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비슬산 박환희 선생이 빚은 ‘ 하향주荷香酒’

쾌락이 아닌 연꽃향 기개를 담아낸 한 잔

2014-02-06     정두철
 


산 형세가 신선이 앉아 비파를 타는 모습을 닮은 대구 달성군 비슬산. 양지바른 산기슭에 ‘하향주가荷香酒家’라고 새긴 큰 바위가 우뚝 서있다. 신라 성덕왕, 병란으로 전소된 도성암을 중수할 때 일꾼들에게 보시하고자 빚은 ‘토주土酒’가 ‘하향주荷香酒’의 시초라고 한다. 조선 광해군 때는 천연 요새인 이곳에 주둔한 부대 장군이 진상하여 ‘천하명주天下銘酒’라는 칭송을 받았다고도 전해진다.

● 그 후 ‘밀양 박’씨 가양주로 1680년부터 5대 이상 내려왔다. 이제는 1994년 외국 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온 박환희 선생이 어머니 김필순 씨의 뒤를 이어 가업으로 그 맥을 잇고 있다. 이미 천년을 넘은 ‘하향주’의 역사. 박 선생은 앞으로도 천년을 지켜낼 양조장을 지을 요량인지 10여 년에 걸쳐 손수 짓고 있다. 포크레인 면허를 취득해 땅을 다지고 돌담을 쌓아가며, 마치 1,400년 전 도성암을 짓는 일꾼이 환생한 듯 천하의 요새를 쌓는 장수의 심정처럼 묵묵하다.

● ‘하향주’의 주재료는 유가찹쌀이다. 유가 찹쌀떡은 먼 한양까지도 굳지 않아 영남 선비들 과거 봇짐의 필수품이었다고 한다. 이곳을 찾는 이에게 비슬산의 영기를 품은 괴암과 고찰은 속세의 작은 흔들림조차 가다듬게 한다. 박환희 선생의 ‘하향주’는 쾌락의 가벼움을 빚기보다는 천년 전 도성암 중건에 품을 팔던 이름 모를 일꾼의 신심信心과 수백년 전 조국을 지키는 장수의 기개를 되살리는 듯 묵묵하고 경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