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하고 집중하면 성불은 멀지 않다

밀교, 금강승 密敎, 金剛乘

2014-02-10     불광출판사

불교의 다양한 교리 가운데 밀교密敎만큼 많은 오해를 산 것도 드물 것이다. 티베트 밀교 사원에 가면 남존男尊과 여존이 부둥켜안고서 성교하는 모습의 불상인 합체존이 모셔져 있다. 합체존을 ‘얍윰(Yab Yum)’이라고 부른다. 티베트어로 ‘얍’은 아버지, ‘윰’은 어머니를 의미하기에 부모존이라고도 번역한다. 또 밀교 경전에는 성(Sex)과 관련된 이미지가 많이 등장한다. 그래서 ‘밀교’ 수행법에는 성행위가 포함되어 있을 것이라 상상한다. 그러나 이는 이만저만한 오해가 아니다. 밀교는 문자 그대로 ‘비밀스러운 가르침’인데, 여기서 말하는 ‘비밀’이란 “남부끄러워서 비밀스럽게 수행한다.”는 의미의 비밀이 아니라, 스승이 그 가르침을 제자에게 ‘비밀스럽게’ 전한다는 뜻이다. 누구에게나 공개된 가르침인 소승과 대승의 현교顯敎에 대비되는 이름이다. 밀교 역시 청정한 계율을 기반으로 삼는다.
 
| 이번 생에서 성불하기 위한 밀교의 수행
밀교를 불교 딴뜨리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힌두교의 딴뜨리즘과 구별하기 위해서 불교라는 말을 덧붙여 부르는 것이다. 딴뜨라(Tantra)는 원래 옷감을 짜는 ‘베틀’, 또는 ‘베틀에 세로로 걸어 놓은 날실’을 의미하는데, 의미가 전용되어 ‘토대, 체계, 교리’를 뜻하는 말로 바뀌었다. 딴뜨라에는 ‘의례나 명상의 지침’이 실려 있기에, ‘추상적인 가르침’이 담긴 소승이나 대승의 수뜨라(Sūtra, 經)와 대조된다. 불교수행에서 가장 강력한 길이라는 의미에서 금강승金剛乘이라고 부른다. 소승의 경우 아라한을 지향하며, 대승에서는 3아승기겁에 걸친 보살도 이후의 성불을 지향하지만, 밀교인 금강승에서는 현생에서의 성불을 목표로 삼는다. 수행의 목표에서 소승보다 높고, 수행의 기간에서 대승보다 빠르다.
밀교, 즉 금강승의 기원에 대해서는 학문적으로 논란이 많지만, 그 종교적 상징물이나 의식 용구 가운데 많은 것들은 인도의 힌두밀교나 티베트의 샤머니즘인 뵌교(Bon敎)에서 유래하였다. 예를 들어 합체존의 경우, 힌두밀교에서는 남존을 절대자인 쉬와신(Śiva神), 여존을 성력(性力)인 샤끄띠(Śakti)로 간주한 후 이들의 성교를 ‘세계창조’와 결부시키는데, 금강승에서는 동일한 외형의 합체존을 빌려와 남존을 ‘자비 방편’, 여존을 ‘반야 지혜’를 상징한다고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고 성교의 오르가즘을 ‘깨달음의 대락大樂’에 대비시킨다. 금강승에서는 불교 밖에서 유래한 종교의식이나 존상에 대해 불교적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수많은 수행법과 의례를 개발해 내었다.
금강승의 교학적 토대나 수행목표 모두 대승과 마찬가지다. 금강승의 교학적 토대는 대승불교사상인 중관中觀과 유식唯識에 있으며, 그 수행목표 역시 대승과 마찬가지로 성불이다. 금강승이 대승과 차별되는 점은 그 수행방법에 있다. 대승과는 비교되지 않는 다종다양한 수행방법을 갖는다는 점에서 금강승을 ‘방편승方便乘’이라고 부른다.
또, 금강승에서는 스스로를 ‘과승(果乘: Phalayāna)’, 대승을 ‘인승(因乘: Hetuyāna)’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인승’이란 보살행의 ‘인因’을 통해 불과를 얻는다는 의미이고 ‘과승’이란 수행의 ‘결과果’인 부처의 ‘법신’과 ‘보신’과 ‘화신’의 삼신을 수행의 ‘인’으로 삼는다는 의미이다. 대승에서는 3아승기 100겁이라는 무한 세월에 걸쳐서 지혜를 닦고 자비를 실천하는 보살행의 ‘원인’을 지음으로써 부처라는 ‘결과’에 도달하고자 하는 반면에 금강승에서는 ‘불과佛果’라는 결과 그대로를 수행방법으로 사용하여 부처라는 결과를 성취한다. 즉, 부처의 인격과 지혜를 떠올리면서 자신의 행동과 말과 생각이 그대로 부처와 합치한다고 명상함으로써 부처가 되고자 한다.
 
| 3아승기의 시간을 한 생으로 단축시키는 방편들
『대지도론』에서는 ‘복덕’과 ‘지혜’의 유무에 의해서 부처와 아라한과 전륜성왕을 비교한다. 복덕과 지혜를 모두 갖추면 부처님이고, 지혜는 있지만 복덕이 없으면 아라한이며, 지혜는 없고 복덕만 있으면 전륜성왕이다. 부처님이나 아라한 모두 삶과 죽음을 초월한 지혜를 갖추고 있지만, 전륜성왕에게는 그런 지혜가 없다. 그러나 아라한의 복덕은 부처만 못하다.
아라한을 추구하던 수행자가 크게 보리심을 발하면 대승의 길에 들어서서 공덕을 쌓기 시작한다. 부처가 되기 위한 것이다. 왜냐하면 부처의 복덕을 갖추어야 큰 세력을 이루어 보다 많은 중생을 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리심이란 “보다 많은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큰 자비심’이다. 부처가 갖춘 복덕은 3아승기 100겁에 걸친 보살행의 공덕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 3아승기겁동안 보신의 공덕을 짓고, 남은 100겁 동안 ‘32상 80종호’의 화신을 갖추기 위한 공덕을 짓는다. 그런데 금강승에서는 3아승기 100겁이라는 기간을 현생의 1생으로 단축시킨다. 보다 빨리 많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다. 금강승 역시 ‘큰 자비심’을 그 기반으로 삼는다.
보살행의 공덕을 1생에 모두 이루려면 급속하게 많은 공덕을 지어야 한다. 그래서 다양한 수행법이 개발되었다. 예를 들어, 마니보륜이란 것이 있다. 회전하는 둥근 통인데, 그 속에는 다라니나 불경을 가득 적은 종이가 촘촘하게 말려있다. 마니보륜 통을 한 번 돌리면 그런 다라니를 적은 수만큼 암송한 공덕이 발생한다고 믿는다. 예를 들어 ‘옴마니반메훔’이라는 관세음보살 진언을 3천 번 적은 종이가 말려 있는 마니보륜을 한 번 돌리면, 그런 진언을 3천 번 봉독한 꼴이 된다. 열 번 돌리면 3만 번, 백 번 돌리면 3십만 번, 천 번 돌리면 3백만 번 봉독한 공덕이 발생한다. 진언이나 불경을 봉독할 경우 공덕이 발생하며 그 횟수가 많을수록 공덕의 양도 크다고 하는데, 수백 년 동안 외워야 쌓을 수 있는 다라니 봉독의 공덕을 단 몇 시간에 모두 이룬다. 마니보륜은 커다랗게 만들어 사원에 설치하기도 하지만, 언제나 휴대하며 돌릴 수 있도록 작게 만들기도 한다. 티베트에서는 많은 불자들이 이런 휴대용 마니보륜을 상시로 돌리면서 생활한다. 말하자면 마니보륜은 ‘휴대용 공덕 발생 기계’다.
 
| 준비되지 않은 자에겐 허락되지 않는 금강승
금강승의 갖가지 수행 ‘방편’들은 모두 ‘가상假像’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티베트의 4대 종파 가운데 닝마파의 ‘족첸’ 수행이나 까규파 ‘마하무드라’ 수행을 하기 위해서는 예비수행으로 ①귀의 예배, ②금강살타 진언, ③만다라 공양, ④구루 요가의 네 가지 수행 각각을 10만 번 되풀이 할 것이 요구되는데 이들 수행에 모두 ‘가상’이 도입된다.
①귀의예배 수행의 경우 귀의의 대상인 불보살이 실재하는 것처럼 허공에 영상을 만들어 떠올린 후 ‘삼귀의’를 암송하면서 10만 번 절을 하게 된다. ②금강살타 진언 수행에서는, 먼저 자신의 머리 위에 백색의 ‘금강살타 부처님’이 가부좌 하고 앉아 있는 모습을 떠올린 후 흰빛의 ‘감로수’가 금강살타 가슴에서 흘러나와 자신의 악행과 어리석음을 모두 정화한다고 상상한다. ③만다라 공양에서는 ‘황금색의 쌀’, ‘보석’, ‘동전’ 또는 ‘하늘이나 땅, 해와 달과 별, 나무’와 같은 ‘자연물의 상징’, ‘수행자의 마음’ 등 유형무형의 공양물을 준비한 후 진언을 외우면서 공양물을 접시에 담아 불보살에게 바치는 시늉을 되풀이한다. 이런 상징적 의례를 되풀이함으로써 이기심을 제거하고, 자비심이 자라나며, 수행자의 마음에 신속하게 큰 복덕을 쌓는다. ④구루 요가(Guru Yoga) 수행에서는 스승(Guru)이 집금강(執金剛, Vajradhara)보살의 모습으로 자신의 정수리 위에 앉아 있는 장면을 떠올린다. 구루와 관계된 진언을 암송하고 축복의 ‘감로수’가 자신의 몸을 채운다고 관상하면서 스승의 지혜로운 마음과 하나가 되기를 희구한다.
이런 네 가지 예비수행을 마친 수행자는 본격적인 금강승 수행인 생기차제生起次第와 원만차제圓滿次第수행에 들어가는데 그 목적은 우리에게 내재한 참된 불성을 발견하여 하나가 되는 것이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불과에 의해 불과를 이루고자하는 과승果乘의 수행이다. 생기차제에서 수행자는 자신이 부처의 화신이라고 관상觀想하며, 원만차제에서는 몸의 맥관을 흐르는 기를 운행하여 자신의 몸을 부처의 화신으로 만든다. 이 때 수행자는 ‘무지갯빛의 환신幻身’을 시현할 수 있게 된다. 이 ‘무지갯빛의 환신’은 자유자재로 물리적 육체에서 이탈할 수도 있고 되돌아올 수도 있다고 한다. 이런 방식으로 부처의 지혜인 법신과 마음인 보신과 몸인 화신을 모두 성취하는 것이 금강승 수행의 최종 목표가 된다.
그런데 이러한 금강승의 길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것은 아니다. 대승교학에 근거하여 ‘보리심’을 익혀서 이기심이 전혀 없고, 공성空性의 의미에 대해 충분히 파악한 수행자에 한해 금강승 수행에 들어갈 자격이 부여된다. 칼을 어린아이에게 주지 않는 것과 같다. 금강승 수행은 가치중립적인 심신의학으로 관상 수행을 통해 염력念力을 키우고 몸을 변화시키기에 강력한 방편의 힘을 갖는다. 그러나 이기적으로 사용할 경우 그 악업의 힘 역시 엄청나서 내생에 지옥고의 과보를 면치 못한다. 현교를 통해 불교적 심성이 완숙한 제자에게만 비밀스럽게 금강승의 기법을 전하는 이유다. 금강승이 밀교인 이유다.
 
 
김성철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학과 교수. 서울대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국대 대학원 인도철학과에서 철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승랑』, 『불교초보탈출 100문 100답』, 『중론』 등 10여 권의 저서와 번역서, 「용수의 중관논리의 기원」, 「역설과 중관논리」 등 60여 편의 논문이 있다. 제6회 가산학술상(1996), 제19회 불이상(2004), 제1회 <불교평론> 올해의 논문상(2007)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