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울력이 가져온 서방의 작은 변화

원광사의 가든 파티

2014-02-08     불광출판사
 


 
헝가리 원광사에는 텃밭이 있습니다. 텃밭은 절에서 필요한 채소와 과일을 충분히 재배하기 위해서 처음부터 계획하여 조성한 것입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과일 재배를 담당하는 팀은 100kg 넘게 수확한 체리를 저장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봄, 여름 사이의 여러 행사 중 하나입니다. 텃밭을 담당하는 팀은 오늘 아침 양배추, 감자, 오이, 토마토, 파프리카, 호박과 함께 다른 야채들에 문제가 없는지 살펴보며 풀을 다듬고 있는 중입니다.
 
 
 
| 헝가리에 이어진 울력의 전통
중국 당나라 때 고승 백장 스님께서 말씀하셨지요. “일하지 않으면 먹지 않는다.” 스님께서는 큰 절에 살며 나태해진 스님들에게 제대로 된 약을 처방해 주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고령의 스님께서 울력에 참여하시는 것이 안타까워 스님의 농기구를 감췄습니다. 그러자 스님께서는 계속 굶으셨다고 합니다.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셨던 것입니다. 그 단호한 모습에 제자들은 스님의 농기구를 돌려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로 백장 스님께서는 다시 울력에 참여하시고 잘 잡수셨다고 합니다.
아시아 불교의 황금기였던 신라와 당나라 시대에도, 스님들은 마음 수행과 함께 울력을 해야 했습니다. 어느 절이든 울력은 스님들이 수행하며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대승불교의 전통은 이렇게 이어져 온 것입니다.
원광사가 전적으로 절에서만 자급자족하기 위해 텃밭을 가꾸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텃밭을 가꾸면서 배우는 자연과 우리 사이의 관계입니다. 자연은 우리에게 수없이 가르침을 주지만, 우리는 자연의 가르침을 잘 모르고 있어요. 도대체 무엇이 빠진 것일까요? ‘무엇이 자연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것일까?’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해 봅니다.
자연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한 가지는 지난 수백년 간 지속된 우리의 생활 습관입니다.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이어져 내려온 일부 농업 문명을 제외하면, 인류는 지구에서 살며 지속적 으로 자연과 함께 살 수 있는 뚜렷한 방법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절에서 재배한 음식의 맛은 놀라울 정도로 맛있습니다. 직접 재배해 수확한 음식은 슈퍼마켓에서 사 먹는 것과 상당히 다르지요. ‘수확 → 운송→ 냉각 → 진열’의 과정을 거친 음식을 구매하는 것은 직접 재배하는 것과 큰 차이가 있습니다.
 
| 텃밭에서 자연농법을 터득하다
선진국의 농업체계는 보건의료시스템과 비슷합니다. 큰 회사들이 종자를 만들고 작물을 재배해 대량 생산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봐도 1960년대 대규모 농업이 대규모 보건의료업보다 다소 늦은 시점에 시작됐습니다. 이 당시 미국의 한 장관이 “대규모 생산이 힘들면, 농사를 그만 둬라!” 라고 했지요. 이때부터 소규모 농장들이 사라지고 대규모 단일재배 농장이 등장했습니다. 대규모 농장이 많은 미국 남부에 비해 농경지가 작았던 미국 북부에서조차 대규모 농업은 확산일로의 길을 걷습니다.
요즘 서반구는 유전자 조작에 의해 생산된 작물을 재배하는 산업화된 농경문화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잡다한 종류의 농작물이 이렇게 생산됩니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특정 작물의 가장 좋은 특징을 살려서 빨리 확실하게 많이 수확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변형된 식물의 씨앗은 어떠한 방법으로도 번식시킬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산업화로 인해 변형된 식물이 너무 많아져, 이제는 DNA 체계를 기반으로 한 자연 생식은 불가능해졌습니다. 결국 농작물을 수확하기 위해 끊임 없이 씨앗을 사야만 하는 것이죠.
이에 비하면 우리 절에 있는 텃밭은 훨씬 간결합니다. 6년 전쯤 한 노부부로부터 땅을 샀습니다. 파르카스Farkas 가족은 항상 이 400평의 땅에 취미 삼아 텃밭을 가꿨고, 우리에게 땅을 판 후에도 계속 근처에 살았습니다. 그분들은 우리가 텃밭을 가꾸기 시작한 때부터 그 다음해 여름까지 여러 모로 도움을 주었습니다. 지금도 텃밭을 가꾸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할 만합니다.
도시인들은 텃밭을 가꾸는 것이 TV를 켜는 것처럼 쉽다고 생각합니다. TV를 켰다 끄듯이 텃밭을 가꿨다 말았다 할 수는 없지요. 우리는 처음 몇 년간 언제 묘목을 만들고 땅에 심는지, 어떤 농작물이 이 땅에 잘 자랄 수 있는지 등 농업과 관련한 여러 가지 특성을 배워야 했습니다. 텃밭을 가꾸기 시작한 지 3년째, 우리는 근처의 바이오팜(bio-farms, 생물농장)을 방문했습니다. 바이오팜이 생긴 지는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우리는 자연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농작물을 균형 있게 재배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바이오팜에는 텃밭을 가꾸는 데 필요한 나름의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왔습니다. 봄에 꽃가루가 날아다니는 것처럼 수많은 아이디어가 둥둥 떠다녔습니다. 이렇게 생각으로만 가득한 사람들은 그들의 방법으로 우리가 텃밭을 가꾸면 좋겠다고 했지만, 우리가 텃밭을 가꾸는 실질적인 방법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텃밭을 잘 가꿀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들이 있습니다. 많은 시행착오 끝에 우리의 텃밭을 가꿀 적임자를 찾은 것이지요. 벨라Béla는 신생 영적 공동체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어, 마음을 열고 ‘오직 할 뿐!’이라는 일념으로 우리와 함께 일할 수 있었습니다. 벨라는 영적인 환경에서 수행을 했지만 한 곳에 오래 있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배낭을 메고 몇 군데를 옮겨 다니며 살았기 때문에 자신만의 텃밭은 따로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벨라가 한 곳에 정착해 한 텃밭만을 가꾸었다면, 여러 곳을 다니며 그곳에 다양한 도움을 주지는 못했겠지요. 에리카Erika는 처음 3년간 우리 절 텃밭을 가꿨는데, 그 후로 발라즈Balázs, 즈수즈사Zsuzsa와 에스즈터Eszter가 우리와 함께 일했습니다.
지난 주말에는, 벨라가 처음으로 원광사에서 3일간 워크샵을 진행했습니다. 때마침 원광사를 방문한 체코 프라하, 오스트리아, 헝가리 부다페스트와 버여, 헝가리 선불교 그룹에서 온 분들이 원광사에 있던 다섯 명의 한국 분들과 함께 모이게 된 것이지요.
 
| 수행의 열매는 달콤하다
참으로 굉장한 가든 파티였습니다! 이번 기회로 우리는 효율적으로 텃밭을 경작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땅을 더 샀고 내년 봄에는 온실도 설치합니다. 헝가리의 여름은 한국보다 빨라 우리는 5월 말부터 9월 말까지 과일과 채소를 추수한 후 보관합니다. 우리는 해충의 피해를 피하기 위해 다양한 종류의 농작물을 나란히 촘촘히 심어 재배합니다. 또한 허브와 유기농 재료로 직접 살충제와 영양제를 만들어 사용합니다.
물론 우리가 재배한 과일과 채소는 시장에서 구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때때로 우리는 우리처럼 농작물을 재배하는 사람들과 교류하며 농작물을 나누기도 합니다.
우리는 시장에서 돈을 버는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멀리 떨어져, 현재 중동과 유럽을 장악한 악몽 같은 관료주의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우리는 작은 규모지만 좋은 품질의 농작물을 실용적으로 재배하는 것이 무척 행복합니다. 우리의 이러한 노력은 많은 사람들이 함께 수행하며 몸과 마음을 닦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든지 원광사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수행의 열매를 맛보시기 바랍니다. 분명 그 열매는 굉장히 달콤할 것입니다.
 
 
청안 스님
헝가리에서 태어나 20대 초반인 1991년 숭산 스님을 만났고 1993년 미국 프로비던스에 참가해 이듬해 28세의 나이로 출가했다. 이후 한국의 화계사, 해인사 등지에서 수행했다. 1999년 지도법사 인가를 받고 2000년 고국으로 돌아가 헝가리 관음선원 주지를 맡았으며 부다페스트에 선원을 세워 대중을 지도하며 정진했다. 이후 유럽 각국에서 불교와 선 수행법을 알리고 있다. 현재 헝가리에 유럽 최초의 한국식 사찰인 원광사를 짓고 주지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