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화神話’라는 미로 속에서의 길 찾기

2014-02-06     유응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테세우스의 ‘래버린스(Labyrinth, 미궁)’로 시작한다. 그리스 남쪽에 있던 섬나라 크레타에 다이달로스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다이달로스는 손재주가 빼어났다. 크레타 왕 미노스는 다이달로스에게 미궁迷宮을 만들게 했다. 미궁은 들어가면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곳이다. 미궁 속의 길을 우리는 미로迷路라고 부른다.
 
 
 
테세우스의 미궁 탈출 열쇠는 ‘실타래’
미노스 왕이 미궁을 만들려고 한 이유는 미노타우노타우로스의 먹잇감으로 던져 주기 위해서였다.
아테나이의 왕자인 테세우스는 자기 나라의 선남선녀들이 미노타우로스의 먹잇감으로 희생 되는 것을 막고자 했다. 하여 선발된 열두 명 중 한명으로 위장하여 크레타로 갔다. 그는 재물이 될 젊은이들과 함께 미궁으로 들어가서 미노타우로스를 죽여버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크레타의 공주인 아리아드네가 테세우스를 보고서는 첫눈에 반했다.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가 미궁에 빠져 죽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미궁에 들어가서 미노타우로스의 먹이가 되지 않은 인간은 없었다. 설사 미노타우로스를 죽인다고 하더라도, 다이달로스가 지은 미궁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미궁을 빠져나온 것은 다이달로스뿐이었다. 다이달로스는 아들 이카로스와 함께 새의 깃털을 주워 모아 날개를 만든 뒤, 하늘을 날아서 미궁을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는 먼 훗날의 일이다.)
아리아드네는 몰래 테세우스를 찾아가 실이 잔뜩 감긴 아마亞麻 실타래를 건넸다. 테세우스는 미궁에 들어가자마자 품안에서 실타래를 꺼내어 실을 미궁의 문설주에 묶었다. 그리고 걸을 때마다 실을 풀어나갔다. 역사力士인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로스를 때려 죽였다. 그리고 아테나이 젊은이들을 이끌고 미궁을 빠져나왔다. 테세우스는 풀어
놓은 실을 따라서 미로를 빠져 나왔던 것이다.
이윤기가 그리스 로마 신화를 시작하면서 테세우스의 미궁 이야기를 언급한 이유가 무엇일까? 신화는 우화寓話 형식을 빈 신들의 이야기이다. 그런 까닭에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일종의 기호학적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신화라는 미궁에서 헤매지 않으려면 그 미로를 빠져나올 실타래가 필요하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주인공은 인격화된 신들이다. 그런 까닭에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삶을 길에 비유한다. 하염없는 인생의 길 위에서 사람들은 곧잘 갈 곳을 몰라 한다. 같은 자리를 맴도는 링반데롱Ringwanderung을 경험하는 것은 비단 등산객만이 아니다. 직장인들도 돌고 도는 회전문으로 출근하여 그 회전문으로 퇴근한다. 미로의 길 위에서 나침반(혹은 지도)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기호학적 상징들이다. 물론 그 기호학적인 상징에는 불교적인 깨달음도 포함된다.
 
 
가도 가도 본래자리, 이르고 이르러도 출발한 자리
불교 이야기 중 테세우스의 미로와 유사한 메타포가 있다. 바로 <해인도海印圖>이다. 우주 만유의 현상을 가장 고차원적인 이론으로 설하고 있는 불교 경전이 『화엄경華嚴經』이다. 『화엄경』을 체계화한 교법상의 이론을 화엄사상이라 한다. 그리고 이 화엄사상을 함축해 그 핵심요체를 정리한 게 「법성게法性偈」이다. 「법성게」는 의상 스님이 중국에 들어가 화엄종 2조인 지엄 스님 문하에서 지은 것 이다. 의상 스님이 법성게를 지은 것은 668년 44세 때라고 한다. 법성게의 원래 이름은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이다. 7언 송구頌句, 30송, 210자의 글자를 도인圖印 안에 배치한 것이다.
의상 스님이 법성게를 지은 유래에 대해 매우 신비스러운 설화가 전해진다. 최치원이 지은 『의상전義湘傳』에 따르면, 의상 스님이 그의 스승 지엄 스님 문하에서 화엄학을 수학하고 있을 때 기이한 꿈들을 꿨다고 한다. 한 신인神人이 나타나 의상 스님에게 그대가 깨달은 바를 저술하여 여러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하라고 하였다. 이어 선재동자善財童子가 총명약을 주었다. 그리고 푸른 옷을 입은 동자가 나타나 비결秘訣을 줬다.
이 이야기를 전했더니 지엄 스님이 듣고 “신인이 신령스러운 것을 나에게는 한 번을 주더니 네게는 세 번을 주었구나. 널리 수행하여 네가 터득한 경지를 표현하도록 하라.”고 했다. 의상 스님이 자신이 터득한 오묘한 경지를 순서대로 부지런히 써서 『대승장大乘章』 10권을 지었다. 그리고 스승에게 잘못된 것이 없는지를 감수해 달라고 청했
다. 지엄 스님이 그 글을 보고서 “뜻은 좋으나 말이 옹색壅塞하다.”고 평한 뒤 글을 윤문했다.
그러고 나서 지엄 스님과 의상 스님이 함께불전에 나아가 그것을 불에 사르면서 ‘부처님의 뜻에 맞는 글자는 타지 않게 해 주소서’ 하고 기원을 하였더니 210자가 타지 않고 남았다. 의상 스님이 게偈가 되게 하려고 며칠 동안 문을 걸고 글자를 연결해 맞추어 마침내 30구句를 이루니, 삼관三觀의 오묘한 뜻을 포괄하고 십현十玄의 아름다움
을 드러내었다 하였다. <법계도>는 해인삼매海印三昧의 세계를 도인圖印을 통하여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어서 <해인도>라고도 한다.
<해인도>는 법法으로 시작해서 불佛로 끝나는데, 그 마지막 구절이 ‘구래부동명위불舊來不動名爲佛’이다. ‘옛부터 움직임이 없는 그 이름 부처’라는 뜻의 마지막 구절은 법성의 그윽한 이치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법이 근원에 돌아가서 보면 ‘가도 감이 없는 것이요, 와도 옴이 없는 것’이다. 의상 스님은 이를 일컬어 ‘행행본처行行本處 지지발처至至發處’라고 설명하였다. ‘가도 가도 본래 자리요, 이르고 이르러도 출발한 그 자리’라는 의미이다.
실제로 <해인도>의 도상은 언뜻 보면 무슨 미로처럼 생겼다. 하여 자칫 그 길의 출구와 입구를 찾기가 어렵다. <해인도>라는 미로의 길 찾기 열쇠는 바로 시작이 법이고 끝이 불이라는 데 있다. 다시 말해 깨닫기 전의 중생이나 깨달은 뒤의 부처가 본질적 근원에서 볼 때 다른 것이 없다는 뜻이다.
 
 
소를 타고 소를 찾는구나
노벨문학상을 받은 벨기에의 작가 마테를 링크는‘파랑새’라는 동화를 썼다. 파랑새를 찾으려고 세상을 돌아다니다 집으로 돌아와 보니 집안에 파랑새가 있더라는 이야기이다. ‘파랑새’보다 훨씬 더 빨리 이러한 진리를 설한 이야기가 있다. 바로 불가에서 깨달음의 과정을 소를 찾는 일에 비유한 <심우도尋牛圖>이다. 다른 말로는 <십우도十牛圖>라고도 한다.
십우도의 지은이에 대해서는 다소 이견이 있는데, 대체적으로 확암지원廓庵志遠이 지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12세기 중국의 확암지원이 지은 <십우도>는 훗날 선종에서 본성을 찾아가는 여정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확암지원의 <십우도>와 함께 널리 알려진 것은 중국 송나라 보명普明의 십우도이다. 중국에는 말을 묘사한 <십마도十馬圖>가, 티베트에는 코끼리를 묘사한 <십상도十象圖>가 전해져 내려온다. 보명의 작품은 소를 길들인다는 뜻에서 <목우도牧牛圖>라고 한다. 반면 확암의 작품은 소를 찾는 과정으로 열 단계로 나눠져 있다.
<십우도>라는 이름도 여기에서 기인한다. <십우도>가 아니더라도 불교에서는 소를 깨달음의 상징으로 여겨왔던 게 사실이다. 『유교경遺敎經』에는 수행하는 것을 소먹이는 것[牧牛]에 비유하는 대목이 있고, 『법화경』에는 불승佛乘을 ‘흰 소가 이끄는 수레[大白牛車]’로 비유하고 있다.
이는 아마도 불교의 발생지가 인도이고, 인도에서는 예부터 소를 신성시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실제 부처님 일화에도 소가 곧잘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남악회양 스님이 마조도일 스님을 일깨우면서 “소에 채찍질을 할 것인가? 아니면 수레에 할 것인가?”라고 설한 바 있다.
확암지원의 십우도는 심우尋牛로 시작한다. 동자가 망과 고삐를 들고 소를 찾기 위해 산속을 헤매는 내용이다. 이후 견적見跡-견우見牛-득우得牛-목우牧牛-기우귀가騎牛歸家-망우존인忘牛存人-인우구망人牛俱忘-반본환원返本還源의 단계를 거쳐, 마지막 열 번째 단계는 동자가 큰 포대를 메고 저자거리로 가는 입전수수入廛垂手로 끝맺는다. 여기서 큰 포대는 중생에게 베풀어줄 복덕을 담은 포대이다.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중생제도에 있다는 것을의미한다. (참고로 1550년대 프랑크푸르트에서 제작된 <철학
자의 장미 정원> 도판은 연금술적인 과정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인데, 삶과 죽음, 재생 그 일련의 과정을 10단계로 나눠 설명했다는 점에서 <십우도>와 대비해 볼만하다.)
확암지원이 아홉 번째 단계인 ‘반본환원’을 읊은 것을 살펴보자. ‘암중불견암전물(庵中不見庵前物, 암자에 앉아 암자 아래는 보지 못하네)’라는 대목에서 그간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맸던 무릉도원이 바로 자신이 사는 암자 아래였음을 깨닫게 된다. 이는 ‘정토가 어디인가? 중생이 살아가는 곳이라네’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본향을 찾고 나서 보면 본향은 먼 데 있는 게 아니다. 봄이면 꽃 피고 새 울고, 여름이면 소나기 퍼붓고, 가을이면 낙엽지고, 겨울이면 폭설에 설해목 가지가 부러지는 모든 산야가 바로 본향인 것이다. 혜감 국사의 선시를 소개한다.
 
작래무영수斫來無影樹
그림자 없는 나무를 쪼개다
초진수중구.盡水中.
물 속의 물거품을 태우니
가소기우자可笑騎牛者
어허! 우습도다 소를 탄 사람이
기우경멱우騎牛更覓牛
소를 타고서 다시 소를 찾다니
 
이 세상 사람은 누구나 보물을 지니고 있고, 그 보물은 자신의 몸속에 지니고 있다. 그 보물을 발견하는 것이 바로 불교적인 깨달음과 지혜이다. 필자의 <신화의 길, 깨달음의 길> 연재 글은 동서양 신화에 숨겨진 상징들을 불교사상에 입각해 해석해보는 데 목적이 있다. 그리고 신화라는 미로를 열수 있는 열쇠는 깨달음에 있음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