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의 불교적 해법

사색의 뜰

2012-06-21     불광출판사

강력한 처벌보다는 마음 체계 확립이 우선

작년 연말 학교폭력에 의해 대구의 어느 중학생이 유서를 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아이의 마지막 글은 너무나 슬픈 내용이었습니다. 눈물이 나서 한동안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우정과 용서가 사라지는 학교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법사의 입장에서 참회하고 또 참회했습니다. 혹시 공문처리에 바빠서, 퇴근시간에 급급해서 아이들을 챙기지 못했던 적은
없었는지.... 평소에 수업시간에 지식을 전달하느라 아이들의 가슴 속 고민들을 외면하지는 않았는지....생각해보면 아이들을 제 자신의 잣대로 판단하고 좋아하거나 미워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이유와 핑계를 들어 자신을 합리화하며 아이들에 대한 무관심을 정당화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런 참회의 마음을 가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작년에 벌어진 이 사건의 뉴스 영상에서 아주 평범한 중학생의 생활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 아이의 방에 있던 유희왕 카드였습니다. 지금 중학교를 다니고 있는 제 아들 녀석이 그토록 소중히 모으고 있는 그것이었습니다. ‘아! 내 아이와 똑같은 아이였구나’하는 생각에 더욱 애통함 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아마 많은 또래 부모들이 저와 같은 마음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그 애통함은 가해학생에 대한 분노로 이어지고, 강력한 처벌을 통한 재발방지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학교 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지고, 이를 바탕으로 교무회의나 교직원 연수를 통해 학교폭력의 정의, 유형, 대처방안 등의 논의를 거듭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학교폭력은 범죄행위이며 강력한 처벌로 다스려야 한다는 문제해결 위주의 관점이 주류를 이루고 있음을 보면, 아마도 제 생각이 틀린 것 같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사회적 제도가 잘 갖추어져야 사회 구성원들이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듯이, 아이들도 학교폭력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학교폭력 관련 법규의 체계가 튼실해야 함은 이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학교생활을 하다 보니 이런 소식도 들리더군요. 모 외고에서 친구들끼리 사소한 의견충돌로 주먹다짐을 했는데, 부모들끼리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둘 다 강제전학의 처벌을 받았다는 지인의 전화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평소 공부를 참 잘하고 국제적인 리더가 되기 위해 유학 준비를 하던 수재라 안타까움은 더욱 컸습니다. 또 모 여중학교에서 아이들이 같이 놀이를 하다가 우발적으로 한 아이의 팔을 손톱으로 긁어 상처가 나자, 학부모가 학교폭력으로 고발해서 처벌을 면치 못했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우리 아이들은 심리적인 갈등과 충돌을 해결하는 방법을 과연 어디에서 배울 수 있을까요? 용서와 감사 그리고 우정과 연민은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요?

학교 안팎에서 찾을 수 있는 해법들
학교에서 아이들은 무척 바쁩니다. 올해부터 주5일 수업이 시작되어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연간수업일수는 별로 차이가 없는데 선생님들과 학생들의 피로감은 참 큽니다. 방과후 학교수업, 야간자율학습, 그리고 학원수업으로 이어지는 학교생활에서 정서교육은 참 요원한 사항입니다. 이런 사항은 중학생의 경우도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원연수를 통한 창의적 체험시간 활용, 특성화된 템플라이프 또는 템플스테이 등을 통해 학교폭력의 불교적 해법을 강구하고 실천할
수 있습니다. 즉, 학교 안에서는 정규수업시간인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이나 방과후 학교 수업 등을 통해, 학교 밖의 사찰에서는 학교에서 필요로 하는 정서지능 함양프로그램 등의 주제가 있는 템플라이프 또는 템플스테이를 통해 학교폭력의 불교적 해법을 구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긍정심리학의 대가인 마틴 셀러그만 교수는 ‘이미 설정된 당신의 행복 범위내에서 최고의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학문’을 긍정심리학이라고 규정지었습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용서와 감사로서 자신의 과거 만족도를 높이고, 좋은 상황과 나쁜 상황의 영속성과 일시성, 보편성과 특수성을 바로 알아 미래에 대한 낙관주의의 태도를 기르는 것, 그리고 음미하기, 비교하지 않기, 몰입하기, 나누고 베풀기, 관계를 돈독히 하기로 현재의 행복 느낌을 강화하는 원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강점을 찾아 자신의 행복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사실 마틴 셀러그만 교수는 학습된 무기력증이나 우울증에 대한 연구가 전공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정신병리학적 치유가 필요한 소수의 사람들이 아닌 대다수의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행복에 대한 관심을 더 큰 가치로 생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연일 빈번하게 보도되는 학교폭력의 문제성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지만, 이와 더불어 소수의 아이들에 대한 문제해결 중심의 관점이 아닌 대부분의 평범한
아이들이 학교폭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더 나아가 다른 학생들의 고통을 방관하지 않는 마음 체계를 확립하는 것 또한 절실히 필요하다고 봅니다. 아이들과 학교, 학부모, 교사, 그리고 사회전반을 비판하여 ‘어떤 것이 문제일까?’,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하는 생각에서 좀 벗어나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I feel ( ), because of ( )’
주위를 보면 ‘부처님의 말씀은 항상 옳다’는 신심으로 구체적인 응용방법론은
좀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단순히 경전의 구절을 인용해서 폭력에 대해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등의 이야기는 사실 실용적이지는 않습니다. ‘맥락적 경청’이라는 말이 있듯이 부처님의 말씀도 맥락적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말이나 단어 같은 겉 표면이 아니라 부처님의 내면에 있는 감정, 동기, 가치, 욕구 등의 파악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펴는 방법도 반드시 정형적인(솔직히 고전적인) 방법이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저는 성적과 입시 스트레스에 젖어 있는 학생들에게 부처님이나 불교교리를 직접적으로 가르치지 않습니다. ‘00 때문에’라는 프로그램을 수업에서 실시하고 있는데, 이는 12연기의 역관법을 응용한 프로그램입니다. 우선 이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전에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는 시간을 잠시 가져 봅니다. 이때 수식관법을 이용해서 호흡을 세어보라고 합니다. 그 다음 종이 한 장에 요즘 기분이 어떤지 써보게 하죠. 만약에 ‘불안하다’라고 쓴 아이가 있으면 왜 불안한지 그 이유를 써 보게 합니다. 그리고 ‘00 때문에’의 형식을 계속 반복합니다. 그러다 보면 결국 자신의 문제가 세상이 무너질 만큼 큰 문제나 돌이킬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 아님을 스스로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고통스러운 부정적 감정의 뿌리를 알게 되면 스스로 극복할 만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프로그램은 미국 뉴욕의 한 중학교에서 크게 성공 한 프로그램입니다. 이민한 사람들이 많이 사는 가난한 동네에 위치한 어느 중학교에서는 학교폭력이 걷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뉴욕 교육청에서는 이 학교를 아예 없애려고 했는데, 교사들이 일주일에 하루는 교과수업을 하지 않고 복도등에 모여 ‘I feel ( ), because of ( )’이라는 특별한 수업을 했습니다. 수업의 진행방식은 저와 비슷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노력의 결과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는 급성장했고 학교폭력도 사라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살펴보면 많은 교육적 소스가 있습니다. 자비, 소욕지
족, 인연, 중도, 정견, 보시 등의 불교용어를 맥락적으로 이해하고 교육 프로그램으로 구현할 수 있습니다. 특히 불교의 수행법은 몰입과 연계하여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습니다. 또한 사경, 사불, 만다라그리기, 인경, 불교조각, 전통등 만들기, 변상도 그리기 등 불교의 전통문화적 가치는 현대 교육학이나 심리학에서 오히려 배워야 할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사찰에 가보니 극락왕생을 염원하는 수많은 영가등이 걸려 있더군요. 사진을 찍어 카카오스토리에 사진을 뒤집어 올렸습니다. 그리고 ‘원왕생’이 아닌 ‘생왕원’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말은 안 되지만 ‘죽어서 극락 가지 말고, 살아서 극락 만들자’는 의미부여를 했습니다.
“부처님! 이 땅에 단 한 명의 아이라도 학교폭력에 고통 받지 않았으면 합니
다. 부처님! 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행복하기를 발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