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심신은 호흡으로 완성된다

선무도 총본산 골굴사 주지 적운 스님

2014-02-09     불광출판사
 

불교는 늘 정적인 이미지가 강조돼왔다. 고요한 산사, 마음을 깨워주는 풍경소리, 그리고 본래 나를 찾아 참구하는 간화선 수행까지. 하지만 한국 불교에도 동적인 수행이 있다.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선무도가 바로 그것이다. 선무도는 한국불교만의 무예이자 수행법이기도 하다. 선무도 보급에 앞장 서왔던 경주 골굴사 주지 적운 스님에게 건강한 몸과 건강한 마음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물었다.
 

| 날숨이 길어져야 하는 이유
“아무리 좋은 말을 듣고 좋은 음식을 먹어도 소용없어요. 몸이 건강해야 해요. 그래야만 마음도 건강해질 수 있어요. 그건 심리와 생리작용이 둘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모두가 ‘몸이 건강하면 마음도 건강하다’고 알고는 있지만, 실상 그 둘의 관계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죠.”
적운 스님에게 ‘몸과 마음의 관계에 대해 듣고 싶다’고 첫 마디를 건네자 이내 대답이 물 흐르듯 쏟아져 나왔다. 한 평생을 몸과 마음의 정진에 바쳐왔던 인물다웠다.
스님의 설명에 의하면 사람의 들숨은 교감신경, 날숨은 부교감신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참선이나 요가, 명상과 같은 수행을 해온 사람은 일반인들과 들숨과 날숨의 양상이 다르다. 수행자들은 들숨보다 날숨이 길다. 반면 일반인들은 들숨이 길고 날숨이 짧은 편이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호흡이 짧다. 몸과 마음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호흡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한다.
호흡이 짧다는 것은 교감신경이 흥분돼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씩씩 대면서 숨이 짧아진다. ‘숨이 턱에 차있다’는 표현도 교감신경이 흥분돼 있음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말이다. 그런데 교감신경이 자극되면 아드레날린 분비가 많아진다. 이는 여러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반대로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면 신체 기능이 이완된다. 회복 상태에 놓이는 것이다. 그래서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면 항산화 작용을 한다고 말한다. 결국 요가나 참선, 명상 같은 수행법들은 들숨과 날숨의 균형을 가져와서 우리 몸을 이완시키면서 집중력을 높이는 것이다.
“불교에서 ‘신・구・의身口意 삼업을 닦는다’고 이야기하잖아요. 잘 보세요. 여기서 가운데 있는 ‘구口’는 몸과 마음을 연결하는 다리예요. 그런데 이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고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러니 운동을 하면서 호흡이 가빠지면 마음이 불안정한 흥분 상태가 되죠. 수행을 해서 숨이 깊어지면 과격한 운동을 해도 호흡이 안정돼요. 그것이 바로 움직이면서 하는 선, 행선行禪이죠. 정중동이 바로 이거예요.”
세상에 수행법은 참 많다. 하지만, 그 수행법들의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은 신・구・의를 닦는 것이다. 불교의 수행에서도 마찬가지다. 삼매에 들어 명상하는 사마타[止] 역시 신체적 조화가 시작이다. 호흡이 신체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삼매에 들어갈 수 없다. 위빠사나[觀] 역시 호흡을 가장 강조하고 있다. 결국 정혜쌍수인 지관수행은 호흡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그래서 적운 스님은 지관수행에 있어서도 요가나 선무도 같은 신체적 수행이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원래 선무도는 지관수행을 중심으로 발달된 것이다.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는 무예의 요소는 그 중에서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몸은 빠르게 움직이지만 마음은 늘 고요하다. 다시 말하면 정중동의 조화를 이루기 위한 동적인 표현에 불과하다.
 
| 호흡이 안정되면 운동도 수행이 된다
적운 스님은 요즘 승마를 즐긴다. 승마도 일종의 행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말 위에 올라앉은 내가 마음이라면 말은 몸뚱이와 같다. 그래서 고삐를 움직이는 대로 말이 따라오는 것이다. 만약 말과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일치하지 않으면 사고가 나기 마련이다. 스님은 승마를 “화두를 드는 것과 비슷하더라.”고 말한다. 활을 쏠 때나 칼을 쓸 때, 말을 탈 때, 좌선을 할 때의 마음이 다 똑같더라는 것이다.
“부처님 이후로 불교에서도 신체적 단련을 위한 활동이 많이 있었어요. 다만 그 당시에는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에 대한 기록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으니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죠. 다만 선무도의 기초가 되는 요가나 기공은 예전부터 내려오던 것들이에요. 원래 선무도는 지관수행을 중심으로 발달된 것이죠.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는 무예의 요소는 그 중에서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아요. 몸은 빠르게 움직이지만 마음은 늘 고요해요. 다시 말하면 정중동의 조화를 이루기 위한 동적인 표현에 불과하다는 것이죠.”
최근 유행하는 힐링 열풍을 타고 유행하는 명상 혹은 명상 치유에 대해서도 스님은 할 말이 많았다. 어떤 사람을 대상으로 하느냐, 어떻게 가르치느냐에 따라 그 효과가 배가될 수도 있지만, 반감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우울증이나 조울증을 겪는 사람들에게 명상만을 시키면 망상이 일어나 힘들어 하는 경향이 많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적절히 몸을 쓰게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이 스님의 설명이다. 실제로 우울증 환자들이 골굴사에 머물면서 선무도를 배운 후 약을 끊고 가는 경우가 왕왕 있다. 스님은 이런 결과들에 대해 적절한 신체 활동과 명상을 통해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 조화를 이루게끔 도와줬기 때문이라고 했다.
“좌선과 행선은 반드시 같이 가도록 할 필요가 있어요. 운동만 한다고 ‘힐링’이 되는 건 아니죠. 식이요법이나 단식 등을 해서 내장을 정화시키는 과정도 필요하고 명상을 통해 올바른 호흡을 배우면서 내면을 바로 보는 연습도 필요해요. 우리나라는 이런 정중동의 신체 수행이 전통처럼 자리 잡고 있던 나라예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심신이원론에 기반한 서양문화에 밀려 그런 수행법이 찬밥 취급을 당하고 있죠. 미국의 메릴랜드 암센터 같은 곳에서 왜 요가를 가르치기 시작했는지 그 이유를 잘 생각해봐야 해요. 우리의 것을 바로 보고 잘 살려나가면 우리는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거예요.”
몸은 마음을 담는 그릇이다. 그래서 몸의 균형이 깨지면 병이 생길 수밖에 없다. 스님은 좌선을 강조하는 한국불교의 수행도 그런 이유에서 좀 더 활발히 행선을 병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반인들의 생활도 마찬가지다. 일상에 찌들어 자기 몸 하나 돌볼 시간조차 없는 사람들, 전쟁 같은 날의 반복 속에 마음이 망가져 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건 어쩌면 정적인 ‘힐링’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한 몸을 만드는 과정 역시 분명한 치유의 과정일 터. 물론 호흡을 통해 몸과 마음의 균형을 잡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또 사랑하는 가족들과 이 과정을 함께한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삶의 행복을 찾는 진정한 힐링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