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어 보이신 찬란한 세계

수덕사 노사나불 괘불탱

2014-02-08     불광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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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 예산 수덕사는 덕숭총림으로 우리나라 근현대 선종의 기틀을 확립한 선불교의 주요 산실이다. 백제 계통의 사찰로, 고려시대에 중창되어 대웅전은 1308년에 지어졌다. 간결하고도 고졸한 구조와 주심포계 맞배지붕 건축으로 유명하다. <수덕사 노사나불 괘불탱>을 거는 장면. 높이 10미터가 넘는 초대형 불화가 괘불대에 걸리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 생각의 99%는 자기중심적입니다. ‘나는 왜 이렇게 힘들지?’ ‘나는 왜 이렇게 안 되지?’라는 식으로 생각에 계속 ‘나’가 따라붙습니다. 우리는 형태도 없고 색깔도 없는, 우리의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의 절대적인 작용을 믿어야만 합니다. 모든 형태와 색깔이 나타나기 이전에 존재하는 그 무엇을 믿어야만 합니다. ‘공空’에 대한 믿음은 누구에게나 필요합니다.
공이라고 해서 없다거나 공허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특정한 형태를 취하여 나타날 준비가 늘 되어있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이것을 불성이라 하며, 이것이 부처 자체입니다. 우리 자신이 진리 또는 불성의 체현體現임을 깨달을 때, 비로소 우리는 자기중심적 관점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스즈키 순류, 『선심초심』 중에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정신적 스승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일본인 선사 스즈키 순류는 미국에서 선을 확립시킨 인물로 유명합니다. 애플사의 창시자 스티브 잡스가 정신적 스승으로 삼았던 분으로도 잘 알려져 있지요. 회사이름 ‘애플Apple’은, 스티브 잡스가 오리건 주의 선불교 수행을 하던 장소가 사과농장이어서 그곳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지었다는군요. 스즈키 순류는 “우리는 공에서 나와 공으로 돌아간다는 진리를 확고하게 믿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자꾸 ‘나’라는 생각이 끼어들어 순간순간 삶이 무명으로 덮이고 마는군요.
 

03 <수덕사 노사나불 괘불탱>
1673년, 마본채색, 1059x727cm, 보물 1263호 충남 예산 수덕사 소장.
 
| 공에 대한 확고한 믿음, 색즉시공 공즉시색
이번 호에 소개할 불화는 <수덕사 노사나불 괘불탱>입니다. 수덕사 하면 경허 스님, 만공 스님 등 구한말 및 근대를 이끈 큰스님이 나신 곳으로 유명합니다. 정혜사와 견성암 등 참선도량으로 전통 깊은 곳이라서 그런 걸까요. 수덕사 경내로 들어서면, 누구라도 순간 “휴~” 하고 마음 놓게 하는, 특유의 맑고 온화한 기운이 있습니다. 마치 고향의 품에 안긴 것처럼 말입니다. 수덕사에는, 얼마 전 입적하신 불화장 석정 스님께서 “괘불을 조성할 때 표본으로 삼을 만하다”고 말씀하신, 노사나불 괘불이 있습니다. 1673년 조성된 이후, 18세기 두 차례 그리고 19세기 두 차례 등 총 네 차례에 걸친 중수기록이 있습니다. 복원과 보존이 잘되어 시대의 모범으로 삼을 만한 걸작입니다.
 
| 압도하는 강렬한 에너지, ‘원만보신 노사나불’
<수덕사 노사나불 괘불탱>은 높이 10미터가 넘는 어마어마하게 큰 초대형 괘불입니다.(도판3) 거대한 노사나불이 정면으로 서서, 양 팔은 접어들어 손바닥을 위로 가게 손목을 꺾어 양 손가락을 동그랗게 말아 ‘설법인’의 수인(손모양)을 하고 계십니다. 부처님의 장대한 몸은 다채로운 영락 구슬로 아름답게 장식되었습니다. 머리에 쓴 보관에서는 신비스러운 기운이 뻗어 나오고 그 끝에서는 부처님이 탄생하고 있습니다.(도판4) 부처님의 몸에서는 빨강, 노랑, 파랑, 초록, 하양의 오색찬란한 빛이 강렬하게 뿜어져 나오고 있습니다. 부처님 양 옆으로는 문수보살, 보현보살, 지장보살, 관세음보살 등 온갖 보살님들이 모두 출동하였습니다.(도판5, 6) 그림 상단 양쪽으로 십대제자, 그리고 하단 양쪽 가장자리는 사천왕이 나뉘어 그려져 있습니다. 주존 부처님을 협시하는 보살·제자·천왕 등의 구성을 보면, 석가모니 부처님 영산회상의 협시 군중을 아우르고 있네요. 그러니, 노사나 부처님은 석가모니 부처님이기도 합니다. 또 보관 한 가운데 법신 비로자나 부처님을 얹었으니(도판4), 비로자나-노사나-석가모니의 삼신三身이 모두 상통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네요.
 
| 뿜어져 나오는 찬란한 빛의 에너지
하늘을 찌를 듯한 괘불대에 노사나불 괘불이 걸려허공에 펼쳐지는 순간, 우리는 그 거대한 찬란함에 압도당해 버립니다. 장엄한 금빛 몸에서는 강렬하고 상서로운 빛이 뿜어져 나와, 주변 도량의 어둠과 번뇌를 단박에 청소해 버립니다. 그 가피의 힘으로, 하늘·땅·바다는 청정도량으로 정화됩니다. 노사나불이 그림으로 그려질 때는 휘황찬란한 장식을 한 보살님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몸에서는 오색 찬연한 빛이 뿜어져 나옵니다. 우주의 경전이라 일컬어지는 『화엄경』에는, 노사나불의 몸체에서 중중무진 세계가 탄생하는 과정이 초방대한 스케일로 장황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노사나불은 한량없는 광명을 시방으로 발사하여 비추는데, 털구멍에서 화신의 구름을 내어 무량한 가르침으로 중생을 제도한다.”라고 합니다. 인간의 오감과 인지의 한계를 넘어서는 부처님 세계의 생성 과정과 그 현상에 대한 묘사입니다. 그러니 노사나불이 나투신 모습을 묘사한 이 불화는, 세상이 탄생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장엄한 광경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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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라만상을 일으키고 있는 노사나불. 보관 한 가운데에는 이 모든 것은 ‘하나’라는 법신 비로자나불이 앉아계신다. 연기하여 일어나는 부처의 세계를 몸소 보여주시는 노사나불의 좌우로 지장보살, 관세음보살이 몸을 나투었다.
 
| 성품자리에서 ‘성기性起’하는 장엄한 광경
‘노사나’는 산스크리트어(고대 인도어)인 바이로차나Vairocana를 음역한 것입니다. ‘Vairocana’는 비로자나 또는 노사나라고 번역됩니다. 비로자나와 노사나를 천태 대사의 삼신사상에 따라 구별하기도 하지만, 본래는 한 어원에서 나온 용어입니다. Vairocana의 뜻을 직역하면, ‘광명편조光明遍照’입니다. ‘빛이 두루 비친다’는 의미로, ‘빛이 삼천대 천세계에 구석구석 비치어 작용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성품자리에서 ‘성기性起’하는, 즉 성품이 일어나는 신비스럽고도 장엄한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 노사나불 출현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불가사의한 우주의 생성 원리를 글로 옮겨 놓은 것이 『화엄경』이고, 이것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 ‘노사나불’ 불화입니다. 그렇게 이루어진 노사나불의 세계가 바로 연화장세계(또는 화장세계)입니다.
 
| 불성佛性이 연기緣起하는 모습을 그림으로
노사나불은 무수한 ‘불성이 연기하는 장엄한 광경’을 표현한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은 것, 바로 ‘연기법’입니다. 그렇기에 석가모니 부처님 일대기를 그림으로 그린 <팔상도>에는, 깨달음 이후의 <녹원전법상>에 해당하는 장면에 반드시 노사나불이 등장합니다. ‘연기의 원리’를 몸소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지요. 앞서 인용한 스즈키 순류 선사의 친절하고도 쉬운 표현을 빌리자면, “모든 형태와 색깔이 나타나기 이전 그 무엇의 세계”입니다. 응화신 이전의, 진리의 세계를 말합니다. 우리의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육안의 세계 이전 또는 이면의 모습입니다. 구미歐美의 유명한 영성지도자 아티야 샨티가 말하는 ‘춤추는 공’의 세계입니다. 형체가 사라질 때 융해되어 버리는 바탕자리의 모습입니다. 아마도 ‘깨달음’의 체험이라는 것은, 이쪽 세계의 모습을 얼핏 보았다는 것이겠지요.
 
| 연기하여 피어나는 꽃의 세계
수덕사 청련당에는 만공 스님이 쓰신 ‘세계일화世界一花’라는 현판이 있습니다.(도판8) ‘세상은 피어난 한 송이 꽃’이라는 뜻입니다. 이 세상과 이 세상의 온갖 만물은 모두 ‘불성佛性이라는 씨앗이 피운 꽃’이라는 것이 불교의 우주관입니다. ‘거대한 씨방에서 → 무수한 씨앗이 나와 → 꽃을 피운 것’이라는 생성 원리를 이야기합니다. 우주의 바탕과도 같은 광대무변한 불성(바탕자리 또는 성품자리, 마음자리라고도 합니다)에서, 중중무진한 불성의 입자들이 나와서, 서로 상즉상입 연기하여, 형태와 색깔이 있는 하나의 형체로 모습을 갖추는 원리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 또는 세상만물은 모두 하나하나 꽃 피게 되는군요. ‘꽃으로 장엄했다’라는 화엄華嚴세계의 뜻이 이것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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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나불께서 광명을 놓으시니 그 속에서 수천 수백의 부처님 화신이 탄생하였다. 만공 스님이 쓰신 ‘세계일화世界一花’(세상은 한 송이 꽃) 현판, 수덕사 청련당. 노사나불의 발과 휘날리는 천의 자락, 배경에는 오색 상서로운 기운이 뭉게뭉게 피어나고 있다.
 
| 노사나, 보살님인가 부처님인가
그런데 노사나불의 몸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법장 스님의 해석에 따르자면, 광명에는 지광智光과 신광身光이 있다고 합니다. 지광은 진리와 중생을 비추는 빛이고, 신광은 사람들을 눈뜨게 하는 빛이라고 하는군요. 하나는 ‘지혜’의 빛이고, 하나는 ‘자비’의 빛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나는 ‘자각’의 불을 밝히는 지혜의 빛이고, 하나는 무명 속 중생을 ‘제도’하는 빛입니다. 자수용신自受用身과 타수용신他受用身은 이 양자를 말하겠지요. 자리행自利行과 이타행利他行을 함께 갖춘 종합적 존상입니다. 이렇게 양자의 모습을 갖추었으니, 부처님이기도 하고 보살님이기도 하시네요. 보살님의 모습을 하고 부처님이라 불리는, 헛갈리는 존상의 노사나불. 그 헛갈림 속에 존상의 오묘한 본질적인 의미가 들어있네요.
 
그 때 노사나불께서 이 대중을 위하여 백천항하의 모래 수처럼 많은 불가사의한 설법문 가운데 마음자리[心地]를 터럭 끝만큼 조금만 열어 보이셨다. “이것은 과거의 모든 부처님께서 이미 말씀하셨으며 미래의 부처님께서 마땅히 말씀하실 것이며 현재의 부처님이 이제 말씀하시는 바니, 삼세의 보살들이 이미 배웠고 마땅히 배울 것이며 이제 배우는 바니라. 내가 이미 백겁 동안 이 마음자리를 닦았기 때문에 나를 노사나라 하나니, 그대들 모든 부처님도 내가 말한 바를 말하여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마음자리의 도를 열게 하라.”
- 『범망경노사나불설보살심지계품』 서분 중에서
 
 
불교 기초 상식 佛敎 基礎 常識
 
괘불掛佛이란?
괘불은 ‘걸 괘掛’와 ‘부처님 불佛’자를 써서, 걸어놓는 부처님 그림이라는 뜻입니다. 괘불은 보통 5, 6미터에서 크게는 14미터에 달하는 초대형 걸개 그림을 말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약 80여 점 남아있다고 전하는데요, 그 크기가 어마어마하여 한번 움직이는 데 장정 20여 명 이상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큰 크기의 대형 불화를 대대로 조성하여 다량 보유하고 있는 전통은 다른 나라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것입니다. 조선왕릉 40기가 한꺼번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듯, 우리나라 괘불도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단 티베트 불교에서도 이처럼 큰 크기의 불화를 볼 수 있는데요, 초대형 탕카는 자수로 제작한 수불繡佛이며 비스듬한 언덕에 내리 펴서 모십니다. 한국의 괘불은 오색 찬란한 채색 그림이고, 괘불대에 반듯이 세워 걸어 마치 허공에 부처님이 몸을 나투신 듯 영험한 효과를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