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가 붓다를 위해 짓는 밥

수원 봉녕사

2014-02-09     불광출판사
붓다가 붓다를 위해 짓는 밥




종로3가 탑골공원 근처 어느 편의점에서 본 광경을 잊지 못하겠습니다. 편의점 안 비좁은 공간에 추레한 차림새의 노인 한 분이 막 빵 하나와 우유를 사서 빵 봉지를 찢으려던 참이었습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비닐봉지를 찢고 빵을 함박 벌린 입으로 가져가는데 그 모습이 참 진했습니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게 왜 그리 슬프던지….
밥이란 것이 그처럼 구차하고도 절박합니다. 평생 책 한 권 읽지 않고 연애 한 번 하지 않아도 살 수 있지만 저 밥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도 하루에 세 번은 찾아 먹어야 하고, 최소한 하루 한 번은 밥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살아가는 그 자체를 밥벌이라 부르고, 어떤 작가는 일터에 나가는 것을 ‘밥벌이의 지겨움’이라 표현했지요.




“음식에 부처님의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이 바로 사찰음식일 겁니다.
음식 만드는 사람이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정성으로 자글자글 끓여내는
바로 그 음식이 사찰음식입니다.”
불교학자 이미령씨와 봉녕사 주지 자연 스님의 대화

| 사찰음식의 특별한 레시피, 공양 올리는 마음
부처님에게도 밥은 그랬습니다. 하루에 한 끼. 그것도 얻어먹었습니다. 부처님에게 밥은 굶어죽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몸부림이었던 것입니다. 수행자가 게으르면 부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밥을 얻어먹는 빈천한 삶의 방식을 기꺼이 택한 우리 아니더냐. 그런데 어떻게 무익한 수다와 공상으로 삶을 허비하겠느냐!”
석가모니 부처님에게 있어 밥은 수행이었습니다. 밥을 먹기 위한 몸짓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반복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누가 어떤 것을 발우에 담아주어도 담담히 먹어야 한다는 점, 누군가의 집에서 달콤한 밥을 넣어주었더라도 다음날 같은 음식을 바라는 마음으로 그 집 대문을 두드려서는 안 된다는 점. 심지어 신자들은 밥을 무기로 하여 수행자에게 실력행사를 하기도 했으니 그것 참 생각할수록 수행과 밥은 묘한 인연입니다.
이제 그 밥이 사찰음식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앞에 다시 섰습니다. 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사찰음식을 마주하면서 새삼 무엇을 사찰음식이라고 하는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절에서 먹는다고 해서 사찰음식이 아닙니다. 스님이 먹는 음식이 사찰음식이 아닙니다. 불교식으로 발우에 담아 먹는다고 해서 사찰음식이 아닐 것입니다. 음식에 부처님의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이 바로 사찰음식일 겁니다. 음식 만드는 사람이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정성으로 자글자글 끓여내는 바로 그 음식이 사찰음식입니다.
봉녕사 주지이신 자연 스님은 말씀하십니다.
“속가의 내 어머니는 정말 신심이 도타운 분이셨어요. 그 분은 매일 아침 가족들 밥을 짓기 전에 쌀 한 줌을 부뚜막 한쪽에 마련한 항아리에 덜어 넣으셨지요. 초하룻날 절에 가실 때면 잊지 않고 그 쌀을 가져다 불전에 올리셨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는 매일 아침 부처님께 마지공양을 지어 올리는 마음이셨을 겁니다. 매일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그 마음으로 가족들의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드셨지요. 어머니의 그 음식을 먹은 우리 가족들은 바로 부처님이었어요. 나는 그런 어머니에게서 밥을 먹고 자랐어요. 요즘 세상이 먹는 걱정을 하게 된 것은 재료 탓만은 아닐 겁니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마음에서 사랑과 정성이 사라졌기 때문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부처님이 부처님에게 올리는 음식이 바로 사찰음식입니다. 자연 스님 곁에서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던 스님들 가운데 한 분이 이렇게 덧붙이십니다.
“맞습니다. 예전에 은사스님께서 제게 늘 ‘선방스님이 부처님이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공양간에서 소임을 살 때 대웅전 부처님도 부처님이지만 도반이 부처님이라는 생각으로 음식을 만들라고 당부하셨지요. 그 말씀을 잊을 수가 없어요. ‘사찰음식, 사찰음식’ 그러는데, 사찰음식이라고 해서 뭐 특별한 재료에 유별난 레시피가 있다기보다는 음식 하는 사람이 음식 먹는 사람을 부처님이라고 여기는 것. 부처님께 공양 올린다는 마음으로 만드는 음식이 사찰음식이지요. 바로 여기에 사찰음식의 정신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사찰음식이 보통의 음식과 똑같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자연 스님은 일목요연하게 세 가지로 사찰음식의 특징을 들려줍니다.
“사찰음식은 일체 육류를 쓰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반 음식과 다릅니다. 그리고 오신채를 쓰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반 채식주의 음식과도 다릅니다. 또한 양념을 많이 쓰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식과도 다릅니다.”




봉녕사를 크게 중창하여 비구니 학풍을 세우고 2011년 원적한 서주 묘엄 큰스님의 밀대. 봉녕사 대중은 스님을 각별하게 모시며 스님이 드실 장아찌 항아리나 국수를 만드는 밀대를 따로 썼다. 사용한지 50년 가량 되었다는 밀대의 모서리에는 스님의 이니셜 ‘S’자가 새겨져 있다.




객스님이 봉녕사를 찾아오거나 어른스님을 모실 때의 한상차림. 무말랭이무침,
숙주나물무침, 애호박깻잎전과 김치가 정갈하다. 죽순밥은 한 학인스님이 대중스님들을 위해 안동에서 직접 따보낸 어린 죽순으로 지었다.

| 봉녕사로 도망친 소 한 마리
고기가 들어가면 사찰음식이 아닙니다. 이유 불문입니다. 식물도 생명이 있는데 왜 동물만 가지고 그러느냐고 따져도 소용없습니다. 자연 스님은 오래 전의 일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전에 봉녕사 저 앞 큰 길로 도축장으로 끌려가는 소떼들이 이따금 지나갔어요. 그런데 어느 날 소 한 마리가 그 행렬에서 탈출해서 봉녕사 쪽으로 마구 달려왔어요. 도축업자가 황급히 쫓아왔고, 소는 언덕을 오르다 힘에 부쳤는지 넘어졌어요. 코뚜레를 단단히 잡힌 채 끌려가는데 그 눈에 눈물이 흐르더군요. 그 광경을 봉녕사 학인스님들이 보고 말았어요. 소는 내 먹잇감이 아니라 제 운명을 알고 두려워 도망치고 불안과 체념의 눈물을 흘리는 생명체입니다. 이 생각을 하면 육식을 할 수가 없어요.”
생명을 존중한다면 그걸 끊어서 먹을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어서 스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좀 더 강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잡아먹히기 위해 그릇된 방식으로 사육되고, 지독한 공포에 질려 도살되는 동물들을 먹을 때 그 파장은 고스란히 인간에게 덮칩니다. 식물이라고 예외는 아니지만 동물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업이 더욱 강하고 크지요. 그 업이 인간에게 전이됩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겠지만 수행하는 사람들은 그걸 느껴요. 육식을 삼가기를 권합니다.”
속 시원하게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울 뿐 육식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무거운 기운이 느껴지며 그걸 수행하는 사람들은 알아차린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어디를 가도 맛집이 넘쳐납니다. 방송에서도 연일 맛집을 소개하고 있어서 과연 ‘먹는 즐거움’을 빼면 세상 살 맛이 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맛집이라는 곳의 음식들은 대체로 양념이 진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너무 달고 너무 짜고 너무 맵습니다. 그런데 그런 음식점들도 할 말이 있습니다. 맛이 슴슴하고 건건하면 손님이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연 스님은 말합니다.
“현대는 맛을 잃어버린 시대가 아닐까 해요. ‘맛있다, 맛있다’라고들 말하지만, 사람들은 너무나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져 버렸어요. 혀가 맛을 있는 그대로 알아채지 못하고, 몸이 자극적인 음식을 자꾸만 받아들이다보면 어느 사이 몸에 이상이 오고 삶이 힘들어져도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 현대인입니다. 무엇보다도 인식 전환을 해야 합니다. 맛있는 음식이란 어떤 것인지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지요. 사찰음식은 ‘맛’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부터 바로 잡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재료로 어떤 음식을 만들어내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먹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먹느냐를 진지하게 되짚어보는 것이 사찰음식의 출발입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선업을 짓지 않을 수 없다”는 아함경의 말씀이 자꾸 떠오릅니다. 딱 그 차원입니다. 제 몸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좋은 음식을 몸에 제공하기에 앞서 자신의 욕망이 음식을 통해 채워진다는 사실을 잘 알아서 욕망을 조절하는 힘을 길러야 하며, 오신채를 쓰지 않는 것도 그처럼 욕망을 절제하자는 의미가 담겨있음을 기억해야 한다고 스님은 말합니다.

| 음식, 몸, 마음의 싱그러운 조화
스님의 말씀을 듣다보니 문득 어머니 손맛이 떠오릅니다. 이북이 고향인 어머니는 음식을 할 때 양념을 가급적 적게 넣습니다. 나물을 무칠 때는 마늘과 파도 거의 넣지 않고, 참기름도 병아리눈물보다 더 적게 넣습니다. 어머니 손끝에서 조물조물 무쳐져 상으로 나오는 나물들은 빛깔과 모양이 살아 있습니다. 참 예쁩니다.
양념으로 범벅이 된 음식들에서는 그 재료 고유의 향과 맛을 느낄 수 없습니다. 그건 다시 말하면 재료가 생기를 잃었다는 뜻입니다. 싱싱함을 잃은 재료로 만든 음식은 별로입니다. 따라서 사찰음식에는 세 가지 기본 재료로 음식 맛을 내는데 그건 다시마와 무, 표고버섯이라고 합니다. 시중에서 파는 진간장은 가급적 쓰지 않고 조선간장으로 간을 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입니다.
봉녕사를 중창하신 묘엄 큰스님은 평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사찰음식은 기본에 충실한 음식이며, 그 기본이란 바로 자연과의 조화이다.” 음식이 자연스럽지 못하면 몸에 탈을 불러오고, 몸에 탈이 나면 마음이 어지럽습니다. 부처님에게 그런 음식을 올릴 수는 없지요. 제철에 쉽게 구할 수 있는 흔하디흔한 재료에 ‘이 음식을 먹고 몸이 건강해지고 정신이 맑아졌으면’ 하는 바람을 양념으로 해서 부처님께 마지 올리는 마음으로 한 상 차려낸다면, 아, 당신은 부처님을 낳고 키우는 어머니, 불모佛母입니다.

봉녕사의.힘!.나는.여름삼색국수.


찰흑미인삼콩국수
- 찰흑미가루
- 밀가루
- 인삼
- 서리태콩
- 오이
- 소금
1 서리태콩은 깨끗이 씻어 반나절 정도 불려 껍질을 벗긴다.
2 껍질 벗긴 콩을 삶아 인삼과 함께 곱게 간다. 깔끄러운 식감을 없애려면 체에 한 번 거른다.
3 찰흑미가루와 밀가루를 1:1로 섞고 약간 되직하게 반죽하여 면을 만든다.
4 면을 삶아 찬물에 여러 번 씻어 물기를 뺀다.
5 그릇에 면과 콩물을 담아낸다.
6 인삼은 얇게 편으로 썰고, 오이는 채 썰어 고명으로 올린다.
7 기호에 따라 소금을 넣어 간을 맞추어 먹는다.


수박냉면
- 수박
- 잘 숙성된 김칫국물
- 냉면
- 조선간장
- 황설탕
- 식초
- 연겨자
1 수박은 강판에 갈아 면보에 걸러 수박물을 만들어 놓는다.
2 김칫국물도 면보에 걸러 준비한다.
3 면을 삶아 찬물에 여러 번 씻어 물기를 뺀다.
4 수박물과 김칫국물을 1:1로 섞어 조선간장
황설탕, 식초, 연겨자로 입맛에 맞게 간한다.
5 그릇에 면과 수박김칫국물을 담아낸다.
6 수박이나 오이를 고명으로 올린다.


겨자소스를 곁들인 야채볶음국수
- 밀가루(또는 생면)
- 파프리카(색깔별로 한 개씩 2개)
- 목이버섯
- 배
- 겨자
- 조선간장
- 들기름
- 매실청
- 소금
1 밀가루를 반죽해 면을 만든다. 생면을 사용해도 된다.
2 파프리카는 얇게 채 썰고, 목이버섯은 물에 불려 한 입 크기로 잘라 준비한다.
3 배는 강판에 갈고, 갈아놓은 배에 조선간장, 매실청 겨자, 소금으로 간한다.
4 면을 삶아 찬물에 여러 번 씻어 물기를 뺀다.
5 팬에 들기름을 두르고 파프리카, 목이버섯, 삶아 놓은 면을 따로 볶는다.
6 볶은 재료들과 양념을 같이 섞어 그릇에 담아낸다.


봉녕사는 선재 스님, 대안 스님 등 사찰음식 대중화 일등공신 스님들을 배출한 대표적인 비구니 도량입니다. 매년 10월이면 봉녕사에는 사찰음식 대향연이 펼쳐지는데요, 사찰음식 전문가 스님들의 시연과 강의, 봉녕사승가대학 학인스님과 금강율학승가대학원 스님, 일반인의 사찰음식 경연과 전시, 산사음악회, 사찰음식 만들기와 문화 체험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정성껏 준비됩니다. ‘사찰음식의 모든 것’이 궁금하다면, 봉녕사 사찰음식 대향연에 참여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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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3년 10월 예정
문의 031)256-4127
경기 수원시 팔달구 우만동 248번지
www.bongnyeongs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