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자재 넘나드는 운필運筆로 따뜻한 세상을 담다.

남해 망운산 망운사 주지 성각 스님

2014-02-08     불광출판사
 

동화 속 아름다운 섬처럼 천혜의 자연경관을 갖추고 있어 ‘보물섬’이라 불리는 경남 남해. 그곳 보물섬의 진산 망운산(해발 785m)에 산인山人이 산다. 산에서 산을 품고 사는 산인은 매일 ‘산山’ 자를 그리며 스스로 산이 되어 간다. 산인은 일필휘지의 유려한 붓질로, 때로는 달마가 되고, 때로는 동자가 되며, 때로는 보살로 화현한다. 그 산인이 바로 선화禪畵의 대가, 망운사 주지 성각(64) 스님이다. 지난 5월 3일, 국내 최초로 ‘선화 제작’ 분야 기능보유자가 되어, ‘부산시 무형문화재 제19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문화재위원들의 평가가 스님의 성품을 짐작케 한다. “선에 관한 체계적인 이론은 물론, 수행 또한 겸비한 선화승이다. 작품의 미적 완성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선을 통한 운필 능력이 일정한 경지를 넘어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다.”
 
| 번뜩이는 선지禪旨 가득한
: 선화에 매료되다 출가 전 만화가로 활동한 경력이 독특하십니다.
학창시절 정의로운 주인공이 악당을 물리치는 권선징악 스토리에 매료되어 만화를 탐독했어요. 특히 산호 선생의 ‘라이파이’, 손의성 화백의 ‘동경 4번지’ 같은 작품을 좋아했지요. 제가 매화를 좋아해, ‘매화 클럽’을 만들어 친구들과 함께 만화를 그리기도 했습니다. 만화가 지망생 시절에는 독자투고를 하면 이현세 화백과 1, 2등을 다투기도 했지요. 이후 여러 사정상 본격적인 작품활동은 못했고 언론에 삽화 그리는 작업 정도 했습니다.
 
: 유년시절 불교, 그리고 망운산과의 인연이 지중하다고 들었습니다.
부모님 말씀에 따르면, 지극정성으로 불공을 드려 귀하게 얻은 자식이라고 하더군요. 혼례를 올리고 아무리 아이를 가지려 해도 잘 생기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제가 너댓살 때 옛날이야기에나 나올 법한 일을 겪었어요. 어느 날 어머니께서 제 이름을 큰소리로 부르시는데, 지나가던 스님이 그 이름을 듣고 저희 집에 들어오셨나 봅니다. 아이 이름이 단명할 운명이라며, 개명을 해주시고는 제 명대로 살 것이라고 말씀해주셨죠. 그리고는 부처님 은혜에 보답해야 하니 “크면 반드시 부처님께 팔라”는 말을 뒤로하고 홀연히 떠났다고 합니다. 그 스님이 어떤 분인지 알 길은 없지만, 어쨌든 이렇듯 망운산 산인으로 살아가고 있으니 스님 말씀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죠. 제 고향이 바로 이곳 남해입니다. 유년시절 연 날리고 팽이 치며 정신없이 놀다가도 망운산을 바라보면 묘한 설렘이 일었어요. 늘 동경의 대상이었죠. 그때의 그 느낌이 저를 자꾸만 망운산으로 이끌어온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산과 함께 사노라면 어느덧 내 모습은 산이 되고 있음을 실감한다. 그리하여 산이 된 나 자신을 표현하다 보니 산山자를 그리는 것이 내 수행생활의 전부가 되어 가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보통의 산은 꽃도 피고 잎도 피어 색상을 나타내나 나와 하나가 된 산은 오직 수묵의 산일 뿐이다. 이렇게 수묵의 산을 그리다가 보니 그것이 선화禪畵라고들 한다. 다시 한 번 자신을 바라보다 달마상이 떠오른다. 달마를 표현하고 또 나 자신임을 알고 다시 표현하니 이를 또한 선화라고 한다.
-성각 스님, 『선예술의 이해』 중에서
 
: 마치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를 듣듯 매우 흥미롭습니다. 다음 이야기도 무척 궁금한데요. 출가, 그리고 선화를 만나게 된 인연은 어떻습니까?
제가 수행자의 길을 걷게 된 건 아버님의 영향이 큽니다. 인품이 훌륭하셨는데 거렁뱅이나 넝마주이 등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어요. 당신 옷이라도 벗어주고 집에 들여 밥 한 끼라도 먹여서 보냈지요. 또한 선비정신이 몸에 배어 있으며 스님들과의 교분도 두터우셨죠. 아버님 눈에는 제가 만화를 그리는 게 못마땅하셨는지, 하루는 저를 데리고 김해 영구암으로 화엄 스님을 친견하러 갔습니다. 화엄 스님은 동산 스님 제자로 범어사 주지와 선원장을 지내셨는데, 기골이 장대하고 길게 수염을 늘어뜨린 모습에서 도인의 기품이 흘렀습니다. 그때 앉은 자리에서 일필휘지로 매화를 치시는 모습에 완전 매료되었지요. 저에게 붓을 주시고 한번 그려보라 하셔서 대충 흉내를 내보았더니, 뜬금없이 “출가하는 게 좋겠다” 하시는 거예요. 그 날 이후 제 몸이 이상하게 아파, 영구암에서 천도재를 지내며 한 철 지내게 되었어요. 그때 현재 김해 동림사 주지이신 월주 스님이 염불을 해주셨는데, 환희심이 확 나는 경험을 했습니다. 해마다 절에 가서 한 철씩 정진하며, 화엄 스님이 번뜩이는 선지禪旨로 선화 치시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며 온몸으로 선화를 익혔어요. 그러던 어느 날 시절인연이 도래했는지 몽중가피를 받아, 망운산 화방사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 우리나라 최초의 ‘선화 제작’ 분야
: 무형문화재 임도林道를 따라 차로 망운사까지 오르는 데만 30여 분 걸린 것 같습니다. 굉장히 높은 곳에 위치한 오지인데, 예전엔 생활하는 데 많이 불편했겠습니다.
1989년에 이곳 망운암에 왔어요. 그때는 조그만 인법당 형식의 조그만 암자였는데, 다 스러져갈 정도로 낙후된 곳이었죠. 3년간 노장스님을 시봉하였고, 절대 물러나지 않겠다는 불퇴전의 마음으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토굴에 들어가 천일기도를 회향했습니다. 이후에 본격적인 불사를 시작해, 처음에 전기를 놓고 다음에 길(7.2km)을 냈습니다. 대웅전 불사를 비롯해 지금의 도량으로 정비하는 데 꼬박 20년이 걸렸어요. 어느 큰스님은 망운사를 둘러보고 천지개벽을 시켜놨다며 격려를 해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난공불락의 불사인데 어떻게 해냈는지 기적 같은 일입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은사이신 고산 스님(쌍계사 방장)께서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불사가 잘 회향되어 화방사 산내암자였던 망운암이 독립사찰 망운사로 승격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탁 트인 남해바다를 바라보며 마음의 휴식처로 삼고 있어 조금은 보람됩니다.
 
: 부산 원각선원에 불교대학을 개설해 2,000명이 넘는 졸업생을 배출하고, 수십 차례의 선화 전시회를 열어 수익금 전액을 어려운 이웃과 난치병환자들을 돕는 데 회향하고 계십니다. 남다른 포교 원력으로 2010년 조계종 포교대상 원력상을 수상하기도 했는데요.
단지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한다)’을 실천하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이타정신이 곧 보살정신의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조그만 이익이라도 생긴다면 사회에 모두 돌려주려고 해요. 자신의 재능이나 능력이 따뜻한 세상을 위해 쓰여진다면 이보다 더 아름다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앞으로도 더욱 하심하며 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행복에 이르는 길을 함께 가고 싶습니다. 현재 88세이신 속가 어머니도 망운사에 와 계시는데, 저에게 큰 경책이 되어주십니다. 어찌나 계정혜 삼학을 철저히 지키시는지 제가 나태하고 게으를 수가 없어요. 늘 탐욕을 경계하며 나누고 사는 삶을 강조하시는 어머니가 계셔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 30여 년간 선화의 맥을 올곧게 이어오시며 얼마 전 부산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셨습니다. 선화란 무엇이며, 앞으로 어떻게 계승할 계획이신지요?
선화는 제 삶이자 수행입니다. 바로 참나를 찾아가는 과정이지요. 30년간 하루도 붓을 놓은 적이 없어요.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예불과 참선으로 마음을 맑게 하고, 그 고요함을 선지로 승화시켜 하나의 마음자리로 표현합니다. 산과 하나되어 산이 되기도 하고, 달마나 동자, 보살로 화해 표출되기도 하는 거죠. 불화佛畵가 예배의 대상이라면, 선화는 감상의 대상입니다. 틀에 박힌 필법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자재로 붓질이 넘나들며, 간결한 아름다움 속에서 파격과 여백의 미를 살려 무애자재의 경지를 형상화합니다. 이번 무형문화재 지정이 계기가 되어 선화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는 물꼬가 트였으면 좋겠습니다. 선화는 하릴없이 놀이삼아 붙잡고 희롱하듯 하는 것이 아니라 수행의 한 방편으로서 깨달음을 얻는 작업입니다. 현재 망운사 선화당禪畵堂과 부산 원각선원에서 매주 한 차례씩 선화 강의를 열고 있는데, 앞으로 대중포교에 적극적으로 나서 선화가 대중 속에 뿌리내리는 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선화의 맥을 이어주는 제자가 나오면 제 할 일은 다 마친 것 아니겠습니까.
 
: 세상이 참으로 혼탁하고 갈수록 힘겨워집니다. 마지막으로 실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지혜롭고 행복하게 사는 삶의 방식을 제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가장 쉬운 방법은 부처님이 닦아놓은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 길만 충실히 따라가면 살아가는 데 아무런 장애와 걸림이 없어요. 그러려면 부처님 가르침에 대한 한결같은 믿음이 중요해요. 믿음은 공덕의 어머니입니다. 불보살에게 거짓이 없듯, 나 자신도 원래 거짓이 없습니다. 그런데 자꾸 엉뚱한 망상이 들어와 거짓이 되는 거예요. 그 거짓에 속아 넘어가 헛것만 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죠. 『금강경』에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모두가 허망하다. 만약 모든 형상을 형상 아닌 것으로 본다면 곧 여래를 보리라.)라고 했습니다. 이 뜻만 제대로 익히고 산다면 참되고 바른 삶을 사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성각 스님
남해 망운사 주지 및 부산 원각선원 선원장. 남해 화방사로 출가하였으며 자운 스님으로부터 사미계, 일타 스님으로부터 구족계를 수지했다. 김해 동림사 조실 화엄 스님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선화의 세계에 입문하였으며, 30여 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선지禪旨를 화폭에 담았다. 예술의 전당, 운현궁 미술관 등에서 수십 차례 선서화 전시회 개최했으며, 그 수익금은 전액 소외된 이웃들에게 회향했다. 동국대 선학과와 문화예술대학원 불교미술학과를 졸업하고, 원광대와 동아대에서 명예문학박사와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옥관문화훈장과 조계종 포교대상 원력상을 수상했으며, 지난 5월 3일 ‘선화 제작’ 분야 ‘부산시 무형문화재 제19호’로 지정되었다. 저서로는 『선예술의 이해』, 시집 『어느덧 내 모습 산이 되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