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한국불교의 새로운 교판敎判을 기대하며

2014-02-07     불광출판사
 

 
 
| 현대의 문제의식을 담은 불교교리의 재해석
불교인이 된다는 것은 다음 세 가지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첫째 불교인으로서의 정체성, 둘째 불교적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안목, 셋째 불교적 가치관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불교인으로서의 정체성 문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불교적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문제와 ‘불교적 실천’의 문제는 만만치 않다. 어쩌면 한국불교에서 크게 중요하게 생각해오지 않았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날 사회에서 불교인으로 살아간다고 할 때 바로 마주치게 되는 문제가 바로 이 불교적 ‘관점’과 불교적 ‘실천’의 문제이다.
불교를 믿는다는 것은 예불이나 독경과 같은 ‘비일상적’이며 ‘특별한 행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과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상들을 불교적 관점으로 이해하고 나아가 실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처님의 생애를 훤히 알고 경전들을 외우고 불교의 어려운 교리와 법수法數를 줄줄이 꿰고 있지만, 정작 일상의 일들에 대해서는 그러한 불교지식들이 적용되지 않는다면 도대체 그 불교는 어디에 쓰일 수 있을까?
세간과 출세간을 나누는 것은 불교의 오랜 전통이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이 출세간법이어서 세간에서는 무용지물이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세간에 소용되지 않는 어떤 법法이 있다면 그 법은 부처님의 법이 아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세간을 떠나 있는 것이 아니라 세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이나 『인생수업』 등과 같은 책이 일반 독자들에게 공감과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은, 바로 부처님의 법이 세간에서 세간의 문제해결을 위해 훌륭하게 쓰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의 불교인들 가운데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육아나 살림살이 그리고 가족관계나 직장생활 등 일상의 생활에서 실천하고 있는 분들도 많다. 그러나 대부분의 불교인들에게서 불교는 ‘특별한 것’으로, 특별한 시간에 특별한 공간에서만 의미가 있는 것이 되고 있다. 불교가 일상적 관점으로 이해되지 못하고 또 일상적으로 실천되지 못한 것은 일차적으로 ‘교육’의 문제이다. 출가스님들이나 재가자들이나 모두 불교를 ‘불교’로만 배우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불교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나 불교적 가치관에 대해서 배우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불교만을 가지고 씨름하고 있는 것이다.
근대 이후 지난 100년간 한국불교는 지난한 근대화의 과정을 거쳐 왔다. 종헌 종법의 제정 등 근대적 교단의 확립을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과 함께, 승가교육 등에 있어서도 전통시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획기적인 변화를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최근에는 SNS 등 첨단의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포교에도 관심을 가질 정도로, 불교는 더 이상 전통적 모습에만 안주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러한 변화 속에서도 전혀 새롭게 변화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교리’다.
불교를 일상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실천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불교의 교리에 대한 재해석이다. 어떤 종교에 있어서든 교리는 그 종교의 핵심이다. 종교인들은 교리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실천의 아젠다를 만들어 간다. 그렇기 때문에 교리가 바뀔 수 있냐고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물론 그렇다. 교리는 바꾸거나 변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교리에 대한 해석은 바뀌어야 한다. 시대가 그리고 사회가 전통에서 근대로 넘어왔다면, 이제 교리에 대한 해석 또한 전통적 해석으로부터 오늘날의 근대적 해석으로 바뀌어야 한다.
불교사의 한 특징은 그것이 바로 ‘해석의 역사’였다는 점이다. 부처님께서 법을 펴신 이래 그 법에 대한 해석은 시대에 따라 늘 새롭게 변모되어 왔으며 때로는 서로 다른 다양한 해석들이 공존하기도 하였다. 상좌부, 대승, 밀교, 선 등은 새로운 해석의 결과물들이며, 대승 전통 내에서도 반야, 유식, 화엄, 정토 등 서로 다른 해석들이 같은 시대에 공존하기도 하였다. 불교사가 해석의 역사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것은 한편으로 불교 발전의 역사이기도 하였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고정불변의 진리로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으로 이해한 것이며, 시공간이라고 하는 역사적 맥락에 따라 늘 새롭게 이해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불교사에서 이러한 새로운 해석의 역사는 대략 13~14세기 정도면 끝이 난다. 지금 우리가 소위 불교전통으로 이해하는 거의 모든 사상적 내용들은 13세기 이전의 것이며 이후의 전통은 이전 전통의 반복이거나 기껏해야 ‘변주’ 정도에 불과하다.
 
 
| 한국불교는 세계불교사의 축소판
대승은 대승 흥기 당시의 문제의식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새롭게 해석하고자 등장하였으며, 또 선종의 독창적인 불교해석에는 6~7세기 동아시아의 실존적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불교가 박물관의 조각품이 아닌 살아있는 역사인 것은 끊임없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새롭게 해석하고 실천해왔기 때문이다. 한편 한국불교의 경우 조선조가 들어선 15세기 말 이래 불교가 정체되었다고 하는 것은 단지 교단으로서의 쇠퇴를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사상 또한 당시 사회의 현실과 접목되지 못했다. 500년간 세상은 상전벽해를 떠올릴 만큼 변했지만 불교는 늘 그 자리에서 ‘옛 것’만을 지키다가 근대를 맞게 되었다.
이후 앞서 언급한 대로 지난 백년간 식민지의 경험, 해방 이후의 혼란과 전쟁 등 숱한 방황과 시련을 극복하면서 현대사회에 맞는 불교의 모습을 갖추기 위한 여러 제도적 개혁을 해왔다. 지금의 조계종단의 모습은 바로 그 결과이다. 여러 아쉬움도 있고 또 때로는 기대에 어긋나기도 하지만 지금의, 적어도 겉으로 드러나는 종단 모습은 지난 수백년 동안의 한국불교의 모습을 생각할 때 큰 발전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제도적 측면 그리고 외형적 수준에서 큰 발전이라 할 정도의 변화 속에서도 전연 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바로 불교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교리’에 대한 해석의 문제다. 지금 한국불교의 교리에 대한 이해는 ‘전통적 이해’로부터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정직하게 말한다면 그 이해의 수준이나 깊이라는 면에서는 ‘전통적 이해’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전통을 고수하고 있을 뿐이다.
이제 21세기의 새로운 교학이 등장할 때이다. 이는 수백년 간의 사상적 정체를 극복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복원’하는 길이기도 하다. 수백년 된 ‘낡은 경전해석’을 전통의 미명으로 붙들고 있어서는 안 된다. 만약 부처님의 가르침이란 이유로 아함과 니까야만을 지금까지 ‘수지독송’하고 있었다면, 오늘날 세계인들이 경탄하는 그러한 불교전통이 가능했을까? 끊임없는 새로운 해석과 실천 가운데서 지금과 같은 새로운 대안문명의 중심으로 거론되는 불교전통이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지금 한국에는 한국불교 1,700년을 대표하는 조계종만이 아니라, 상좌부 전통을 대표하는 태국과 미얀마 등지의 동남아불교, 티베트불교, 대만불교 그리고 최근의 서구불교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불교들’이 공존하고 있다. 이들 불교들은 서로 다른 수행법을 주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불교사에 대한 이해 또한 다양다기하다. 소위 ‘다불교’적인 상황인 것이다. 이 다불교적 상황은 한국불교 최대의 종단이자 대표종단인 조계종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한국인 특유의 개방성에 그 근본 원인이 있다고도 생각된다. 보기에 따라서는 현재의 다불교적 상황은 한국불교의 새로운 기회도 될 수 있다.
과거와 달리 오늘날 세계는 오랜 역사 동안 각기 발전해왔던 다양한 지역불교 전통들이 함께 소통하고 공존하면서 새로운 불교의 역사를 써 나가야 할 상황이다. 지금 한국불교는 이러한 세계불교사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다불교 상황이 한국불교에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지금 한국불교가 맞고 있는 상황을 잘 이해하면서 21세기 새로운 교판과 교학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한국불교는 21세기 세계불교를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게 될 것이다. 더구나 다른 지역불교 전통과는 달리 한국불교는 한국기독교라고 하는 매우 ‘독특한’ 이웃종교와 함께 살면서 겪었던 역사적 경험도 있지 않은가? 다종교 그리고 다불교라고 하는 역사적 경험은 한국불교가 21세기 새로운 불교 교판과 교학을 만드는 데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조성택
고려대 철학과 교수. 고려대 영문과 및 동국대 대학원을 졸업하고(석사, 인도철학), 미국 UC버클리 대학원을 졸업했다(박사, 불교학). 미국 스토니부룩 뉴욕주립대 교수, 「불교평론」 주간, 학술진흥재단 인문학단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우리는선우’ 상임대표, ‘철학연구’ 편집장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와 논문으로는 『불교와 불교학』, 『퇴옹성철의 깨달음과 수행』, 「‘깨달음의 사회화’에 관련한 몇 가지 고찰」, 「초기불교사 ‘재구성’에 관한 검토」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