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재난으로부터 중생을 구제하다

법주사 원통보전 〈관세음보살도〉

2014-02-08     불광출판사

법주사 원통보전의 목조 관세음보살좌상과 관세음보살 후불탱. 주존인 관세음보살 조각상과 그 뒤의 탱화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목조관음보살좌상(1655년, 높이 235cm, 너비 147cm, 보물 제1361호): 몸체의 볼륨감과 화려하고 섬세한 디테일, 그리고 펄럭이는 리본과 천의(天衣) 자락은 관세음보살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에너지를 잘 표현하고 있다.
관음보살후불탱(1897년, 견본채색, 420x332.5cm): 화려한 붉은 보관, 오색찬란한 광배, 현란하게 나부끼는 붉은 리본·녹색 천의·흰색 군의(裙衣) 자락들은 넘치는 자비의 생명력을 표현한 것이다.
 
쓸데없는 말이지만
지금 어머니가 계신다면
나는 우선 어머니와 유럽을 떠났겠습니다.
산천경계 수만 리 머무는 곳마다
‘좋구나, 좋구나’ 하시겠지요.
‘시간이 없어요, 나 바빠요’
그 따위 천치 같은 말들은
천둥 번개 한가운데 내던져
벼락이나 맞게 두고
나중에요, 훗날에요 그따위 말도
어머니 대신 땅 속에 파묻겠습니다.
 
어머니가 지금 곁에 계신다면
하루 종일 나란히 앉거나 누워서 옛말을 이르고
어머니는 영신 ‘생각하면 꿈 같구나’, 하시겠지요.
여전히 ‘돈 아깝다 그냥 집에서 먹자’
걱정도 아닌 것을 걱정하겠지만
서울 장안 이름난 밥집을 찾아
구수하고 뜨끈하고 간간한 집에서
‘우리 어머니랍니다, 맛있게 해 주세요’
으스대는 듯 뽐내는 듯
빳빳한 새 돈을 사각대며 내놓겠습니다.
나는 왜 핑계로 다 놓쳤는지,
숱한 날 좋은 날을 건너뛰어서
어리석은 오늘에야 후회하는지
 
지금 곁에 어머니가 계신다면
분홍인 듯 하양인 듯 얼비치는 비단
숙고사, 항라, 께끼저고리를 자매처럼 입고
어머니를 앞세워 멋을 부리고
어머니밖에는 아무 할 일이 없는 것처럼
나는 한가하기 끝이 없고
어머니밖에는 세상이 없는 것처럼
어머니에 빠져 있을 것입니다.
‘나는 괜찮다, 네 일이나 하거라’,
그런 말은 입도 뻥긋 못하게
내가 할 일은 오로지 어머니,
어머니밖에는 아무 일이 없어
손을 잡다가 껴안다가
볼에 이마에 수천 번이라도
입을 맞추겠습니다.
지금 어머니가 살아계신다면,
쓸데없는 말이지만
지금 어머니가 곁에 계신다면
詩 ‘지금 곁에 계신다면’, 이향아
 
 

관세음보살 조각상과 후불탱화:‘조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입체감과 볼륨감,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는 디테일한 서사적 이야기의 양자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속리산 법주사로 향하는 길, 가을 코스모스가 한들한들 바람에 손을 흔들며 맞아줍니다. 조금 더 가니 나이 600살을 먹었다고 하는 천연기념물 소나무가 있었습니다. 세조가 행차를 하니, 소나무가 저절로 가지를 들어 길을 비켜주어, 정2품의 벼슬을 받은 소나무라고 하네요. 15미터의 어마어마한 키이니, 드리우는 그림자가 장관입니다. 도착한 법주사 사찰 마당, 정말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습니다. 청명한 하늘 품에 광활한 터가 자리 잡고 그 속에 사찰이 편안히 안겼습니다. ‘세속으로부터 벗어나다’는 뜻의 속리산俗離山 지명 그대로, 복잡하고 어수선한 세상을 떠난 자유롭고 밝은 공간입니다. 시간도 쉬어가는 그런 자리입니다.
 
| 강렬한 ‘자비’의 힘
법주사에는 국내 현존하는 유일한 목탑인 팔상전을 비롯해 많은 유명 전각과 유물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이번호에 소개하는 작품은 원통보전에 모셔진 <관세음보살> 탱화입니다. 무심코 원통보전을 들여다본 관람객들은, 순간 ‘헉’ 하고 멈추게 됩니다. 전각에 모셔진 관세음보살 조각상과 불화가 보는 사람을 압도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금빛 찬란한 관세음보살님은 엄청난 기운을 뿜어내고 계십니다. 높고 화려한 보관, 휘날리는 옷자락, 피어오르는 오색 상서로운 기운, 조각상과 뒤의 탱화가 하나로 어우러져 절묘한 상승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법주사 포교국장 도암 스님은 “여기서 기도하면 기운이 넘쳐 하던 일이 잘 되는 경우가 많다” 하시는데, “적당히 해야지 너무 오래 기도하면 기운이 너무 넘쳐 아예 궤도를 벗어나 딴 길을 갈 정도”라 하시네요. 그도 그럴 것이, 여태껏 제가 본 관세음보살님 중에서 활기찬 기운으로 따지자면 단연 최고입니다.
 
| 모든 중생의 어머니
관세음보살님은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대중들이 가장 열렬하게 신앙했던 존상입니다. 고려시대에는 섬세하고 아름다운 ‘수월관음’이 크게 유행하여 무수하게 그려졌습니다. 은근한 화려함 속에 온화한 보살님이 보름달처럼 그 모습을 환하게 드러냅니다. 하지만 조선시대로 오면 관세음보살님은 활기찬 에너지로 넘치게 됩니다. 모든 재난으로부터 중생을 구제하는 막강한 구제신으로 표현됩니다.
고려시대의 수월관음이 어딘가 범접하기 힘든 신비하고 우아한 어머니라면, 조선시대의 관세음보살은 옷자락 휘날리며 등장하는 막강한 해결사 어머니입니다. 고려시대에는 귀족적인 모습으로, 조선시대에는 보다 서민적인 모습으로 그 시대상을 반영하며 관세음보살은 그 면모가 계속하여 변화해 왔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불자님들이 가장 많이 독송하는 『천수경』은, 관세음보살님의 광대한 ‘자비심’을 찬양하는 다라니경입니다. 관세음보살님은 ‘모든 중생을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아이’로 보십니다. “골수에 사무치도록 / 보살은 모든 중생을 / 자식처럼 여긴다.” 조건 없는 사랑의 대명사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관세음보살 후불탱화 속 부분: 상서로운 기운이 피어오르는 속에, 관세음보살의 지물인 버드나무 가지가 꽂힌 정병을 볼 수 있다. 탱화 좌측 아래에는 선재동자가 굽이치는 파도 속에 위태롭게 합장을 하고 서있다.
 
| 경전에 어머니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
불교경전에는 유교경전과 달리 어머니가 자주 등장합니다. 『지장경』과 『목련경』에는 공통적으로 지옥에 떨어진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라문의 딸이나 목련 존자가 어머니에게 낸 자비심은, 나아가 지옥에 떨어진 모든 중생들을 구하는 결과가 됩니다. “모든 중생은 한때 나의 어머니였던 적이 있다. 어머니의 고통을 어찌 외면하겠는가.” 감뽀빠(티벳불교의 큰 스승)께서 말하는 자비수행의 방법을 보면,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을 상기하는 것으로 시작을 하고, 어머니에 대해 일으킨 애잔한 사랑의 마음을 모든 중생에게 확대해 나아가는 것을 바탕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희생만 하라고? 그럼 나는 어떡하라고?’라며 억울해 하지 않는 ‘진정한 자비심’을 일으키려면, 평정심이 확립되고 모든 현상이 공空함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특히 편견이나 생각에 사로잡혀 모든 것이 실재한다고 믿는 중생에 대한 자비심이 생겨난다고 합니다. “평정심을 유지하고 / 공성을 깨달은 보살은 / 만물을 실재로 간주하는 마구니에 사로잡힌 / 중생에게 특히 자비심을 일으키네.” ‘깨달음과 자비’는 동전의 양면이라 하니, 깨달음의 척도는 샘솟는 ‘자비심’이겠군요.
 
| 자비심, 나를 보호하는 최상의 방법
“자비심을 내기 위해서 어떤 커다란 희생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마음속에 그 귀중한 보석을 담을 수 있도록 조금만 자리를 비워주면 된다. 만약 그 것이 진정한 자비심이라면 마음속에 평화와 조화, 단지 그 순간의 진실한 감정이 있을 뿐이다.”(『해탈장엄론』 서문, 감뽀빠) 어떤 극한 상황에서라도 자비심을 내는 것, 이는 자신을 가장 잘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관세음보살보문품」의 요지는, “불구덩이에 빠져도 / 바닷물에 떠내려가도 / 절벽에서 떨어지더라도 / 칼로 위협을 당해도 / 쇠고랑 차고 옥에 갇혀 손발이 묶여도 / 저주와 독약으로 음해를 당하더라도” 어떤 순간에라도 정신을 차리고 ‘나무 관세음보살’을 부르라는 것입니다. 목숨을 위협받는 순간에도 대상을 향해 ‘자비심’을 발하라는 깊은 뜻이, 얼핏 타력신앙으로만 비춰졌던 그 이면에 있었습니다.
 
| 주변 모든 것이 ‘자비의 작용’으로 보일 때
시한부 인생이나 사형수처럼 죽음에 직면하게 되면, ‘기어다니는 벌레가 사무치게 부러울 정도로 삶을 이어가고 싶은 욕망이 강렬하게 일어난다’ 고 합니다. 조금만 극한 상황이 되어도, 아니 단지 몇 끼만 굶어도 밥과 밥을 내어준 사람이 관세음보살로 보일 것입니다. 인생이 평탄하게 자기 편한 대로 돌아갈 때는 주변의 고마움을 잘 알지 못합니다. 진정 절박할 때 내밀어진 손, 건네진 말 한마디, 차려진 밥 한 끼, 쥐어진 돈 한 줌 등은 그냥 손·말·밥·돈이 아닐 겁니다. 생명수처럼 느껴지겠지요.
관세음보살로 표현되는 ‘자비’는 흐르는 생명입니다. 모든 형상 이면에 흐르고 있는 막강한 ‘생명’의 에너지입니다. 이 에너지는 돌고 돌수록 힘을 받아 커집니다. 증오·분노·편견·외로움 등 중생심의 장막으로 가로 막히면 생명의 에너지는 원활하게 돌지 못하게 됩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필사적으로 공기에 집착하듯, 우리는 항상 어머니가 주는 사랑에 목말라 있습니다. 틱낫한 스님은 ‘우리는 모두 어머니의 사랑을 찾아 헤매는 어린 아이와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사랑의 원천, 자비의 원천은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바로 그 자리에 항상 그렇게 있다는군요. 사랑 속에 있으면서 그 사랑을 모르고 있었네요.
 
 
 
불교 기초 상식 佛敎 基礎 常識
 
관세음보살님은 왜 ‘원통보전’에 모셔지나?
관세음보살님의 가피와 효험이 가장 잘 나타나있는 대중적 경전은 「관세음보살보문품」이다. 『법화경』의 말미에 실려 있는 「관세음보살보문품」은 『법화경』의 유포와 함께 우리나라 관음신앙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경전이다. 그런데 이것과 함께 꼭 알아두어야 할 것이 『수능엄경』의 ‘이근원통耳根圓通’이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경우, 관세음보살님이 ‘원통전’에 모셔지는 근거가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원통(圓通, 깨달음)에 드는 요체를 설명한 부분에서, 사바세계에서 깨달음의 세계로 가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관음수행문’을 들고 있다. 듣는 가운데 관조하여 대상과 내가 사라지고 적멸이 드러나게 하는 관법이다. 선수행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근耳根’으로 원통하게 되는 것이고, 신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세음世音(세상의 모든 고통 소리)을 관觀하는 ‘관세음’보살인 것이다. 서산 대사는 닭 우는 소리, 만공 스님은 종치는 소리, 만해 한용운 스님은 오세암 좌선 도중 바람에 물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깨치셨다. 아디야 샨티(구미 영성지도자)는 아침의 새소리를 듣고 깨쳤다고 하며, 또 앤소니 드 멜로(신비주의자, 가톨릭 신부) 역시 깨달음에 이르는 왕도는 귀를 여는 것(소리를 관하는 것)이라고 이구동성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