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주치의] 현대인들이여 그대는 안녕하십니까?

2014-02-06     장두석

생명은 이치와 기운의 조화로 태어난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게 사람의 생명이다.

하늘과 땅, 조상에게서 받은 기운으로 탄생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무릇 생명이란 천지부모를 받들고 선현들이 슬기롭게 빚어낸 전통과 문화를 이어가야 한다. 인륜과 도리를 배우고 이를 몸에 갖춰 실천하면서 사는 게 참된 사람의 덕목인 것이다.

 

| 화학물질에 점령된 우리의 삶

지금 우리 사회는 서구 물질문명에 의해 구조적으로 장악돼 있다. 먹는 음식은 화학첨가물로 범벅이 됐다. 우리가 입고 사는 옷은 또 어떤가. 역시 화학물질로 만들어 입고 있지 않나. 화학물질로 염색된 옷과 몸을 조이는 옷은 오늘날 불임과 임산병의 원인이다. 집을 지을 때 역시 어느 한 구석 화학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곳이 있던가. 결국 우리의 먹고 입고 잠자는 모든 것이 화학물질에 노출돼 있는 셈이다.

나는 화학물질이 우리의 몸을 망친다고 단언한다. 인간은 모름지기 입, 코, 피부의 모든 구멍으로 호흡을 하기 마련인데, 그곳으로 화학물질이 흡수된다. 알게 모르게 체내에 쌓인 화학물질은 점차 피를 오염시키면서 독혈을 만든다.

그렇게 우리는 독혈로 인한 각종 질병에 시달리게 된다. 우리 몸의 피는 핏줄을 따라 9만6천km를 18만 파운드의 힘으로 23초 만에 한 바퀴 돌게 된다. 심장의 운동은 그만큼 엄청나다. 하지만 오염된 피는 우리 몸의 세포를 조금씩 괴사시킨다. 고혈압, 암, 당뇨, 심장병 등이 일어나게 되는 거다.

특히 이런 환경에 노출된 임산부들은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기 어려워진다. 해가 뜨는 이 땅의 한민족은 대대로 생명과 자연을 존중하고 함께 사는 법을 추구하던 민족이다. 선현들은 슬기롭게 우리의 생활문화를 가꿔왔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슬기로움이 외면 받고 있는 상황이다. 반대로 해가 지는 서쪽 사람들은 자연과 생명을 정복의 대상으로 봤다. 그들은 화학 산업을 발전시키고, 무기 공장을 만들어 지구촌의 약한 나라를 차례차례 정복해가고 있다. 다국적 기업의 해악은 지구촌 곳곳에 미치고 있다. 반면 한민족은 공동체 문화를 이어오던 민족이다. 나는 이것이 불교의 자비 정신과 맞닿아 있다고 본다. 인간을 존중하고 배려와 관용을 베풀며 사랑을 실천하는 삶이 바로 우리 민족의 정체성이 아니던가.

 

| 정상적이지 못한 탄생의 과정

생명의 탄생 과정은 임신, 태교, 출산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우리 고유의 태교와 출산 방식이 급작스럽게 전환되는 시기가 있었다. 1970년대다. 그 당시 외국에서 무통분만 기술자들을 데리고 왔다. 그리고는 주류 언론이 나서서 무통분만을 적극 홍보했었다. 의사들도 무통분만을 적극 권장했다. 신체의 중심이 되는 척추에 무통분만을 위한 화학약품이 투여되는 순간 생명은 위협받기 시작한다. 출산은 곧 생명의 출발이다.

그런데 과연 이런 과정이 정상적이고 건강한 출산이라고 할 수 있는가. 요즘 임산부의 46%는 메스로 배를 가르고 제왕절개 수술을 한다. 자, 한 번 생각을 해보자. 출산 전까지 태아는 양수라는 바다 속에서 앉은 채자란다. 그동안은 자연스럽게 허리가 굽은 채 자라게 된다. 그러다 출산 과정에서 자궁을 빠져나오며 엄마의 산도를 따라 몸이 자연스럽게 펴지게 된다. 그리고 어두운 곳에서 서서히 밝은 곳으로 빠져나오며 몸이 적응하는 과정을 겪는다.

그런데 제왕절개를 하면 그런 모든 과정이 생략된다. 비록 말 못하는 아이지만, 태어나는 그 순간 억지로 꺼내어질 때 받게 되는 충격은 과연 어떠할까? 조금 과장해서 묘사하자면 아마도 천지가 개벽을 하는 것 같은 충격을 받지 않을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과거 우리 조상들이 산방을 어둡게 한 것은 모두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태아의 적응과정을 염두에 둔 속 깊은 배려다. 세상 어느 곳의 여자든 출산 직후에는 젖이 나오지 않는다. 우리나라 사람의 경우 출산 후 48시간 정도까지 빈 젖만 나온다. 초유가 나올 때까지 아이는 그 긴 시간 동안 빈 젖을 빨며 몸의 힘을 키운다. 그 과정에서 엄마의 몸에는 젖이 돌게 된다. 제대로 된 젖이 나올 때까지 아이는 자연적으로 단식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48시간의 단식과정을 거치면서 아이는 태변을 싸게 된다. 이처럼 자연적인 단식은 천명이다.

태변을 빼내기 위한 자연적 조치다. 그런데 요즘의 모습은 어떠한가. 아이가 태어나면 그 즉시 강보에 꽁꽁 싸매서 신생아실로 보내 버린다. 그 과정에서 수시로 엄마의 젖을 빠는 행위는 생략돼 버릴 수밖에 없다. 대신 엄마의 젖이 아닌 소의 젖, 우유(분유)를 먹인다. 상식적으로 조금만 생각해보자.

인간이 인간의 젖을 먹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소의 젖을 먹는 것이 맞을까? 이로 인한 폐해는 또 있다. 소의 젖을 먹임으로서 자연적 단식의 과정도 생략된다. 단식의 과정이 사라지면서 아이는 태변이 다 빠지지 않은 상태가 된다. 체내에 남은 태변은 훗날 아토피를 비롯한 각종 병의 원인이 된다.

24개월까지 모유를 수유함으로써 얻어지는 부가적인 효과는 면역력이다. 아이는 어머니의 면역력을 그대로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살 이후에는 자체적으로 치유력과 면역력을 갖추게 된다. 아이는 처음 젖의 맛을 보면(그것이 모유든 분유든) 이후론 그것만 먹으려고 한다.

로비를 통해 유통되는 분유를 비롯한 유제품에 맛을 들인 아이들은 엄마 젖이 아닌 유제품을 찾게 되는 것이다. 분유에 함유된 성분들이 아이를 건강하게 만들어줄 거라고 믿지만, 그건 실체 없는 허상이다. 도리어 인간의 몸에 맞지 않는 소젖을 먹음으로써 아이들에게는 이상이 생길 가능성이 더 커질 뿐이다.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이처럼 태어나는 순간부터 단추를 잘못 꿰고 있다.

이름 모를 수많은 질병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은 생명의 탄생부터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잘못 꿰어진 단추를 바로잡는 길은 과거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물, 죽염, 채소, 발효음식이 바로 그것이다. 사람이 자연과 가까워지고, 자연 속에서 건강을 찾는 길은 그곳에 있다. 이것이 죽음의 길에서 삶의 길로 가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