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체적인 문화가 집합되어 있는 한국의 전통사찰

조계종 총무원 문화부장 진명 스님 인터뷰

2014-02-09     불광출판사
우리나라 전통문화를 언급할 때, 불교문화는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국가 지정 문화재 중 국보의 57%, 보물의 62%가 불교 문화재인 까닭이다. 지난 해 연말 조계종 총무원 문화부에서 전문가 좌담회를 갖고, ‘불교 전통문화 진흥 로드맵’ 초안을 제시했다. 추진 과제는 ‘정책・제도, 보존, 활용, 무형문화유산’ 등 4개 분야로 나눠진다. 조계종 문화부장 진명 스님을 만나, 우리 전통문화를 올곧게 이어온 불교문화의 가치와 역할에 대해 들어본다.
 
| 생각하고 말하는, 그 사이에 문화가 있다
: 사회 곳곳에서 전통문화를 재조명하며, 전통문화를 배우고 향유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그 원인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우리 삶이 산업화・근대화를 거치면서 먹고 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었어요.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지면서 처음엔 교육에 치중하게 되고, 그 다음엔 복지에 관심을 기울이게 됩니다. 복지가 궤도에 오르면 그 다음엔 문화 향유를 추구하게 됩니다. 요즘 우리 사회의 키워드가 ‘문화’인 것을 보면, 그만큼 살기 좋아졌다는 것을 의미하죠. 산업화되는 과정에서 서구문화를 받아들이며, 우리 문화보다 위에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어요. 그러나 지금은 인식이 굉장히 많이 달라져, 우리 전통문화가 서구와 비교해 절대 뒤지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된 거죠.
 
: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는 불교가 이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불교가 전통문화를 잘 지켜오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요?
사찰이라는 공간이 단순히 기도하고 수행하는 한정된 공간의 역할만 있는 게 아닙니다. 건축, 미술, 조각 등 총체적인 문화가 집합되어 있는 곳이 한국의 전통 사찰입니다. 스님들의 삶이 녹여져 있는 생활공간으로서, 수행과 신행 등 복합적인 기능을 해왔기 때문에 지금까지 올곧게 이어져 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박제화된 박물관이 아닌, 먹고 자고 수행하는 등 스님들이 모여 사는 생활공간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죠.
 
: 도시에서 자라난 30・40대만 하더라도 전통과 단절된 시대를 살아왔습니다. 우리 전통문화를 낡고 고루한 옛날 문화로 경시하는 풍조가 있기도 한데요. 전통문화에 대한 바른 가치관과 인식은 무엇일까요?
전통문화와 단절된 채 서구문화의 거센 물결 앞에서, 영어만 조금 해도 품격있고 세련되어 보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전통과 관습, 문화는 나라별로 상대평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 나라의 역사나 지리적인 조건, 기후 풍토 등의 여러 여건을 제대로 인식할 때, 문화에 대한 인식이 바르고 올곧게 섭니다. 처해있는 환경에 따라 문화는 다양하게 형성되는 것이죠. 그러므로 전통문화는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어져온 그 지역에 맞는 고유한 삶의 산물이며, 미래 문화를 창조하는 소중한 자산입니다.
 

사찰이라는 공간은 단순히 기도하고 수행하는 역할만 있는 것이 아니다. 건축, 미술, 조각 등 총체적인 문화가 집합되어 있는 용광로다. 송광사(위)와 불국사(아래)는 이런 총체적인 문화를 모두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전통사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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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스님은 ‘문화’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문화부장으로 있다보니 그 질문을 많이 받게 됩니다. 저는 ‘밥 먹고 똥 사는 일’이 다 문화라고 생각해요. 밥 먹고 화장실 가는 그 사이의 총체적인 모든 행위가 다 문화로 연결된다고 봐요. 저도 이 질문을 많은 분들께 드려봤는데, 문광부 종무실장님의 답변에 가장 공감했어요. 그 분이 말씀하시길, “문화는 대단하고 거창한 것이 아니다. 사람을 가장 사람답게, 가정을 가장 가정답게, 국가를 가장 국가답게 만드는 게 문화다.”라고 하셨죠. 일상에서 생각하고 말하는 그 사이에 문화가 있는 것이고,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이것이 나중에는 대단한 문화로 남아서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이 됩니다. 전통으로 남는 건축물, 미술, 음악 등이 나오기까지의 모든 행위가 문화 아니겠어요. 일상이 바로 문화입니다. 일상을 제대로 못 사는 사람이 어떻게 좋은 문화를 향유할 수 있겠어요.
 

전통문화의 가치가 부각되는 문화의 시대, 조계종 문화부의 비중과 역할도 커져만 간다. 그에 따라 불교문화재의 복원과 보존, 그리고 활용과 새로운 문화의 창조를 위해 문화부의 수장 진명 스님의 책임과 고민도 깊어간다.
 
| 지금 이 순간, 가장 최선의 길을 가다
: 지난 해 연등회가 중요무형문화재 제122호로 지정된 데 이어, 얼마 전 조계종 어장 동주 스님이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43호 ‘경제어산京制魚山’ 보유자로 지정되는 등 불교 전통문화의 가치가 폭넓게 인식되고 있습니다. 조계종에서도 불교 전통문화 진흥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며 여러 정책을 내놓고 있는데, 이에 따른 문화부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우리나라 유형문화재의 60% 이상이 불교 문화재입니다. 그만큼 불교에서 유형문화재를 많이 갖고 있다보니, 전통문화 정책들이 유형문화재의 보존 관리에만 치우쳐 있었어요. 그런데 유형문화는 무형문화를 바탕으로 해서 창출됩니다. 그래서 무형문화가 매우 중요해요. 우리 종단이 그동안 놓치고 있던 부분을 앞으로 잘 챙겨서, 유형・무형의 전통문화를 균등하게 계승 발전시켜야 해요. 일단 유형문화재를 잘 보존하고 관리하기 위해, 통합방재예측 시스템을 전국의 전통사찰에 도입할 것입니다. 연간 250억이 투입되는 10년 사업으로서, 문화재에 온도・열・불꽃 감지센서를 설치하고 방염처리를 실시해 화재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는 시스템이죠. 또한 전통사찰 7곳(법주사, 마곡사, 대흥사, 선암사, 부석사, 봉정사, 통도사)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복장의식, 예불의식, 다비의식, 수륙재 등 불교 무형문화의 가치와 중요성을 확산시키고, 향후 무형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도록 세밀한 현황 조사를 계획하고 있어요.
 
: 불교 전통문화가 사찰에서만 보존 계승되어, 시대의 흐름과 대중화에는 호흡을 같이 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 불교 전통문화가 현대문화와 조화를 이루며 세계화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스님들의 인식도 변화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요.
스님들에게 상반된 요구를 하는 경우가 있어요. 외국어와 컴퓨터 등을 잘 익혀 시대와 소통하는 세련된 스님을 요구하는 한편, 전통사찰의 아름다움을 지켜가며 19세기에 멈춰있는 삶을 살아달라는 요구를 하기도 합니다. 스님은 출가할 때 부처님 제자가 되어 성불하기 위해서 출가했지, 문화재 관리인이 되려고 출가한 것은 아닙니다. 몸만 출가한다고 출가자가 아닙니다. 몸은 세간에 있어도 마음은 출가한 분들도 많아요. 진정한 출가자라면 몸과 마음이 함께 와야 합니다. 말로만 인천人天의 스승이 아니라, 진실로 최대한 인천의 스승이 될 수 있는 수행자가 되어야 해요. 수행, 포교, 교육, 행정 등 이 몇 가지 안에서 갈 길이 정해지면, 그 자체가 온통 수행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제가 예전 불교방송에서 음악방송(차 한 잔의 선율)을 진행할 때도, ‘스튜디오가 내 선방’이라고 생각했기에 8년간 할 수 있었어요. 처음엔 몸은 스튜디오에 있는데 마음은 선방에 가있으니, 굉장히 괴롭고 떠나고 싶은 마음만 간절했어요. 그래서 생각을 바꾼 것입니다. 내가 있는 바로 그 자리가 내 수행처며, 운전하는 그 자리가 내 기도처인 거죠. 스님들 스스로 거울은 보지 않아도 항상 자기 내면을 들여다볼 줄 아는 수행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때, 다른 부수적인 것은 저절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한 때 불교가 바로 서고, 대중과 소통하며 불교문화도 세계화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는 것이죠.
 
: 현재 불교문화의 활성화를 위한 시급한 과제는 무엇이며, 문화부장 소임을 살며 보람과 고민은 무엇입니까?
가장 큰 고민은 불교 안에 축적된 수많은 문화 원형을 어떻게 개발하고 활용하느냐의 문제죠. 그동안 종단 내부에서 문화콘텐츠개발에는 소홀해 발전이 더뎠지만, 현재 담당자와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며 연구하고 있으니 조만간 성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리고 미술, 음악, 도서출판, 방송언론 등 불교계가 기존에 생성해왔던 문화들을 좀더 세분화하고 전문화하며 틀을 잡아가는 단계에 있어요. 이러한 활동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꾸준히 지원하면, 격조있는 불교문화로 성숙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선방 3년 결제하며 공부하는 것 못지않게 용맹정진하고 있습니다. 문화의 가치가 급부상한 문화의 시대에 문화부장 소임을 보고 있다는 게 큰 보람이며, 하나하나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고 결과물을 만들어가면서 즐거움을 찾고 있어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문화부의 역할이 커진 만큼 책임감도 무거워집니다. 주어진 일에 빠져나갈 길을 궁리하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 가장 최선의 길을 가려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진명 스님
1982년 청도 운문사에서 정심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운문사 승가대학과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선학과를 수료했다. ‘(사)맑고 향기롭게’ 사무국장을 역임했으며, 1997년부터 8년간 불교방송 ‘차 한 잔의 선율’을 진행했다. 여성수도자 모임인 ‘삼소회’에서 활동했으며, 중국 북경 만월사와 대련 길상사 주지를 역임했다. 2011년 5월부터 조계종 총무원 문화부장 소임을 맡고 있으며, 문화재청 문화재건축분과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