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나무 아래서

2014-02-08     불광출판사
배롱나무 아래서
 

 
 
 
무심코 산신각을 오르다
지나쳤던 배롱나무 한 그루.
하산 길에 잠시 쉬어가라는 듯
열정 가득 담아서 피운
꽃을 뽐내고 있다.
 
 

 
 
아침에 시작된 비는
점심때를 넘겨서도
계속되었다.
하늘을 보면
그칠 것 같은데,
얄궂은 비구름은
좀처럼 움직임이 없다.
-
빗줄기에 떨어진
진분홍 배롱나무 꽃잎은
전혀 예쁘질 않다.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산산이 흩어진 꽃잎은
힘을 잃었다.
-
개심사 배롱나무 아래 서서
비가 그치길 기다린다.
잠시 후 하늘은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옅게 흩어진 구름 사이로
희미한 햇살은 젖은 땅에
그림자를 그려놓는다.
 
개심사 연못 위에는
외나무다리가 있다.
그 다리를 건너던 아이는
가던 길을 멈추고
연못에 손을 담근다.
꽃잎을 잡기 위해서다.
마치 언젠가 본 듯한
그림이다.
그리고 아이는
배롱나무 아래로
들어갔다.
-
장마와 뜨거운 태양을
품고 핀 배롱나무 꽃 몽우리에
열정도 한가득이다.
여러 꽃 몽우리들은
피고지기를 반복하며
한여름을 난다.
자, 이제는 서서히
가을을 준비한다.
 
안양루에서 본
개심사 배롱나무.
 

 
 
외다리나무를 걷던 여자아이는
손을 뻗어 물에 손을 담근다.
연못에 울린 파동은
오래가지 못하고
금새 잔잔해졌다.
아이는 진분홍 꽃잎을
잡아 올렸다.
 

 
 
구름 사이로
해가 비쳤다.
연못엔 배롱나무가
한가득 담겼다.
 

 
 
이끼 낀 기와에
떨어진 꽃잎.
떨어진 꽃잎을 보던 것 중
가장 예쁜 모습이다.
 

 
 
초록의 잡풀 사이로
흩어진 꽃잎들.
 

 
 
구름 사이 희미한 햇살이
그림자를 만들었다.
땅바닥에 떨어진 꽃잎은
숨이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