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흔들리는 저 소리에 영혼을 담다

2014-02-09     불광출판사




“‘불교’ 하면 뭐가 떠올라요?” 이 질문에 사람들이 떠올리는 이미지가 몇 가지 있다. 스님, 산사, 불상, 고요함, 그리고 그 고요함 속에 울려 퍼지는 풍경風磬소리. 사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산사를 찾을 때마다 바람에 흔들리며 울리는 풍경소리가 그렇게 좋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풍경도 누군가 만드는 사람이 있을 터. 그런데 이거 참…. 풍경 만드는 사람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 전통을 잘 몰랐기에 가능했던 도전
문제는 장인정신의 유무다. 장인정신을 가지고 만드느냐, 아니면 대충 본을 떠다 중국 공장에서 찍어 파는 사람이냐가 관건이다. 여기저기 물어봐도 “있기야 있지….”라며 말끝을 흐려버린다. 그렇게 여러 곳을 다니며 물어본 끝에 한 사람의 이름이 중복해서 등장했다. 그런데 그를 추천해준 사람들이 한결같이 “요즘에도 만드나 모르겠네.”라는 토를 달았다.
수소문 끝에 그의 연락처를 얻었다. 수화기 너머 그는 다행히 아직도 풍경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부랴부랴 약속을 잡아 찾아간 충북 음성의 대소공단 끝자락. 그곳에 요령과 풍경을 만드는 ‘성진금속공예(대표 박석윤)’가 있었다.
“이 공장을 맡아서 일한 지 대략 30년 정도 됐어요. 본래 큰형의 친구가 운영하던 업체였는데 1986년 아시안게임 직후에 그 분이 쓰러지셨어요. 그래서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던 업체를 인수한 거죠. 1988년 올림픽 때는 공식지정업체로 인정받아서 다양한 금속공예품을 만들기도 했어요.”
박 대표는 본래 학교 전공이 금속이다. 군을 제대한 후엔 큰형의 권유로 이곳에서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3년 만에 업체를 도맡아 이끌게 됐고, 그렇게 시작한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시키는 것만 했지만 일을 하면서 더 좋은 물건을 만들려 노력하다보니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일도 도맡게 됐다. 물론 업체를 인수한 이후에는 끊임없이 새로운 제품을 개발해왔다.
지난 30년간의 이야기들을 하다 보니 절에 오래 다닌 사람도 잘 모를 이야기들을 제법 듣게 됐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예전에 만들던 요령은 노란 빛깔이었다는 것. 지금 나오는 요령들은 범종처럼 검푸른 금속의 속살을 그대로 드러내놓고 있다. 또 예전 요령들은 무늬가 없었다. 요령에 보기 좋은 무늬를 넣어 만들기 시작한 사람이 바로 박 대표다.
“아마 제가 이 일을 전통적으로 배워 온 사람이었다면 ‘요령이나 풍경은 이래야 한다.’는 편견에 사로잡혀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지 못했을 거예요. 그런데 저는 금속에 대해서 먼저 공부를 했던 사람이고 그 이후에 이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다양한 시도들을 할 수 있었죠. 금속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이론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사실 알고 보면 지난 30년 동안 저로 인해서 바뀐 것들이 꽤 많아요.”
오랜 세월 한 분야에만 매진해온 사람치고 풍파를 겪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 역시 올림픽이 끝난 후 파트너 업체로부터 사기를 당해 잠시 문을 닫기도 하는 등 적지 않은 부침에 시달려왔다. 박 대표는 그래도 이 일을 하면서 애들을 키울 수 있었다고 웃는다. 하지만 박 대표에게 진짜 시련은 바로 지금 진행 중이었다.

| 15가지 공정을 거쳐야 들을 수 있는
풍경소리
엄밀히 말하자면 박 대표뿐 아니라 금속 공예 분야 전체가 겪고 있는 시련이다. 오히려 박 대표는 성공 케이스 축에 속할지도 모른다. 경기도 하남 시의 조그만 소규모 수공업체로 시작해 지금은 음성의 대소공단 내에 작지 않은 부지를 확보한 공장으로 성장해왔으니 말이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영락없는 성공 케이스다.
“현재 부지로 이전한 지는 10여 년 정도 됐어요. 작은 공예품만 만들어서는 채산성이 떨어지다 보니 큰 것들을 만들어야 버티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옮긴 건데 처음에는 그럭저럭 괜찮았죠. 하지만 지금은 정말 많이 힘들어요. 공장 부지는 큰데 직원은 달랑 3명이에요. 작은 부지에서 소규모로 세를 살 때는 돈 들어갈 일이 별로 없었는데, 지금은 여러 가지로 나가는 돈도 많죠. 그래서 범종도 만들고 있는데 그것도 많아야 1년에 한두 개 정도 나가요. 그나마 범종이라도 만들다보니 버티는 거죠.”
아무리 작은 공예품이지만 요령이든 풍경이든 한 가지 물건을 만드는 데는 최소 12개 공정을 거쳐야 한다. 본을 떠서 초를 만들고, 원하는 두께로 만들기 위해 내벽을 깎아내는 작업이 가장 먼저다. 그 다음에는 유약을 발라서 건조시키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 과정만 3번을 반복해야 한다. 그 과정이 끝나면 본격적인 주물을 만들고 쇳물을 녹여 물건을 생산하기 시작한다. 몸체가 만들어져도 풍경에 매달 붕어를 따로 만들어야 하고, 요령의 경우 추를 만들어 달아야 한다. 그 사이사이에도 수없이 많은 잔손질이 필요하다. 심지어 완제품 코팅까지 계산하면 15가지 공정을 거쳐야만 한다. 그저 바라만 볼 때는 알 수 없는 복잡한 공정을 거쳐 하나의 풍경과 요령이 완성되는 셈이다. 성진금속공예가 불교용품, 그중에서도 금속공예 분야에서 중요하게 평가돼야 하는 이유가 있다.





박 대표는 불법복제품이 난립하는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서 좋은 제품을 개발하는 업체의 물건이 정당한 가격에 팔리는 풍토가 정착돼야 한다고 강변했다.

이곳은 제품을 직접 디자인해서 개발하고 있는 거의 유일한 업체다. 과거 금속공예가 호시절이었던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제품을 직접 개발하는 업체가 몇 있었다. 당시 요령이나 풍경을 만드는 사람들 중에는 적지 않은 수가 성진금속공예에서 배출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대다수가 사라져 버렸다. 우후죽순처럼 금속공예 업체가 난립하면서 출혈 경쟁이 벌어진 탓도 있지만, 불법복제라는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열심히 고민하고 연구해서 좋은 디자인을 갖춘 물건을 개발하면 정작 그 업체는 그 물건을 팔아 이득을 보기 힘들다. 며칠 지나지 않아 장사치들이 그 물건을 그대로 복제해 시장에 공급해 버리기 때문이다. 5만 원에 단가를 맞춰 상품을 개발했는데 2만 원, 3만 원에 복제품이 풀려 버린다. 심지어 물건을 파는 가게 주인들마저 박 대표를 불러 놓고 “당신 눈으로 보라. 별 차이 없이 똑같은 물건인데, 당신네는 왜 이렇게 비싸게 받아먹느냐? 양심이 있느냐?”고 몰아세우는 데 할 말을 잊었다고 한다.

| 불법복제와 출혈경쟁에 죽어가는 불교용품 산업
하지만 박 대표의 제품과 복제품을 같이 놓고 비교해보니 많은 차이가 있었다. 박 대표가 개발한 요령은 한눈에도 공들여 만든 게 눈에 띄었다. 곳곳에 노란 칠을 입혀 고급스러움을 더했고 조각 하나하나가 깨끗하게 마무리되어 있었다. 반면 대량 생산된 복제품은 모양만 같을 뿐 칠은 고사하고 조각의 마무리마저 볼품없었다. 혹시 디자인 특허를 내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겉보기에 거의 동일한 제품도 디자인을 몇 군데만 살짝 바꿔놓으면 다른 제품이 되는 게 디자인 특허의 문제예요. 심지어 디자인 특허를 내기 위해서는 일정한 금액을 지불해야 하는데, 돈을 내고 특허를 받아도 며칠만 지나면 그 돈은 아무런 의미 없이 날아가 버리는 꼴인 거죠. 이래저래 원작자는 버티기 힘든 상황이에요.”
박 대표는 이런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서 좋은 제품을 개발하는 업체의 물건이 정당한 가격에 팔리는 풍토가 정착돼야 한다고 강변했다. 요령이나 풍경을 파는 사람도, 물건을 사는 소비자들도 싼 것만 찾을 것이 아니라 좋은 물건에는 기꺼이 합당한 금액을 지불하고 사용해줘야 한다는 말이다.
박 대표는 최근 들어 풍경에 다는 붕어가 쉬이 녹슬어 망가지지 않도록 스테인리스로 제작하기 시작했다. 또 각 방위에 맞춰 조각을 달리한 풍경을 만들 생각이라고 했다. 사찰에서 동서남북에 모두 풍경을 다는 진짜 이유는 잡귀들이 범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에서다. 실제로 풍경을 달아두면 지붕 밑에 사는 쥐가 없어진다는 경험담도 적지 않게 들리고 있다.
주물에 부을 쇳물을 녹이며 박 대표는 “우리 시대에 장인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말에 완전히 동의하기는 힘들었다. 창밖에 매달린 그의 풍경이 몸을 흔들어 내는 소리에는 이미 그의 영혼이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