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고찰, 가족들에게 안방을 내주다

완주 송광사 ‘가족 캠핑 템플스테이’

2012-09-03     불광출판사

1,200년의 장엄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고즈넉한 산사가 한 순간에 대형 캠핑장으로 변모했다. 한국불교문화사업단(단장 법진 스님)이 템플스테이 10주년을 맞아, ‘서로의 별이 되자라는 주제로 완주 송광사(회주 도영 스님)에서 대규모의 가족 캠핑 템플스테이를 야심차게 준비했다. 사찰 곳곳에 200여 동의 텐트가 쳐지고, 참가 인원도 무려 150가족 600여 명에 이른다. 수행과 신행 공간인 사찰이 23일간 모든 빗장을 열어젖히고, 우리 시대 가족간의 소통과 화합을 위해 안방까지 내어준 역사적인 순간이다.

 
 

 

서로에게 꿈과 희망이 가득한 별이 되어줄 때

가족이란 무엇일까? 나를 있게 한 근원이자 일상생활의 원동력일 것이다. 하지만 무한경쟁과 속도 전쟁이 펼쳐지는 현대사회에서, 가족이 마냥 따뜻한 위안이 되거나 힘이 되어주는 것은 아니다. 서로의 생활이 바쁘고 힘들다 보니 소통과 배려가 사라지고, 오해와 불만이 쌓여 갈등을 야기하며 극한 대립으로 치닫기도 한다.

사회 일각에선 디스토피아(Dystopia, 유토피아의 반대 상태반이상향) 한국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경제불황과 양극화, 높아진 실업률과 취업난, 늘어나는 강력 범죄, 집단 따돌림과 학교폭력, 리더십 부재, 난무하는 부정부패, 우울증과 자살, 환경오염 등 흡사 영화 배트맨의 배경인 고담 시티와 닮았다.

위로와 힐링, 사회 안전망이 절실한 시대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마음 속 맑은 소리에 귀 기울일 때다. 내가 먼저 건강해져야 우리 사회도 건강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족간의 소통이 잘 이뤄지고 서로에게 꿈과 희망이 가득한 별이 되어줄 때, 살맛 나는 세상에 대한 기대도 커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번 가족 캠핑 템플스테이가 추구하는 가치다.

템플스테이는 이제 종교를 떠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 콘텐츠로서, 치유와 공감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최근 가수 이효리와 KBS ‘남자의 자격멤버들의 템플스테이 체험이 방송되며, 대중적으로도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아직 템플스테이를 체험해보지 못한 많은 사람들도 언젠가는 꼭 참여하고픈 마음을 품고 산다. 그들에게 기회가 왔다. 가족 캠핑 템플스테이에 방학과 여름휴가를 맞은 가족들의 참가 신청이 쇄도했다.

 

 다양한 오감만족 프로그램




송광사에 마련된 문화체험 프로그램은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잘 차려진 진수성찬이다
. 가족이 선택한 시간에 참여하는 6개의 선택 프로그램(가족 심리극상담, 사찰음식 만들기, 동요랑 놀자, 함께하는 노래이야기, 도자기 만들기, 마이산전주한옥마을 탐방)과 언제라도 참여할 수 있는 9개의 상시 프로그램(장승 만들기, 목탁사물 체험, 인경 체험, 연잎 인절미 만들기, 연잎차 만들기, 천연비누 만들기, 다도 체험, 연등 만들기, 물놀이)으로 구성되었다. 이 외에도 밤에는 모두가 하나되어 즐기는 가족 공동체 화합마당과 캠핑 음악회, 그리고 달집 태우기 행사가 펼쳐졌다. 23일간 심심할 틈이 없다.

도량 곳곳이 왁자지껄 웃음소리로 넘쳐난다. 프로그램 부스를 돌다보니 각각의 재미가 쏠쏠하다. 그야말로 오감만족이다. 보는 재미, 듣는 재미, 먹는 재미, 만드는 재미, 쉬는 재미가 있다. 인절미를 만드는 떡메를 힘껏 내리치면서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보기도 한다. 한편 관음전에서 진행된 가족 심리극상담 프로그램에선 웃다가 울다가 다시 웃는 풍경이 펼쳐진다. 가족간에 고마웠던 일, 서운했던 감정을 풀어보며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눈물은 의외로 엄마! 밤새 아플 때 병간호해줘서 고마워요”, “우리 딸! 건강하고 밝게 잘 자라줘서 고마워등 고마웠던 이야기를 나누며 흘러나온다. 서로 안아주며 따뜻한 체온을 나누는 가족들을 보니, 괜스레 코끝이 찡해지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산사에서 맛보는 사찰음식은 소박하고 조촐하다
. 하지만 화학조미료와 육류 등 자극적인 입맛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에겐 특별하게 다가온다. 자연을 담은 별미다. 아이들도 누구 하나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그릇을 깨끗이 비워낸다. 간식으로 나온 옥수수와 감자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먹거리다. 산사에 어둠이 내려앉을 때면 비가 내렸다. 한낮의 열기를 식혀주며 공연 무대의 운치를 더해준다.

첫날 밤엔 흥겨운 게임과 가족 장기 자랑, 사회적기업 아퀴의 신나는 난타 공연이 이어졌다. 다음 날 밤엔 산사음악회가 펼쳐졌다. 가수 김태곤의 노래 송학사와 꽹과리해금 연주, 피아니스트 최소영이 연주하는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동요와 통기타 공연도 추억 속으로 이끌며 잔잔한 감동을 안겨준다. 특히 공연단 버블J’의 아쿠아쇼(버블쇼, 비보이, 셔플댄스)가 펼쳐질 땐 아이들이 모두 무대 앞으로 뛰쳐나와 분위기가 한껏 고조됐다. 이날 공연의 백미는 달집 태우기였다. 저마다의 소원을 정성스럽게 적어 새끼줄에 매달아놓은 소원지를 장작더미에 묶어 태우는 놀이다. 달집이 환하게 불밝히며 타오르자, 하늘에서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져내린다. 강강술래를 돌며 서로 맞잡은 손을 더욱 단단하게 움켜쥔다.


가족들이 여가를 보낼 수 있는 사찰의 전통문화



마지막 날 아침 예불과
108배에 이어, 보물찾기가 열렸다. 보물을 찾기 위해 사찰의 구석구석을 둘러보며 전통문화와 친숙해지는 계기도 된다. 보물을 찾은 참가자들에게는 USB, 발우공양 모형, 합장주, 책갈피, 엽서, 서예작품 등 한국불교문화사업단에서 개발한 문화상품이 선물로 돌아갔다. 이번 가족 캠핑 템플스테이는 프로그램도 다채롭지만 선물도 폭탄급으로 아낌없이 안겨준다. 티셔츠와 부채, 단주, 볼펜 등은 참가 기념 선물이고, 각 체험 프로그램에서 자신이 직접 만든 도자기, 장승, 인경, 천연비누, 연등을 가져간다. 600인 분의 전주비빔밥을 한꺼번에 비벼 점심공양을 한 후, 집으로 돌아가는 참가자들의 손에 선물 꾸러미가 한가득이다.

템플스테이가 진행되는 중간중간 만나본 참가자들의 만족도는 놀라울 정도로 높았다. 사실 지금의 초중학교 자녀를 둔 40대의 부모 세대는 전통문화와 단절된 세대인지도 모른다. 서구의 문명과 현대문화를 동경하며 전통문화를 촌스럽고 고루한 것으로 여겨왔다. 우리나라의 압축성장 과정을 겪으며 전통문화를 접할 기회도 많지 않았다. 그런데 게임과 만화영화만 좋아하고 까칠한 줄만 알았던 자신의 자녀들이, 전통을 이어온 불교문화를 체험하며 너무도 즐거워하는 모습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우리 문화와 아이들에 대해 잘 몰랐었다는 자각이다. 인천에서 가족과 함께 참여한 장현주(43, 특수학교 교사) 씨의 감회도 남달랐다.

주변에서 템플스테이가 아이들에게 정서적으로 좋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 여름방학이 시작되자마자 두 딸을 공주 마곡사 템플스테이에 보냈어요. 아이들이 다녀와서 절이 그렇게 좋은 곳인 줄 몰랐다며 다시 가고 싶어 했어요. 그런데 정작 저는 템플스테이를 경험해 보지 못한 거예요. 마침 인터넷에서 가족 캠핑 템플스테이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고, 맞벌이인 남편과 휴가를 겨우 맞춰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저도 덩달아 행복하고, 여러 문화 체험도 경험하며 굉장히 유익하고 재미있었어요. 남편도 마이산 탐방과 산사음악회가 좋았다며 기회가 되면 다시 오자고 하더라구요. 텐트에 온 가족이 누워 떨어지는 빗소리 들으며 편안하게 얘기를 나눈 시간도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거예요.”



이번 가족 캠핑 템플스테이는 큰 모험이자 실험적인 도전이었다
. 천년고찰의 문을 활짝 열고 대중에게 통째로 내어주는 것이 어찌 쉬운 결정이었겠는가. 텐트 200여 개를 치고 600여 명이 참여하는 규모도 상상을 뛰어넘는 기획이다. 한국불교문화사업단, 송광사 신도회, 전북불교발전협의회 인원들로 구성된 진행 스텝과 자원봉사자도 80여 명에 이른다. 각 체험 부스와 공양간에 배치되어 조금의 불편함도 없이 진행되도록 성심을 다했다. 새벽까지 내린 장대비로 텐트 옆에 배수로를 내느라 잠도 몇 시간 못 자는 강행군이었다. 동국대에서 공부하고 있는 20여 명의 스님들도 체험 프로그램 도우미로 참여해, 밤에는 안전을 위해 불침번을 돌기도 했다.

참가자들이 크게 기뻐하며 행사가 성공적으로 회향될 수 있었던 것은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의 원력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깨우치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가족들이 함께 절에 와서 전통문화적인 요소를 통해 여가를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었다. 이제 좀더 자부심과 자신감을 갖고 대중에게 다가가도 좋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