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 봄바람에 설레다

한국화가 최한동

2014-02-09     불광출판사
 

어쩐지...봄바람.. | 2009년
 

한국화가 최한동
 
21세기 한국의 문화를 돌아보자. 우리는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햄버거와 스테이크를 먹는다. 거리에서 한복 입고 다니는 모습이 도리어 어색하다. 한옥 대신 고층아파트가 늘비하다. 제대로 된 전통한옥은 전통사찰이나 고궁에 가야 볼 수 있다. 이 시대에 과연 ‘한국적’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최한동 작가는 서양화와 한국화의 경계에서 한국적인 정서에 대해 고민해 왔다
 

어쩐지...봄바람.. | 2009년
생활에서 묻어나는 솔직함과 질박함 그리고 멋을 아는 보편적 서정성이 바로 한국적인 정서가 아닐까.
 
| 돈황석굴 앞에서 세 번 절하다
“학생들에게 한국적인 것을 그리라고 하면 조선시대로 되돌아가려고 해요. 신라시대 사람들이 조선시대 그림을 보면 매우 중국적이라고 볼 거예요. 그러니까 노스탤지어가 한국성은 아닌 거죠. 문화라는 것은 서로 영향을 받는 성격을 지니고 있죠.”
최한동 작가는 한 나라의 문화는 여러 문화가 뒤섞여 있다고 말했다. 즉 문화는 독자성은 있어도 유일성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미국 등 다양한 문화가 들어와 혼재되어 있다. 우리는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우리에 맞게 변화시킨다. 똑같은 밀가루를 가지고 미국인은 빵을 만들고 우리는 수제비를 만들듯이, 정서와 정신적인 틀이 그 변화 안에 숨어 있다. 그는 이 정서를 찾기 위해 동양화와 서양화를 넘나들며 회화적 실험을 해왔다. 젊은 시절에는 화선지, 명주, 견에서 시작해 온갖 화학적 재료를 사용했다. 재료뿐만 아니라 그림풍도 계속 바뀌어 왔다. 국전 등단작은 ‘비원’이라는 추상화였다. 도석화도 그렸다. 현재는 캔버스에 한국화 물감으로 채색화를 그리고 있다.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한국적인 것은 무엇일까. 그는 은근과 끈기, 그리고 보편적 서정성을 꼽았다. 생활에서 묻어나는 솔직함과 질박함, 그리고 멋을 알고 즐기는 서정성을 그는 보편적 서정성이라 말했다. 여기에는 다양한 의견이 있겠지만, 최한동 작가는 자신이 생각하는 한국적인 멋을 추구하고자 지금까지 애썼다.
“광의의 의미로 보면 한국인이 그리면 한국화에요. 우리가 박수근 선생의 작품을 왜 좋아합니까. 그건 분명히 유화잖아요. 그러나 한국인의 질박한 느낌이 나오잖아요. 우리가 존경하고 흠모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거죠. 재료 자체만 고집한다면 절대 그 이상은 할 수 없어요.”
그는 그림이 취미이자 생활이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학교 강의가 끝나면 꼭 작업실에 들른다. 작업을 하지 않더라도 작업실에 앉아 작품과 자신에 대해 고민한다. 또 여행을 좋아하는 그에게 여행은 앞서간 작가들의 작품을 보며 자신의 예술세계를 점검하는 시간이다. 유럽과 동아시아를 오가며 많은 작품을 보았지만 돈황석굴만큼 위대한 작품은 드물다고 했다. 끝없는 사막에 산을 깎아 그린 저 벽화들이야 말로 동양회화의 근간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장엄했다. 고구려벽화 수렵도가 동양회화의 시초라고 여긴 자신이 부끄러울 정도였다.
그는 돈황석굴 앞에서 제자들에게 일단 절을 세 번 하자고 했다. 학생들이 왜 세 번이냐고 묻자 그는 “옛날 화공 중 존경하는 사람에게는 한 번, 임금님에게는 두 번, 역사에 남을 만한 사람에게는 세 번.”이라고 답했다. 돈황석굴에 대해 글도 썼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여기 와서 그림을 그릴 때 몇 천 년 후 우리가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나 했겠는가.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을 보여주신 화공들에게 감사한다.”
 

어쩐지...봄바람.. | 2007년
 

어쩐지...봄바람.. | 2009년
그의 작품은 성을 강렬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더 마음 설레고 몽롱하다.
 
| 봄바람 수양버들 하늘대다
흔히 야하다는 말을 많이 쓴다. 보통 야하다는 말은 성적 긴장감이 있거나 성적인 것을 연상시킬 때 쓴다. 요즘 대표적인 것은 ‘야동’이다. 야동은 육체를 그대로 드러내 욕망을 직접적으로 자극한다. 하지만 조선시대 화가 신윤복의 작품을 보면 야동과는 다른 시선이 존재한다. 육체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게 아니라 상황과 사물, 배경 등을 통해 은유적으로 남녀 간의 애정과 욕망을 드러낸다. 이 시선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야동은 보는 것이고 신윤복의 작품은 그림을 보고 상상하게 된다. 신윤복의 작품 같은 시선을 최한동 작가는 ‘한국적 에로티시즘’이라고 표현한다.
그는 10여 년 넘게 그려오고 있는 연작이자 대표작인 ‘어쩐지… 봄바람’은 한국적 에로티시즘에 대한 고민에서 탄생했다. ‘어쩐지… 봄바람’은 서양화의 누드화와 같은 직접적인 표현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봄바람에 하늘거리는 버드나무 뒤로 말이나 여인이 지나간다. 신윤복의 그림을 좋아하는 그는 보통 신윤복의 ‘여인도’ 등에서 여인을 패러디했다. 말은 흑마나 청마와 백마가 같이 등장한다. 말은 생명력이나 성적인 상징으로 전통적으로 많이 등장하는 소재다.
 

어쩐지...봄바람.. | 2012년
외할머니 이전에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욕망이 억눌린 채 살아야 했던 한 여인의 삶이 주는 비극성, 그것이 최한동 작가의 에로티시즘의 근원이다.
 

바라기 | 2007년
 
그의 작품은 성性을 강렬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나른한 봄날에 버드나무 아래 누워서 몽롱하게 야한 상상을 하는 듯하다. 사춘기의 절정을 지나 감성적으로 성을 바라보기 시작할 때의 느낌도 든다. 그의 그림 속에서 봄바람에 하늘거리는 수양버들을 보면 이상하게 설렌다. 그는 한국적 에로티시즘은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성적 욕망이라고 말한다.
“수양버들이 살랑살랑거리는 봄날을 떠올려 보세요. 나른하고 몽롱하잖아요. 설레기도 하고. 한국적 에로티시즘은 이런 것이 아닐까 싶어요. 오랜만에 집에 오는 서방님을 아는 체도 못하고 멀리서 지켜보면서 행주치마 입에 물고 부엌에서 음식 준비하는 그런 모습. 그렇게 은근하게 드러나는 에로티시즘이 바로 한국적 에로티시즘이라고 생각해요.”
그가 에로티시즘에 대해 눈을 뜬 건 외할머니 때문이다. 그의 외할머니는 아들은 낳지 못하고 딸만 셋 둔 채 22살에 청상과부가 됐다고 한다. 22살이면 지금 나이로는 대학교 3학년이다. 뭘 알겠는가. 그런데도 외할머니는 큰 집안을 혼자 이끌어갔다. 평생 수절하며 아들딸 키워 시집, 장가보내는 삶이 과연 행복한가. 조선시대라면 열녀비를 세워주었을 것이다. 외할머니이기 이전에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욕망이 억눌린 채 살아야 했던 한 여인의 삶은 그에게 풀어야 할 숙제였다. 외할머니는 유품으로 그에게 트럭 한 대 분량의 삼베를 남겼다. 그는 삼베에 외할머니의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쩐지 … 봄바람’으로 이어졌다.
부처나 보살은 바람 살랑살랑하는 봄날에 무슨 생각을 했을까. 불교는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 경지를 넘어서서 보살이 되고 부처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인간인데 딴 생각이 들지는 않을까. 부처는 설레지 않을까. 그는 봄날 팔당으로 가는 도중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쩐지… 봄바람’ 중 금동미륵반가사유상, 석굴암 불상 등이 등장하는 작품은 이렇게 엉뚱한 상상에서 시작했다. 부처와 보살이 한국적 에로티시즘 속으로 들어와 묘한 이질감을 주지만, 그렇다고 어색하지도 않다. 부처의 따뜻한 인간성을 엿본 듯하다. 앞으로 그는 자신의 작품에 깊이를 더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현대인의 공허한 심장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싶은 욕망은 어느 예술가나 가지고 있을 겁니다. 위대한 걸작은 모두 종교적이에요. 제 스승님도 돌아가시기 전에 가장 하고 싶은 것이 어떤 것이냐고 물었더니 종교를 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