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법사회 이사장 목정배 교수 인터뷰

불교와 한몸이 되어 살아온 삶

2014-02-06     양동민
함박눈이 펑펑 퍼붓는 겨울날 한나절을 평생 불교에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궁금했다.
 
| 배움과 실천이 일치되는 학자
 
 
: 불교계 많은 사람들이 교수님의 건강을 무척 염려하고 있습니다. 현재 병세나 근황은 어떠신지요? 
 
꼭 치유되어 은공을 갚아야겠지요. 
 
: 교수님께서는 40여 년 전부터 재가불자 교육에 헌신해오며 재가불교운동을 펼쳐오셨습니다. 25년 전에는 법사회를 창립하시고 줄곧 세제世諦불교를 주창해오셨는데, 세제불교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제 사상의 얼개는 세제불교이고, 세상에 나와서 한 일은 그거밖에 없어요. 세제불교를 한마디로 압축하면, 재가불자들이 세간에서 진리를 실현하자는 거예요. 부처님 말씀을 생활 속에 드러내 실천하자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신의 노예도 아니고 신분의 하급에서 무조건적인 믿음을 헌납하는 존재도 아니에요. 우리 모두가 불교의 중심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올바로 믿고 올바로 행하는 청정한 인격체로서,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불교적인 진리와 봉사와 화합을 이뤄낼 수 있어야 해요. 이것이 세제불교가 추구하는 인간 자유의 평등관이며, 부처님의 참 진리를 우리 사는 세상에 공유케 하는 기본적 자각운동입니다.
 
: 지난 10월 법사회가 창립 25주년을 맞았습니다. 법사회를 통해서 세제불교 운동을 전개해오시고, 발병 전까지 일주일에 3번(화・목・일) 강의를 할 정도로 모든 열정과 애정을 쏟아부으셨습니다. 
 
교수가 신행생활 하면서 시험을 통해 법사들을 배출하고 양성한다고 하니, 처음엔 교계의 시선이 곱지 않았죠. 25년간 리더가 되어 1,400명의 법사들과 함께 세제불교 운동을 해왔는데, 이제는 제가 물러나고 새로운 시대의 흐름에 맞춰 후학들이 이끌어가야 할 때가 온 것 같아요. 리더는 시대를 앞서지는 못하더라도 시대에 대응하는 감정은 지녀야해요. 가령 아직도 대부분의 사찰이 관음재일, 지장재일, 미타재일 등 음력에 기반을 둔 재일齋日 위주로 법회를 여는데, 이삼십대 젊은 불자들에겐 전혀 통하지 않아요. 사회 사람들이 어느 요일에 시간이 많은지 택해서 법회도 열어야 한다는 거예요. 강의를 하더라도 부처님께서 깨치신 진리가 오늘에 와서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지에 주안점을 두고 이야기해야 하는 거죠. 사람들이 목정배 강의 듣다가 다른 사람 강의 들으면 싱겁다고 해요. 왜 그런 줄 압니까. 아무리 뜻이 좋아도 주구장창 불교 이야기만 늘어놓으면 먼 세상 이야기처럼 알쏭달쏭하고 졸음만 쏟아져요. 현재 우리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딱 쏘는 비판도 가미하며 시사적인 이야기를 섞어서 불교 이야기를 하니, 부처님 말씀이 쉽게 가슴에 와닿고 불교가 재밌어지는 겁니다.
 
: 학창시절 부산불교학생회 활동을 하며 불교와 인연을 맺은 이래, 60여 년간 불교와 한시도 떨어지지 않은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한평생 후학을 기르는 동시에 전법의 일선에서 올곧게 정진해오셨는데요. 자신의 사상과 그에 맞는 실천적인 삶이 가장 일치한 학자로 평가받고 계십니다. 불교와 한몸이 되어 살아온 삶을 자평해주신다면?
 
학자로서의 자기고백일 수도 있는데, 사실 불교학자들이 실제 삶 속에서는 일반인들보다 못한 점이 많아요. 부처님 사상을 공부해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과 자기의 실제 삶 속에서 행해지는 행동이 따로따로라는 거죠. 일반 재가불자들이 훨씬 더 다정다감하고 자비・보시 정신도 강해요. 저는 나름대로 부처님 가르침에 따라 사섭법(四攝法, 중생을 불법으로 이끌기 위한 네 가지 실천적인 수행-보시布施・애어愛語・이행利行・동사同事)을 실천하려고 애를 써왔던 것 같아요. 다행히 이러한 제 마음과 벌이는 일들에 공감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것만으로도 한평생 기쁘게 살아오지 않았나 싶네요.
 
| 오롯하게 반듯하게 말끔하게
 
: 국악교성곡 ‘용성’의 작시를 비롯해 20여 곡의 노래에 가사를 붙이셨습니다. 또한 시서화詩書畵에도 능해 수차례 전시회도 갖고 시집도 내셨는데요. 평소 다양성을 강조하고 시서화를 통해 자유로운 감수성을 드러내며, 이를 스스로 ‘잡雜’사상이라고 정의하셨습니다.
 
‘잡놈’, ‘잡년’에서 보듯이 ‘잡’이라는 말이 나쁜 의미로 쓰이는 경향이 있었어요. 그런데 살펴보면 절대 그렇지 않아요. 잡채나 비빔밥이 얼마나 맛있고, 「불광」 같은 잡지는 또 얼마나 좋은 책입니까. 어느 분야든 다양성이 자유롭게 섞이고 교류될 때 발전이 있는 거예요. 가령 어느 전문가가 한 분야를 뚫어내는 것도, 그 분야만 깊숙이 파고드는 사람보다는 다양한 분야와 접목하고 소통하는 사람이 더 정확하게 잘 뚫어낼 수 있는 거죠. 자신의 재주와 능력을 과소평가하지 말고 여러 분야에 걸쳐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 불교계를 향해 애정을 담은 쓴소리를 많이 해오셨는데요. 현재 불교 발전을 위해 가장 시급하게 개선되어야 할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 중 승보에 대한 개념을 다시 바로잡아야 해요. 60년대 말에 삼귀의를 한글화할 때 잘못 해석된 겁니다. 승僧은 상가sangha의 번역어인 승가僧家를 뜻하는 말로서, 교단에 들어온 모든 무리를 뜻합니다. 그런데 화합 교단에 귀의한다는 귀의승歸依僧의 뜻이 개인의 스님들께 귀의한다는 뜻으로 뒤바뀐 거죠. 이를 새롭게 바로잡아야 불교의 발전도 기대해볼 수 있을 거예요. 불법승 삼보에 대해 원효는 각각 ‘광명光明・정대正大・화합和合’이라고 했으며, 육조혜능은 ‘각覺・정正・정淨’이라고 했어요. 제 딴에는 우리말로 ‘오롯・반듯・말끔’이라고 의미를 붙여보았습니다. 여기서 승僧만 놓고 풀어보자면, ‘청정하게 화합하며 사는 평등한 사부대중공동체’를 뜻합니다. 
 
: 평생 계율학을 연구하며 “계율이란 엄격한 쇠사슬이 아니라 위대한 속박”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어떻게 하면 계율을 지키면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불교의 기본 계율은 ‘살생・도둑질・음행・거짓말・술’을 하지 말라는 5계예요. 여기서 세분화되어 비구 250계, 비구니 348계가 만들어졌어요. 여하튼 5계는 인간이 윤리적으로 화목하게 살려면 최소한 이 정도는 지켜야 하지 않겠냐며 깨친 자가 알려준 계율입니다. 그랬으면 우리가 알아듣고 지켜야 하는데, 자기 고집대로 살려고 해요. 지혜롭지 못한 무명의 고집으로 살려고 하니 개인의 삶은 행복하지 못하고 세상은 난세로 흘러가는 거지요. 정법의 고집으로 감인대堪認待, 즉 견디고 참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해요. 생활 속에서 계를 지키고 사섭법을 실천하면, 저절로 지혜롭게 되고 걸림없는 행복이 찾아오지 않을까요.
 
: 2006년에도 뇌경막출혈로 중환자실에 입원해 수술까지 받았지만 말짱하게 회복하셨습니다. 이번에도 꼭 이겨내시리라 봅니다. 마지막으로 병이 치유되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요?
 
글쎄요. 별다른 욕심은 없어요. 아직 안 죽은 거 보니까 부처님 나이만큼은 살런가 하면서 버티고 있어요. 조금 더 살 수 있다면, 고통의 극치에 놓인 순간 기도와 염불이 얼마나 간절하게 다가오는지 제 경험을 들려주고 싶어요. 제가 치유되는 것만으로도 저를 아는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줄 수 있으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다만 새해에 몸이 좀 회복되면 한 달에 한 번 특강 형식으로라도 강의를 하면서 기운을 돋울까 생각 중이에요. 그럴 수 있으면 좋겠네요.
 
목정배
(사)대한불교법사회 이사장,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석사·박사)했으며 동국대학교 교수, 성철선사상연구원장, 한국불교학회회장, 서울불교대학원대학 총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계율론』, 『대승보살계사상』, 『한국불교학의현대적 모색』, 『한국문화와 불교』, 『부처님께 다가서는법사의 고백』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