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휴休’를 말하다

2014-02-08     불광출판사
‘ 휴休’를 말하다




| ‘잘 쉬는 것’이 대세다
모두가 고전의 힘으로 더위를 이기고자 하는지 뜨거운 여름에도 인문학 독서열풍은 여전하다. 시대를 초월하여 삶의 나침반이 되어주는 책의 생명력은 손에서 손으로 이어지는 유통에서 나온다. 유통의 힘은 공감이다. 때로는 심금을 울리기도 하고 때로는 정수리에 지혜의 칼을 사정없이 들이댄다. 가끔은 앉은 자리에서 뒷목덜미마저 서늘케 하는 피서처를 만든다. 정조대왕은 독서로 더위를 잊었고, 이덕무(1741~1793) 선비는 추위마저 독서로 이겨냈다고 했다. 어쨌거나 9월에도 늦더위가 이어지고 여전히 ‘휴休’를 화두 삼아 살아야 할 것 같다. 2012년 8월부터 유선방송에 ‘착한’ 채널이 한 개 생겼다. 바로 ‘휴休’다. 청정채널이며 힐링채널이며 편안한 휴식채널을 표방하고 있다. 요
란스럽지도 않고 자극적이지도 않은 내용이 보는 이로 하여금 심신을 편안케 해준다. 그런데 그 싱거운 채널의 시청률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고 한다. 얼마나 세상 사람들이 쉬고 싶어 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하겠다. 머잖아 ‘휴’채널이 영상고전의 반열에 오를지도 모를 일이다. ‘워커홀릭’, 즉 ‘일중독’이 자랑스러운 훈장이던 시절에는 설사 시간이 주어져도 놀 줄 몰랐다. 심지어 휴일에도 출근을 해야 마음이 편한 시절이기도 했다. 휴일도 출근으로 쉬는 셈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제대로 쉴 줄 모른다는 사실이다. 일은 구체적인 모양이 있지만 쉬는 것은 제대로 모양이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제대로 쉬는 것인지를 알지 못했던 무명無明의 시절이기도 했다. 그리고 열심히 살긴 했는데 주체적인 삶이 아니라 떠밀려 살아왔다는 느낌이 늘 삶의 언저리에서 함께 했다. 이제 ‘잘 쉬어야 일도 잘한다’는 가치관이 보편화된 시절이다. 그래서 ‘휴’에 관한 노하우가 축적된 절집으로도 알음알음 찾아온다. ‘휴의 본산’답게 ‘쉬는 법’으로 화답했다.

『벽암록』

| 고전 『벽암록』에 심취하다
늘 선어록에 심취해 살고 있다. 군더더기 없는 ‘돌직구’가 속을 후련하게 해준다. 심지어 롤모델인 부처님과 조사祖師마저도 들었다 놓았다 했다. 때로는 현란한 수식의 문학적 언어가 난무했다. 파격적인 방외지사方外之士의 격외도리는 모든 위선적 권위를 맨바닥까지 헤집어 놓았다. 읽는 이는 적지 않은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벽암록』을 차분히 완독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선어록의 최고 백미라고 하나같이 이 책을 주저 없이 추천했기 때문이다. 명불허전이란 말처럼 과연 종문제일서宗門第一書였다. 먼저 번역문을 읽은 후 원문을 확인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뜻이 애매한 부분은 성철 스님, 성본 스님, 석지헌 스님의 안목을 빌려가면서 제대로 살폈다. 절집최고 문승文僧들의 애독서요, 필독서라는 풍문은 일찍이 들은 바 있다. 『벽암록』을 만독萬讀한다면 그의 혀끝과 붓끝에 놀아나지 않을 선지식이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래서 대혜종고(大慧宗曠, 1089~1163) 선사는 이 책을 가차 없이 불살랐던 것이다. ‘휴’의 시대에 가장 어울리는 선시 한 구절이 혀끝에 감겼다. 판본에 따라 몇 글자가 바뀐 것도 있지만 그 의미 자체는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휴거헐거休去歇去하니 철목개화鐵木開花니라 
쉬고 또 쉰다면 쇠로 된 나무에도 꽃이 피는구나

휴식 없이 무리하게 일만 하면 몸이 피로해지기 마련이다. 몸이 피로해지면 당연히 감각기관이 무뎌진다. 감각기관이 무뎌지면 그야말로 목석이 된다. 목석은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현장에서 위기대처능력이 떨어지고 이것이 사고나 산업재해로 연결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잘 쉬어줘야 한다는 것을 힘주어 강조한 것이 천 년 전에 이미 이렇게 멋진 시로 표현된 것이다. 성철 스님은 이것을 이어받아 “휴거헐거라… 문수요 보현이라”고 했다. 쉬고 또 쉬어야 문수보살도 되고 보현보살도 될 수 있다고 했다. 내가 제대로 쉴 수 있을 때 비로소 주변이 보이기 때문이다. 쉬고 또 쉬라는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첫째, 몸도 쉬고 마음도 쉬라는 뜻이다. 몸만 쉬어서는 제대로 쉬는 것이 아니다. 마음마저 내려놓았을 때 제대로 쉴 수 있다. 그래서 두 번 반복한 것이다. 둘째, 마음을 쉬어라. 그리고 마음을 쉬었다는 그 생각마저 쉬어라. 그렇게 될 때 그것이 진정한 휴식이 되는 법이다. 진짜 제대로 쉬는 것은 쉰다는 말이 필요 없다. 쉬어야 한다거나 쉰다는 말에 걸려있으면 그것은 반쪽짜리 쉼이 될 뿐이다. 가
만히 생각해보면 쉬어야겠다고 하면서 쉬기 시작하지만 피로가 완전히 풀리고 나면 쉬었다는 생각마저도 간 곳이 없게 된다. 전자가 보편적 해설이라면, 후자의 해설은 더욱 선적禪的이라 하겠다.

| 나만의 ‘휴’를 만들자
‘쉬고 또 쉬어라’는 말은 정말 바쁜 사람들에게 절실하게 닿아온다. ‘휴休’와는 달리 ‘헐歇’이란 말은 글자가 어렵기도 하고 우리말 발음도 별로 매끄럽지 못하다. 그래서 반복을 꺼리는 문사들도 ‘휴헐’대신에 ‘휴휴’를 즐겨 사용했다. 최근 일본 문화유적답사기 두 권을 동시에 낸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고향인 부여에 ‘휴휴당’이란 작은 휴식공간을 만들었다. 바쁘기로는 한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이가 자기토굴 이름을 휴휴당으로 작명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부여 무량사 가는 길에 잠깐 들렀는데 작고 소박한 집이었다. 누군가 “쉼도 그곳에서는 쉬어간다”는 찬사를 남기기도 했다. 재야 객필(客筆, 주필의 반대말)의 고수이며 칼럼니스트인 조용헌 선생도 장성 축령산에 ‘휴휴산방’이라는 작은 글방을 마련했다. 천연재료인 황토, 돌, 나무만 사용했고 벽 두께가 70센티미터라고 했다. 특징은 지붕이 양철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빗소리를 제대로 듣기 위한 배려라고했다. 그야말로 자연을 제대로 즐길 줄 아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공간이라 하겠다. 그런데 정작 이 집을 지은 이는 당사자가 아니라 일지 스님이라고 했다. 휴의 본산 출신답게 휴휴하는 공간을 제대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예로부터 집 짓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다르다고 했던가?
‘휴휴’의 원조는 절집이다. 범어사 휴휴정사는 아마 ‘휴휴’라는 말을 가장 오래전부터 걸어둔 곳이 아닌가 한다. 원래는 선원이었지만 지금은 템플스테이 공간으로 일반인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몸과 마음을 쉬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그 역할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고 하겠다. 이름이 용도를 결정한 것이다. 사람마다 ‘휴’하는 방법이 다르다. 평소에 머리만 굴리고 몸 놀리기를 싫어하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몸을 움직이는 것이 ‘휴’임을 알게 해준다. 쉬는 것이 오히려 몸을 작동시키는 것이기에 이런 부류는 삼천배 절을 통해 ‘휴’하는 사람일 것이다. 내가 경전을 읽는 것은 일이 되지만 잡지를 읽으면 휴식이 된다. 같은 ‘읽는 것’이지만 때로는 일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휴식이 된다. 성지순례의 인솔자가 되면 그건 일이 되지만 혼자서 혹은 도반 몇 명과 호젓하게 성지순례를 한다면 그것은 휴식이 된다. 같은 성지순례지만 때로는 일이기도 하고 때로는 휴식이 되는 종첩의 도리가 그 속에 있는 것이다. 원나라 몽산덕이(蒙山德異, 1231~1308) 선사는 ‘휴휴암 암주’를 자칭하며 ‘휴휴암 좌선문’을 남겼다.

재욕무욕在欲無欲이며 거진출진居塵出塵이라
탐진치 가득한 욕심경계에서 살고 있지만 그 욕심에서 벗어나고
몸은 번뇌로 가득한 세상에 살지만 마음은 연꽃처럼 번뇌에서 벗어나라

그래서 결국 제대로 쉬려고 한다면 좌선이 제일임을 밝혔다. 참선과 명상의 생활화를 통하여 일하면서 수시로 쉬어줄 수 있다면 날마다 휴가처럼 살 수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나름대로 잘 쉬는 법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원철 스님
해인사, 은해사, 실상사, 법주사, 동국대 등에서 경전과 선어록을 연구하고 강의했다. 일간지, 교계지 등 각종 언론매체에서 대중성과 전문성을 갖춘 글로써 대중과의 소통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번역서로『선림승보전』이 있고, 『절집을 물고 물고기 떠 있네』등 몇 권의 산문집을 출간했다. 조계종 불학연구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해인사 문수암에 머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