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고통을 거두는 자비 정신의 구현

특집 ● 자비, 세계에 뿌려지다 - 조계종 총무원 사회국장 묘장 스님 인터뷰

2012-07-21     불광출판사

폐허 속에서 펼쳐지는 긴급재난구호 활동

지구촌에서 도움의 손길이 가장 시급하고 간절하게 필요한 곳이 어디일까? 아마도 지진, 홍수 등의 천재지변으로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잃은 재난 지역일 것이다. 경제 기반이 열악한 나라일수록 망연자실 손 놓고 주저앉은 현지인들에게 삶의 희망은 요원하기만 하다. 개별적으로 접근해 도움을 주는 방법도 마땅치 않다. 전문적이고 조직적인 단체의 역량이 요구될 수밖에 없다. 불교계에서는 2005년 설립된 대한불교조계종 긴급재난구호봉사대가 이 역할을 해내고 있다. 아이티 지진, 동일본 쓰나미, 태국 홍수 피해지역 등에 봉사대 단장으로 파견되어 현장 구호 활동을 해온 묘장 스님을 만나, 불교계의 국제개발구호와 관련한 긴급구호활동 현황을 들을 수 있었다.



좀더 깊숙이, 좀더 가까이
긴급재난구호봉사대(이하 봉사대)의 조직 구성은 어떻게 되나요?
봉사대는 조계종 사회복지재단 소속이며 총무원 사회부, 공익법인 ‘아름다운동행’과 긴밀한 협조 체제를 구축하고 있어요. 세 곳의 업무 분장이 정확하게 구분됩니다. 사회복지재단은 주로 인력 지원을 담당하고, 사회부는 현지와의공조 네트워크 구성, 아름다운동행은 모금과 홍보를 맡아요. 긴급 재난상황이 발생하면 준비된 매뉴얼을 토대로 지원활동을 전개해 나갑니다.

그렇다면 어느 상황에 봉사대가 파견되나요?
재난 등급에 따라 지원 활동이 달라져요. 일반적으로 A, B, C, D등급으로 나눕니다. A등급은 그 나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소규모의 재난 상황, B등급 은 가까운 나라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 C등급은 가까운 나라에서는 인적,물적 자원 지원, 멀리 있는 나라에서는 물적 자원을 지원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그리고 D등급은 전 세계 모든 국가가 참여해 도와줘야 하는 심각한 재난 상황입니다. 우리 봉사대는 아시아권의 경우 B,C등급의 재난 상황이 발생하면
긴급 회의를 거쳐 72시간 내에 선발대가 파견되고, 이어서 본진이 합류합니다. 그 외의 지역은 D등급에 한해 움직여요. 바로 아이티 지진 같은 경우가 D
등급에 속한 경우였어요.

활동은 어떤 식으로 이뤄집니까?
재난 현장에는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많기 때문에,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의료 지원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그리고 현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서 긴급구호식량, 생필품 등 생존에 필요한 구호 물자를 제공하고 있어요.
우리 조계종 봉사대가 다른 구호단체와 차별점이 있다면, 안전지대에만 머물지 않고 좀 더 깊숙이 들어가 지역적으로 소외된 이들에게 의료혜택을 받게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어느 때는 수백 명이 치료받기 위해 몰려와 붐비니, 옆에 조그만 시장이 열리기도 합니다.

위험하고 힘든 일도 많이 발생할 것 같은데, 가장 어려운 부분은 무엇입니까?
아무래도 대원들의 안전을 확보하는 일입니다. 구호활동 경험이 많은 단체의 시행착오를 통해 배우는게 많고, 우리도 경험이 축적되며 안전하게 활동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어요. 그래도 위험 요소는 곳곳에 산재해 있어요. 지난해 동일본 대지진 피해 당시, 여진 여파가 아주 심각했어요. 서랍이 열릴 정도로 진동이 거셌는데, 숙소에서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10차례 넘게 대피하는 소동이 있었지요. 그리고 그때 또 힘들었던 게, 선발대가 현장까지 가서 조사를 해야 하는데, 도로도 끊긴데다 원전 폭발로 인해 반경 50km 이내로는 접근을 막아놓은 거예요. 그래서 현지인, 불자, 교포, 외교부 인맥 등 현장까지 접근할 수 있는 12가지 채널을 총동원했는데 전혀 먹혀들지 않았어요. 철수하는 날이 다가와 자포자기 심정이 되었는데, 그중 한 가지 방법이 갑자기 성사되어 부랴부랴 피해현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지요. 아이티에서는 현장에 가는 도중, 바로 앞서가던 타 단체의 구호물품 트럭이 주민들에게 털리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광경이 위협적이거나 험악한 분위기가 아니라, 어른아이 할것 없이 모두 물건을 들고 가며 즐거워하는 거예요. 뒤늦게 그 소식을 들었는지, 꼬맹이 셋이서 리어카를 끌고 빈 트럭에 다 가가더군요. 그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애들아! 한발 늦었다’하며 안쓰러운 마음이들기도 했습니다.



국제개발구호의 바른 모델을 향한 원력
스님은 또한 국제개발구호 NGO단체인 더프라미스The Promise 상임이사로서 차별 없는 나눔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는데, 이 분야에 애정을 갖고 활동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불교계 최초 NGO단체인 경제정의실천불교시민연합 활동을 하면서, 처음 NGO를 접하게 됐어요. 경불련에서 네팔에 학교를 짓고 빈민층을 대상으로 문맹퇴치교육과 기술교육사업을 실시했는데,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고 참여하면서 ‘국제개발구호의 바른 모델을 내가 직접 만들어봐야겠다’는 원력을 세웠습니다. 국제개발구호에만 집중할 수 있는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단체를 만들어, 현지 사람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고 싶었어요.

종단의 긴급재난구호봉사대와 불교계 국제개발구호 NGO단체 활동의 차별점은 무엇입니까?
긴급구호 영역과 개발구호 영역이 서로 구분되어 있는 현 체제가 효과적이라고 봅니다. 긴급구호 영역은 신속한 의사결정과 단기간의 집약된 지원 활동이 요구되기 때문에 충분한 재정과 다양한 인적 구성이 필요해요. 이러한 모든 역량을 집결시키기 위해서는 종단차원의 활동이 효과적입니다.
그리고 개발구호 영역은 현지인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지속가능한 개발 활동을 장기간에 걸쳐 해야 하므로 NGO단체들이 맡아서 하는 것이 좋아요.

종단과 국제개발구호 NGO단체 사이에, 서로 상생발전할 수 있는 협력 체계는 구축되어 있나요?
현재 긴급구호 영역은 종단이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지만, NGO단체들과도 함께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재난이 발생하면 불교계 NGO들이 함께 모여 회의를 하고, 지원 활동을 같이 할 수 있는 참여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사실 다른 분야의 불교계 NGO들은 많이 힘들어하고 위축되어 있는 반면, 국제구호개발 NGO들은 에너제틱하게 활동하며 성장하고 있어요. 서로 자주 모여 활동 성과와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큰 원동력인 것 같아요. 종단에서도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 공유와 연구 활동을 같이 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만들어보겠습니다.

불교계의 활동이 이웃 종교나 일반 단체와 다른 점이 있을까요?
불교계는 후발주자인 만큼 배우려는 자세가 되어 있어요. 앞선 단체들의 잘못된 시행착오를 통해 바람직한 방향성에 대한 연구를 활발히 하고, 유엔UN을 비롯해 여러 나라의 단체들과 소통도 잘하고 있어요. 실제적인 활동에 있어서는 밀착형 프로그램이 많습니다. 자비심을 바탕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려는 사상이 자연스럽게 녹여져 있기에, 현지인들과 함께 호흡하며 공동체 안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한 순수한 열정이 믿음을 쌓게 해 여러 활동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보살행을 낳는 불자들의 후원
우리나라는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발전했습니다. 그런데 세계 10권의 경제규모로 성장하며 국가적 위상이 높아졌지만, 우리나라의 대외개발원조 지원액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 수준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국제사회 기여도가 낮은 것을 비판하는 여론이 강한 반면, 우리나라의 가난한 사람부터 챙겨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저는 국제사회 기여도를 높여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어려운 사람들이 많지만, 우리나라 복지는 상상 외로 잘되어 있어요. 차상위계층 등 그동안 놓쳤던 부분들만 잘 찾아서 보완한다면 충분히 잘할 수 있을 거라 봅니다. 하지만 해외에는 아직도 너무나 열악한 곳이 많습니다. 인도적 차원의 물질적인 지원도 중요하지만, 동등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해요. 이를 테면 무역 파트너로서 기회를 주는 방법이 있어요. 그들의 힘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줌으로써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국제개발구호의 마지막 종착지는 공정무역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스님은 국제개발구호 중에서도 오지 전문가라고 하던데, 힘든 만큼 보람도 클 것 같습니다.
도움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까지 찾아가다 보니 좀더 깊숙이 들어가게 됩니다. 스리랑카 반군 점령 지역을 비롯해 아이티나 미얀마를 갈 때는 주로 외국인 통제 구역으로 가는데, 오히려 그런 곳이 더 안전합니다. 군인들과 국가 기관원들이 그림자처럼 붙어다니며 보호해주거든요. 가장 빠른 시간 내에 가장 가까이 갈 수 있어야 그들의 아픔을 바로 볼 수 있어요. 현장의 참혹한 모습을 보면 매우 안타깝고 애처롭습니다. 그런데 그곳 사람들은 슬픔에만 빠져 있지는 않아요. 우리의 도움을 통해 스스로 일어서려는 의지와 힘내는것을 보면, 그런데서 보람을 찾을 수 있어요.
구호 활동을 하다 보면 밥 냄새를 풍기지 않기 위해 점심을 굶기 일쑤고, 때론 모래섞인 밥을 어그적어 그적 씹을 때도 있지만 현지 사람들과 아픔을 나누며 소통하는 것이 굉장히 즐겁습니다. 사실 현지인들로부터 배우는 게 더 많거든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자연과 더불어 욕심 부리지 않고 즐겁고 평화롭게 사는 모습을 보면,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됩니다.




불자들 중에는 불교계 국제개발구호 활동에 대해 잘 몰라, 이웃 종교 단체에 후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홍보와 후원 독려를 해주신다면?
불교계 국제개발구호 활동은 가장 어렵고 힘든 곳에 부처님이 함께하고 있다는 자비 정신의 구현입니다. 그동안 종단에서는 스리랑카,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아이티, 일본, 태국 등의 재난 피해 현장에 봉사대를 파견해 풍부한 현장 경험을 쌓았어요. 이를 바탕으로 행정력과 전문성을 갖춰 보다 나은 구호체계를 구축해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불교계 국제개발구호 NGO단체는 비교적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성심을 다하는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외부로부터도 우수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대외활동이나 홍보 부분에서 미흡한 점이 있었지만, 조금만 관심을 갖고 인터넷 검색 한번만 해보더라도 얼마나 열심히 잘하고 있는지 알 수 있어요. 불교계 개발구호 활동이 더욱 성장하기 위해서는 불자님들의 후원이 절실하고 꼭 필요합니다. 애정어린 격려와 후원으로 불교계에서 세계적인 국제개발구호 단체가 탄생할 수 있도록 키워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묘장 스님.
동대문 연화사 주지로서 조계종 총무원 사회국장, 국제구호단체 더프라미스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평화센터 건립을 위해 타밀 반군 점령지를 드나들고, 세계 곳곳의 재해 현장에 파견되어 의료봉사와 긴급구호 활동을 펼쳤다. 사)이웃을돕는사람들 이사, KCRP(한국종교인평화회의) 운영위원, IPCR(종교평화국제사업단) 이사로 활동하며 지구촌 사람들 모두가 다함께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