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토순례기] 미얀마 7 : 전설과 탑의 고장 파간

불국토 순례기/미얀마 7

2007-01-22     관리자

다른 곳보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곳이라는 뜻으로 뿌강 -파간이라고 부르는 곳, 미얀마의 서북부에 자리한 파간은 사목다라 왕(AD 107년)이 19마을을 모아서 처음으로 나라를 이루었다. 그때부터 55대 쏘몬닌 왕(AD 1325년)의 시절까지 많은 왕들과 백성들은 힘이 미치는 만큼 각기 다른 모습들의 탑을 세웠다. 그 가운데 아노라타라는 왕의 통치 시절이 대내외적으로 가장 번성하던 시기였으며, 이후 몽골이 쳐들어오면서 차츰 쇠퇴의 길을 가게 되었다.

우선 파간의 수많은 불탑이나 유적지를 대강 알면 순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새디’라고 부르는 불탑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셔 놓은 곳이고, ‘구 패야’라는 곳은 굴법당 형식으로 만든 부처님 등상을 모셔 놓은 곳이며, ‘폰지 짜웅’이라는 곳은 스님들이 거주하면서 경전을 배우고 가르치는 곳이다. ‘삐따까 따익’은 경전을 모셔 놓은 장경각, ‘때인’은 계를 받는 건물이다.

“바람 소리에 찰랑 찰랑 흔들리는 풍경 소리처럼/파간의 많고 많은 부처님과 파고다 …” 라는 시(詩) 구절처럼 지금까지 건재하게 남아 있는 불탑이 5천여 기나 된다. 눈을 향하는 곳마다 크고 작은 각기 다른 모양의 탑들이 자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호텔에서 아침 산책을 나서 보라. 멀지 않는 곳에서 얼마의 세월을 보냈는지도 모르는 탑들이 문을 열어 놓고 당신이 방문하기를, 그렇게 바쁘지 말 것을, 스스로를 돌아보라고 무언의 가르침을 보낼 것이다.
안내자가 없다면 저 많은 탑군들을 어디서부터 참배해야 할지 막막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걱정은 놓아도 된다. 현지의 택시나 수레 모는 이들의 훌륭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택시를 타고 쉽게 죽 둘러 볼 수도 있지만 조금만 더 여유를 부린다면 삐걱 삐걱 말 수레를 이용하여 조금은 한가하게 다니는 것도 여행의 다른 멋을 즐길 수 있어서 좋다.

1975년 7월 8일의 대지진으로 많은 탑들이 부서졌다. 지금은 거의가 수리보수 공사를 말끔하게 해놓았지만 파간에서 밟아보는 땅마다 옛날에 불탑의 벽돌이었던 흙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불탑을 세우는 일에 생의 모든 가치를 부여하고 살았던 사람들이 그곳에 머물렀을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을 만큼 국왕이나 일반 백성들, 심지어는 볼모로 잡혀 와서 옥살이를 하는 국왕조차도 자기가 끼고 있던 반지를 팔아서 탑을 세웠다.

웅장하고 아름다운 쉐지곤 파고다

쉐지곤 파고다가 첫손에 꼽힌다. 화려하고 큰 규모도, 또 그 안에 모신 부처님 유물도 귀중한 가치를 지닌 탑이다. 파간 왕조의 유명한 아노라타 대왕(AD 1060년)이 세우기 시작하여 짠씻따 대왕이 이어서 30년이 걸려서 완성한 탑이다. 아노라타 대왕이 사라켓따라에 있는 도타바웅 왕이 모신 탑에서 부처님의 이마 뼈와 에메랄드 불상을 모시고 와서 탑 안에 모셨다. 그 밖에 스리랑카의 위사야바 왕이 올린 부처님의 송곳니도 역시 이 탑 안에 안치하였다.

이 탑에는 탑 안쪽과 바깥쪽에 9가지 불가사의한 일들이 있다. 탑의 동쪽 계단 앞의 돌에는 주먹 하나가 겨우 들어갈 정도의 작은 구멍이 있다. 그곳에 물을 채워 놓았다. 왕들이 왕관을 쓰고 탑의 상부를 쳐다보지 못할 때 고개를 숙여서 그곳을 바라보면 탑상부가 자세하게 보인다. 옛날에는 그 곳의 물이 줄지 않고 항상 그대로였지만 요즈음은 물을 채워 넣기도 한다고 꼬마들이 안내한다.

또 탑의 전면에 돌로 만든 발우를 모셔 놓은 작은 건물들이 죽 늘어서 있다. 그 돌 발우에 재일 날이면 어떤 사람이 아무리 이른 시간에 와서 탑에 공양을 올리려고 하여도 이미 따끈따끈하고 향기로운 공양이 담겨져 있다고 한다.

탑의 북쪽에 누워 계시는 와불(臥佛)에 소원을 빌면 삼년 안에 3번 다시 와서 이 파고다를 참배할 수 있다고 전한다. 이 탑을 세운 곳은 과거 부처님께서 보살행을 닦을 때의 장소로서 처음에는 모래언덕이었지만 차츰 돌로 변한다고 한다.

천년을 넘게 당당하게 자리하고 있는 탑의 위용과 구석구석, 곳곳에 부처님에 얽힌 기이한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파고다이다. 열대지방의 뜨거운 햇살을 견디다가 탑 마당에 넋을 놓고 앉아 그 옛날의 전설들을 회상하다 보면 나도 그 탑의 전설에 동참한 듯싶기도 한다.

아난다 파고다

그 많은 불탑 중에 빠뜨릴 수 없는 곳, 짠씻따 대왕이 1090년에 세운 아난다 파고다이다. 탑의 중심부를 두고 사방으로 커다란 규모의 입불상이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탑을 세운 대왕의 기개를 보는 듯하다.
북쪽에 모신 까꾸사나 과거불은 쟈스민 나무로 조성하였으며 고나가마나 과거불, 남쪽은 소나무로 조성한 까싸빠 부처님, 서쪽은 고따마 석가모니 부처님이다. 탑의 내부는 3겹의 회랑이 있으며 벽에는 감실을 만들어서 부처님 일대기와 자따까 전생록을 석판에 조각해서 모셔 놓았다. 벽에는 과거 몬족의 언어로 역사를 기록해 놓았다.

탑의 바깥 오른 쪽에는 작은 굴법당(아난다옥짜웅)이 있으며 벽화가 매우 화려하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록과 천상에서 복을 누리는 장면들이 그려져 있다. 전에는 모두 개방되었지만 도난이 심하여서 지금은 관리인이 문을 채우고 있다.

수많은 역사가 아직도 진행되고

여행의 피로와 열대 지방의 더운 날씨에 지쳤다면 햇살이 따가운 낮에는 박물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 해가 그 기세를 줄이는 시간에는 수레를 타고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으로 간다. 불탑의 그림자도 밟기를 삼가는 그곳에서도 탑에 올라가서 사방을 둘러 볼 수 있도록 허락하는 곳이 몇 군데 있다.

푸른 들판을 배경으로 이라와디 강물이 비단처럼 흐르고 그 강물 너머로 타는 듯한 선홍빛 열대의 석양이 세상을 온통 붉게 물들이는 것을 볼 수 있다. 파간을 둘러본 이들은 아직도 역사가 진행 중인 느낌을 받는다.

잡힐 듯이 가까운 곳에 그 크기를 자랑하는 ‘담마란지 파고다’가 강렬한 태양을 묵묵히 견디며 버티고 있다. 부왕에게 저지른 과오를 참회하기 위한 ‘나라뚜 대왕’이 세우다가 마치지 못하자 그 아들 ‘꿀라짜 왕’이 완성한 탑이다. 기상이 넘치는 아난다 파고다, 위사카가 부처님께 동부정사(뽁빠람마나)를 지어서 보시한 것을 흠모한 ‘알라웅 씻뚜왕’이 스님들께 동부정사의 자문을 얻어서 세운 삽빈뉴 파고다가 그 높이를 자랑하고 있다.

스님들과 테라와다 경전을 나누어 주기를 원한 아노라타 대왕의 부탁을 거절한 마누하 왕이 자기의 반지를 팔아서 세운 마누하 파고다, 그 탑 안에는 부처님 세 분을 모셨는데 머리가 천정에 닿고 무릎이 벽에 닿을 듯이 모셔 놓았다. 다른 나라에 볼모로 잡혀있는 답답한 자기의 심정을 표현한 것이다.

이라와디 강가에서 황금빛 위용을 자랑하는 ‘슈에산도 파고다’, 그곳에는 부처님 머리카락을 모셔 놓았다. 강 건너 ‘딴지따웅 파고다’와 ‘뚜옌따웅 파고다’는 부처님의 송곳니 사리를 모셔 놓은 탑이다. 그 밖에도 ‘줄라마니 파고다, 알로도삐 파고다 등등 … 선업 짓기를 좋아했던 착한 이들이 남겨 놓은 흔적을 볼 수 있다. 누구든지 그 선업에 동참하기를 원하는 이들은 문화재 청을 찾아가서 탑을 보수하는 일을 후원하고 싶다는 뜻을 전하면 아직도 손이 미치지 못한 탑들이 누군가의 선업을 위해 남아 있을 것이다.
이렇게 탑 위에서 파간의 너른 들판에 퍼져있는 세월들을 둘러보면서 자신을 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든다면, 그래서 자신을 향상시킬 수 있다면 영겁의 윤회에서 벗어나 시원한 바람처럼 향기로운 자신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