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라, 거기 삶이 있다

특집 ● 길 그리고 걷기- 걷는다는 것

2012-06-21     불광출판사

제주 올레길과 지리산 둘레길의 성공을 보고 각 지자체가 너도나도 걷는 길을 개설하여 불과 몇 년 사이에 전국적으로 근사한 도보여행 길이 갖추어졌다. 걷는 것에 어떤 매력이 있기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길을 따라 흐르는 것일까?

한꺼번에 두 걸음을 내딛을 수 없다
바람결에 날아가지 않도록 눌러쓴 밀짚모자 아래로 기분 좋은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지리산을 생명 평화의 산으로 가꾸고자 지리산종교연대가 주관하는 1,000일 순례. 스님, 목사님, 원불교 교무님 등이 하루에 한 명씩 릴레이로 노란 몸자보를 입고 지리산 둘레길을 걷는다. 봄이 깊어지면서 지리산 둘레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평일과 주말 할 것 없이 적잖은 이들이 울긋불긋한 배낭과 등산복 차림으로 둘레길을 걷고 있다.


이러한 걷기 여행은 불과 몇 년 사이에 일어난 큰 흐름이다. 지리산 둘레길을 만들자고 제안한 실상사 도법 스님을 대표로 하여 (사)숲길이 2007년 1월 설립되었고, 같은 해 9월에는 제주도 올레길을 만드는 (사)제주올레가 설립되었다. 2007년 가을부터 제주 올레길이, 2008년부터는 지리산 둘레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이 새로운 길, 새로운 방식의 여행에 대한 관심과 참여는 폭발적이었다.
둘레길에서 내려다보이는 차도에 자동차가 질주하는 것이 보인다. 더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고속철도를 건설하고 고속도로를 만든다. 먼 거리는 비행기를 타고, 가까운 거리는 자동차를 이용한다. 이 속도경쟁의 심리 가운데 하나는 결과지상주의, 성과지상주의이리라. 미래의 성공, 목표의 성취를 위해 현재를 양보하고 헌납하는 마음이다.
그런데 우리 삶을 곰곰이 통찰해보면, 과거는 이미 사라졌고 미래는 오지 않았으니 과거와 미래를 살아갈 수는 없다. 우리가 사는 것은 과거와 미래가 연결되는 지금 이 순간이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해야 삶이 충실해지고, 과거나 미래에 붙잡히면 공허한 삶이기 십상이다.
걷는 것은 늘 과정인 현재의 가치를 자각하는 것이며, 현재의 삶에 충실할 수 있는 좋은 수행이다. 도착하는 곳이 중요하다고 하여 한꺼번에 두 걸음을 내딛을 수 없으며, 중간을 생략할 수도 없다. 생각에 빠져 걷다보면 발을 헛디디는 경우가 생기고, 빨리 가려는 욕심이 앞서면 곱절로 힘들어진다. 이런 것
은 모두 행복하지 않은 걸음이다. 반면 두 발로 땅을 딛는 몸의 규칙적인 리듬에 몸을 맡기면 난마처럼 얽힌 생각도 가벼워지고 정리된다. 한 걸음 내딛는 순간 새로운 관계로 다가오는 모든 존재들을 바라보고 느끼다 보면, 온 세상과 내가 끊을 수 없는 고마운 관계로 이루어져 있음을 자각할 수 있다. 이것은 존재의 실상을 통찰하는 깨어있는 행복한 걸음이다.
그래서 철학자들은 길을 걷는 것이 그대로 인생이라고 한 것일까. 폴 사르트르는 “인간은 걸을 수 있을 만큼만 존재한다.”고 했다. 부처님은 길에서 태어나서 길에서 돌아가신 분이다. 당시 인도를 지배하던 두 강대국 국왕의 절대
적 귀의를 받으셨다. 호화로움이나 편안함을 얻고자하면 충분히 누릴 수 있었으련만 당신은 코끼리나 마차를 마다하고 늘 두 발로 땅을 걸으셨다. 동물의 수고로움으로 자신의 편안함을 얻고자 하지 않는 자비심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아마도 당신께서는 걷는 행복을 늘 자각하셨으리라.



걸음걸음이 극락정토!
왼발과 오른발을 교차하면서 땅을 내딛는 단순한 동작, 그러나 이 걸음은 더없는 신비요 기적이다. 한걸음 내딛는 그 동작에 온 우주가 참여한다. 해와 달과 별이 참여하는 질서로 자연이 펼쳐지고, 흙은 발을 받치고, 물은 흙을 덩어리지게 하고, 공기는 숨으로, 밥은 움직일 에너지로 참여한다. 밥 한 알에도 온 우주가 참여하고 있으니, 밥을 자양분으로 하여 움직이는 이 순간도 또한 온 우주의 참여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자각으로 걷는 걸음은 늘 충만하고 행복하고 평화로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틱낫한 스님은 “The pure land at every step.”이라고 실상사에 적어놓으셨는데, 이 또한 같은 말이 아니겠는가. 걸음걸음이 극락정토다.
천천히 걸으면서 느낌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통찰하는 깨달음의 걸음, 느리게 걸으면서 주변을 발견하고 감상하는 여유로움의 걸음, 의미를 담아 나아가는 순례의 걸음, 몸에 활력을 주는 율동감 있는 걸음, 이렇게 어떤 걸음이라도 현재에 깨어있게 하며 우리의 몸과 마음에 건강과 풍요와 평화를 가져 다주고, 자신의 내면을 바라볼 여유를 준다.
낯선 곳에 다녀올 때 우리가 곧잘 하는 말이 있다. “갈 때는 제법 시간이 걸린 것 같은데 올 때는 금방이네.” 이 말에는 우리 인생의 중요한 사실 한 조각이 담겨져 있다. 처음 찾아갈 때의 시간과 돌아 나올 때의 객관적 시간은 거의 차이가 없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우리의 마음이다. 갈 때의 우리 마음은 직면한 낯선 것을 받아들여 인식하고 기억하느라 바쁘다. 그러나 돌아올 때는 이미 새로운 정보가 아니므로 마음은 바쁘게 일하지 않는다. 객관적 시간이 같으므로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느낀 것은 그저 착각일 뿐일까? 그렇지 않다. 인생의 시계에서는 객관적 시간보다 주관적 시간이 더 중요하다.
걷는 것, 그것은 주관적 시간에서 남들보다 더 장수를 누리게 할 뿐만 아니라 경이로움으로 충만한 행복한 시간을 선물한다. 걷는 것이 좋은 것은 알지만 시간이 없어서 못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시간이 없어서 할 수 없다는 것은 정말 많다. 명상이 좋은 줄 알지만 시간이 없어서 못하고, 운동도, 봉사활동도, 가족에 대한 관심과 사랑도 시간이 없어서 못한단다. 그러나 이들에게 정말 없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무엇이 정말로 중요하고 값진 것인지를 헤아리는 지혜가 아닐까.
걷는다는 것, 그것은 온전히 살아있다는 말이다.



원묵 스님.
실상사 화엄승가대학원 학감 소임을 맡고 있으며, 지리산에서 대안학교 아이들, 방과후학교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좋아한다. ‘움직이는 선원’ 동안거, 지리산종교연대가 주관하는 ‘천일 순례’에 참여해 지리산 환경을 지키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저서로는『조계종법의 이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