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 이어진 고려불화의 마지막 명작

불화 답사 1번지 강진 무위사 후불벽화

2014-02-09     불광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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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내부의 ‘아미타삼존불’과 ‘아미타삼존’ 후불벽화. 극락보전은 조선초기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1430년 (세종 12)에 조성. 아미타삼존 불상은 같은 시기 만들어져 안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후불벽화는 1476년(성종 7)에 완성되었다. 이들 건물・불상・벽화의 장엄들은 모두 국보 또는 보물로 지정되었다. 무위사 극락보전은 가히 우리나라 ‘불교미술의 보고’라 할 수 있다. 극락보전 앞마당 가운데에는 연화문 배례석, 좌우로는 괘불석주가 보인다.
 
| “여기 있을 땐 몰랐지, 이 벽화가 그렇게 중요한지”
하늘이 흐린 것이 눈이라도 또 올 기세다. 서울에서 한반도 남쪽 끝자락을 향해 가로질러 강진 무위사에 도착, 극락보전으로 향했다. 마침 비슷한 시간에 도착하신 한 스님께서 극락보전의 〈아미타삼존〉 후불벽화를 마주 대하고 남다른 감회에 젖는다. (사진01)
30여 년 전 젊은 시절을 무위사에서 보내셨다는 경산 스님. “여기 있을 땐 이 벽화가 그렇게 중요한지 몰랐지. 국내에서 유일하게 고려불화가 어땠는지 알게 해주는 명작이지.” 그렇다. 이곳 무위사 극락보전의 ‘아미타삼존’ 후불벽화는 현존하는 마지막 ‘고려 스타일’이다. 물론 작품은 조선 초기 1476년(성종 7년)에 그 조성을 완성한 것이다. 하지만, 조선 스타일이 아닌 ‘고려 스타일’을 고스란히 살려내고 있어, 그 의의가 자못 크다. 본존 육계의 정상계주, 장방형 광배 모양 등 몇몇 형식적 요소는 새로운 조선식이지만, 섬섬히 살아있는 세필의 유려함과 화사한 장식적 아름다움은 고려시대의 귀족적 양식 그대로이다. (사진04~07)
지금까지 유존하는 162여 점의 고려불화는 대부분이 해외로 유출되어 있는 실정이라, 국내에서 고려불화의 진수를 보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참으로 영화로웠던 고려불화의 세계. 이 작품은 분명히, 섬세하고 화려했던 고려불화의 진수를 체득한, 마지막 고려 명장의 작품일 것이다.
 
| 고려 천재 화가의 마지막 작품
무위사 ‘아미타삼존’ 벽화를 그린 화승에 대해서는 전설이 남아있다. 극락보전 건립 후 어느 날, 한 노승이 사찰을 찾아와 벽화를 그리겠다며 100일 동안 법당문을 절대 열지 못하게 하였다.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아무 것도 찾는 것 없이 문은 그렇게 닫혀만 있었다. 그러나 99일째 되던 날, 궁금증이 많은 한 승려가 살짝 법당 안을 들여다보자, 한 마리의 새가 입에 붓을 물고 날아다니며 그림을 그리다가 포르르 날아가 버렸다. 그리하여 관음보살의 눈동자가 그려지지 못한 채 미완성의 그림으로 남게 되었다.
벽화를 들여다보니 정말 관세음보살님의 눈동자만 그려지지 않은 채 동공이 비어있다. 어찌된 일로 가장 중요한 ‘점안點眼’이 되지 않았을까. 동양미술에서 ‘눈동자를 그려 넣는 일’ 점안은, 도석화(도교와 불교 그림)뿐 아니라 일반 인물화(특히 초상화)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전신傳神’이라 하여 생명을 불어넣는 마지막 작업으로 작품 완성의 하이라이트다. 중국 양 나라의 유명한 화가 장승요가 ‘눈동자를 그리자 진짜 용이 되어 날아가 버려, 그 후엔 용의 눈동자를 일부러 그려 넣지 않았다’는 화룡점정 이야기가 있다. 눈동자를 그려 넣으면 보살님이 화신하여 떠나버릴까봐 두고두고 여기 계시라고 그리지 않은 걸까. 전설은 이러한 미완성에의 의구심 그리고 비범한 작품 탄생의 비밀을, 예나 지금이나, 궁금해 했던 사람들 사이에서 구전된 것이리라. “아! 참 경이롭다~” 감탄의 소리가 나를 깨워 뒤를 돌아보니, 경산 스님은 어느새 훌쩍 사라지고 자취도 없으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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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불벽화 가운데의 아미타불 몸에서 뻗어 나오는 상서로운 기운은 다채로운 문양으로 표현됐다. 부처님 좌우에는 지장보살과 관음보살이 협시한다. 지장보살은 석장과 여의주를, 관음보살은 정병과 버드나무 가지를 들었다. 관세음보살이 걸친 투명한 사라의 섬려한 표현은 전형적 고려양식이다.
 
| ‘무위無爲’의 참뜻
월출산이 남쪽 바다를 마주하고 병풍처럼 팔을 벌린 그 품속에 무위사가 있다. 평평한 산자락과 따뜻한 남쪽 바닷바람이 만나는 곳, 무위사에 오면 그 포근한 정경에 마음이 놓인다. 그리고 사찰 이름도 ‘무위無爲’이니 그 평화로움은 더할 나위 없다. 가장 먼저 우리를 맞는 것은 절 마당 한가운데의 배례석이다. (사진02) 길이 약 1미터 남짓 장방형의 배례석 중심에는 돋을새김의 연화문이 있는데 전형적인 고신라 양식이라, 사찰의 유구한 역사가 고스란히 전해온다.
방방곡곡 사찰의 이름마다 모두 뜻 깊은 불교 진리가 담겨 있겠다. 해인사는 ‘해인삼매海人三昧’에서 나온 것이겠고, 또 직지사는 ‘직지인심直指人心’에서 나온 것이겠다. 그런데 무위사의 ‘무위’, ‘함이 없음’은 보통 세간의 도교적 해석으로 ‘모든 인위적인 것을 하지 않는다’라고 풀이되곤 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이미 ‘나’라는 주체자가 있고 ‘하지 않음’을 다시 ‘하게’ 되어, 해석은 그럴듯해도 이렇게 해석하면 더 이상 나아갈 데가 없게 된다. 사실 불교적 맥락에서 ‘무위’란 바로 궁극의 바탕자리, 자재自在하는 ‘공空’을 말한다.
‘나무 대비관세음~’ 조석으로 염불하는 천수경에도 ‘무위’의 구절은 자주 나온다. ‘무위심내기비심(無爲心內起悲心함이 없는 마음자리에서 자비심을 일으키다.)’ 또는 ‘원아속회무위사(願我速會無爲舍나에게 어서 빨리 함이 없는 집에 들게 하소서.)’ 등의 구절에 쓰인 ‘무위’의 맥락을 보면, 본래 바탕자리로서의 ‘무위심無爲心’, 그리고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고향으로서의 ‘무위사無爲舍’임을 명백히 알 수 있다. 그런데 이유 없이 바쁜 ‘유위有爲’의 세계 속에 사는 우리는 저쪽 피안의 관점에서 하는 이야기가 뭔 소리인지 알 듯 모를 듯 마냥 답답하기만 하다.
 
둥글고 오묘한 법 진리의 모습이여 고요뿐 동작없는 삼라의 바탕이여 이름도 꼴도 없고 일체가 다 없거니 아는 이 성인이고 모르는 이 범부라네 묘하고 깊고 깊은 현묘한 진성이여
-의상조사 「법성게」 중에서
 
| 남해의 영험한 관음보살 성지
극락보전 후불벽화를 조사한다는 ‘유위’에 빠져 정신이 없는데 한 보살님이 법당으로 들어오신다. 후불벽 앞쪽 번듯한 아미타삼존을 향해서는 잠깐 예의만 갖추고, 바로 후불벽 뒷면을 볼 수 있는 뒷켠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본격적으로 기도에 들어가신다. 하필이면 앞 쪽의 넓은 자리 놓아두고 이렇게 좁은 뒷면 구석에 앉으실까? 후불벽 뒤로 돌아가 보니 배면에 그려진 ‘관음보살도’ (사진08) 밑 주변으로 인등이 가득하다. 약 1천 여 개에 달하는 빽빽한 인등에는 시주자의 이름이 새겨졌고, 관음보살님께로 향한 그분들의 간절한 염원이 불 밝혀져 있다.
이 주변 일대 사람들은 대대로 집안에 무슨 일만 있다 하면, 이곳 후불벽 배면의 관세음보살님께 달려와 무사와 태평을 빌었다 한다. 우리나라 관음보살 3대 성지로는 동해 낙산사 홍련암, 서해 낙가산 보문사, 남해 금산 보리암 등이 있는데 이곳 무위사 역시 남해의 관음성지로 유명한 곳 중 하나다. 신도님이 앉았던 자리에 앉아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앉아서 올려다보니 관세음보살님이 흰 옷을 펄럭이며 바로 내게로 강림하고 계신 것이 아닌가. (사진08) 그리고 보름달 같은 밝고 청정한 빛으로 내 마음을 가득 비춰주신다.
 
 
 
무위사 산자락. 밤새 눈이 온 뒤 운무가 피어오른다. 흐린 날의 석양이 더욱 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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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관음보살’ 무위사 극락보전 후불벽화의 배면. 조선전기. 하얀 옷을 펄럭이며 관세음보살님이 강림하고 계신다. 둥근 보름달의 청정자비로 중생을 포용하고 구제하신다.
 
| 관세음보살이 버드나무 가지와 정병을 들고 있는 이유
후불벽 앞면 〈아미타삼존도〉의 협시 관세음보살은 극세필의 섬려한 귀족적 분위기인 반면 (사진01, 07), 후불벽 뒷면 〈관세음보살〉 독존상은 대담하고도 시원스런 필치로 소탈하지만 힘찬 면모를 갖고 있다. (사진08~10) 생동감 넘치는 활달한 기운, 전형적인 조선 특유 양식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그런데 양쪽 관세음보살 모두 손에 초록색 버드나무가지(양지楊枝)와 정병淨甁을 들고 있다. (사진07, 09) 이는 관세음보살님의 전용 지물이다. 정병에는 청정한 물, 감로수가 들어있다. 그리고 버드나무 가지는 ‘맑고 깨끗하게’ 하는 약용 효과를 가진 식물로 유명하다. 관세음보살님의 눈부신 하얀 옷, 버드나무 가지, 정병의 감로수, 밝고 투명한 신광은 모두 중생의 혼탁한 번뇌와 불타는 욕망을 깨끗하게 씻어주는 역할을 한다.
 
관세음보살님께 목숨 바쳐 귀의합니다. 거룩하신 금빛 몸 연꽃 위에 앉으사 은은한 묘한 향기 휘날리시며 인간세상 더러운 때 없애 주시네. 보배 손은 버들가지 집어 들고 청정한 감로수 널리 뿌리사 활활 타는 귀신세계 씻어주시네. 중생 아픔 크게 슬퍼 큰 원 세우시고 큰 지혜 큰 사랑 베푸시는 하얀 옷의 관자재보살 마하살이여.
-「관음예문」 중에서
 
 
불교 기초 상식 佛敎 基礎 常識
 
‘아미타’의 뜻은?
‘아미타(阿彌陀)’라는 명칭은 산스크리트어(고대 인도 언어)인 아미타바(Amitābha)와 아미타유스(Amitāyus)에서 유래한다. ‘아미타바’는 ‘무한한 빛’을 뜻한다. 끝이 없는 무량한 빛이기에 무량광(無量光)으로 번역된다. ‘아미타유스’는 ‘무한한 생명’의 작용을 뜻하여, 무량수(無量壽)로 번역된다. 빛과 생명, 빛이 있는 곳엔 생명이 있다. 아미타는 ‘생명의 원천이자 그 작용’인 것이다. 그러니 아미타불, 무량광불, 무량수불 모두 같은 뜻의 용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