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 앉아 졸아도 화두는 놓지 않으리

조계사 선림원 동안거 철야 참선

2014-02-09     불광출판사

한국불교의 대표적인 수행법은 간화선이다. 각자가 자신에게 맞는 생각의 주제인 ‘화두話頭’를 가지고 끊임없이 명상하는 것이 간화선이다. 불교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이쯤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출가를 하지 않는 이상 간화선을 제대로 배우고 끊임없이 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집중수행 기간인 안거 기간에는 대부분 출가자들만이 선방에 자리를 잡았다. 과연 재가자가 간화선 수행을 할 수 있는 곳은 없는 것일까
 
| 도심 한복판에서 경험하는 용맹정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는 곳은 많다. 제법 이름이 알려진 몇몇 선원이나 사찰들이 재가자들을 대상으로 간화선 수행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귀를 솔깃하게 만든 곳은 조계사다. 조계사 안심당에서 매 안거기간마다 집중적으로 철야정진 수행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은 정확히 작년 여름부터 시작됐다. 하안거 때는 ‘여름 밤, 구미호를 쫓다!’라는 이름으로 조계사 대웅전에서 열리며 동안거 때는 ‘동치미冬治味 익어갈 때, 달에 앉아 졸다’라는 이름으로 조계사 안심당에서 열린다. 안거가 시작되는 결제부터 시작해 해제까지 총 12주에 걸쳐 매주 토요일 저녁 9시부터 새벽 3시 반까지 진행된다. 안거 철야정진은 조계사 선림원에서 주관하며 참가비도 없다. 그저 “제대로 선 수행을 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오라.”는 식이다.
현장을 찾은 날은 마침 조계사 자율선원의 선원장을 맡고 있는 백양사 운문암의 일수 스님이 함께 하는 날이었다. 조계사 신도사업국장 법공 스님도 일수 스님 곁에서 자리를 지켰다. 한 명, 두 명 모여들더니 어느덧 9시가 됐다. 총 40석의 좌복이 그 사이 모두 주인을 찾았다.
일수 스님은 철야정진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이전에 비해 편안해졌다고 했다. 올 때마다 사람들의 표정이 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스님이 처음 선방에 들어갈 당시의 경험담을 들려줬다.
“30년이 다 되어가는 이야기네요. 처음 ‘무無’자 화두를 받아서 앉기는 했는데 어떻게 화두를 다뤄야 할지 몰랐어요. 그냥 앉아 있기만 했죠. 시간이 지날수록 무릎이 아파오고 허리가 쑤셨습니다. 참 힘든 시간이었어요.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그런 시기가 없었다면 지금의 편안함을 알지 못했을 겁니다.”
스님의 법문을 듣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공감의 기색이 느껴졌다. 곳곳에서 스님의 법문을 받아 적는 사람들도 보였다. 아마도 스님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다 본인들이 겪고 있는 과정의 길잡이가 되고 있다는 무언의 공감대이리라. 스님의 법문이 이어졌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뭘 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공부도 안 될 것 같지만, 부지불식간에 공부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대단한 겁니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마세요. 그렇게 수행이 반복되면 내가 변합니다. 그리고 내가 수행한 만큼 내 주변도 편안해질 겁니다. 그걸 잊지 마세요. 수행으로 내가 바뀌면 내 가족이, 내가 사는 사회가, 이 나라가, 그리고 인류가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합니다.”
 


조계사 안심당은 철야 수행의 열기가 뜨겁다. 매번 안거철이 되면 재가자들도 이렇게 12주간 철야 정진에 들어간다.
 
| “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
스님들의 선방 안거가 처음부터 화두에 몰두해 가는 건 아니다. 본래 안거 생활은 처음 15일 동안 몸을 고르고 집중력을 키우는 기간이다. 그리고 다음 15일 동안 자꾸만 도망가는 화두를 잡는다. 그리고 그 다음 15일 동안 화두에 집중하다보면 조금씩 기운이 달린다는 사실을 수행자 스스로 깨닫게 된다. 이쯤 되면 이른바 ‘반결제’라 부르는 안거 기간의 절반쯤에 도달한다. 이날은 바로 조계사 선림원 철야정진의 반결제에 해당하는 날이었다.
일수 스님은 반결제 이후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했다. 정신력으로 버티면서 화두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스님은 지금부터 좀 더 화두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면서 집중하다보면 마지막에 알 수 없는 느낌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법문이 끝나고 질문들이 이어졌다. 본격적인 점검의 시간이다. 본디 선 수행의 점검은 스승과의 일대일 문답을 통해 이루어지지만 그럴 여유는 없다. 그래서 대중 문답으로 점검이 이루어진다.
“화두를 늘 들고 싶은데, 선방을 나서는 순간 잊어버립니다. 밥 먹을 때, 무언가 할 때 순간순간 화두가 도망 가버립니다.” “그건 당연한 현상입니다. 늘 화두를 들고 있을 수 있다면 곧 부처님이 되겠죠. 그럴 수 없기 때문에 화두가 필요한 것이고, 자꾸 생각을 화두로 집중하려 노력해야 하는 겁니다. 전반적으로는 동중선動中禪의 생활로 바꿔가야 합니다. 화두를 놓쳤다는 생각이 들면, 곧바로 소리를 내세요. ‘이 뭣꼬~’ 하고 말이죠. 그 소리를 되풀이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본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 겁니다.”
“번뇌·망상이 나오지 않게 하는 방법은 없나요?” “부처가 되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처가 아니기 때문에 자꾸만 번뇌·망상에 시달릴 수밖에 없죠. 하지만 방금 말씀드린 대로 번뇌·망상이 들 때 ‘이 뭣꼬’를 소리 내어 말해보세요. 수행은 노력입니다. 자꾸만 노력하다보면 공부는 저절로 익어갈 겁니다.”
약 한 시간에 걸친 스님의 법문과 문답이 끝나자 대중들은 일어나 포행을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자리를 틀기 위한 준비다. 안심당 내부를 두 줄로 돌면서 각자 자신의 속도로 걸어 다녔다. 바닥을 울리는 일정한 발걸음 소리 이외 어떤 소리도 없다. 발걸음 소리들이 조금씩 박동수를 늘려가는 심장의 울림과도 같았다.
10여 분간의 포행은 법공 스님의 죽비 소리와 함께 끝났다. 모두 조용히 자기 자리를 찾아 앉아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양쪽으로 두 줄씩 창밖을 향해 몸을 돌려 앉은 채 허리를 곧추 세우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세 번의 죽비 소리가 울렸다. 마지막 죽비 소리에 맞춰 대중은 합장 반배를 올린다. 그 동작을 마지막으로 안심당 전체가 고요함에 젖어들었다.
 



자율선원의 선원장을 맡고 있는 일수 스님의 경책 죽비는 조금의 망상도 허용치 않았다.
 
| 잠시의 망상도 허용치 않는 경책 소리
선원장 일수 스님은 긴 경책 죽비를 어깨에 걸치고 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스님은 당신의 발걸음이 수행자들의 화두를 흔들까 조심조심 발을 내디뎠다. 등을 마주 댄 사람들의 모습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문틈 사이로 한기가 새어 들었다. 하지만, 방안의 무거운 공기는 이내 한기마저 느끼지 못하게 만들었다. 흡사 각자의 머리 위로 화두가 무겁게 떠오르는 것 같은 착각마저 느껴졌다.
“짜악~”
일수 스님이 든 경책 죽비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한 수행자의 어깨를 내려쳤다. 무겁기만 했던 분위기가 일순 깨져버렸다. 조용히 화두를 참구하던 몇몇 수행자들의 몸이 경책 소리와 함께 흔들렸다. 아마도 각성의 몸짓이리라. 밤이 깊어갈수록 조금씩 나른함의 함정에 잠겨가던 몸들이 다시 일어섰다. 그 이후로도 스님의 경책 소리는 가차 없었다. 스님은 잠시의 망상도 허용치 않을 생각인 듯하다. 조금만 흔들리는 기색이 느껴지면 여지없이 경책의 칼날을 날렸다. 자리를 틀고 앉은 이후 견디기 힘들 만큼 무겁던 분위기는 그 칼날에 의해 다듬어져 갔다. 그리고 마침내 날선 기운이 방안을 가득 메웠다.
지금 이 시간 스님들이 안거에 들어가 있을 선방의 기운이 이럴까. 아니면 한 번 들어가면 나오지 못할 무문관無門關 안의 풍경이 이런 모습일까. 비록 재가자들이 모인 곳이지만 선방이 따로 없고 무문관이 멀리 있지 않았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서 한 걸음을 더 내딛기 위한 비장함은 이곳에 모인 사람들 면면에서 충분히 엿볼 수 있었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새벽 3시 반이라는 시간은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50분 수행, 10분 포행이 반복되면서 새벽 3시 반은 의외로 빨리 우리 곁에 다가와 있었다.
안심당 문간에서 마주친 참가자들의 눈빛은 늦은 밤에도 불구하고 초롱초롱 빛났다. 한 치의 힘겨움도 엿볼 수 없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수행자들이 있었다. 아직 앳된 모습인 데도 수행하는 모습이 아주 진지하다.
“엄마랑 자매들이 매번 안거 때마다 선림원 철야정진에 참여하고 있어요. 처음엔 몰랐는데 간화선 수행을 하면서부터 집중력이 높아지고 있다는 걸 절감하고 있죠. 성적도 올라갔어요. 수행을 안 할 때는 확실히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것도 느꼈지요. 그래서 수행하는 마음을 놓지 않으려고 집에서도 매일 108배와 잠깐의 명상을 끊임없이 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매번 안거 때마다 빼먹지 않고 철야정진에 참여할 생각이에요.(김민선, 18, 수경화, 서울 송파구 오금동)”
김민선 학생은 이번이 벌써 네 번째 철야정진이란다. 이 수행 프로그램의 시작부터 같이 한 셈이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반면 오늘 처음으로 수행의 재미를 느낀 초보 수행자도 있었다.
“같이 절에 다니는 도반을 따라서 오늘 처음 나왔어요. 사실 안심당에서 하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에는 많이 참여해봤는데, 안거기간에 맞춰 진행되는 철야정진은 처음이에요. 시작할 때는 조금 막막했는데, 막상 해보고 나니까 뭔가 뿌듯한 느낌이 있네요.(허진남, 44, 법연행, 서울 구로구 개봉동)”
안심당을 빠져나와 차가운 밤공기를 들이마시자 머릿속이 맑아졌다. 그 순간 한 가지 문구가 떠올랐다. ‘부모미생전 본래면목(父母未生前 本來面目, 이 몸 받기 전, 본래 나는 무엇인가?)’ 내 마음에 떠오른 화두다. 저 녀석을 잡아봐야겠다. 저 멀리서 어둠을 뚫고 샛별이 빛나고 있었다.
 
조계사 선림원 동안거 철야 참선 안내

기간 | 12월 1일~2월 16일 매주 토요일 저녁 9시~새벽 4시
장소 | 조계사 안심당 3층
참가비 | 무료
연락처 | 02)732-2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