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사를 만난 네 명의 서양인 이야기 그 두 번째

2014-02-07     불광출판사
마리아수스
 

졸탄 바흐

레나타 마르지틱스
 
조지 프레이어
 
헝가리 원광사는 창건 이래 현지인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았고, 한국불교의 선禪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고 있습니다. 지난 호를 통해 원광사에서 함께 하고 있는 네 명의 서양인 수행자 이야기를 들려드린 바 있습니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국불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동유럽 사람들이 한국불교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자, 이번에도 젊고, 배움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네 유럽인들의 목소리를 보내드립니다. 함께 만나보시죠.  
 
| 마리아 수스 MÁRIA SOÓS
선 수행을 만난 것은 2년 전이었습니다. 고요하게 앉아 바깥으로 향하는 작용들을 멈추는 좌선은 자기 자신과 만나는 가장 소박한 방법입니다. 그것은 매우 직접적인 방법이지만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닙니다. 당신은 당신의 삶과 당신이 겪는 문제들, 소망과 망설임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것입니다. 혼자서 고요히 앉아 생각하는 것은 진정요법이 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당신의 생각이 흘러가도록 놔둘 수 있나요? 한 발 뒤로 물러나 당신 자신과 당신이 내린 결정의 본질을 들여다 볼 수 있나요? 만약 생각들이 그저 왔다가 떠나는 거라면 그것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다면, 중요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만약 모든 만물이 생성되고 변화하다 끝을 맞이하는 데 그친다면, 이 세상은 무엇 때문에 존재할까요? 항상 움직이며 그 성질이 변하고 수정되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얼까요? 어떻게 충만함과 텅 빈 느낌을 동시에 느끼고 만끽할 수 있을까요?
좌선은 올바르게 바라보는 법에 이르기 위해 모든 것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 머무는 법을 내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자유로운 선택의 기회를 즐기는 방법도 가르쳐 주었지요. 나는 모든 순간 알아차림이 극대화된 상태에서 나만의 경험을 창조해낼 수 있는 상대적인 세계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나는 이 분야에 초보자임을 밝힙니다. 혼자서 선 수행을 시도했었고 몇 번인가 그룹수행을 해보았지만 30분씩 세 번을 넘기지는 못했습니다. 지난 주말 원광사 곁의 숲 속에서 이루어진 3일간의 안거에 참여했습니다. 짧은 시간의 수행과 좀 더 길고 더 깊이 있게 다가가는 수행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지 궁금해 하면서 말입니다. 안거 수행 이후, 어렵지만 그것을 마쳤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척 행복해졌습니다.
첫 번째 날, 나는 마음속으로 대화를 계속하는 것에 지쳤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침묵 속에 앉아 있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거의 포기하기에 이르렀죠. 나는 당면한 문제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앉아서 좌선하는 것을 즐길 수 있을까? 안거 수행을 즐기고 조화로움을 느낄 수 있도록 마음을 바꾸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울까? 이제는 이 안거 수행이 깨닫게 해준 것들을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 자신이 누구인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 자신과 세상의 관계를 어떻게 맺어나갈지, 어떻게 하면 더 정직하고 확고하며 직설적인 태도를 견지할 수 있을지. 이제 나는 매일 반복되는 삶 속에서 선 수행이 어떤 의미인지, 어떻게 그것이 우리를 개선시키고 세상을 도울 수 있는지 등을 좀 더 잘 느끼고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 졸탄 바흐 ZOLTÁN BACH
내 이름은 졸탄입니다. 하지만 이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 몸,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가리키는 어떤 것에 붙여진 꼬리표일 뿐입니다. ‘나’라고 하는 이 몸뚱이나 마음을 움직이는 주체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게 더 나은 표현일 겁니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나’를 사용하고 있는 것 같고, 꽤 능숙하게 그 작업을 해내고 있습니다. 한 줄 한 줄, 페이지의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지요. 그러나 누가 이 모든 걸 만들어내고 있을까요? 순간 순간 우리가 경험하는 이 세계는 누가 만드는 걸까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왜 그러는 것일까요?
나는 여기 노트북을 앞에 두고 계속해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업(karma)이라는 것에 대해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 보았을 겁니다. 그런데 과연 인과라는 개념은 궁극적으로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줄 수 있을까요? 나는 이번 생에 수행해야 할 과제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구와 함께 해내야 할까요? 나는 내 의식이 도구가 될 수도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의식은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무의식의 영향을 받는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무의식’이라고 불리는 것이겠지요. 나를 둘러싼 사람들과 환경은 내 생각과 느낌, 말과 행동을 비춥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내가 항상 마주하게 되는 강력한 자극, 갈망과 저항들이 있습니다.
나는 까다롭지 못합니다. 태생이 그렇습니다. 이것은 내 마음의 상이고 내가 익숙해져 있는 세상에서 특징지어진 무엇입니다. 세상은 배역, 배우, 비극과 희극의 장면들, 연출자, 관객이 있는 극장과도 같습니다. 때때로 환상은 진정한 승자가 없는 게임처럼 느껴집니다.
‘진실Real’이요? 네, 그리고 아니오! 이기거나 질 수 있고, 다음 생에 사람 몸을 얻을 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번 생에 깨달음을 얻거나 윤회에 빠질 수도 있지요. 이 모두는 왔다가 가는 것인데, 왔다가 가지 않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돌아올 보상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무언가에 베팅betting을 해야만 합니다. 태어남으로써 이미 게임 속으로 들어온 겁니다. 죽음은 모든 것을 거는 것이 아니라 그저 중간의 어느 한 단계일 뿐입니다. 당신 안에서 삶과 죽음을 연주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내게는 ①의식 ②무의식 ③내 주위의 사람들 ④자연 ⑤나의 업(karma) ⑥나의 스승 ⑦따라야 할 가르침 ⑧수행할 수 있는 장소가 있습니다. 이 모두가 내게 있다는 건 즐거운 일입니다. 큰 도움이 되지요. 이번 생은 괜찮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직 ‘나’라는 존재가 대체 무엇인지는 아직 단서조차 찾지 못했네요. 오, 이런.
아마 이번 생에 그것을 찾기는 힘들 겁니다. 상관없어요. 나와 인류를 위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부지런히, 그리고 끊임없이 수행을 계속할 겁니다.
 
| 레나타 마르지틱스 RENÁTA MARGITICS
선 수행을 만났을 때 나는 무척이나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갈 때는 거의 매일 울었죠. 엄청난 스트레스, 노동자를 인간적으로 대우하지 않는 경영 시스템 속에서 매일 12시간씩 일해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신경쇠약 직전에 이르게 됐습니다. 그 날이 바로 선 수행을 하는, 나에게 좋은 조언을 많이 해주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던 날입니다.
그는 방향을 가르쳐 줄 수 있을 뿐이라고 말했으며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라고 했습니다. 나 자신을 도울 수 있는 건 오직 ‘나’뿐이기 때문에 그가 나를 도와줄 수는 없겠지요. 난 좀 더 나은 상태가 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그래서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는 내게 이틀의 시간을 내어줄 테니 그 시간을 함께 보내자고 제안했습니다. 그 이틀간, 우리는 계속해서 좌선을 했고 20분의 좌선과 관세음보살 염송을 적절하게 반복했습니다.
그 기간 동안 나는 줄곧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단 1분도 즐기지 못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날이 끝나갈 무렵, 뭔가가 변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무언가 강해진 느낌이었고 그것은 직장 생활을 하며 ‘난 아무 것도 할 수 없어’라고 자포자기하게 됐던 부정적 감정을 변화시켜 놓았습니다. 나 자신이 다시 그렇게 단순하고 명쾌한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따름이었어요. 그 후로 매일 일상에서 규칙적으로, 그리고 원광사에서 선 수행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제 직장을 포함해 삶의 모든 부분에서 자신감을 되찾았습니다.
 
| 조지 프레이어 GEORGE PREYER
나는 여덟 살 때부터 음악을 만들고 연주해 왔으며, 열세 살 때 전자음악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해 평생을 기대어왔던 음악이란 벽이 산산조각 나는 위기에 빠졌습니다. 생애 처음으로,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무얼해야 할지 고민하게 됐습니다. 나는 6년째 선 수행을 해왔고 그처럼 중대한 물음에 대한 해법은 원광사에서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석 달 간 안거에 참여해 본격적으로 참선을 시작했습니다. 주지 청안 스님의 허락을 얻어 석 달 간의 안거를 마쳤습니다. 안거가 끝나고 난 뒤, 어떠한 의문이나 회색빛의 흐린 조각들도 내 마음 속에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순간순간 내가 선택하고 결정해야 할 길들이 선명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후 이 경험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그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매번 깨달아야만 했습니다. 다만 내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 이런 놀라운 경험에 한 번 도전해 볼 것을 권할 뿐입니다.
나는 다짐합니다. 일정이 허락한다면 해마다 석 달 간의 안거에 참여해 내 마음의 눈을 철저히 내면으로 향하는 시간을 가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생에는 꼭 한 번 한국의 사찰에서 안거 결제에 참여해볼 생각입니다. 아주 짧은 기간의 수행도 유용하겠지만 안거에 비할 수는 없겠지요.
 
 
청안 스님

헝가리에서 태어나 20대 초반인 1991년 숭산 스님을 만났고 1993년 미국 프로비던스에 참가해 이듬해 28세의 나이로 출가했다. 이후 한국의 화계사, 해인사 등지에서 수행했다. 1999년 지도법사 인가를 받고 2000년 고국으로 돌아가 헝가리 관음선원 주지를 맡았으며 부다페스트에 선원을 세워 대중을 지도하며 정진했다. 이후 유럽 각국에서 불교와 선 수행법을 알리고 있다. 현재 헝가리에 유럽 최초의 한국식 사찰인 원광사를 짓고 주지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