘길 들은 기억이 있지만 심상은 미륵 부처님의 모습이 너무도 마음에 들었다.

   '이 다음 어른이 되면 여기에 암자를 짓고 살면서 미륵세존(彌勒世尊)님께 예배를 올려야지....' 이런 다짐도 여러 번 하여온 그였으므로 삼화령 오르는 길은 그로서는 신이 나는 길이기도 하였다.

   그가 미륵부처님 계신 곳에 거의 올라 갔을 때, 왁자지껄하게 담소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한 사람은 귀에 익은 스승의 음성임이 틀림없고 다른 한사람은 필시 명랑 화상인 듯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