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지지 않는 죽비를 만나다

죽비 장인 류시상

2014-02-09     불광출판사


섭현귀성 화상에게 어느 날 수산성념 화상이 물었다. “이것을 죽비라고 부르면 저촉되고 죽비라고 부르지 아니하면 위배된다. 한 번 말해보라. 무엇이라고 불러야 되겠는가?” 귀성 화상이 이 말에 크게 깨닫고 드디어 손으로 죽비를 꺾어서 계단 밑에다 던져버리고 도리어 물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 ‘섭현귀성葉縣歸省’ 편
 
| 하반신 마비를 이겨내고 장인의 길을 걷다
이 이야기는 죽비를 소재로 한 가장 대표적인 선문답이다. 이 일화에서 두 선사가 나누는 대화는 이런 내용이다. 물건의 이름에 집착하면 본래의 소재인 대나무의 본질에서 멀어진다. 그렇다고 그 이름을 부르지 않으면 물건을 지칭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이다. 이에 섭현귀성 선사는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법을 깨닫고 죽비를 꺾어 던져버린 것이다. 이로써 죽비는 더 이상 죽비가 아닌 한 토막 대나무에 지나지 않게 됐다. 이 일화에서 죽비는 이른바 ‘수산죽首山竹’이라는 대표적인 화두가 된다. 대중생활을 이끌고 잠든 자를 깨우는 죽비가 진정 깨달음을 주는 도구가 된 사례다.
이처럼 죽비는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각별하다. 불교용품들 중에서도 대표격이라고 할 만하다. 그래서 죽비 만드는 사람을 만나보고자 했다. 한참을 수소문 하던 중에 지인으로부터 ‘터지지 않는 죽비’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본디 죽비란 내려칠 때 나는 소리로 그 역할을 하는 물건이다. 늘 두드려 맞아야만 제 기능을 하니 쓰다보면 언젠가는 갈라져 터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터지지 않는 죽비가 존재한다니. 믿기 힘들었다. 그래서 경북 상주로 내려가 그런 죽비를 만든다는 류시상(54) 장인을 만나 물었다. ‘터지지 않는 죽비’가 과연 가능할까?
“처음 죽비를 만들 때부터 그게 화두였어요. 죽비라는 게 보통 2~3년 쓰다보면 대부분 터져버려요. 길어도 3~4년을 넘기기 쉽지 않죠. 대나무라는 물건이 워낙 잘 갈라지는 녀석이라 만드는 것도 녹록치 않아요. 조금만 방심하면 금이 가거나 여지없이 터져버리니까. 결국 7년을 고생하다 가까스로 방법을 찾았어요.”
그는 본래 손재주가 좋은 편이었다. 그래서 기계설비 회사, 가구 회사 등에서 품질관리를 도맡아 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에게 생각지도 못한 시련이 찾아왔다. 회사 회식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 것. 그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돼 버렸다. 시간이 갈수록 그는 절망의 수렁에 잠기어 갔다. 먹고 살 길이라도 찾아야 할 텐데 당최 방법이 없었다. 아무리 손재주가 좋아도 이 땅에서 하반신이 마비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없었다. 당시 그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단 하나였다. 죽음.
 

| 대나무 건조법을 익히고 단점을 보완
살아온 기록과 존재의 흔적은 모두 불태워버렸다. 그리고는 굳게 마음을 먹고 죽기 위해 약을 먹길 수차례. 그런데 죽는 것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죽기 위해 찾아간 곳이 경주 골굴사다. 그곳에서 죽기 전 약사여래불 100일 정진을 했다. 그리곤 기적을 경험했다. 걷게 된 것이다. 류시상 장인은 지금도 걸음걸이가 많이 불편하지만, 혼자서 걸어 다니는 데 큰 문제는 없다.
그가 죽비를 만들기 시작한 것도 골굴사에서다. 삶을 포기하려는 순간에 마음을 돌리고 나니 살 길이 열린 셈이다.
“하루는 스님들이 짚불을 피우고 분죽(대나무의 일종)을 넣었다 뺐다 하면서 말리고 있더라고요. 물어보니까 죽비를 만들려고 대나무를 말리는 중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대나무는 그런 식으로 하면 절대 안 말라요. 겉만 마르고 속의 습기는 그대로죠. 그래서 내가 만들어 보겠다고 했더니 주지스님이 그러시더군요. 대한민국에 죽비 만든다는 사람들은 다 실패했다. 2~3년 쓰면 다 터진다. 한 번 해봐라. 그래서 시작한 거죠.”
시작은 했는데 정말 쉽지 않았다. 특히 대나무를 말려야 하는데 방법을 모르다보니 말리는 과정에서 터져나가는 게 허다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조언을 구했다. 실패만 반복하기를 몇 년, 결국 방법을 찾았다. 죽비로 사용할 대나무는 반드시 겨울에 채취해서 말려야 하며 말릴 때도 20일간 불을 지펴서 말린다. 이 20일간의 과정이 그만의 노하우다. 노하우를 익히고도 처음에는 재료 100개 중 40개 정도만이 죽비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100개를 거의 다 죽비로 만든다. 성공률이 98%를 넘는다.
어렵게 대나무를 죽비로 만들어내도 시간이 지나면서 터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는 이 문제도 해결했다. 죽비를 때릴 때 가장 많은 충격을 받는 부위에 톱밥을 채워 넣은 것. 대나무를 자르면서 나오는 톱밥을 버리지 않고 재활용해 죽비의 소리를 살리고 몸체의 강도도 높였다. 이렇게 만들어낸 죽비들은 현재까지 단 하나도 터진 것이 없다.
그가 만든 죽비가 다른 것들과 구분되는 가장 큰 차이는 ‘교정세목’이라 이름 붙인 대나무 못이다. 대나무는 본디 서로 달라붙으려는 성질이 강하다. 그래서 죽비의 가운데를 갈라 틈을 벌려놔도 자꾸만 안쪽으로 굽어진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그만의 해결책이 바로 교정세목이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난제가 있다. 죽비에 사용할 재료다. 그는 죽비를 만들 때 분죽만 사용한다. 다른 종류의 대나무는 죽비로 만들었을 때 소리가 그리 좋지 못하다. 실제로 다른 사람이 만든 죽비와 비교해서 쳐보니 그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어렵게 대나무를 죽비로 만들어내도 시간이 지나면서 터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류 씨는 이 문제도 해결했다. 죽비를 때릴 때 가장 많은 충격을 받는 부위에 톱밥을 채워 넣은 것. 대나무를 자르면서 나오는 톱밥을 버리지 않고 재활용해 죽비의 소리를 살리고 몸체의 강도도 높였다. 이렇게 만들어낸 죽비들은 현재까지 단 하나도 터진 것이 없다.
 
| 마디 수가 많고 속이 얇은 게 소리도 좋다
“분죽은 만나기도 힘들거니와 분죽을 찾았다 해도 죽비로 쓰기 좋은 재목은 가뭄에 콩 나듯 해요. 그래서 아예 산청의 지인에게 부탁해 매년 그곳에서 재료를 공수해오죠. 지인의 대나무밭도 대나무는 많지만, 한 겨울 내내 재료를 구해도 쓸 수 있는 건 고작 200여 개 남짓이에요. 그나마 올 겨울엔 180여 개밖에 구하지 못했어요. 걱정이네요.”
그 수많은 대나무 밭에서 죽비의 재료 구하기가 그처럼 힘든 건 대나무의 속성 탓이다. 원래 대나무는 휘어지면서 자란다. 바람을 고스란히 맞으며 자란 탓이다. 그래서 그는 “대나무가 올곧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라고 말한다.
좋은 죽비는 일단 예뻐야 한다. 끝이 납작하게 잘 눌려진 죽비는 보기에도 예쁘다. 대나무가 얇으면 얇을수록 맑은 소리가 나는데, 그런 것은 터지기 쉬운 단점이 있다. 그는 그 단점을 보완해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디의 수다. 마디가 4절 정도 되면 소리도 웅장한 편이고 보기에도 좋아 선방에서 쓰기에 적당하다. 7~8절되는 죽비는 재료를 구하기가 어렵다. 보통 죽비의 가격이 5~6만 원 선인데 4절 죽비 중 좋은 것은 40만 원선에서도 가격이 책정된다. 귀한 7~8절 죽비는 70~80만 원까지 가격이 뛴다. 그렇게 비싸도 스님들은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 그만큼 보기 좋고 소리도 좋다.
그의 죽비는 더 이상 고칠 것이 없을 정도로 완벽하다는 평을 듣는다. 굳이 단점을 찾자면 처음부터 끝까지 손으로만 만들어내고 있음에도 공장에서 만든 것 마냥 지나치게 깔끔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자연스러운 멋이 덜 하다는 평도 있다. 앞으로 만들어보고 싶은 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죽비다. 마디가 많고 굽어 있어도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생겨먹은 대나무를 구해 죽비로 만드는 것, 그것이 그의 남은 꿈이다. 정말 그런 대나무가 있을지, 그 꿈을 이룰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가 그런 죽비를 만들 실력을 갖췄다는 점이다. 남은 여생을 모조리 죽비에 걸었으니 부디 언젠가는 이 시대의 문화재가 될 만한 죽비를 탄생시키길 바랄 뿐이다.
 
죽비 문의

054)535-55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