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것이 잉태한 풍성한 문화의 힘을 보라

현대사회에서 전통문화 계승의 의미

2014-02-09     불광출판사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총장으로 취임한 지 2년이 지났다. 지난 2년간은 문화부,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근무했던 지난 30년보다도 ‘전통문화’에 고민이 많았던 시기였다. 그것은 전통문화대학교가 전통문화의 창의적 인재를 양성하는 대학으로서 전통문화를 전승 발전시켜야 된다는 사회적 책임감 때문이다.
 
| 지난 시간과 다가올 시간의 징검다리
우리나라는 1970년대 이후 경제개발과 근대화 물결에 따라 문화는 상대적으로 소외될 수밖에 없었고 특히, 경제성장에 밀린 전통문화는 소멸하거나 변질되는 과정을 거쳐 상실의 위기에 직면했었다. 그러나 다행히 경제 수준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1990년대 이후 문화가 가지는 사회경제적 파급력에 대한 인식의 확산으로 문화에 대한 정부와 국민의 시각이 변하기 시작했다. 문화에 대한 국민들의 욕구 증가와 더불어 우리의 옛것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전통문화’도 새로운 이슈 중의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전통이라 하면 자칫 단순히 ‘옛날 것’ 또는 ‘비과학적인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들의 문화 수준이 높아지면서 이런 편견에서 벗어나 전통은 우리가 지키고, 누리고, 활용해야 할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요즘 글로벌시대에는 민족의 개념이 약해지고는 있으나 역설적으로 대다수 민족들이 자신들의 뿌리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이는 과거 없이 현재가 있을 수 없고, 과거는 현재와 미래를 이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라서 전통문화는 지난 시간과 다가올 시간을 이어주는 연속성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전통문화는 현대문화와 예술의 창조에 그 모델을 제시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현대와 미래의 문화 창조활동을 풍요롭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이런 맥락에서 전통문화는 ‘문화의 뿌리’와 같다고 할 수 있다.
21세기는 문화전쟁의 시대이다. 문화는 경제력과 함께 국력을 나타내는 중요 척도로 부상하고 있다. 우리나라 문화예산은 그 규모와 비중이 꾸준히 증가하여 2012년에는 4조 6천억 원을 넘었고 정부예산의 1.4%에 달하고 있다. 문화예산의 증가와 더불어 문화유산분야 예산도 2004년 3,600억 원에서 2012년에는 5,500억 원으로 증가했다. 문화유산 정책은 국내의 문화유산 보존을 시작으로 세계유산 등재를 통한 한국문화유산의 세계화, 문화재 활용정책을 통한 국민 참여 유도, 지속가능한 문화재 보존관리를 위한 제도적 기반 강화 쪽으로 추진되었다. 이러한 전통문화 분야 진흥을 위한 각종 정책이 쏟아지면서 전통문화 전문 인력 양성의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2000년에 한국전통문화학교가 설립되었다. 설립 이래 10여 년간의 기반 다지기 기간을 거쳐 2012년 7월 한국전통문화대학교설치법이 통과되면서 석・박사 과정을 갖춘 4년제 국립대학교로서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불교의 전통문화가 인류의 자산임을 보여주는 해인사 장경각의 외부(위)과 내부(아래)의 모습.
 

 
| 대중화・보편화를 넘어 새로운 문화로
작년 12월에 아리랑이 세계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한민족의 정서가 담긴 민족의 노래로서 세대를 거쳐 재창조되고 다양한 형태로 전승된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이처럼 문화적 가치는 사람들이 쉽게 느끼고 즐길 수 있어야 하며, 보존과 더불어 발전해야 하고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어야 한다. 신분의 구별이 있었던 예전에는 특정 계층의 문화가 따로 존재하여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었지만,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누구의 문화가 아니라 공유할 수 있는 ‘우리’ 문화가 더욱 필요하다. 그렇다면 앞으로 전통문화가 우리 국민 모두가 향유할 수 있는 문화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먼저, 전통문화의 대중화가 필요하다. 현재 대중화의 일환으로 전통문화가 국민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방안으로 ‘살아 숨 쉬는 궁궐 만들기’ 사업 등이 추진되고 있다. 경복궁 경회루와 창덕궁 옥류천 개방, 고궁 달빛기행 등의 구체적인 문화기행을 통해, 국민들은 거리감이 느껴졌던 궁궐을 친숙하게 접하게 되었고 이런 장소들이 한국의 대표적 명소가 되었다. 그리고 문화유산 스토리텔링은 건축물과 유적지에 생동감을 넣어주어, 우리의 상상력과 창의성을 자극하고 새로운 관광트렌드를 만들어가는 중요한 동력 역할을 했다. 아무리 우수한 문화도 국민들로부터 외면 받거나 박제된 채로 있으면 자연 소멸되거나 제대로 전승될 수가 없으므로 전통문화는 대중 속에 자리 잡아야 한다.
또한, 전통문화도 이젠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인이 공유할 수 있는 독특하면서도 보편적 가치를 지닌 문화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몇 년 전부터 불기 시작한 한류열풍이 작년 싸이라는 가수를 통해 정점에 달했었다. 한류열풍과 더불어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세계의 관심도 높아져 한식을 찾는 외국인이 증가하고 따라서 비빔밥과 불고기 등을 파는 한식당이 유럽, 북미 등 각국에서 성업 중이라고 한다. 그리고 국악과 판소리 역시 해외 공연을 통해 세계인과 음악적 정서를 공유함으로써 전통문화의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세계인의 지속적인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전통문화는 현대와의 조화를 통해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는, 즉 재창출의 역할을 해야 한다. 전통문화는 현대사회의 연속선상에 있으므로 현대문화와 예술에 무관할 수 없다. 따라서 변화가 없는 과거만을 고집한다면 전통문화는 현대와 호흡할 수 없어 사장된 문화가 될 위험이 높다. 이런 위험을 극복하기 위해서 전통문화를 현대화하려는 노력이 있어 왔다. 사물놀이와 사물놀이 리듬을 소재로 한 뮤지컬 난타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현대사회에서 전통문화는 보존만이 아니라 현재의 문화와 부합한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하여 발전시켜야 한다.
 





요즘에는 젊은 세대들도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많다. 우리의 전통이 고루한 것이 아님을 이미 그들도 알고 있다. 그래서 전통문화의 계승과 발전에 관심을 두고 착실하게 기초부터 다져나가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 한국전통문화대학교는 그런 젊은이들을 인재로 양성하기 위한 기관이다.
 
| 종교를 떠난 전통문화의 큰 줄기, 불교문화
종교는 각 시대의 정치, 경제, 문화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다. 서양의 헤브라이즘 시대 천 년 동안 기독교 문명의 흔적은 역사 문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마찬가지로 불교는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불교 문화권에 속하는 동아시아인의 삶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우리 문화재 중 불교문화재가 많은 것을 보면 불교가 전래된 후 1,600년 동안 불교가 우리 삶 속에 얼마나 깊숙이 들어왔는지를 반증해 준다. 또한 상당수의 문화재들이 그 사회적 기능을 상실한 채 전해 오는 것이 있는 반면 불교문화는 그 종교적 기능이 살아 있어 소위 살아있는 문화유산으로 현대사회에 미치는 정치적, 문화적 영향력이 매우 크다.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인 영산재는 살아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 모두 부처님의 참 진리를 깨달아 번뇌와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하는 대중 참여 불교의식이다. 이러한 불교의식 영산재는 전통적인 상례절차에서 ‘49재’라는 유사한 형태로 남아있기도 한다. 이 외에도 석굴암, 해인사 장경판전이 종교와 국적을 넘어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가 하면 연등회, 사찰건축물, 불경 등 보존가치가 있는 불교문화유산이 많이 있다. 해인사 장경판전, 불국사 석굴암과 같은 불교 문화유산은 불교적 가치와 미학적 아름다움 외에도 과학적 우수성에 세계인들이 새로이 주목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그동안 불교문화유산이 사고로 훼손 및 유실되었을 때의 상실감은 단순히 종교계의 사람들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의 안타까움이었다. 종교를 떠나서 전통문화의 큰 줄기인 불교문화유산은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갖고 보존할 필요가 있다. 조상의 삶과 혼이 어려 있는 전통문화, 그 중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불교문화의 범종교적 계승 발전은 우리 모두의 과제이다. 특히 불교문화 계승발전의 중심에 있는 불교관계자들의 역할에 거는 기대가 크다. 앞으로 불교문화의 계승 발전으로 전통문화가 더욱 빛나기를 소망해 본다.
 
 
김봉건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총장. 서울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런던대에서 석사, 다시 서울대에서 박사를 받았다. 이후 국립문화재연구소와 문화체육부에서 근무하며 1995년 홍조근정훈장을 수여받았다. 2002년부터 2010년까지는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한국건축역사학회 이사와 대한건축학회 문화재분과 위원장,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을 지냈으며, 2010년 3월부터는 경기도 유형문화재분과 문화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