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산은 하나다

동양화가 한진만

2014-02-10     불광출판사

萬物相律 | 143×167cm, 2000
 

동양화가 한진만
 
한진만 작가는 한국 진경산수화의 맥을 이으며 산수화 발전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다. 인터뷰 전 작품들을 찾아보면서 붓 끝에 담긴 날카로운 치열함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바람에 깎여 다듬어진 산봉우리같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예상과 정반대였다. 도리어 모든 것을 버리고 낮은 자세로 살아가는 구도자와 닮았다.
 

天村 | 158×163cm, 2010
 
| 산은 선禪이다
산을 좋아하는, 한국화를 공부하는 한 대학생이 있었다. 그는 대학생 등반대회에 한 번도 빠지지 않을 정도로 산을 좋아했다. 산에 오를 때면 항상 스케치 노트를 꼭 들었다. 그는 산 본연의 모습을 화폭에 담기를 간절히 원했다. 하지만 아직 산은 멀기만 했다. 매번 산에 올라도 산은 쉬이 마음을 열어주지 않았다. 자신이 제대로 길을 가고 있는지 헤맬 때도 있었다.
공모전에 응모하면 입상조차 하지 못할 때도 많았다. 은사의 “너는 대기만성형이다.”라는 말에 힘을 얻었지만 점점 힘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루는 대학생들끼리 도봉산 등산을 가기로 했다. 그는 모이기로 한 장소에 일찍이 도착해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시간이 한참 지나도 그날따라 무슨 일이라도 있는지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갈 수는 없어서 혼자 도봉산에 올랐다. 그날 인생을 바꾼 경험을 했다. 산길을 걸어가는데 바람소리가 말을 걸듯 더 가깝게 들렸다. 자신이 그려왔던 작품들이 말을 걸기 시작했다. 작품과 대화하며 홀린 듯 산을 올랐다. 그 뒤로 산의 매력에 푹 빠졌다. 아니 미쳤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40년간 자기 몸만한 배낭을 메고 전국의 산을 구도하듯 헤맸으니 말이다.
“1977년도부터 전국의 산이란 산은 다 다닌 것 같아요. 옛날에는 텐트와 등산 가방이 얼마나 무거웠습니까. 그걸 메고 산속을 헤매고 다녔어요. 잠은 텐트 치고 잤고요. 나중에는 어깨에 멍이 들더라고요. 오대산 화양동계곡을 지날 때는 그곳 주민이 간첩으로 오인하고 신고한 적도 있습니다. 오해를 간신히 풀었더니 하룻밤 재워주시더라고요.”
한진만 작가는 산에 가면 자연스럽게 동화가 된다. 예순이 넘은 지금도 산에 가면 이곳저곳 스케치하며 정신없이 뛰어다닌다. 산과 자연에서 얻은 영감은 내면세계로 스며들어 작품으로 형상화된다. 그는 “자연이 곧 스승”이라고 말한다. 스승을 따라 표현기법을 배우면 모방에 불과할 뿐이다. 스스로 정신세계를 구축해야만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한진만 작가는 가장 기억에 남는 산으로 봉화 청량산, 강화 마이산, 금강산을 꼽았다. 금강산이 개방됐을 때 누구보다도 먼저 달려갔다. 조선시대 겸재 정선이 그린 ‘금강전도’의 실제 배경을 보기 위해서였다. 금강산을 직접 본 순간 그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관람객과도 떨어져 혼자 다니며 점심도 거르면서 정신없이 400여 장에 이르는 스케치를 했다.
5년 전부터 그는 검도를 시작했다. 그 뒤로 하루도 거르지 않고 검을 휘두른다. 그러자 화법도 검을 닮아갔다. 마치 검무劍舞를 추듯 몰아지경에서 내면의 산을 그려낸다. 당대唐代 화가 오도자의 검필법과 비슷하지만 다르다. 그의 검필법劍筆法은 마치 화두를 물고 참회하는 참선과 닮아 있다.
한국화는 여백의 정신을 강조한다. 먹으로 선을 그음으로써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중요하게 다룬다. 먹은 검은색 한 가지 색깔이지만 이를 통해 형상을 표현하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한진만 작가는 이것을 호흡이라고 말했다.
“여백이 있는 것과 없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어요. 서양화는 채우는 데 집중한다면 한국화는 비우는 데 초점을 둬요. 여백에 정신이 잘 담기면 ‘먹이 산다’라고 합니다. 코로 들어가서 입으로 나오는 호흡처럼 먹과 여백이 잘 조화되면 육체와 정신이 하나가 됩니다.”
 

念願 | 135×70cm, 1990
 

西島 | 144×248cm, 2002
 

欲知島 | 94×139.5cm, 2007
 
| 세계일산世界一山
한진만 작가는 2008년 에베레스트와 안나푸르나를 등반했다. 중국의 산은 스케치만 하고 작품으로 그리지 않았는데 히말라야는 그에게 커다란 영감과 깨달음을 주었다. 히말라야에서 그는 금강산을 보았고 마이산도 보았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산이 그곳에 있었다. 고산병에 시달리면서도 400여 장이 넘는 스케치를 했다.
“해발 4,000m부터 탈수 증상과 구토가 시작됐어요. 고산병이 온 것이죠. ‘여기서 죽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더 이상 올라가기 힘든 상황이었어요. 인솔자가 극구 말렸지만 전 죽어도 가자라는 생각으로 올랐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큰 화두를 만났습니다.”
비행기 창밖으로 본 히말라야의 산들은 그 자체로 우주였다. 산들이 마치 숨을 쉬듯 꿈틀거렸고 그 기운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거대한 산들의 생명력이 피부로 전해졌다. 신이 산에 사는 것이 아니라 산이 신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산들은 나름대로 영기靈氣가 있다. 한국의 산만을 그려온 자신을 돌아보았다. 다 똑같은 산인데 국내의 산과 외국의 산을 굳이 구별할 필요가 있나. 모두 다 같은 산이 아닌가. 지구 자체가 하나 아닌가. 정신이나 마음의 문제가 아닌가. ‘세계일화世界一花’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산으로 이야기하고 있으니 ‘세계일산世界一山’이라고 해야 할까?
한진만 작가는 에베레스트와 안나푸르나 등반을 다녀온 후 ‘천산天山’이라는 이름으로 전시회를 열었다. 기존 그의 산수화들이 주로 정면에서 바라보는 시선으로 산을 담았다면 ‘천산’ 시리즈는 비행기 위에서 내려다보듯 히말라야의 거대한 산세를 화폭에 담았다. 아니 산을 그린 것이 아니라 산이 가진 에너지를 그렸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획 하나하나가 힘차게 꿈틀거린다. ‘천산’에서 받은 감동은 히말라야의 다른 산으로도 관심을 이어지게 했다. 이번에는 랑탕과 무스탕에 도전할 계획이다.
“저는 마음이 내키면 그냥 가보는 스타일이에요. 이번에는 랑탕과 무스탕에 도전할 생각입니다. 그곳에서 무엇을 발견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무엇이 됐던 막연하게 저에게 감동을 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한진만 작가의 종교는 카톨릭이다. 그렇지만 한국화를 공부하면서 선禪에 대해 깊이 공부했다. 선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정신이고 <반야심경>에 핵심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허虛하면서 실實하고 실하면서 허한 것이 선이 아닌가”라고 했다. 한때는 불교로 개종할 생각도 했다. 그런데 그는 문득 결국 성경과 불교도 “불이不二다”라고 느꼈다. 둘 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정신[不立文字]을 담고 있다고 말이다.
벌써 홍익대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친 지 30여 년이 넘었다. 내년이면 정년퇴임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면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물려주려고 애썼다. 제자들은 자발적으로 은사의 회고전을 준비하고 그의 거의 모든 작품이 담긴 도록을 만들어 선물했다. 이제 그는 모든 것을 뒤로하고 강원도 산속에 들어가 농사를 지으며 그림에만 몰두할 생각이다. 한옥을 옮겨 지은 강원도 그의 집에는 이미 새가 둥지를 틀고 고라니가 근처에 살고 있다. 연을 키우려고 연못에 미꾸라지를 풀었더니 백로가 날아와 앉았다. 그곳에서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롭게 다시 시작할 것이다.
 
한진만
한국 진경산수화의 맥을 이으면서도 자신의 정신세계를 독창적인 화법으로 화선지에 담아온 국내 대표적인 동양화가이다. 40여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산에 집중해 산이 가진 생명력과 역동성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현재 홍익대학교 동양학과 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