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다일미? 폼 잡지 말고 그냥 즐기세요

차茶 명인 강진 백련사 여연 스님

2014-02-08     불광출판사

아금청정수 변위감로다 봉헌삼보전 원수애납수 我今淸淨水 變爲甘露茶 奉獻三寶前 願垂哀納受. 제가 지금 맑은 물을 들어 이것이 감로차로 변해지니 삼보님께 올리나이다. 원컨대 이 물을 받아주옵소서 새벽시간 고요한 산사의 적막을 깨는 게송의 일부다. 새벽 예불에 참석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저 구절은 ‘예불문’의 시작을 알리는 ‘다게茶偈’다. 불교가 흥했던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불전이나 조사 영전에 차茶를 올렸지만, 절 집안이 가난했던 조선시대부터는 그럴 수 없어 물을 올렸다. 그래서 예불문의 ‘다게’에 저런 의미의 문구가 들어가게 된 것이다.
 

| “이노무 행자가 귀한 차를 다 망쳐 놨다”
예불문의 사례에서 보듯 예전부터 차는 귀한 음료로 대접받아 왔다. 물질문명이 발달한 요즘이야 어렵지 않게 차를 마실 수 있게 됐지만, 차가 이처럼 대중적인 음료가 된 것은 불과 십수 년 전부터다. 그간 차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한 사람들은 많았다. 그중에서도 강진 백련사 주지 여연 스님은 불교와 차를 얘기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한창 차가 생산되는 이 계절에 여연 스님을 만나기 위해 전남 강진의 백련사를 찾았다.
“저는 차가 부처님 시대부터 불교와 인연을 맺고 있다고 봐요. 부처님에게 수자타가 올린 우유죽이 바로 ‘차’였다고 해석하는 거죠. 불가에서는 그걸 알가(始原)차라고 부르거든. 이외에도 많은 문헌과 기록, 게송에서 보이듯 불교와 차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여연 스님은 1970년에 해인사에서 출가했다. 이후 남해 용문사에서 행자생활을 하며 동안거를 보내게 됐는데, 그때 처음으로 차와 인연을 맺었다. 하루는 같이 살던 스님이 감기에 걸렸다. 이전에 다른 스님들을 보니 감기가 걸리면 용문사에 다니는 보살이 처음 보는 말린 이파리들을 끓여서 먹이더라는 것. 그래서 캐비닛을 뒤져보니 초록색 깡통에 이파리가 반쯤 들어있기에 그걸 약탕기에 넣고 고아 마시게 했다고 한다. 찻잎이 조금만 많아도 향이 진한데, 반통을 다 넣고 고았으니 쓴맛이 얼마나 고약했을까. 더구나 용문사 스님들이 “이노무 행자가 귀한 차를 다 망쳐 놨다.”고 노발대발하며 혼을 냈단다. 스님은 차와의 첫 만남을 회고하며 “봉변당한 기분이었다.”고 했다.
스님이 차를 다시 대면하게 된 건 그로부터 얼마 뒤였다. 계를 받고 해인사로 돌아와 지내던 봄볕 따스한 어느 날, 선방 수좌스님이 “유비가 먹었다는 귀한 옥로차를 주겠다.”며 학인스님들에게 모이라고 했다. 온갖 잔소리 속에 구박을 당해가며 물을 끓였더니 보자기를 풀어 무언가를 병아리 눈물만큼 우려서 내주더란다. 자세히 보니 용문사에서 봉변을 당했던 그 이파리였다.
 

스님은 차를 만들 때는 기후와 환경 조건이 좋은 곳에서 자라는 야생차를 쓰되 찻잎을 두 번 이상 따지 않는다. 차를 작품 수준으로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스님은 늘 좋은 차를 만들되 즐기는 다도를 보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 차는 발효 정도에 따라 종류가 달라질 뿐
“아무튼 그때까지는 차에 대한 기억이 별로 안 좋았어요. 그 뒤로도 차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되기까지 갖은 일화가 많아요. 한 번은 일타 스님의 시봉을 보는 시자스님하고 몰래 일타 스님이 아끼던 차를 끓여먹기도 했어요. 그러다 나중에 혼쭐이 났죠. 그렇게 몇 번의 마주침을 겪고 나서야 차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여연 스님이 차에 눈을 뜬 것은 훗날 인간문화재가 된 조태현 씨의 차를 맛보고 나서다. 큰스님들에게 차를 팔러 온 조태현 씨의 차를 우연히 맛본 후 스님은 그 향기와 맛에 매료돼 버렸다고 한다. 그 후로 35년간 스님은 차에 대한 공부와 함께 직접 차를 만드는 일에 매진해왔다.
차에 대한 이야기들이야 세간에 알려진 것들이 워낙 많다. 하지만 사람들은 차의 종류가 굉장히 다양하다고만 알고 있을 뿐, 그런 구분이 잎의 종류가 아니라 제다 방법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 녹차와 홍차도 발효 정도에 따라 구분되는 것일 뿐이지 차를 만드는 잎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발효 정도가 10% 이내일 경우 녹차, 10~60%까지는 청차(우롱차, 아미산차, 철관음, 대홍포 등), 70% 이상은 홍차가 된다. 결국 이른바 6대차는 발효 농도에 따라 달라진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차의 종류는 천 가지가 넘는다.
이날 백련사에서 만드는 차는 황차 계열인 ‘자하紫霞’였다. 이 차는 곡우를 전후해서 수확한 첫 찻잎을 햇볕에서 살충한 후 하루 정도 그늘에서 말린다. 그리고 일일이 손으로 비벼서 수분을 빼낸다. 그 다음엔 공기가 통하지 않도록 두꺼운 천으로 감싸서 아랫목에 불을 때며 이틀간 발효시켜 완성한다. ‘자하紫霞’라는 이름은 차의 색깔이 남도의 노을빛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스님은 백련사에서 모든 종류의 차를 다 만든다고 했다. 차를 만들 때는 기후와 환경 조건이 좋은 곳에서 자라는 야생차를 쓰되 찻잎을 두 번 이상 따지 않는다. 차를 작품 수준으로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스님은 늘 좋은 차를 만들되 즐기는 다도를 보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 허례허식은 빼고 나쁜 차는 피해라
“최근 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다들 ‘선다일미’를 많이 거론하죠. 마치 ‘선禪’자만 붙이고 어려워 보이면 그게 ‘선다일미’인 줄 아는데 그렇지 않아요. ‘선다일미’의 뜻은 순간순간의 행위에 집중하는 데서 오는 ‘맛’이 참선과 똑같다는 거죠. 그런데 요즘 차를 마신다는 사람들은 어떤가요? 지나치게 폼만 잡고 있잖아요. 다도를 배우다보면 너무 어려워서 너도 힘들고 나도 힘들어져요. 그건 다도가 아니죠. 차를 마시는 과정에 집중하되 즐기면서 마시면 그게 다도예요.”
스님에게 좋은 차는 어떤 것이냐고 물었더니 “없다.”고 했다. 기호에 따라 내가 좋아하는 것이 좋은 차일 뿐이다. 반면에 잘못된 차는 존재한다. 정확히 말하면 잘못 만든 차다. 대표적으로 거론할 수 있는 것이 일부 보이차다. 최근 오래 묵은 보이차가 고가에 거래되자 일부 장사치들이 팔고 남은 싸구려 보이차에 ‘카바이트’라는 약품을 넣어 오래된 차로 위장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리곤 그걸 마치 구하기 힘든 귀한 것인 양 판매한다. 그런 차는 당연히 몸에 좋을 리 없다. 그래서 스님은 차를 만드는 사람들의 장인 정신을 누누이 강조한다.
앞으로 여연 스님이 하고 싶은 일은 차와 관련된 학문들을 체계적으로 정비하는 일이다. 스님은 현재 동국대학교에 차문화콘텐츠학과를 만들어 운영 중이다. 하지만 차와 관련된 자료가 많지 않아 연구가 쉽지 않다. 그래서 차문헌 도서관을 만들고 싶어 한다. 한편으로는 일반인들이 쉽게 차를 접할 수 있도록 선차문화체험센터를 건립하고 사찰음식의 하나로서 차문화 보급에 앞장서는 꿈도 꾸고 있다. 스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꿈이 이뤄진다면 요즘 한국 땅에 불고 있는 커피 열풍이 머지않아 차 열풍으로 서서히 바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련사에서 내려오는 길, 스님의 마지막 말이 자꾸만 귓가에 맴돈다.
“차라는 거, 그거 그렇게 어려운 거 아니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시간 날 때 와요. 맛있는 차 한 잔 줄 테니. 차 한 잔 마시고 세상 사는 시름 잠깐 덜고 가면 얼마나 좋아, 안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