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갈 순 없잖아

안양 한마음선원 하안거

2014-02-09     불광출판사
그냥 갈 순 없잖아

안양 한마음선원 하안거




여름, 안거安居의 계절이다. 붓다와 제자들이 폭풍우와 미물 살생을 피해 안거 했다면, 오늘날 출가 수행자들은 본분사를 지키기 위해 안거에 몰입한다. 올 여름 조계종에서는 100여 곳 선방에서 2,200여 수좌가 결제했다. 예전에는 안거 기간 중 출가자를 봉양하는 것에 재가자의 역할이 제한되었는데, 이제는 많은 불자들이 수행자로서 안거에 임하고 있다. 재가자도 부처님의 제자임을 자각하자는 취지로 ‘재가안거 수행결사’를 운영하면서 안거증을 발급하는사찰이 있고, 몇몇 사찰에서는 일일 점검표를 만들어 가정에서 스스로 수행할 수 있도록 지도한다. ‘생활 속의 참선수행도량’으로 자리잡은 안양 한마음선원에서는 해마다 재가자를 위한 안거를 마련한다. 90일 동안 하루 1시간 30분씩 수행하는 출퇴근 방식이다. 한 계절이 또다시 지나간다. 용광로처럼 뜨거운 수행의 열기로 이 계절을 나는 이들을 찾아갔다.

| 재가불자를 위한 ‘무문관’
영원한 오늘에 사는 것이 생명의 실상이니 / 삼라만상 모든 것 한마음의 나툼 아님이 없네 / 인간으로 태어남도 한마음의 나툼이며 방편이니 / 이 도리 깨달아 윤회의 고해 벗어나 자유인이 되세
과거다 미래다 할 것 없이 오늘이 바로 영원 / 이 세상 모든 것 모든 것이 부처님 나툼 아님이 없네 / 하늘과 땅 어디에도 부처님 아니 계신 곳 없으니 / 일체가 한마음 펼침이며 자비 광명일세
참선시간을 찬불가讚佛歌로 시작하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불보살님 전에 공양 올리는 자리에서나 들어보던 노래 아닌가. 한마음선원의 찬불가에는 선법가禪法歌라는 이름이 따로 있었다. 깨달음의 원리를 노래로 배우고 자기 안의 부처님께 공양하여 수행의 뜻을 오롯이 세우는 의미이리라 짐작이 되었다. 선법가는 부처님이 ‘예경’과 ‘찬탄’이라는 바깥의 대상이 아닌 본래 자성의 자리에 있음을 천명하는 법음法音이었다.
이어진 것은 5분 체조였다. 지도법사 스님과 함께 “아이구, 시원하다!”를 외치며 굳어진 몸 여기저기를 정성들여 풀어주고 나니 표정들이 홀가분하다. 이제 앉아서 마음 하나 붙들고 들어갈 차례. 동참자 대표가 발원문을 낭독하는 사이, 다른 이가 조명을 끄고 하나하나 창문을 닫는다. 마지막으로 출입문을 닫고 잠금쇠를 돌린다. 잠금쇠 돌아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묵직한 빗장을 채우듯 마음속에서 ‘덜컹’ 하는 울림이 들렸다. 무문관無門館이 떠올랐다. 안거 수행자들이 참선에 들어가자 넓은 법당은 텅 빈 고요로 채워졌다. 그곳이 그대로 출세간出世間이었다.





“‘주인공! 그냥 갈 순 없잖아.
당신이 있다는 걸 증명해!’
아주 간절한 마음으로
모든 걸 놓고
지켜보면서 들어갑니다.”

| 보리수 열매의 시고 떫은 맛
창호문으로 드는 엷은 햇살에 비친 90여 명의 좌선 모습은 숙연했다. 개중에는 척추를 받치기 위한 ‘뒷방석’을 덧깔거나 좌복 여러 개를 겹쳐 의자를 만들어 앉은 사람도 있었다. 자세히 보니 수인도 저마다 조금씩 달랐다. 그것이 ‘흐트러짐’이 아닌, 어떻게든 해내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전해졌다.
한마음선원 안거 수행은 30분 참선, 10분 방선, 다시 30분 참선으로 진행된다. 남녀노소 누구나 무리 없이 함께할 수 있는 방식이다. 일주일에 한 번 조별 토론시간이 있어, 수행과정을 서로 이야기 나눈다. 함께하는 수행의 에너지가 더욱 커지고 서로를 북돋우는 시간이다. 올해 하안거의 오전반은 혜선 스님이, 오후반은 혜종 스님이 각각 맡아 지도한다. 지도법사 혜선 스님은 한마음 선원을 세운 대행 스님의 법훈록을 인용해 참선 수행을 이끌었다.
“한마음이란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으며, 시작도 끝도 없는 시공을 초월한 근본마음을 말한다. 또한 한마음이란 만물만생의 마음이 삼천대천세계와 서로 연결되어 조화롭게 같이 돌아가는 모든 작용을 뜻하기도 한다. ‘주인공! 그냥 갈 순 없잖아. 당신이 있다는 걸 증명해!’ 아주 간절한 마음으로 모든 걸 놓고 지켜보면서 들어갑니다.”
‘그냥 갈 순 없잖아.’라는 대목이 채찍처럼 날아왔다. ‘주인공’. ‘한마음’이라고도 하고, ‘참나’라고도 한다. ‘관조자’이자 ‘제 3의 눈’이기도 하다. 내가 일으키는 마음,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현상이 ‘나 아님’을 지켜볼 때 알아차리게 되는 바로 그 자리이다. 그 자리를 주인공이라 이름 짓고 ‘그냥 갈 수는 없다’고 그 이름을 향해 외치는 것이다. 수행하는 삶이란 ‘뿌린 대로 거둔 후 철수하는 것’이라 한 대행 스님의 말씀이 오버랩됐다. 마음 밭에 뿌렸던 씨앗이 갖가지로 열매 맺은 그 쓰고 떫은 맛을 받아들이면서 자비행을 실천하는 삶으로 철저히 거두어 떠나는 것, 그냥 갈 수 없다는 말은 그런 뜻이었을까.
인터뷰를 마치며 찻상에 차려진 보리수 열매 두 알을 조심스레 입에 넣어 보았다. 익숙하지 않은, 시고 쓰고 떫은 맛이 강하게 느껴졌다. 달콤한 것들에 길들여진 미각은 낯선 맛을 밀어내려 했다. 오래 입 안에서 굴리며 음미하니 상큼하고 감미로운 맛이었다. 수행의 참맛이 이러하리라.

안거.참가자.미니인터뷰.

1
어떻게 오게 되었나?
2
어떤 마음으로 수행하고 있나?
3
무엇을 얻었나?

모든 것이 나를 위해
마음 내어줌을 깨닫습니다
임호신(55, 서울 목동)

1 그동안 직장생활을 하느라 안거 수행은 20년 만에 처음이에요. 전에는 금강경 독송과 108배를 했었죠. 갑작스럽게 갑상선암 판정을 받고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서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어요. 그 때 깨달았죠. ‘아, 자신을 돌아보라는 기회구나.’ 하구요.
2 안거 수행 중에 육신이 없어지고 하나의 텅 빈 ‘공空 자리’로 들어가는 체험을 했어요. 너무나 따뜻한 느낌이 들었죠. ‘모든 것이 나를 위해 마음을 내 주는구나. 한마음이구나.’라는 게 명징하게 다가왔어요.
3 경계가 크게 오면 큰 공부가 된다는 걸 배웠죠. 암이라는 큰 경계에 부딪혀 이 수행이 아니었으면 건강을 되찾지 못했을 거예요. 게으르지 않게 도반님들과 토론하며 잘 수행해 나가려고 합니다.

통증의 두려움 내려놓으니
기쁜 마음이 생깁니다
최미호(59, 서울 중화동)


1 10년 전에 지장기도를 하면서 지장보살이 되길 서원했는데, 어느 순간 ‘내가 어떻게 감히 그런 꿈을 꾸나….’ 하는 생각이 올라오더라구요. 그 때 『한마음요전』을 보고 잘못된 생각이라는 걸 알게 됐죠. 본격적으로 선원에 나오게 된 지는 1년 정도 됐어요. 허리 통증 때문에 계속 망설이다 이번에 맘먹고 안거수행을 하게 됐구요.
2 눕지도, 서지도 못할 만큼 허리가 계속 아팠던 것을, 이제는 아플 때마다 주인공에게 맡기면서 공부 재료로 삼고 있어요. ‘해야겠다.’라는 생각도, 통증에 대한 두려움도 내려놓으려고 해요. 안거 결제할 때만 해도 ‘1시간 동안 앉아 있는 게 과연 가능할까?’ 하면서 시작했는데, 지금은 아침에 버스를 타고 올 때면 다리가 끊어질 듯한 아픔 속에서도 ‘오늘은 무슨 가르침을 주실까?’하는 기쁜 마음이 생겨요.
3 참선하다 보면 신기하게도 통증이 온데간데없고, 딸과의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벽이 사라져 행복합니다.

곁에 있는 사람의 고통을
함께 느끼게 됐어요
이엽(55, 경기 안양)

1 한마음선원 안거가 생긴 지 12년 됐어요. 저는 10년째 동참하고 있습니다. 다른 곳에서도 좌선을 오래 해보았지만 만족을 못했었습니다. 마치 빗속에 서서 젖지 않는 듯하고, 물 없이 빨래하는 것 같다고나 할까요. 수행을 통해서 번뇌 망상과 탐욕, 분노를 가라앉힌다는 느낌이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마음선원 안거에 오게 됐어요.
2 수행을 하면 일상의 마음가짐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상에서 짜증내는 나는 얼마나 달라졌나 비교해 보면 분명히 변했습니다. 옆에 고통 받고 가슴 아파하는 사람이 있으면 공감이 가서 같이 눈물을 흘리고, 그것이 전달되어 상대방의 마음도 변하더군요.
3 첫 안거에서 번뇌가 쉬어지는 걸 느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지요.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사람에게는 안거를 경험해 보라고 권하기도 합니다. 매일 오지 못하더라도 꼭 해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부처님, 다시 태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한희(39, 경기 수원)

1 2000년에 태국에서 처음 인연을 맺었어요. 당시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데 갑자기 아이가 생긴 것을 알고 힘들어 하던 때였죠. 대행 스님의 『삶은 고苦가 아니다』라는 책을 만나게 됐어요. 붙잡을 것이 그것뿐이었어요. 그 때는 ‘네 안에 불씨를 갖고 있는데!’라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몰랐죠. 한국에 들어오는 과정에서 좋지 않은 일이 있었는데 기도로 극복했어요.
2 이번 안거가 두 번째인데 첫 안거 때에는 시간 내기가 쉽지 않아 ‘마음만이라도 오자’ 했었고, 이번에는 ‘마음 가는 곳에 몸도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빠짐없이 나오고 있어요. 오늘이 안거 19일째인데 뜻하지 않은 일들이 생겨서 밤을 새운 날에도 아침이면 선원으로 왔어요. 수행을 하고 나면 오히려 힘이 납니다.
3 매일 수행을 시작할 때마다 부처님과 큰스님께 ‘다시 태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꼭 해요. 한 가지 발원을 하면 아홉 가지, 열 가지가 오는 경험을 하고 있구요. 3년 전 500만원 일수를 얻어 시작한 옷가게도 지금은 자리를 잡았어요. 아이도 밝게 자라주고…. 이 모두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자성불이 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의 멘토인 한마음선원의 법우님들과 함께 자성의 촛불을 밝혀 가리라 다짐합니다.

다음 생에 혼자 공부해서
깨우칠 수 있겠나 싶었죠
정유석(51, 서울 삼성동)

1 어릴 때부터 근원적인 질문을 갖고 마음의 스승을 찾고 있었습니다. 한마음선원은 10년 전 『한마음요전』을 읽고 접하게 되었지요. 직업상 좀 자유롭다보니 생활에 일정한 틀이 필요해서, 안거를 그런 틀로 삼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파일 무렵 도반들과 연등축제를준비하면서 결심하게 되었어요.
2 안거에는 부처님 에너지가 가득 차 있잖아요. 이렇게 도반과 스승의 에너지가 집중될 때 안하면, 다음 생에 혼자 공부해서 깨우칠 수 있겠나 하는 마음으로 임하게 되더군요.
3 세상을 움직이는 도리는 머리로 아무리 고민해도 모르겠더라구요. 전에는 부부 문제, 자식 문제, 직장 문제가 해결 안 될 때 ‘다들 부처님 자식이니 부처님 알아서 하세요.’ 했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면 책임을 회피했던 것 같아요. 이젠 가까운 사람과의 문제를 내 탓으로 돌리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어요. 이것이 제 삶의 큰 변화입니다.

한마음선원 안거
안거 기간 중간에도 동참 신청이 가능합니다.
하안거
5월 24일(금) ~ 8월 21일(수)
동안거
11월 17일(일) ~ 2월 14일(금)
시간
오전 9시 30분 ~ 10시 50분
오후 7시 30분 ~ 9시
장소
4층 법당
문의
031)470-3100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 101-62번지
www.hanmau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