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핵은 우리에게 잊혀진 질병이 아니다

결핵에 대한 오해와 치료

2014-02-09     불광출판사

결핵은 한때 우리 사회에서 거의 사라진 병, 혹은 못 사는 나라에나 있는 병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 우리나라에 결핵이 다시 유행하는 것처럼 많은 기사가 나오고 있다. “어린이집・학교에서 결핵 집단감염 급증…年 600건 발생”(조선일보, 2013. 2. 1.) “용인 어린이집 원생 등 20여 명 결핵 집단 발병”(노컷뉴스, 1. 8.) “서울 학교 3곳서 집단 결핵 발병 잇따라…비상”(BBS, 2012, 11. 27.) 등이 그런 예다. 결론을 말하자면 결핵은 언제나 우리 사회에 존재해왔는데 우리가 그런 사실에 무심했을 뿐이다.
 
| 결핵 퇴치가 어려운 이유
지금도 한국은 OECD 34개 회원국 중 최악의 결핵 국가다. 지난해 세계보건기구(WHO) 보고서에 따르면 그렇다. 2011년 기준으로 신규 환자, 전체 환자 수, 결핵 사망자 수, 여러 약제에 내성을 지닌 다제 내성 환자 수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인구 10만 명당 신규 환자(발생) 100명, 총 환자(유병률) 149명, 사망자 4.9명이었다. OECD 평균은 10만 명당 신규환자 12.7명, 총 환자 16.5명, 사망자 0.9명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다제 내성 환자는 10만 명당 1,800명으로 2위 터키(560명)의 3배에 가깝다. 하지만 WHO의 1990년 통계와 비교하면 21년 동안 우리나라의 결핵 발생률, 유병률, 사망률은 각각 40.1%, 33.2%, 40.2%로 낮아졌다. 특히 1950~2000년 국가결핵관리사업 덕분에 환자 수가 1965년 124만 명에서 2000년 25만 명으로 크게 줄었다. 환자 수가 전체 인구의 1%대로 떨어지자 2000년부터 결핵 예산을 대폭 줄였다. 그 후 환자가 조금씩 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추세다. 정부는 ‘결핵퇴치 뉴 2020 플랜’을 통해 결핵 발생률을 2015년까지 10만 명당 40명, 2020년까지 20명 수준으로 낮출 계획이다.
결핵은 기원 전 7000년 석기 시대의 화석에서 흔적이 발견됐을 정도로 역사가 깊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생명을 앗아간 감염 질환이기도 하다. 1882년 독일의 세균학자 로버트 코흐가 결핵의 병원체인 결핵균(mycobacterium tuberculosis)을 발견했다. 그가 이를 학회에 발표한 3월 24일이 바로 ‘세계 결핵의 날’이다.
결핵의 퇴치가 어려운 대표적 이유는 우선 세계 인구 3분의 1이 보균자일 정도로 균이 널리 퍼져있기 때문이다. 한국인도 3분의 1이 이 같은 잠복결핵으로 추정된다. 잠복결핵이란 균을 보유하고 있지만 발병하지 않았으며 남에게 옮기지도 않는 상태란 뜻이다. 이중 10%는 평생 어느 땐가 발병하며 나머지 90%는 평생 건강하게 지낸다. 발병하는 사람 중 50%는 감염된 지 1~2년 안에, 나머지 50%는 그 후 언젠가 면역력이 약해졌을 때 발병하게 된다.
결핵균의 증식속도는 일반 세균보다 훨씬 느리지만 인체 면역계의 대식세포에 잡아먹힌 다음에도 그 속에서 번식하는 능력을 갖췄다. 게다가 전염력도 강하다. 결핵은 결핵균(박테리아)이 일으키는 병으로 공기를 통해 전염된다. 폐결핵 환자가 기침, 재채기를 하거나 침을 뱉으면 균이 퍼져 나간다. 이 균은 전염력이 강해서 10마리만 흡입해도 보균자가 될 정도다. 약한 소독약에 견딜 수 있으며 건조 상태로 몇 주씩 생존할 수 있다.
보균자에게 잠복해 있던 결핵이 활동성으로 변할 때는 기침과 열이 나고 밤에 땀을 흘리며 체중이 주는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런 증상은 몇 개월 이상 가벼운 상태로 있기 쉽다. 이 때문에 치료 시작이 늦어지면서 그 동안 다른 사람에게 병을 옮길 위험이 커진다. 환자 1명은 밀접한 접촉을 통해 연간 10~15명에게 균을 옮길 수 있다.
결핵이 잘 퇴치되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는 약에 내성을 지닌 균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종류의 결핵약에 내성을 지닌 결핵균주는 WHO의 조사대상이 된 모든 국가에서 발견됐으며 다제 내성균도 늘고 있다. 다제 내성균이란 가장 강력한 1차 항결핵제제인 이소나이아지드와 리팜피신을 포함한 두 가지 이상의 약제에 반응하지 않는 결핵균을 말한다.
 
| 결핵의 증상과 치료법
현재 결핵 치료에 사용할 수 있는 항결핵제는 모두 10종 정도가 있는데, 이 중 효과가 좋고 부작용이 적어 우선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1차 약제’라고 한다. 이보다 효능은 떨어지면서 부작용은 심해서 꼭 필요한 경우에만 사용하는 항결핵제를 ‘2차 약제’라고 한다.
일반적인 결핵 치료법은 1차 약제 3, 4종을 6~9개월간 복용하는 표준 단기 화학요법이다. 이는 결핵균의 수를 치료 초기에 급속히 감소시켜 약제 내성균의 출현 기회를 뺏고, 대식세포 내 결핵균이나 서서히 증식하는 균을 박멸하고자 하는 방법이다. 약을 복용한 지 2주 정도가 지나면 기침이나 발열, 무력감 등의 증상은 거의 사라진다. 그러나 일부 부작용이 문제다. 속쓰림, 발열, 관절통, 두드러기, 간 기능 이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이 때 환자가 약을 불규칙하게 먹거나 마음대로 약을 끊게 되면 결핵균이 다시 증식하면서 증상이 재발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약에 내성을 지닌 균이 출현하면서 치료에 실패하게 된다. 따라서 중간에 약을 끊었던 경우는 반드시 병원을 재방문하여 적절한 조치를 받아야 한다. 현재 결핵 치료에 사용할 수 있는 약은 모두 10종 정도에 불과하다. 따라서 결핵은 1차 치료에서 확실하게 치료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1차 약제에 내성이 생기면 부작용이 심하고 값도 비싼 2차 약제를 오랜 기간 복용해야 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내성이 생긴 ‘광범위 내성 결핵균’이 번지고 있다. 다제 내성 결핵을 치료 받던 환자 중 2차 약제 복용을 중단하거나 소홀히 하는 것이 주된 원인이다.
결핵을 예방하는 최선의 대책은 BCG 접종이다. 이는 결핵균의 독성을 약하게 하여 만든 것으로 사람에게는 병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결핵에 대한 면역을 갖게 하는 백신이다. 결핵균에 감염되기 전 BCG 접종을 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발병률이 1/5로 줄어드는데, 이 효과는 10년 이상 지속된다. 특히 폐결핵뿐 아니라 사망률이 높은 소아의 결핵성 뇌막염이나 속립성 결핵(좁쌀결핵) 예방효과가 높기 때문에 가능한 한 출생 후 1개월 이내에 BCG를 접종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요즘 결핵환자는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따로 입원을 하거나 격리생활을 할 필요는 없다. 과거 효과적인 치료약이 없던 시절에는 다른 사람에게 병을 옮기지 않도록 병원이나 요양소에 환자를 격리했던 경우가 있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현재 나와 있는 결핵약은 처음 2주 정도만 꾸준히 복용하면 결핵균의 전염력이 거의 소실되기 때문이다. 환자가 사용하는 식기, 의류, 침구, 책 등과 같은 환자의 소유물이나 음식을 통해서는 결코 전염되지 않는다. 실제로 전염이 문제되는 것은 결핵을 진단받고 치료를 시작한 이후가 아니라 결핵을 진단받기 이전의 시기다. 환자의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서 결핵이 의심되는 증상이 발생하면 곧바로 의사의 진찰을 받는 것이 좋다.
전문가들은 “2주 이상 기침하거나 체중이 줄고 잘 때 식은땀을 흘리면 결핵을 의심하라”고 말한다. “특히 당뇨병 환자들은 결핵에 취약해 정기적인 결핵 검진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결핵의 증상은 발병 부위(폐, 흉막, 림프절, 척추, 뇌, 신장, 위장관 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림프절 결핵이면 전신 증상과 함께 목 부위 혹은 겨드랑이 부위의 림프절이 커지면서 무지근한 통증이나 누르면 아픈 증상을 느낄 수 있다. 척추 결핵이면 허리에 통증을 느끼며, 결핵성 뇌막염이면 두통과 구토, 의식 저하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결핵은 폐에 발생한다. 폐결핵의 호흡기 증상으로는 기침과 가래가 대표적이다. 병이 진행되면 가래에 피가 섞이는 수도 있다. 폐 손상이 심해지면 숨쉬기가 힘들고 가슴이 아프기도 한다. 전신 증상으로는 열이 나고 밤에 땀이 나며 몸이 피로하며 신경과민, 식욕부진, 소화불량, 집중력 저하 등이 나타난다.
폐결핵 환자의 70~80% 정도가 증상이 있지만 증상이 없는 경우도 있다. 또한 환자 자신이나 의사들에게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쉽게는 감기로 혹은 다른 폐 질환 또는 흡연과 관련된 증상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증상만 가지고는 결핵인지 아닌지 진단하기가 어려운 경우도 많다. 기침과 가래가 2주 이상 지속되는 경우에는 반드시 검사를 받아야 한다.
 
결핵의 핵심 정보 5가지
결핵은 감염성 질병으로 인한 인류의 사망원인 2위로 꼽힌다. 1위는 에이즈다.
2011년 870만 명이 발병했고 140만 명이 사망했다.
결핵 사망자의 95% 이상이 소득이 중간 이하 수준인 국가에서 발생했다. 결핵은 15~44세 여성의 3대 사망원인의 하나로 꼽힌다.
결핵은 에이즈 바이러스(HIV)에 감염된 사람의 사망원인 1위다. 모든 사망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결핵 사망률은 1990년에서 2011년 사이에 41% 떨어졌다.
 
 
조현욱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1985~2009년 중앙일보 기자로 재직하며 국제부장,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를 역임했고 현재는 중앙일보 객원 과학 전문기자로 중앙일보에 2011년부터 매주 ‘조현욱의 과학산책’을 연재 중이다. ‘코메디닷컴’ 편집주간을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