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난 모든 부처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내가 만난 불교

2012-05-23     불광출판사

 



청춘의 꿈이 피어나는 대학 신입생 시절, 청년은 민주화 시위에 참여했다가 3개월 만에 제적당하고 맙니다. 청년은 캠퍼스 대신 감옥에서, 오지 않는 청춘의 봄을 견뎌야 했지요. 세상 밖으로 나오고 나서도, 시린 시간은 계속 됐습니다. 복적을 허락하지 않는 학교 대신, 청년은 결국 고시를 택했습니다.
언제 빠져나갈지 모르는 어둡고 긴 터널을 홀로 걷는 것 같던 시간들, 그 속에서 청년에게 한 줌 빛이 되었던 건 매일 아침 읽었던『신라고려 한시선』라는 책이었습니다. 옛 선조들의 지혜와 낭만이 깃들어 있는 한시집인 이 책에서 특히 청년의 마음을 울렸던 것은 ‘귀축제사歸竺諸師’라는 시였습니다. 이 시는 신라시대,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좇아 천축국으로 향했던 스님들에 관한 시입니다.

天竺天遙萬疊山천축천요만첩산
천축은 하늘 끝이라 산으로 첩첩이 이어졌는데,
可憐遊士力登攀가련유사역등반
가련타. 우리 스님들, 헐떡이며 오르고 또 올랐네.
幾回月送孤帆去기회월송고범거
몇 번이나 저 달은 외로운 배를 떠나보겠나.
未見雲隨一杖還미견운수일장환
한 분도 구름 따라 돌아오는 것 보지 못 했네.


인도까지 이르는 길은 험난하기 그지없습니다. 설산을 넘고, 광야를 달리고, 강을 건너 수천리 길을 걷고 또 걸어, 생의 고비 고비를 넘어서야 만날 수 있는 것이 바로 부처님의 나라였습니다. 스님들은 천축국에 머물면서 율장과 논장을 읽고, 패엽에 옮겨 적기도 했습니다. 고국 신라에 불교의 정신을 전하기 위한 노력이었을 것입니다. 이 분들은 모두 자신을 잊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좇아, 불교의 나라로 향한 것이지요. 그러나 그 분들 중 그 누구도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합니다. 가는 도중에 일찍 돌아가시거나 혹 살아남아 그곳 사찰에 머물렀던 분도 계시지만, 끝내 계귀나 당나라로 되돌아온 사람은 단 한 분도 없습니다.
귀, 즉 가고서는 끝내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아니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알고 떠난 사람들입니다. 다시 돌아온다는 기약도 없는 그 길을 스님들은 왜 떠난 것일까요? 그 길고 긴 고행 길에서 스님들이 얻고자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그 길 끝엔 스님들이 얻고자 했던 불교의 참 진리는 무엇일까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인생의 어두운 터널을 건너야 했던 청년에게, 신라시대 스님들의 고행길은 많은 질문과 답을 구하게 했습니다. 그 답을 구하는 길 위에서 청년은 고시에 합격했습니다. 청년은 검사가 됐고, 변호사가 됐습니다. 돈도 벌고, 집도 사고, 생활에 안정이 올 즈음 청년은 다시 유학길에 오릅니다. 그리고 시민운동이라는 낯선 길에 나섭니다. 길도 없고, 끝도 보이지 않는 길, 그 위에 선마음이 바로 천축국으로 향하는 스님들의 마음이었을까요? 길 끝에 진리가 있다는 믿음 하나만을 가지고, 또 다시 앞이 보이지 않는 길을 나섰습니다. 그 길 위에서 권력의 감시와 견제, 나눔과 기부, 희망과 대안이라는 가치들을 만났습니다.
돌아보면 사는 일이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부처님의 진리’를 향해 수천리 길을 떠나는 그 마음이, 진리의 첫 단계이듯이 우리네 삶에서도 길을 나
서는 것이 바로, 삶을 풍성하게 하는 첫 걸음 아닐까요? 길 끝에 부처님이 계신 게 아니라, 길 위에 만나는 모든 것들이 어쩌면 ‘세상의 모든 부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박원순.
경남 창녕에서 출생, 서울대학교 1학년 때 학내 시위로 제적, 단국대학교 사학과에 다시 입학, 졸업했다.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로 1년 재직, 그 후 조영래 변호사와 함께 인권 변호사로 일하게 된다. 영국 유학후, ‘참여연대’를 만들어 권력에 대한 감시기능을 수행했고, ‘아름다운재단’, ‘아름다운가게’ 그리고 ‘희망제작소’에 이르기까지 한국시민운동의 새 지평을 열었다. 2011년 ‘시민이 시장입니다’라는 정신으로 서울시장에 당선, 현재 서울시민의 삶을 바꾸는 첫 번째 시장이 되기 위해 늘 시민을 향해 걷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