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바꾸는 3박 4일

해인사 백련암 아비라 기도

2014-02-07     불광출판사
 
<2쪽짜리 사진>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선사 성철 스님은 불자들에게 몸으로 하는 수행을 먼저 주문했다. 삼천배보다도 힘들다는 성철 스님표 ‘몸 수행’이 백련암에서 6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아비라 기도다. 성철 스님의 기상을 닮은 장대한 바위에 둘러싸인 백련암. 수행열기가 겨울 초입 가야산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아비라 기도란?
비로자나부처님의 법신을 뜻하는 진언인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를 염송하는 기도. 참회의 108배, 법신진언 장궤합장(무릎을 바닥에 대고 몸을 ‘L’자로 세워 합장한 자세) 염송, 능엄주(대불정능엄신주의 줄임말) 독송을 1시간에 걸쳐 하는 것을 1품으로 하여, 3박 4일간 24품을 완수한다. 1년에 4번, 동안거와 하안거 결제·해제를 즈음해 진행된다.
 
 
 
“큰스님께서는 고생을 극복하고 난 뒤에 오는 자기에 대한 긍정심, 자기확신이랄까 ‘나도 했어, 이뤘어’ 하는 희열이 다음 공부를 해나가는 데 큰 밑바탕이 된다고 보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큰스님께서 절해라 기도해라 하시는 것은 참선 잘하는 심신을 키워주는 훈련이고 연마입니다.” 
 
 
| 화장실 갈 힘 있으면 아비라 기도 하라
아침 해가 떠오르기 직전의 백련암에는 불자들이 마당을 거닐며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조호영(남, 42) 씨는 올해 처음으로 삼천배를 한 뒤 이번에는 아비라 기도를 하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어젯밤 너무 힘들어서 도망가려고 했는데 주차해 놓은 차가 앞뒤로 막혀 못 갔습니다. 마흔 넘으면서 몸도 아프고 자신감이 없어져 새로운 각오를 다진다는 마음으로 왔어요. 공무원이라 책상 앞에만 앉아 있다 장궤합장을 30분 동안 하려니 너무 힘든 거예요. 처음 한 번은 억지로 마쳤는데 두 번째에는 무릎에 극심한 고통이 느껴졌어요. 끊임없이 시계만 봤죠. 옆에서 하시는 분들의 힘이 느껴져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 발원은 오직 ‘한 품 한 품 잘 마치게 도와주십시오’입니다.”
도망치고 싶을 만큼 힘들었다지만 그의 표정에는 담담한 각오가 서려 있었다. 동이 트자 사람들은 자기 자리를 찾아 돌아갔다. 모든 전각은 아비라 행자行者들로 가득 메워졌다. 첫 순서인 108배를 하는 동안 “속이지 말라”고 강조했던 성철 스님 말씀이 백팔참회문과 겹쳐졌다. 다음은 법신진언 염송. 대중은 일사분란하게 장궤합장으로 자세를 바꾸고 곧바로 염송을 시작했다. 장궤합장 자세를 유지하는 것보다 매순간 집중을 놓치지 않는 것이 더 어려웠다. 어느덧 30분이 채워지고 다리를 풀기 위해 3배를 할 때에야 무릎이 쪼개지는 것 같은 통증이 스쳤다.
다음 순간, 곧바로 이어지는 능엄주 독송의 빠른 속도에 그만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더욱 신기한 것은 긴 능엄주를 모두 외워 독송하는 분들이 많다는 점이었다. 아비라 기도에 수십 년째 동참하는 불자가 절반 이상이라는 말을 실감했다. 1시간을 채우고 아비라 기도 1품을 마쳤다. 몸은 힘들었지만 성취감이 더 컸다. 김영숙(여, 81, 천진성) 백련암 신도회장은 올해로 42년째 아비라 기도를 하고 있다.
“39세 때 처음 백련암에 왔으니 42년 됐네요. 그보다 약 15년 전에 아비라 기도가 시작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성철 스님 계실 때는 중간에 오셔서 법문을 해주셨지요. 지금은 나이가 들어 쉬어 가면서 하지만 ‘화장실 스스로 갈 수 있으면 1년에 4번 아비라 기도를 하라’고 하신 큰스님 말씀을 잊지 않고 살려고 합니다.”
 


| ‘팔자병’도 고치는 기도
아비라 기도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궁금증을 안고 백련암 감원 원택 스님을 찾아 염화실 문을 두드렸다. 원택 스님은 20년 간 성철 스님을 시봉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스님이 꾸밈없는 미소로 객을 맞이했다.
“성철 스님께서 1951년에 천제굴이라고 절이란 것을 처음 가지시게 되니까 그 때부터 아비라 기도다, 삼천배다 하는 과제를 신도들에게 주신 것으로 짐작을 합니다. 그 뒤로 백련암에 주석하시면서 본격적으로 아비라 기도를 하시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천제굴부터라면 60여 년, 백련암부터 쳐도 최소한 45년 역사를 가진 수행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원택 스님이 기억하는 아비라 기도는 출가 첫해인 1972년 정월부터다. 그 때 인원은 30여 명 남짓. 1981년에는 80~90명의 인원이 지금의 좌선실을 가득 채웠다. 이듬해부터는 ‘종정 계신 곳의 기도다’ 해서 방이 모자라기 시작했다.
“한때는 마당에 군용텐트 쳐 놓고 기도를 했고, 도저히 안 돼서 1987년도인가 적광전을 지었습니다. 한참 많이 올 때는 700명까지 와서 갈치잠을 잤지요. 지금은 평균적으로 350명에서 450명 정도의 분들이 와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아비라 기도에는 인원 모집에서 기도 집전까지 스님들이 일체 관여하지 않는다. “느그가 방(맡은 소임을 알리는 글) 짜고 느그가 죽비 치고 기도 잘 하는 사람이 입승하라”는 성철 스님의 뜻을 그대로 이어오고 있는 것.
“우리가(스님들이) 아무리 잘하고 싶어도 이 분들이 안 오면 끌어 오겠습니까 어쩌겠습니까. 누가 돈 준다고 해도 오겠습니까, 이 힘든 것을. 큰스님 법을 따라 스스로 신심이 복받쳐서 오는 것에 대해서는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비라 기도는 진언을 염송하는 수행법인 ‘주력呪力’에 속한다. 주력수행을 할 때에는 진언의 뜻보다는 한 자 한 자 정확하게 발음하고 그 소리를 자신이 듣는 ‘집중’에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소리와 소리를 내는 몸, 소리를 내면서 동시에 듣고자 하는 마음의 집중, 이 세 가지가 하나로 통일될 때 진언의 파장이 폭발력을 갖는다. 그래서 주력수행은 흔히 “운명을 바꿀 만한 힘이 있다”고 회자된다. 성철 스님은 아비라 기도가 ‘건강병, 팔자병 다 고치는 기도’라고 했다. 원택 스님이 여기에 설명을 덧붙였다.
“능히 마음의 변화가 오고 또 몸의 변화도 옵니다. 몸은 건강해지고 온갖 번잡하던 망상이 떨어져버리고 공부해야 되겠다는 맑은 마음으로 변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바라는 바가 이루어지더라 하는 것은 본령이 아니고 하나의 덤이지만 그런 성취감도 기도의 중요한 일부 아니겠습니까?”
 
 
| 참선 그릇 만들기
백련암에서는 아비라 기도를 마친 불자들에게 일원상과 화두를 준다. 일원상을 집안의 조용한 곳에 모시고 매일 108배를 하거나 아비라 기도 1품을 하는 것을 생활화하라는 뜻이다. 성철 스님 당시 스님이 직접 그린 일원상을 화두와 함께 전하던 것이 열반 20주기인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다.
“큰스님께서는 고생을 극복하고 난 뒤에 오는 자기에 대한 긍정심, 자기확신이랄까 ‘나도 했어, 이뤘어’ 하는 희열이 다음 공부를 해나가는 데 큰 밑바탕이 된다고 보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큰스님께서 절해라 기도해라 하시는 것은 참선 잘하는 심신을 키워주는 훈련이고 연마입니다. 기도는 참선할 수 있는 정신적, 육체적 그릇을 만드는 데 근본 목적이 있습니다.”
1년에 한 번 아비라 기도를 하기 위해 하와이에서 한국을 방문하는 김훈(여, 58, 묘심행) 씨는 매일 하는 아침기도가 자신의 삶을 ‘조율’한다고 말한다.
“37년 전 미혼시절에 삼천배를 하고 큰스님을 친견했어요. 결혼 후 두 살, 네 살 아이들도 데리고 왔었죠. 아비라 기도에 동참한 것은 4년째입니다. 집에서도 매일 일과기도를 빠짐없이 하고 있습니다. 이 기도를 시작한 이후로 잘 아프질 않아요. 어쩌다 몸이 좋지 않아도 ‘기도를 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아픈 것을 물리치곤 해요. 안 해서 안 되는 것이지, 하면 할 수 있다는 가르침이 이 기도에 있습니다.”
취재를 마치고 백련암을 내려오면서 앞서 김영숙 보살님이 전한 성철 스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화장실 스스로 갈 수 있으면 1년에 4번 아비라 기도를 하라. 그리고 밥을 스스로 먹을 수 있으면 일과기도를 해라.” ‘운명을 바꾸는 3박 4일’에는 하루하루 수행하는 불자로 다시 태어난다는 속뜻이 숨어 있었다.
 
 
해인사 백련암 아비라 기도
동안거 해제 시: 음력 1월 4일~7일
하안거 결제 시: 음력 4월 12일~15일
하안거 해제 시: 음력 7월 12일~15일
동안거 결제 시: 음력 10월 12일~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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