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감정노동자

한국 감정노동자의 현실과 대응

2014-02-08     불광출판사

최근 한 대기업 임원이 비행기 안에서 승무원을 폭행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자 임원은 사퇴하고 해당 대기업은 대국민사과를 해야만 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감정노동자에 대한 인식에 있다. 감정노동이 무엇인지 또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나가야 하는지 알아본다.
 
| 심리적 병을 안고 사는 감정노동자들
2012년 1월이었다. 55년 만의 강추위라고 언론이 호들갑을 떨고 있는 날이었다. 칼바람이 옷 안으로 파고드는 날씨에 몸을 움츠리며 면목동의 한 휴대폰 매장을 지나고 있었다. 그 휴대폰 매장은 사람들이 꽉 에워 둘러싸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안을 들여다보니 30대로 보이는 여인이 옷을 하나씩 벗으며 젊은 직원과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여자는 옷을 벗으면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부으며, 직원의 멱살을 잡고 흔들고 밀치며 거의 폭행 수준으로 ‘진상’을 떨고 있었다. 진상을 피우는 이유는 그 여자가 신용불량자여서 정상적인 휴대폰 구입이 안 되자 이에 불만을 품고 항의를 하는 것이었다. 직원은 거의 공황상태에 빠진 얼굴로 매장을 빠져 나와 도망치다시피 했다. 상대가 없어진 여자는 옷을 다시 하나씩 주워 입으면서도 계속 욕을 하고 있었다. 구경하던 사람도 황당한 상태이니 당하던 젊은 직원은 얼마나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까?
얼마 전에는 한 대기업 임원이 비행기에서 진상을 부렸다. 비행기에 타자마자 옆자리에 사람이 있다고 욕설부터 하고 열두 시간 동안 기내식을 세 번 바꾸고 밥이 설었다고 복도에 기내식을 내던졌다. 급기야는 라면 때문에 잡지로 승무원의 안면을 가격하는 사태가 벌어져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이 사건의 핵심은 아무리 승객이 진상을 부려도 승무원은 웃음과 친절로 접객해야 한다는 강압적인 감정노동에 있다. 감정노동의 일반적인 정의는 고객을 위해서 나의 감정을 고양시키거나 억누르는 노동인데 그 정의가 다시 바뀌어야 할지도 모른다. 즉 고객의 무리한 요구와 욕설, 협박, 성희롱 등에도 웃음과 친절로 응대해야 하는 노동으로 정의해야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에 잘 맞을 것이다.
“참을 인忍 자 세 번이면 도를 통한다.” 다산콜센터 텔레마케터의 모니터에 붙어 있는 글귀다. 서비스업에 근무하는 종사자 중 49%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그 중 11.9%는 자살이 우려되는 심각한 고도 우울증으로 밝혀졌다. 특별한 이유 없이 공포심을 동반한 발작이 일어나는 공황장애를 호소하는 서비스직 노동자들도 적지 않다. 또한 대인기피, 불면증 등 다양한 심리적 병을 얻고 있다.
우리 마음은 한 번 망가지면 회복하기가 힘들다. 인간의 감정은 그랜드캐니언 같은 계곡을 타고 흐르기 때문이다.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은 아득한 옛날 평평한 넓은 대평원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 방울의 빗물로 시작한 작은 물줄기가 강이 되고 땅을 깎아내어 오늘날과 같은 거대한 대협곡이 형성되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최초의 물줄기이다. 그 물줄기가 아무리 작다 할지라도 자꾸만 내리는 비에 점점 침식되어 오늘날과 같은 수백 미터 깊이의 계곡과 절벽이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의 뇌 구조 또한 이와 같다. 뇌 속에 있는 신경회로망에 전기가 한 번 흐르면 계속 그 길로만 회로가 작동하려고 한다. 처음엔 오솔길로 시작했던 신경회로가 나중에는 고속도로가 되는 것이다. 아주 쉽게 설명했지만 전문가의 어려운 설명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 인격살인을 막아주는 감정노동 방어권
동물학자가 수탉 100마리를 한 울타리에 넣었더니 닭들은 3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피 터지게 싸움을 벌였다. 수탉은 상대방의 등에 올라타서 벼슬에 피가 터질 정도로 치열하게 싸우는데 아무리 물을 끼얹고 해도 싸움이 그치지 않았다. 그런데 3일이 지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 싸움이 딱 그쳤다. 알고 보니 3일간의 전투가 100마리의 서열전쟁이었던 것이다. 서열이 높은 수탉은 아래 수탉의 벼슬을 쫄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이 닭 실험 이후에 짐승들의 서열 습성을 두고 동물학자들은 ‘쪼기 서열(peck order)’이라고 이름 붙였다.
서비스 현장에서 서열은 이미 엄청나게 벌어진 상태에서 시작한다. 왕과 노예, 이것이 손님과 종업원의 서열이다. 시작부터 종업원은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진짜 왕 노릇을 하려는 진상손님이라도 만나면 스트레스 강도는 대책 없이 올라간다.
일반고객 중 진상손님은 어떤 부류일까? 그들은 틀림없이 자기가 속한 사회나 집단에서 매우 낮은 서열일 가능성이 높다. 가령 집단에서 왕따를 당하거나 남편한테 학대 받고 있거나 금전적으로 고통 받고 있는 등, 어쨌든 서열상으로 눈에 띄게 뒤로 밀려 있어 몸과 마음이 정상적이지 못한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들은 다른 곳에서 높은 서열을 만끽하고 싶은 것이다. 함부로 반말을 하거나, 다짜고짜 윗사람을 부르거나, 고래고래 악을 쓰며 난장판을 만들거나, 물건을 빼돌리다 걸리면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등의 행동은 높은 서열을 즐기고 싶은 마음이 작동하는 것이다. 진상손님을 만나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해보라.
‘당신도 참으로 불쌍한 인간이구만, 여기 와서 서열 회복을 하려고 하다니….’ 이제 우리 뇌에게 깨달음을 줄 시간이다. 이건 ‘서열 싸움’이라고. 높은 사람 데려오라고 앞에서 악을 쓰며 난장판을 만드는 진상손님이 있을 때 이렇게 뇌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바로 이 사람이 서열 스트레스를 나에게 풀고 있구나.’, ‘당신은 틀림없이 콤플렉스 덩어리일 거야.’, ‘당신은 서열의 밑바닥인 거 알고 있어! 여기에서 왕이 되고 싶은 거지? 불쌍한 인생아.’라고 인식하는 순간 스트레스는 거짓말처럼 줄어든다. 그것은 마음속의 서열이 손님보다 위에 자리 잡기 때문이다. 우리 뇌에게 알려만 주면 뇌는 알아서 우리의 마음을 방어해주고 치료해준다.
감정노동 방어권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무자비한 진상손님이나 도저히 대화가 안 되는 고객과 마주쳤을 때, 지속적으로 고객을 응대하지 않고 그 자리를 피할 수 있는 권리이며 일방적으로 사과하지 않을 권리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매장에서 종업원은 상대하기 어려운 손님과 실랑이가 벌어지면 그 사건이 종결될 때까지 자리를 지켜야 하는 게 현실이다.
어떤 대형마트의 시식코너에서 굽고 있는 고기에 침을 뱉는 손님이 있었다고 한다. 종업원이 치욕스럽고 너무 놀라서 아무 말도 못하고 벌벌 떨고 있는데, 그 손님은 다짜고짜 고기가 질기고 맛이 없다며 매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버렸다. 이런 경우에도 그 종업원은 “죄송합니다. 고객님.”을 외치며 사태를 수습하려고 했지만 막무가내인 손님에겐 역부족이었다. 더군다나 관리자는 일방적인 사과를 강요해 고기를 잘못 구운 것에 대해 굴욕적인 사과를 해야만 했다.
결국 그 종업원은 마음의 상처를 크게 받고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이 경우도 다른 관리자가 빨리 그 현장에서 종업원을 떼어내 다른 곳으로 보냈다면 그렇게까지 큰 상처를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텔레마케터의 경우 성희롱을 하고 욕을 해도 절대 전화를 먼저 끊어서는 안 된다는 규칙을 강제하는 기업이 있다. 그러나 감정노동 방어권이라는 개념이 정착된다면 먼저 전화를 끊을 수 있는 행동이 정당한 감정노동자의 권리로 정착될 것이다. 그리고 이 경우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감정노동 방어권에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고객의 잘못이 명백한데도 “죄송합니다. 고객님.” 하며 사과하는 것은 인격살인이라고 보면 된다.
이제 서비스업 종사자 천만 명 시대이다. 은행원, AS센터의 수리기사, 식당의 종업원, 마트의 계산원, 호텔직원도 모두 우리의 가까운 친구이며 친척이다. 그리고 나 자신이다. 일방적인 고객만족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종업원을 존중할 때 내가 존중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필요한 때이다.
 
 
김태흥
연세대학교를 졸업한 후 광고대행사에서 카피라이터와 부사장으로 근무했다. 감정노동이 이슈화되기 전인 2011년부터 관심을 갖고 감정노동연구소를 설립했다. 현재 국가중앙공무원, 국가인권위원회, 덕성여대 교양학부 강사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