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림'이 아닌 '다름'을 이해하는 첫걸음

제2회 한국종교문화체험사업 현장

2014-02-08     불광출판사
 


7월 10~13일 한국종교문화체험사업이 진행됐다. 한국불교종단협의회(회장 자승, 이하 종단협)가 주최하는 이 행사에는 조계종 총무원 실무자를 비롯한 불교계 각 종단 실무자, 국제포교사 등 총 11개 단체 35명이 참석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이 행사는 문화체육관광부 지원 사업이기도 하다. 과연 이 행사는 종교, 종파 간의 담장을 시원하게 허물어줄 수 있을까? ‘틀림’이 아닌 ‘다름’을 인정하고 다양한 종교가 함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내딛은 힘찬 발걸음들을 지면에 담아왔다.
 
| 서로에 대한 호의를 감추지 않았던 3박 4일
“천주교는 1774년에 한국에 들어왔어요. 다른 나라의 경우 천주교가 전파될 때 선교사들에 의해서 전파됐지만 한국만이 유일하게 일반 신자가 중국에서 세례를 받은 후 전파했습니다. 당시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유교학자들이었지요. 그 사람들이 모여서 기도하고 연구하던 곳이 바로 명동이었습니다.”
세실리아 수녀의 설명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한국의 천주교 역사에 있어서 명동이 얼마나 중요한 위치에 있는 곳인지 이제야 이해가 된다는 표정이다. 세실리아 수녀의 설명이 이어졌다.
“하지만 천주교의 전파는 쉽지 않았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조상에 대한 제사 문제였지요. 천주교는 제사를 금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짐승만도 못하다는 이유로 박해를 당했지요. 물론 지금은 제사도 지내고 있습니다. 다만 형식에 있어서 차이가 있지요.”
설명을 듣는 모습은 다채로웠다. 누군가는 수녀의 설명을 열심히 받아 적고 있었고, 누군가는 녹음을 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열심히 수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가기도 했다. 그리고 함께 나눠 마시는 아이스커피. 폭우를 예고하는 찜통더위에 명동성당 측에서 나눠준 시원한 아이스커피 한 잔은 두 종교 간의 거리를 가깝게 만들어 준 촉매제나 다름없었다.
이런 풍경은 행사가 진행되는 3박 4일 내내 이어졌다. 조계종 총무원에서 시작해 진각종 통리원,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 명동성당을 거쳐 부안 내소사, 익산 원불교 총부, 진안 마이산의 금당사와 탑사, 공주 전통불교문화원, 천태종 관문사 등을 방문하는 내내 해당 방문지의 성직자들과 참가자들은 서로에 대한 호의를 감추지 않았다.
특히 많은 참가자들이 관심을 두었던 곳은 원불교 총부였다. 원불교는 현재까지도 같은 종교로 볼 것인가, 아니면 불교의 색깔이 강한 민족종교로 볼 것인가를 두고 저마다의 해석이 다른 종교다. 실제로 종단협 창립 멤버이기도 했지만 이내 탈퇴해 각자의 노선을 걸어왔다. 현재는 별개의 종교로서 불교, 개신교, 천주교와 함께 4대 종교로 분류되기도 한다. 일부 참가자는 원불교 총부를 돌아본 후 “반야심경, 금강경 등 불교의 경전을 공부하고 명상수행을 하는 것은 불교적인 측면이 강하지만, 전체적인 느낌으로는 민족종교로 봐야 할 것 같다.”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내놓기도 했다.
 
진각종
대한불교 진각종眞覺宗은 1953년 8월 회당悔堂 손규상(1902~1963) 대종사가 창종했다. 밀교계에 속한 한국불교의 한 종파이다. 『대일경』·『금강정경金剛頂經』·『대승장엄보왕경大乘莊嚴寶王經』을 소의경전으로 삼는다. 남자 성직자를 정사, 여자 성직자를 정수라고 부른다. 법당을 심인당이라 부르는데 마음을 닦는 곳이기 때문이다. 일체가 모두 부처이므로 굳이 불상을 두지 않고 있는 게 특징이다. 그래서 오직 수행의 방편으로 ‘옴마니반메훔’이라는 진언을 가운데에 모시고 있다. 수행은 희사와 염송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한다. 희사는 내가 가지고 있는 고통의 근본 욕심, 어리석음, 성냄을 버리는 행위를 보시로 실천하는 것이다. 물질을 정화하는 것이 희사법. 마음을 정화하는 것이 염송이다.

 
대한성공회
성공회(聖公會, Anglican Church, Episcopal Church)는 전 세계 170여 개국에 38개의 독립적이고 자치적인 지역 성공회 교회(관구)로 이루어져 있으며, 신자는 약 1억 명 정도인 기독교 교회다. 영국에서 시작되었으며, 구교와 신교 사이의 극단을 지양하고 서로의 장점을 포용하려는 전통을 가진 것이 특징이다. 국가단위로 교회 운영이 이뤄지며, 독립적인 의결체계를 가지고 있다. 서울대성당은 전형적인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이고 그 안에 모셔진 황금 모자이크는 초기 로마교회에서 사용하던 양식 그대로 10년에 걸쳐 만들어진 것이다. 조지 잭이라는 작가가 영국에서 직접 건너와 만들었다.

| 내년에는 이슬람 사원 방문도 계획
이런 사례들처럼 이 행사는 종단 내 실무자들이 이웃종교와 불교 내 각 종단에 대한 이해를 넓힐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이 행사 이전에는 한국종교인평화회(KCRP)에서 진행한 7대 종교 템플스테이와 같은 행사가 있었지만, 불교계에서 일하고 있는 일꾼들의 시야를 넓히기 위한 사업이 아니었기에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다. 또 종교 간 화합을 위한 행보를 가장 먼저 불교계가 실천에 옮기고 있는 행사라는 점도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지점이다.
이번 연수 일정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개신교에 대한 방문 일정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개신교는 불교계처럼 각 종단이 중앙기관을 두고 전체를 컨트롤하는 형식이 아니다. 종단협 측은 한국의 개신교에 있어 종파는 개별 교회의 공동체 개념에 더 가깝다고 풀이했다. 이 말은 어느 한 곳의 교회만을 보고 개신교 전체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이유로 지난해와 올해 연수 일정에는 개신교를 제외한 성공회, 천주교, 원불교 등의 이웃 종교와 천태종, 진각종 등의 대표 종단들만이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내년에는 현재의 일정에 가벼운 변화가 예정되어 있다.
“사실 세계의 대표적인 종교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종교가 바로 이슬람교예요. 실제로 어마어마한 신자수와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종교라고 이야기 할수 있죠. 2000년대 초반 이후로는 참 많은 오해를 받고 있는 종교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내년부터는 이슬람 사원에 대한 방문도 일정에 포함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어요.”
종단협 양정술 팀장의 말이다. 양 팀장은 이 사업이 잘 운영된다면 향후 종교 간의 화합을 위한 주춧돌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수의 연수단장을 맡은 종단협 사무처장 각우 스님도 비슷한 견해를 비쳤다.
 
천주교
로마 가톨릭교회(Ecclesia Catholica Romana) 또는 로마 교회의 한자식 표기다. 로마 바티칸을 성도聖都로 삼고 있으며 예수의 대리자인 교황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 약 12억 정도의 신자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교황, 추기경, 대주교, 주교, 사제의 순으로 위계가 정해져 있다. 주교가 맡는 지역을 교구라 일컬으며 주교 혹은 대주교가 교구장을 맡는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16개의 교구가 있고 각 교구장들은 한국천주교 주교회의에서 의견을 일치시키는 형식으로 교회를 유지하고 있다. 남자 성직자를 수사, 여자 성직자를 수녀라 부른다. 수사 중 신부 서품을 받은 사람을 수사 신부라고 부르고 주교에게 소속된 신부를 교구 사제라고 한다. 불교의 이판・사판과도 같은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원불교
원불교圓佛敎는 소태산少太山 박중빈 대종사가 1916년에 창시했다. 한 마디로 정신과 물질의 조화를 추구하는 종교라고 정리할 수 있다. 소태산 대종사가 깨달은 궁극적 진리인 법신불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준으로 삼는다. ‘불법이 생활이요, 생활이 불법이다’라는 기조로 어떻게 부처를 닮아갈 것인지 고민하며 언제나 마음공부의 자세로 불법을 실천하는 종교이기도 하다. 100여 년의 짧은 역사 속에서 눈부시게 발전을 거듭하며 현재 16개 교구 내에 500여 개의 교당이 운영되고 있으며, 215개의 기관이 별도 운영되고 있다. 또 세계 20여 개 나라에 진출해 해외포교에서도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조계종의 총무원장에 해당하는 직책을 종법사라 부르며 현재 제5대 경산 종법사가 원불교를 이끌고 있다.

 
| 다양한 종교가 함께 공존하는 세상을 위하여
“이번 연수를 통해 얻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수확은 각각의 종교와 각 종단이 ‘맞고 틀림’이 아니라 ‘서로’ 다를 뿐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체험했다는 점입니다. 각각의 종교들과 불교계의 각 종파는 형식이 다를 뿐이라는 걸 참가자들이 모두 공감했을 겁니다. 이 연수에 참가한 사람들은 일반 대중과 종교, 특히 불교 사이에서 접점을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분들입니다. 이번 연수의 결과물들은 참가자들이 앞으로 각자의 위치에서 활동하는 데 있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행사에 참가한 참가자들의 반응들도 긍정적이었다.
“지난해에도 참석했었는데 올해는 느낌이 색다르네요. 새롭게 배워가는 것도 많았고요. 전반적으로 지난해에 비해서 참가자들의 연령대가 낮다보니 훨씬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모습들이 많아보기도 좋았습니다. 앞으로 좀 더 다듬어진다면 불교계 종사자들에게 정말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김숙자, 61, 국제포교사)
“불교계에서 일을 하면서 이웃종교에 대해 관심을 가지거나 자세히 들여다 볼 기회가 없었어요. 그것에 대한 필요성도 잘 못 느꼈죠. 그런데 이번 연수를 통해서 여러 종교와 종파들을 관심있게 지켜보고 나니 확실히 실무자로서 시야를 넓힐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아주 좋은 기회였습니다.”(김정은, 38, 한일불교교류협회)
물론 이 행사가 가야 할 길은 아직 멀다. 올해로 2회를 맞이한 행사이기 때문에 개선해야 할 점도 많다. 특히 “종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의식이기 때문에 다음부터는 각 종교와 종파의 의식을 직접 참관하는 기회도 주어졌으면 좋겠다.”(김종원, 39, 보문종)는 의견은 종단협 측에서도 적극 고려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아울러 종단협 측은 최소 4회에 걸쳐 유사한 패턴으로 행사를 진행한 후 각 참가자들의 의견을 종합해서 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사업들을 만들어 가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과연 종교 간의 화합은 실현 가능한 것일까? 화합의 기본 전제인 소통이 가진 의미가 ‘상호 이해’라는 것을 떠올려볼 때 ‘종교 간 화합’은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이 행사가 종교, 종파 간 소통을 위한 이해의 첫걸음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