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화선은 심리 치료에 효과가 있을까?

버트 헬링거 그룹과의 만남

2014-02-08     불광출판사
 
제가 선 수행을 시작한 지 22년이 지난 2012년, 다시 마음을 잡고 새로운 시작의 발걸음을 내딛었습니다. 특히 지난해는 여러 면에서 무척 의미 있는 시작이 됐습니다. 1990년부터 몸담았던 곳에서 나와 새롭게 세운 헝가리 원광사가숭산 스님께서 계셨던 수덕사의 말사로 조계종에 등록된 것입니다. 원광사는 동서양의 수행관을 결합시킬 수 있는 새로운 장이 됐습니다.
 

| 아프리카 부족의 풍습에서 비롯된 심리 치료법
지난해 2월, 오랜 친구가 심리 치료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참선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해 왔습니다. 하지만 ‘선을 통한 심리 치료’의 문제는 항상 논란의 여지가 많았지요. 저는 그들이 어떤 치료를 받고 있는지, 그들을 돕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문제, 즉 그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이러한 정신적인 치료가 그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 수 있는지를 고민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2012년 3월 초 그들과 처음 만나기 전에 알고 있었던 것들보다는 나중에 직접 경험하고 이해하게 된 것들이 훨씬 소중한 자산이 됐습니다. 제가 만난 사람들은 전직 카톨릭 신부이자 선교사였던 버트 헬링거Bert Hellinger의 ‘가족 세우기 치료(Family constellation therapy)’를 받고 있었습니다. 50년 전, 버트 헬링거는 남아프리카 줄루 랜드Zulu land에서 선교 활동을 시작했을 때, 그곳에서 흥미로운 부족 풍습을 발견했습니다. 그 부족은 가족 간의 문제가 있을 때 대리인을 세워 가족 역할을 부탁하고 그들이 겪는 어려운 상황을 해결하려 노력했습니다. 이 부족 사람들은 서로 때론 가깝게 때론 멀게, 일어섰다 앉았다 누웠다가, 바라보다 시선을 피하기도 하고, 깊은 마음의 감정을 표현하기도 하고 침묵으로 일관하기도 하며 그들 사이의 관계를 드러냈습니다.
헬링거 신부는 줄루 랜드에서 보낸 40년 동안 이 풍습을 관찰하고 연습했습니다. 그 후, 헬링거는 교회를 떠나 심리학에 몰두했고 그의 고향인 독일보다는 다른 나라에서 더 높이 평가 받았습니다. 헬링거의 치료 방법은 종교적이지도, 과학적이지도, 심리학적이지도 않았습니다. 정통학파와는 근본적으로 달랐기 때문에 그의 이름은 가톨릭과 심리학계에서 오랫동안 거론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의 치료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이 경험한 한 가지는 사람들이 마음을 비우는 관계가 되어 의식과 무의식, 과거・현재・미래를 막론하고 정신적인 면이 육체로 흘러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완전히 비운다면, 마음은 거울처럼 맑아져서 마음속을 선명하게 들여다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리하여 아버지, 어머니, 오빠, 언니로서 품고 있던 마음을 정확하게 드러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태어나지 않은 형제자매, 유산된 자손, 오래 전에 돌아가셔서 거의 잊혀진 할아버지와 할머니, 애타게 기다리지만 아직 만나지 못한 배우자에게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원론적인 생각이나 감정(선악, 사랑과 미움, 끌림과 멀어짐, 있고 없음)으로 누군가를 마음속에 품고 있으면, 그 대상은 대리인의 마음 거울을 통해 나타나게 됩니다. 마음의 거울이 정말 깨끗하다면 스스로를 비우고 자신이 마음속에 품은 사람을 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선(禪, zen)의 쉬운 표현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영원하고 완벽한 것은 없고, 우리 모두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진심으로 노력한다면 깨달을 수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헝가리 헬링거 그룹의 지도자들은 참으로 정직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대리인을 통해 나타나는 왜곡된 감정과 생각이 당사자 스스로의 감정과 인식에 의해 말끔히 해소되는 것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더 나아가지 못하고 그저 원을 그리며 걷고 있습니다.”라고 그들 중 한 명이 말했습니다. 최고의 치료사와 대리인이라도 치료받는 당사자의 업(業, karma)을 바꿀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 가족 세우기 치료를 하고 몇 주, 몇 달이 지나도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거나 다른 유형으로 다시 나타났습니다.
 
| 다른 사람이 된다는 느낌
지도자들과 치료 받는 사람들이 불교나 선禪을 알지는 못했지만 이제는 윤회와 주기적 존재의 본질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들은 직관적으로 이해하려 했지만, 제가 1년 전쯤 그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는 그다지 많이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저는 제 방법이 그들로 하여금 깊은 마음의 본성을 깨닫게 하는 데 효과적일 거라 믿었지만, 잘못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경험한 대로 수행하고 가르치는 패러다임이 그들과 잘 맞지 않았던 것이지요. 헬링거 그룹의 근본적인 성향과 자아의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은 저와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심리학의 방식은 상처를 치료하고 재생시키는 것이었지만, 선禪의 방식에서는 마음을 말끔히 비우는 것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 방식이 어떻게 어울릴 수 있을까요? 서로 상호 보완 작용을 할 수 있을까요? 제 답은 상황에 따라 ‘그렇다’는 것입니다. 일단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에 변화를 줘야 했습니다. 지식을 바탕으로 직관적으로 가르치는 것은 도움이 되기는 할 테지만, 그것보다는 제가 스스로 느끼고 그들 또한 몸소 느껴 체험하게 해야 했습니다. 말로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일단 마음의 통로가 열리면 모든 것이 통하게 됩니다. 마음의 통로를 넓히고 계속해서 열려 있게 하기 위해 저는 한 단계 더 나아가 그 치료 세션에 도우미로 들어가 제 마음을 다른 사람의 업業과 하나가 되게 하였습니다. 대리인 역할을 한 것입니다.
제가 다른 사람이 된다는 느낌은 저를 압도했습니다. 하지만 22년 전과 달리 이번에는 8식(안, 이, 비, 설, 신, 의, 말라식, 아뢰야식-저장식)을 통해 깨달은 ‘나는 무엇인가’와 ‘나’라는 개념 자체가 분명해졌습니다. 이는 ‘알 수 없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일단 의식하게 되면 자제할 수도 있고, 이 8식의 범위 안에서 어떠한 업業도 우리를 붙잡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구별하지 않고 참된 본성과 존재 그대로를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참된 본성과 우리 존재가 서로 다르지 않으므로, 이 둘을 정확히 보는 것은 때로는 힘들 수도 있습니다.
 
| 그들에게 화두를 던지다
달마 대사께서는 네 가지 근본 사상을 소림사 돌에 새겨 선종禪宗을 설립해 다음 세대를 위한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부처님 시대에서 1,000년 후 달마 대사가 계셨습니다. 부처님과 마찬가지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고의 영적 스승이셨던 달마 대사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경전에 의존하지 말고, 마음을 바로 보아라. 본성을 얻어 깨달아라. 이를 마음과 마음으로 전해라.” 달마 대사의 가르침은 육조 혜능 대사에게로 이어졌습니다. 명쾌하고 자비로운 그 가르침 중 하나가 바로 공안 수행입니다.
 
여러분의 참된 본성과 업은 같나요, 다른가요? 선택한 길과 예정된 운명은 실제로 존재하나요, 환상일 뿐인가요? 여러분과 세계와의 관계, 세계가 여러분을 대하는 방법은 따로 떨어져 있나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나요? 여러분의 마음과 신체는 서로 연결되어 있나요? 여러분은 이 순간에 존재하나요, 과거・현재・미래에서 떨어져 나와 있나요? 여러분의 마음은 감정과 완전히 일치하나요? 여러분은 마음은 감정에 의해 돌처럼 차가워지나요, 아니면 활활 타버려 감정을 모두 없애버리나요?
 
헝가리 원광사의 도움으로 수행을 시작한 헬링거 그룹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 질문들은 그들에게는 생소한 충격이 됐습니다. 하지만 전에 만나지 못했던 새로운 빛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리고 덕해 스님과 저는 이 질문의 대답을 찾아 우리의 절을 영적 피난처로 삼아 방문하는 사람들을 가르치고 도왔습니다. 참선은 환상을 없애고, 마음과 마음을 연결시켜, 겸허하고 진지하게 마음에 나타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합니다.
이렇게 인연을 맺은 헬링거 그룹의 지도자들과 연장자들이 지난 4월 한국에 왔습니다. 여러 한국 사찰을 방문하는 여정에서 저는 그들을 도와주고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만공 스님의 명쾌하고 위대한 가르침을 기념하여 수덕사에서 열린 제2회 ‘길 없는 길’ 행사에도 참여했고, 2주간 2,000km가 넘는 거리를 여행했습니다. 그들의 한국여행은 4월 말에 마무리됐습니다. 헬링거 그룹이 헝가리로 돌아간 이후 저는 한국에 한 달 더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즐거운 마음으로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청안 스님
헝가리에서 태어나 20대 초반인 1991년 숭산 스님을 만났고 1993년 미국 프로비던스에 참가해 이듬해 28세의 나이로 출가했다. 이후 한국의 화계사, 해인사 등지에서 수행했다. 1999년 지도법사 인가를 받고 2000년 고국으로 돌아가 헝가리 관음선원 주지를 맡았으며 부다페스트에 선원을 세워 대중을 지도하며 정진했다. 이후 유럽 각국에서 불교와 선 수행법을 알리고 있다. 현재 헝가리에 유럽 최초의 한국식 사찰인 ‘원광사’를 짓고 주지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