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반과 함께 하는 소풍 같은 여정

108산사순례기도회 강진 무위사 순례 동참기

2012-09-03     불광출판사

오전 6시가 되자 살구색 조끼를 입고 배낭을 멘 불자들이 하나둘 조계사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이지만 배낭은 꽤 두툼해 보인다. 한 달 만에 만나는 도반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눈 불자들은 배정된 8대의 버스에 나눠 타고 소풍 같은 순례 여정에 오른다. 빈자리 하나 없는 버스 안은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한 달간 있었던 얘기를 주고받으며 간식을 나눠 먹는 모습이 가족과 같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혜자 스님의 영상 법문이 시작됐다.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순례를 하기로 다짐한 그날부터 이미 부처님 공부를 시작한 것입니다. 오늘의 순례 역시 부처님의 가피가 함께 할 것입니다.”


 

순례문화의 획을 긋다

한 달에 한번 진행되는 108산사순례기도회(회주 혜자 스님, 이하 기도회)의 순례 출발 모습이다. 이날 순례는 71번째. 20069월부터 시작된 여정이 벌써 6년째에 접어들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의 사고 없이 진행되는 것 자체가 신기할 정도다.

순례는 3일에 걸쳐 진행된다. 6,000여 명의 불자들을 한 번에 수용할 수 있는 사찰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번 순례도 89일부터 11일까지 진행됐다. 이날 순례객을 맞은 강진 무위사 앞 주차장은 50여 대의 버스들로 가득 찼다. 서울뿐만 아니라 부산, 대구, 울산, 경주, 포항, 원주, 춘천 등 전국에서 2,000여 명의 불자들이 왔다.

기도회는 출범 당시부터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사찰을 순례하면서 기도하고 보시한다. 지역 농산물을 구입하고 군인들에게 초코파이를 전하기도 한다. 또 지역 다문화가정과 인연을 맺고 청소년들에게 장학금도 준다. 기도회가 움직일 때마다 지역 경제가 들썩인다는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니다. 기도회의 이런 활동이 알려지면서 회원 숫자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이미 1만 명을 넘어섰고, ‘어쩔 수 없이기도회 2기를 출범시켜 운영하고 있다. 다른 사찰들도 기도회의 모습을 보고 108산사 순례단을 조직해 성지순례에 나설 정도다.

무위사 주지 법화 스님은 이렇게 많은 불자들이 무위사를 찾은 것은 아마 처음일 것 같다. 정신이 없을 정도다. 불자들의 표정이 너무 밝고 좋다. 다들 신심(信心)있게 순례를 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라고 말했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닌 인연



출발 예정 시간인
630분에 정확히 조계사 앞을 떠난 버스는 다섯 시간 여를 달려 강진 무위사에 도착했다. 다른 지역에서 먼저 와 있던 불자들과 서울에서 내려온 순례단은 먼저 각자 준비한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한다. 삼삼오오 모여 앉아 각자 준비한 도시락을 나눠먹는 모습은 소풍 온 소년소녀들의 모습 그대로다.

공양을 마치고 이내 기도회 회주 혜자 스님과 무위사 주지 법화 스님을 선두로 공식적인순례가 시작됐다. 국보 제13호 극락보전을 참배한 순례단은 혜자 스님의 집전으로 기도를 진행했다. 순례단은 먼저 천수경을 독송했다. 뜨거운 날씨 탓에 나무와 전각 아래 그늘부터 자리가 차기 시작한다. 극락보전 앞마당에서 뜨거운 햇빛에 그냥 맞서 앉아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미동도 않고 독송을 이어나간다. 독송소리가 경내를 뒤흔드는 매미 울음소리와 묘한 화음을 이룬다. 묘음(妙音)이 따로 없다.

이어진 순서는 사경(寫經). 광명진언 옴 아모가 바이로차나 마하무드라 마니 파드마 즈바라 프라바릍타야 훔108번 사경하는 것이다. 광명진언은 비로자나 법신 광명으로 무명과 업장을 걷어내고 자성의 밝은 본성이 드러나게 하는 진언이다. 이 자리에서는 세 번만 사경을 하고 나머지는 한 달 동안 가족과 함께 사경한다. 사경이 끝나고 나서야 일심광명, 지극정성, 성불하십시오!”라며 서로가 서로에게 인사를 한다. 사찰을 가득 메운 모든 사람들이 다 도반이고, 그래서 도반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것이다. 그리고 5분 참선에 이어 나를 찾는 108기도에 따라 108참회를 했다.

4년째 순례에 동참하고 있는 전명희(51만법심포항시 장성동) 보살은 땡볕에서 절을 하는 게 쉽지는 않지만 이렇게 하고 나면 기분이 너무 좋다. 순례를 할수록 신심도 깊어지는 것 같고 성격도 더 밝아지는 것 같아 가족들도 다 좋아한다.”며 땀을 훔친다.

 

나누면서 기도하는 기쁨

법화 스님과 함께 순례단을 맞이한 조계종 중앙종회의장 보선 스님은 인신난득 불법난봉(人身難得 佛法難逢)이라 했습니다. 사람의 몸을 받아 태어나서 부처님 법을 만났으니 얼마나 큰 복입니까? 여러분들의 공덕은 하늘과 땅에 두루 퍼져 세상을 맑고 향기롭게 할 것이라고 환영의 인사를 건넸다.



이날 기도회는 강진 관내 복지시설에 약사보시금을 전하고 기도회 회원과 다문화가족의 자매결연을 맺어줬다. 또 효행상 시상, 관내 청소년에 대한 장학금 전달도 함께 진행했다. 공식행사가 끝난 뒤 순례단은 무위사 전각들을 두루 참배한 뒤 혜자 스님에게 71번째 염주알을 받았다.

부부가 함께 순례에 동참하고 있는 조학제(78법상서울시 은평구 갈현동)씨는 “1회부터 참가해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다. 3년 뒤 108산사 순례가 끝나면 81살인데 그때 다른 도반들과 함께 꼭 회향을 하고 싶다.”고 전했다. 조 씨는 순레를 하면 건강도 좋아지고 마음공부에도 많은 힘을 받는다. 이것은 결코 나만의 얘기는 아닐 것이라고 강조했다.

순례를 이끌고 있는 혜자 스님은 “108산사를 찾아 108불공으로 108배하며 108번뇌 소멸하고 108자비나눔으로 108공덕을 쌓으며 108염주를 만들어 인연공덕을 쌓아가는 기도회는 21세기 신행문화를 만들어 가는 순수 신행단체다. 기도회는 108산사를 찾아 기도와 정진을 통해 신심을 다지고 우리들의 마음의 고향과 함께 하기 위한 각종 프로그램을 추진하여 부처님의 상구보리 하화중생사상을 바르게 실천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오후 3시를 넘기며 일정을 마무리 할 때쯤 하늘에서는 거짓말처럼 무지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자연현상이라고 넘기기에는 뭔가 어색한(?) 무지개는 환희롭고 신심 나는 기도회 불자들의 마음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