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거두어 마음에 두라

나의 믿음 나의 다짐

2007-06-17     관리자

부처님께서 웃고 계셨다.

불교입문 교육 회향을 맞이한 보현당좌단 앞, 나의 경거망동을 묵묵히 지켜보고 계시던 부처님께서 환히 웃고 계셨다.

   이 몸을 낳으시고 키워 주신 부모님, 함께 자란 형제, 친구들 피와 살을 받은 아이들, 여러 혈족들, 입문교육을 주관하는 스승님, 같이 공부한 여러 보살님들, 법등의 다정하신 분들, 이토록 숱한 나의 인연들이 스치고 스치며, 그 아름다운 인연의 상을 다 담고 계신 대자대비하신 부처님.

   그들, 그 인연의 얼굴로 부처님께서는 자꾸 웃고 계셨다.

어느 박물관, 한적한 모퉁이에서 마주친 백제인의 미소처럼 온화하게....

   긴 겨울 동안 언 땅을 촉촉히 녹여 적시며 환희의 생명을 새로 움틔우는 봄비.   이 어리석은 중생의 언 가슴을 봄비를 내려주신 분들.

   '잘 달리는 말을 타고 금강산을 유람하듯이' 라고 표현해 주신 송암스님의 말씀처럼, 감동에 들떠서 어리석음에 들떠서 어찌어찌 불교입문교육을 마치고 회향에 앞서 그분들께 감사하고 싶다.

   몇 해 전부터 집 앞길에서 자주 마주치는 분.   처음엔 눈인사로 몇 달, 말붙일 구실 없이 몇 달, 보면 볼수록 마음에 와 닿는 모습.   먼 인연으로 누구와 닮은 듯도 하고, 차마 말을 건넬 수는 없었지만 어떤 인연으로 내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듯했다.

   마음이 산란하고 뒤숭숭했던 지난 겨울 어느 날.   그 분이 댁에서 법등 모임을 하니 한번 놀러 오라고 하셨다.   하지만 할 일도 있고 쑥스러워서 참석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못내 송구스러운 마음과 나도 모르는 어떤 이끌림에 의하여, 다음번 법등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만난 분들.   부시시하고 꺼칠한 내 얼굴과는 대조적으로 윤기있고 반짝반짝 빛나는 밝은 얼굴들.   그들 마음속으로부터 어떤 서광이 그들의 얼굴 구석구석에 비치고 있는 듯했다.   부끄러움에 어쩔 줄 모르는 나에게 법등모임을 주선하신 보살님께서 [부처님의 생애]와 [완전한 자유]라는 책을 선뜻 권하여 주셨다.

   이에 나는 오만하게도, 책읽기를 좋아하니 이틀 뒤에 꼭 돌려주겠노라고 장담하였다.   그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도록 나는 책에 손도 대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배웠고 익히 많이 들어온 '부처님의 생애'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지도 않았다.   더욱 기고만장한 것은 이 책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시시하게만 생각되었다.

   또 다음 달의 법등모임이 다가왔다.   책은 돌려주어야 되는데, 읽지도 않았고 약속도 지키지 못했으며, 변명의 말조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분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하고 생각이 미치자, 지금까지 내가 알지 못했던 추함, 초라함, 비굴함 등등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이 더럽고 냄새나는 옷으로 나를 감싸고 있는 듯했다.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온 몸이 확 달아 올랐다.

   그러나 그 생각도 잠시뿐, 책 한권을 사서 미안함과 변명을 대신하고 여유를 얻은 나는 또 책을 읽지 않았다.   그냥 읽지 않고 책을 돌려드릴까 하고 생각해 보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럴 마음이 없었다.   또 다음 달의 법등 모임이 다가왔다.

이번엔 꼭 책을 돌려드려야 하는데, 급한 마음끝에 억지로 책을 들었다.

그리고는 건성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는 도중 나는 또 한번 수치심으로 몸이 확 달아 올랐다.   그 책 속에 계신 부처님은 전에 내가 알고 있던 그런 분이 아니셨다.   그 책을 미처 다 읽기 전에 법등의 보살님들이 불광 불교입문교육을 권하셨다.

   직접 신청서도 가져다 주시고 접수도 해주셨다.   맨 처음 길에서 만나, 법등까지 인도하신 마하보살님께서는 [불광법회요전]을 선물로 주셨다.   그러나 나는 솔직히 말해 입문교육이 있던 날 처음으로 불광사에 발을 디뎠으며, 지금 회향식을 하는 보현당의 부처님도 처음 뵙게 되었다.

   많은 분들이 바쁜 시간속에서도 어린아이까지 데리고 교육에 참여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더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러나 나는 교육이 몇 회째나 계속 되어도 불광사의 보현당과 화장실외에는 아는 게 없었다.   그저 절하는 법이 익숙해져 있고, 사홍서원을 미숙하게 외우는 정도였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전에 빌린 [부처님의 생애]와 [완전한 자유]를 다 읽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돌려 드렸다.

   이제는 같이 공부하러 오시는 보살님들의 따뜻한 마음도 느낄 수 있었고, 가르쳐 주시는 송암 스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끝이 날 때마다 못내 아쉬워졌다.

   [불자예절과 의식], [룸비니에서 구시나가라까지], [생의 의문에서 해결까지] 등 이제껏 배웠던 책의 뒷장을 덮고, 드디어 회향에 이르렀다.

   그러나 또 한 가지 부끄러운 고백은 여태껏 법주이신 큰스님의 모습을 뵈온 적이 없다는 것이다.

   아직도 환희 웃고 계신 부처님.

   회향식이 시작되고 우리는 큰스님께 절을 드렸다.   고개들어 큰스님의 모습을 처음 먼 발치에서 뵈온 순간, 지금까지 웃고 계시던 부처님의 얼굴과 큰스님의 얼굴이 겹쳐지며, 부처님이 살아오신 것 같기도 하고 큰스님이 부처님이 되신 것 같기도 하고.... 아물아물 내 눈에 믿기지 않는 신비로운 감동의 첫 상견례였다.   그리고 불광에서 불교입문 교육을 마친 내 자신이 웬지 자랑스러워졌다.

   어떤 인연에서든, 대자대비와 진리광명의 도량으로 나를 이끌어 주시고, 부처님의 진리를 조금이나마 깨닫게 해주신 모든 분들의 모습이 감사의 마음속에서 하나하나 떠올랐다.

   더욱이 처음 뵈옵는 큰스님께서 "생각을 거두어 마음에 두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설하실 때, 온 몸이 떨리며 내 마음 구석구석 어둠을 멸하는 여명의 종소리가 뎅! 뎅!....

   끝없이 크게 크게 울려 퍼짐을 느낄 수 있었다.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보현행원으로 보리 이루리.

   아직도 겨울 속에서, 자신도 모르는 탐.진.치의 더럽고 냄새나는 옷을 입은 나의 친구들과 같이 저 진리, 광명의 종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하반야바라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